미평 뜰에서
김 영애
신분을 확인하고서야 육중한 철문이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담 넘어 에서는 벽안의 공간으로 느껴졌었던 곳이었는데 마치 아담한 시골 초등학교 교정처럼 평온하다 .여느 곳과는 달리 발걸음이 조심스럽게 옮겨진다.
운동장 가득 늦가을 햇살이 쏟아진다.
오늘은 문학회의 연중행사로 미평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백일장 행사가 열리는 날이다. 처음 참여해 보는 나로서는 설레임도 있었지만 내심 호기심을 가득 담고 있었다. 어떤 아이들일까! 어떤 문제를 안고 있기에 가족의 품을 떠나 이토록 격리된 환경에서 사회의 보호를 받으며 지내고 있는 걸까?
일반 고등학교와는 달리 이곳은 범죄의 우려 등 사회 부적응 판정을 받은 학생들을 일정기간 위탁하여 교육하는 곳이다.
푸른 실내복을 입은 학생들이 모여 앉았고 행사가 시작되었다.
외부에서 온 방문객을 바라보는 시선은 경계심과 반가움이 교차되는 듯 했다.
행사 진행을 도우면서 그 아이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흠칫,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조금 전 이곳으로 오는 길에 샛노란 은행잎이 발아래서 밟힐 때도 마음이 지금처럼 애잔하고 불편했었다.
저토록 맑고 선한 눈빛으로 어떻게 이유 없는 주먹을 휘두르고 남의 물건을 탐했을까! 학생들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자상하신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학교의 교육현황과 학생들이 안고 있는 문제와 예방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시설을 둘러보았다.
양지 바른 곳에서는 아이들이 햇볕을 쬐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간밤에 내린 된서리를 맞고 우수수 떨어진 노 오 란 은행잎들은 푹 퍼진 햇살에 몸을 말리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시설과 선생님들이 계셔도 부모의 사랑만할까!
한결같이 결손가정에서 자라서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원인이 크다고 했다.
귀한 난 화분도 사시사철 베란다에 방치해 둔 채 어쩌다가 생각날 때 물 한번주고 키우다보면 오래지 않아 푸르고 싱싱했던 난 잎도 하나둘 떡잎이지고 꽃을 피워 보기도전에 시름시름 병이 들어 죽게 된다.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주면서 질 좋은 거름을 주고 날마다 눈을 맞추며 키운 난은 촉마다 귀한 꽃을 피우고 그윽한 향기를 발한다.
전에는 부부가 남이 되어 돌아설 때 자식을 서로 차지하려 목숨을 걸고 실랑이를 했지만 요즈음은 자녀들의 양육권을 서로 맡지 않으려고 싸움을 하는 세태라고 한다.
짐승도 새끼를 낳으면 진자리 마른자리를 가려서 키우며 외부로부터의 보호를 위해서는 갈기를 세우고, 스스로 먹이를 찾는 방법을 터득할 때까지는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주면서 훈련을 시키건만, 무책임한 어른들의 잘못으로 상처를 받고 애써 스스로 다스리고 있는 모습을 가까이서 들여다보자, 가슴이 아릿하게 아파왔다.
청소년기에 애정 결핍은 욕구 불만을 낳고 욕구 불만은 범죄를 유발하는 계기가 된다고 한다. 특히 모든 사물을 입으로 탐색하는 구강기 시기인 유아기에 충족되지 못한 욕구나 사랑은 성장한 후에 성범죄의 요인이 된다고 한다.
원고지를 앞에 두고 유순하게 빛나는 그들의 눈빛을 보았다.
하얀 원고지 위에다, 떨어지는 낙엽만큼이나 많을 저마다의 사연을 풀어 놓는다.
다 채우지 못하는 빈칸에는 눈물로 점을 찍는다.
세상을 향한 칼날 같은 원망도 증오도 원고지 위에서는 순백의 그리움이 된다.
아마도 오늘밤 그들은 꿈속에서라도 엄마의 달큰한 살 냄새를 맡으리라.
그곳을 다녀온 후 며칠동안 나는 바람에 뒤척이는 낙엽처럼 쉽게 잠들지 못했다.
2005. 12.11
첫댓글 원고지를 앞에 두고 유순하게 빛나는 그들의 눈빛을 보았다.
하얀 원고지 위에다, 떨어지는 낙엽만큼이나 많을 저마다의 사연을 풀어 놓는다.
다 채우지 못하는 빈칸에는 눈물로 점을 찍는다.
세상을 향한 칼날 같은 원망도 증오도 원고지 위에서는 순백의 그리움이 된다.
아마도 오늘밤 그들은 꿈속에서라도 엄마의 달큰한 살 냄새를 맡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