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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5. 6. 큐티
다니엘 9:24 ~ 27
일흔 이레에 대하여
관찰 :
1) 거룩한 성을 위한 일흔 이레
- 24절.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a. 다니엘은 가브리엘로부터 장차 있을 일들에 대해서 설명을 받고 있습니다. 이 예언은 혈통적 이스라엘 뿐만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인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과 연관이 있는 예언입니다.
b.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하나님의 창조 주간 이후로 7이라는 수는 언제나 하나님의 활동을 의미하는 상징수가 되었습니다. 70은 7을 10번 곱한 것이기에, 완전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칩십 이레라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역의 완전한 기간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c. 이 ‘칠십 이레’의 시간중에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게 되는 사건들이 하나님의 통치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d. ‘허물’, ‘죄’, ‘죄악’은 모두 인간의 부패성을 자세히 묘사하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발생된 인간의 부패함입니다. 이 세 가지는 인간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은 저주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것들입니다. 그렇기에 “지극히 거룩한 이”의 출현이 고대된 것입니다.
e. “지극히 거룩한 이”(קֹדֶשׁ קָֽדָשִֽׁים, 코데쉬 카다쉼)의 직역은 ‘거룩한 것의 거룩한 것’입니다. 곧 메시야를 의미합니다. 그 분만이 인간의 ‘허물’, ‘죄’, ‘죄악’을 제거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훼파된 성전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적 성전이 생기에 될 일들을 예언하는 것입니다(26-27).
f. 유대인들의 죄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은 훼파되고, 하나님도 거기서 떠나셨습니다. 그와 반면에 그리스도께서 성전의 완전한 성취를 이루시고자 친히 오시게 될 것입니다. 그가 오셔서 낡은 성전 대신에 참된 의미 있는 성전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그의 안에 하나님께서 살아 계셔서 사람들과 교제하실 것임이 예언된 것입니다.
g. 그렇기에 “칠십 이레"의 일은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의 시대에 대한 예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나 천년 왕국에 대한 예언에 대해서 이 본문으로 끌어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 본문은 다만 그리스도의 초림과 관계된 일에 대한 예언인 것입니다.
h. 다니엘은 기도 응답으로 이렇게 계시를 받아,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잊어버리시지 않은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칠십 이레"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기간이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며, 메시야의 구속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고, 그 때까지 맛보지 못하고,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 보다 큰 구속의 역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2) 깨달아 알아야 할 것
- 25절.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a.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는 24절에서 언급한 바 인류의 ‘허물’, ‘죄’, ‘죄악’을 제거해 주시는 분이 오셔야 하는데, 바로 그 메시야가 오시기까지의 일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b.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제사장과 왕인데, 장차 오실 분이 바로 제사장이자 왕이시며 선지자이신 유일한 메시야이심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c. “일곱 이레와 예순 두 이레” 이렇게 시대를 둘로 나눈 이유는, 두 시대가 각기 다른 특색을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곱 이레"는,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지도 아래 유다 민족이 회복된 것을 특징으로 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고레스 원년부터 에스라, 느헤미야의 지도로 말미암아 성전과 예루살렘 중건이 완성될 때까지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이에 따라 "육십 이 이레"가 오는데, 그것은 성전과 예루살렘의 중건을 완성할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 이르기까지를 말하는 기간입니다.
d. “곤란한 동안”은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돌아와서 예루살렘을 중건하는 과정에서 겪게 될 모든 방해들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3) 예순두 이레 후에 있을 일들
- 26절.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a. ‘예순두 이레’ 후에 있을 일들에 대한 두 가지의 예언입니다. 첫째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끊어지다”(יִכָּרֵת, 이카레트)는 말은 자연사가 아닌 피살되어지는 죽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둘째는 예루살렘과 성전의 멸망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 사건은 메시야의 죽음 이후에 따라오는 사건으로 또한 예언되고 있습니다.
b. 여기서 예루살렘을 멸망 시키는 “한 왕”은 로마의 티투스 장군을 가리키는 것으로 봅니다. 이렇듯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내려지는 벌이지, 사람에 의해서 일어나는 사건은 아님을 다니엘은 가브리엘을 통해서 분명하게 깨닫고 있습니다.
c. 이 예언은 A.D. 70년 로마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정확히 이루어졌습니다. 로마 군대가 유다를 침략하였을 때 항전하다가 항복한 사실에 대해 요세비우스의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 때의 로마 사람들은 유대인들의 계속적인 격렬한 항전에 분노하여 유대인들을 아끼지 않았고, 유대인들은 낙심하여 자살한 자도 많았다. 갈릴리에서는 예루살렘이 포위되기 전에 수 천명이 피살되고, 3 만명이 종으로 팔렸다. 로마 군대는 1 년 이상의 전쟁으로 예루살렘 외에 유다와 갈릴리의 모든 지방들을 점령하였다. 예루살렘이 포위되자 질서는 문란해졌으며 유대인들 중에 내란이 일어나 항전파와 평화파로 나뉘었다. 대제사장직은 아주 수치스럽게 무너졌고, 항전파는 암살대를 사용하여 평화파 사람들을 많이 죽였는데, 성전 바깥 뜰에는 피가 넘쳐 흘렀으며, 하루는 8,500구의 시체가 거기 있었다. 이렇게 내란으로 인하여 죽은 12,000구의 시체는 매장되지도 않은 채로 버려두었다. 예루살렘이 포위되어 있는 동안 110만명이 죽었고, 97,000 명이 종으로 팔렸으며, 성전은 여지없이 무너졌고 성읍은 파괴되었다. 기근을 당한 유대인들은 밤중에 식량을 구하러 나가 다니다가 잡혀서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하루에 약 500여 명씩 그렇게 죽었다. 십자가 하나에 많은 시체들이 달려 있을 정도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기 때문에, 시내에 매장할 수 없어서 그 시체들을 골짜기에 굴려 버렸다. 도망가던 자들 중에는 저축하였던 금을 입에 물고 피하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잡히기만 하면 학살을 당했다"라고 기록했습니다.
d. 그러므로 26절에 기록된 예언은, 주후 70 년에 로마 군대로 말미암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가리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4) 남은 한 이레에 있을 일들
- 27절.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a. 여기서의 “그”는 메시야를 가리킵니다. “그”가 “언약을 굳게 맺”는 분이심을 말하고 있고, 25 ~ 26절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분이 바로 메시야이시기 때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성전 휘장이 찢어져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하나님의 성전 제사를 드리는 것이 가증한 것이 되어 버리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b.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며 설 것이며”는 직역을 하면 “황폐케 하는 자가 미운 물건의 날개 위에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c. “가증한 것의 날개”는 성전 꼭대기를 의미합니다. 성전을 “가증한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속죄의 죽음을 죽으신 이후에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성전에서 제사를 거행할 때 그것은 우상 숭배와 다를 것이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d. “황폐하게 하는 자”는 ‘황폐케 된 것’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기에 이것은 훼파된 성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e. 여기서 “쏟아지리라”“는 하나님의 진노는 이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고, 성전에 대한 심판, 또는 자기 백성(유다)에 대한 심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오늘의 본문은 대단히 어려운 본문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의 주석을 많이 참조했습니다.
2) 오늘의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날짜와 시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됩니다. 다니엘은 그 예언의 중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인류의 ‘허물’, ‘죄’, ‘죄악’을 제거하실 분을 만났던 것입니다.
3) 다니엘이 이 예언에서 충격적으로 대면하는 것은 예루살렘 성전의 용도 폐기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이 심지어 저주가 쏟아지기까지 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제정해 주신 방법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도,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성전을 스스로 용도 폐기하시면서, 그러나 원래 그 성전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전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하시는 것입니다. 향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설령 예루살렘에서 제사를 드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상숭배와 다를 것이 없는 것이 됨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크고 놀라운 구원계획입니다. 다니엘은 비록 구약의 말미에 존재했던 사람이었으나 하나님에 의하여 신약의 구원의 경륜까지를 경험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4)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혹독하게 다루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이 나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잘못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마땅히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를 통하여 정하신 시간에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은 회복됩니다. 회복이 되지만 옛날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하심으로 더 온전해지고 더 풍성해지고 더 충만해진 것으로 역사되어지는 것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은 험악하고 처참한 꼴을 당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이 하나님이 연약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너무나 크신 분이심을 보여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적용 :
1) 하나님의 마음에 얼마나 다가서야 구약의 시간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신약의 섭리까지를 보고 누리며 거기에 속한 삶을 살수 있었던 것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고 깊은 연구와 묵상을 통하여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들을 이렇게 까지 깨닫게 되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 신적 존재와 방불한 위치에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다니엘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브리엘이 해석해 주었다고 하지만 그 해석을 받을 만한 존재가 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2)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 세상적인 가치와 기준으로 잘 되는 것보다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게 되는 것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하나님이 눈치를 볼 존재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종인 나 역시 세상적인 가치에 의해서 휘둘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치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언제나 분명한 것은 사역은 존재로부터 흐른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도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품격이 드러나는 존재가 됨을 더욱 소망합니다.
3) 말세는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에 해당합니다. 물론 우리는 말세를 준비하고 말세의 때에 부합되는 삶을 살아야 하겠지만, 그것이 말세의 고난을 피하고자 하는 태도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의 환란을 극복하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존재가 되기를 원하시지 그것을 다가올 환란을 피하는 유약한 존재가 되는 것을 원하셔서 예언을 해 주지 안으십니다. 다니엘은 이러한 상황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말씀의 부흥을 위한 포석을 던졌던 것입니다.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