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조 파업 결정엔 성과급 아닌 '다른 이유'
현대차 노조 파업 결정엔 성과급 아닌 '다른 이유'
"국내공장 투자 확약 없는 일방적인 해외투자는 노사 갈등만 야기할 뿐입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노조)은 '2021년 임금·단체협상(임단협)' 첫 상견례를 앞둔 지난 5월25일, 그룹이 앞서 발표한 74억 달러(한화 8조4000억원) 규모의 미국 투자에 반발하며 이같이 경고했다.
미국 내 전기차 생산과 설비 확충이 핵심 투자 분야로 거론되자 "미래 신사업 국내공장 우선 투자를 기반으로 한 미래 특별협약을 체결하고 난 이후에 해외공장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순서"라며 사측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노조가 즉각 반발한 배경엔 전기차발 산업재편에 따른 일자리 감소 우려가 깔려있다. 전기차의 경우 부품수가 내연기관차보다 30% 이상 적게 들어가기 때문에 전기차 생산비중이 늘어날수록 그만큼 일감이 줄어 고용 감소가 불가피하다.
실제로 현대차·기아 노조가 2019년 내놓은 '미래형 자동차 발전 동향과 노조의 대응' 보고서에 따르면 신차 생산물량 중 전기차 비중이 2025년 15%, 2030년 25%로 늘어나면 현대차에서만 각각 최대 1629명(2025년), 2837명(2030년)의 인력이 줄어들 전망이다. 산업연구원도 내년에 국내 전기차 생산 비중이 10.5% 증가할 경우 4718명의 일자리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노조가 전날(7일) 83.2%에 달하는 조합원들의 찬성표를 앞세워 파업 절차에 돌입한 것도 표면적으론 그간 쌓인 성과급 불만을 전면에 내걸었지만 결국 일자리 불안에 대한 선제적 대응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노조는 구체적으로 △해외투자관련 계획을 단협에 따라 정당한 절차를 밟아 진행하면서 국내공장 투자를 기반으로 한 미래협약 체결 △미래 신산업인 전기차·수소차, 모빌리티(이동수단), 로보틱스 사업을 울산을 필두로 자동차공장이 있는 전북 전주, 충남 아산과 연구소가 있는 남양(경기도)을 중심으로 투자 단행 선언 △코로나19를 극복하며 회사발전을 견인한 5만 조합원에 대한 정당한 성과와 보상 실시 △울산에 투자를 적극 검토 할 수 있도록 유용부지 무상제공, 세제혜택, 규제완화 등 필요한 조치를 적극 단행하고 4차 산업과 관련된 상호 MOU(양해각서) 협약식 추진 등을 현대차와 울산시에 요구한 바 있다.
그러면서 "침체된 울산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4차산업 신사업 투자로 돌파해야 하고, 현대차가 발표한 '2025전략'속에 60조1000억원 재원을 울산에 투자해야 현대차의 경쟁력도 높아 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조가 국민연금과 연계한 정년연장(최장 만 64세)을 핵심 요구안으로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해마다 2000명이 넘는 조합원이 퇴직하지만 신규인원 충원을 이행하지 않는다"면서 "청년일자리 문제를 핑계로 정년연장을 거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올해는 전기차 위주로 산업이 개편되면서 얽힌 문제가 특징적"이라며 "전기차엔 내연기관차보다 부품이 훨씬 적게 들어가서 오히려 공장 직원수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고 이를 알기 때문에 노조도 무리한 요구를 던지면서 극단적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전기차 관련 재교육이나 현 직원들을 전기차 시대에 맞게 개편하는 방안을 노사가 함께 고민해야지 옛방식대로 파업하면서 몽니를 부리는 식으로 가는 건 치열한 글로벌 경쟁 상황에서 오히려 더 수렁에 빠지는 일만 될 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대차 노조는 쟁의대책위원회를 소집해 파업 돌입 여부와 일정을 논의할 계획이다. 앞서 노조는 올해 임단협 교섭이 난항을 겪자 지난달 30일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쟁의 조정을 신청했다. 중노위가 교섭에서 노사 양측 입장 차이가 크다고 판단해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리면 조합원 투표에서 파업을 가결한 노조는 합법적으로 파업할 수 있다.
노조는 사측이 지난 13차 교섭에서 내놓은 △기본급 5만원 인상(호봉승급분 포함) △성과금 100%+300만원 △품질향상격려금 200만원 △2021년 특별주간 2연속교대 10만포인트 등 임단협 일괄 제시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신 △기본급 9만9000원 인상(정기호봉 승급분 제외) Δ당기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등 당초 임단협 요구안을 충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교수는 "아직 파업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며 "전기차 시대에 전 세계적으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가운데 또 다시 '악습'을 반복하려 하고 있다. 파업이 진행되면 당장 올해 하반기부터 실적이 고꾸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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