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프로야구는 타자들이 득세하고 있다. 지난해 2년간 리그 전체 평균 방어율은 3점대였지만, 올해는 3년 만에 4점대(4.18)로 복귀했다. 그러나 투수들이 전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2점대 방어율 투수가 지난해 4명에서 올해 6명으로 늘어난 것이 이를 증명한다. 투구의 질보다 양에서 예년만 못하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투구이닝이다.
올 시즌 최다 투구이닝을 소화하고 있는 투수는 LG 봉중근이다. 26경기 모두 선발등판한 봉중근은 173⅔이닝을 던지고 있다. 경기당 평균 6.67이닝을 기록할 정도로 뛰어난 이닝소화능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200이닝은 사실상 힘들어졌다. 선발 로테이션대로라면 최소 2경기 정도 선발등판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팀이 최하위로 처진 시점에서 굳이 무리할 필요성마저 없어졌다.
남은 2경기에서 평균 투구이닝을 소화할 경우, 봉중근 약 187이닝에서 시즌을 마치게 된다. 시즌 가장 많이 던진 투수의 이닝수가 역대 최소였던 지난 2003년 LG 이승호의 191⅔이닝 기록을 깰 게 유력하다. 하지만 당시에는 KIA 다니엘 리오스(188⅔이닝)와 한화 이상목(185⅓이닝) 등 180이닝 이상 던진 투수가 이승호를 포함해 3명이나 있었다.
반면 올 시즌에는 봉중근을 제외하면 180이닝 이상 소화한 투수가 전무할 것이 유력하다. 투구이닝 2위 손민한(롯데·164⅔이닝)과 3위 마일영(히어로즈·163이닝)의 페이스가 후반기부터 부쩍 떨어진 기색이 역력하다. 데뷔 후 2년 연속 200이닝을 돌파한 류현진(한화)도 올 시즌에는 153⅔이닝으로 이 부문 5위에 랭크돼 있다. 부상과 피로누적으로 이닝소화가 예전만 못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또 달라진다. 한국보다 페넌트레이스가 무려 36경기가 더 많은 메이저리그에서도 200이닝 투수는 흔치 않으며 부상에 대한 우려를 낳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2003년을 제외하면 25년간 매년 최소 1명 이상 200이닝을 던진 투수들이 꼬박꼬박 나왔다. 타고난 강견도 있었지만, 견디지 못한 투수가 더 많았다. 200이닝은 혹사의 상징이었다.
실제로 올 시즌 류현진을 비롯해 김광현(SK)·윤석민(KIA) 등 젊은 투수들을 코칭스태프의 관리를 비교적 잘 받았다. 아플 때에는 과감하게 1군 엔트리에서 제외돼 휴식을 취했고, 등판간격과 투구수 조절로 관리받았다. 류현진과 윤석민은 4일 휴식 후 선발등판이 각각 3차례·6차례밖에 없었으며 김광현은 4일 휴식 후 선발등판이 10차례 있었지만 투구수 110개 이상은 딱 한 번뿐이었다.
물론 특급 이닝이터로 자리매김한 봉중근에게는 예외였다. 올 시즌 봉중근은 4일 휴식 후 선발등판이 14차례로 가장 많았으며 투구수 100개 이상 던진 경기가 18차례로 역시 가장 많았다. 투구수 110개 이상 던진 경기도 12차례로 역시 리그에서 가장 많다. 등판기회가 더 많았다면 200이닝 돌파도 가능했다. 30경기 미만 등판에서 200이닝을 돌파한 경우는 7차례뿐. 봉중근은 “개인적으로 가장 욕심나는 부분은 최다이닝 투구”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LG에게 있어 봉중근의 올 시즌 체감 이닝은 200이닝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