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분노를 표출하거나 앙갚음하지 않는 편입니다.
카르마의 연쇄를 멈추는 데 나름의 기여를 합니다.
내가 어느정도 선하거나 지혜롭거나 분노의 뿌리를 어느정도 정돈해서 그러한가..
ㅡ
최근 꿈을 꾸었습니다.
현실이었다면, 어떻게든 소화해냈을 일을 당했습니다.(모욕과 억울함)
저는 참지 못하고, 아니 참을 생각도 없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파멸로 몰고갔습니다.
1을 받았는데 10으로 되갚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과 내 가족이 온갖 피해를 겪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그렇게 했습니다.
ㅡ 복수가 가져올 상대방의 원망과 분노에 대한 두려움
ㅡ 예상되는 나와 피해와 가족의 상처
를 염두에 두는 제한(혹은 그러한 두려움)이 없는
꿈 속의 나는 문자 그대로 악인이었습니다.
꿈에서 가끔 이렇게 폭주하는 저를 봅니다.
아마도(확실히), 현실에서 제가 앙갚음하지 않는 이유 중 큰 지분을 차지하는 요소가
재반격으로 입을 수 있는 피해에 대한 두려움과
그리고 상대를 완전히 무력화할 힘이 없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조건이 해소되었다면..
제 반응양식도 매우 많이 달라졌겠져.
정토진종 신란 조사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모든 인간은 악인이다."
첫댓글 황벽님. 깊은 사유가 들어있는 아름다운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로지 감정에 물들어 있는 꿈속에서의 나와,
예측 판단 등으로 다듬어진 현실에서의 나
어느 것이 본성을 더 잘 드러내는가?
사실 우리의 본성은 꿈속에서와 같은 감정에 그 뿌리를 두고있으며, 현실은 그 본성을 가리는 치장물들로 가려져 있죠.
신란성인의 '인간은 악인이다'라는 선언은 참으로 뜻깊은 말씀같습니다.
나는 악인이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살아남은 자의 후손이기에....
개인적으로다가.. 낮의 현실에서 정신을 차리고 살려고 신경을 좀 쓰면은.. 밤의 꿈에서도 소위 저열한 본능이 상당히 통제가 됩니다. 현실에서와 비슷하게 이성적? 사고능력이 있는거죠.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만약 제가 낮에 열씨미 닦아서 깨어있고 알아차리는 힘을 기르면, 꿈에서 괜찮은 사람 행세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때, '본성이 변했다' 보다는..'본성을 통제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판단할 겁니다.
성자들은 진짜 저열한 본능적 반응이 없을 건데..
결론) 이번생은.. 대략 노답..
어설프게 통제해서 착한 사람이려고 하기 보다는, 복수도 할만큼 해보면 저절로 떨어집니다.
사람은 아주 풍부한 상상을 할 수 있으니까요, 뭐... 상상하는 것도 악업이긴 하지만요. 어쨌든 현실보다는 상상에서 악업을 저지르는게 압도적으로 나아요.
벗어나는 것은, 넌덜머리가 나야 합니다.
자기 조건이 무언가와 부딪혀서 억울함과 분노 등이 발생한다면, 그 조건을 어떻게 할 것이여...
그게 '나'인데... 이미 주어진 건데...
주어진 것에서 철저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넌덜머리나는 겁니다.
넌덜머리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넌덜머리나게 해보는 게 하나고, 상상력이 풍부한 인간에게는 제법 쉬운 방법... 다른 하나는 그런 자신에게 넌덜머리나는 거, 이거는 꽤 어렵습니다.
"그런 자신에게 넌덜머리 나는 것"
아.... 이 말씀의 뜻은 바로 자신의 감정을, 자신의 본성을 사실대로 바라보고 그 끔찍함에 넌덜머리로 물들여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수행이라는 것도 이렇게 스스로가 악인임에 넌덜머리가 나도록 자신을 물들여가는 과정일 것 같네요.
욕망 분노 어리석음의 본능에 대해 넌덜머리를 낼 수 있도록 자신을 물들여 간다는 것처럼 치열한 수행은 과연 인류 몇명에게나 가능할까? 싶습니다.
안되는 것은 아니겠죠. 2500년 전의 붓다가 하셨고 그 다음 수많은 아라한들의 깨달음의 노래를 보면 완전 불가능한 일은 아닌 듯요.
넌덜머리난다는게 자살 같은 폭력은 아니구요. 이게 잘 생각해야 하는데요. 말이 잘 될지 모르겠는데...
분노등이 발생할 때, 밖으로 향하지 못하면 자신으로 향합니다. 자신도 '밖'이거든요. '분노하는 자신'이라는 동일성을 실현하기 위해 그런 거예요. 그게 그토록 사랑해 마지 않는 자신의 자아니까...
그래서 '있다'는 것은, 언제나 무언가를 가져다 놓는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혼동을 막기 위해 기호를 사용합시다.
A에 분노를 일으키는 것에 넌덜머리난다, 그러면 점차 A에 분노를 일으키지 않게 됩니다. 재미가 없으니까...
원래 중생은 스스로 찾은 행복을 추구해 여기 있기에, 재미 엄는 일을 억지로 하지 않아요.
어쨌든 점차 A에 분노를 일으키지 않게 된다는 것은, A에 분노를 일으키는 조건 B가 사라져간다는 겁니다. 연기에 따라 A와 B는 '쌍'으로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뭐가 문제냐 하면, B가 하나가 아니라는 거예요. B', B"... ... 집합이라고, 거의 무한집합이지...
어쨌든 A류 집합이 희미해지면, B류 집합도 희미해져 가기는 합니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반면 B류 집합 자체에 넌덜머리가 나면 어때요?
.
A류 집합은 자연뽕으로 없어집니다.
쌍으로 성립하는데, 어째서 그런 차이가 있는가?
주된 조건의 문제입니다. 자아의 문제라구요. 중생의 토대인 자아...
B류 집합에 넌덜머리가 나면, 어차피 또 다른 자아로 있게 됩니다. 그것이 긍정적 방향, 불교를 기준으로 권장되는 방향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분노하는 자아이기에 분노를 합니다. 분노하는 자아가 없으면 분노하지 않습니다.
분노를 많이 하면 분노하는 것이 자아가 됩니다. 서서히... 물들어요. 이거를 우리는 '물든다'고 해요.
넌덜머리나게 하다가, 넌덜머리가 나는게 아니라 그거를 하는게 자신이 되어버릴 수도 있어요.
그래서 넌덜머리가 나려면, 특히 인간의 풍부한 상상력을 이용해서요.
정말 끈질지게 중간에서 어설프게 멈추지 않고 끝까지 가봐야 합니다. 온갖 방법으로... 그러다 상상력의 한계를 만납니다.
상상력의 한계에 끊임 엄이 부딪히는데 굴하지 않고 계속 하면, 어느 순간 넌덜머리납니다.
그러면 더이상 그거를 하는 '나'는 없게 됩니다. 재미가 없으니까... 자신에게 행복을 주지 못하니까...
상상력의 한계에 부딪힌다는 거는... 그와 관련한 자아 붕괴의 전조 현상입니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다만 악에서 나를 구하시는게 아니라...
필히 악(한 행동)이 나에게서 놓여날수 있게 하소서
오 주여! 나를 악에서 자유롭게 해달라 하지 않겠나이다
다만 나,자신으로 부터 자유를~..."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