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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사추세츠주 세일럼(Salem)은 호손의 도시이기 이전에 마녀의 도시이다.이것은 마녀가 세일럼에 나타나서 무고한 사람을 현혹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불지옥으로 끌어들였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수많은 무고한 여성들이 마녀라는 이름으로 죄없이 투옥되어 죽음을 맞이했다는 의미에서이다.
필자가 세일럼을 방문했을 때에도 역시 거리에는 마녀가 재판받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고 "마녀 박물관"과 마녀로 고소된 많은 여성들이 조사를 받았던 장소인 "마녀의 집"이 관광객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세일럼의 마녀재판은 1692년 여자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근처의 숲에서 한 인디언과 함께 몇번의 모임을 가지자 사람들이 그들을 악의 손아귀로 몰아넣은 것이 누구인지 다그쳤고,겁에 질린 아이들이 3명의 나이든 여성을 마녀로 지목한 것이 발단이 되어,2백명 이상의 사람들이 마녀의 혐의로 체포되었고 그중의 일부는 교수형에 처해졌던 아주 비극적인 사건이다.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1804~1864)은 이 마녀재판을 주도했던 윌리엄 호손 판사의 직계후손이자 퀘이커 교도의 박해와 인디언 대학살에 앞장섰던 가문출신이다.그래서 많은 비평가들은 세일럼에서 태어나서 자란 호손이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에 깊은 죄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그것이 그를 청교도 사회의 횡포를 비판하고 나선 사회개혁가로서,친페미니즘 성향의 작가로서 성장하도록 했다고 주장한다.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그는 정치 사회의 개혁이나 비판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기보다는 미국적 풍토에서 인간 "원죄"의 문제,고독과 인간 심리의 어두운 면을 보다 내밀하게 성찰했던 내향적인 회의주의자였다.영국의 소설가 D.H 로렌스가 지적했듯이 그는 "강렬한 영혼의 광휘" 속에서 살았던 인물이었다.호손은 오늘날 해리엇 스토나 루이자 올컷과는 비교도 안되는 미국문학의 거장으로 남아있지만 그는 베스트셀러와는 인연이 없는 인물이었고 따라서 생계를 위해서 세관에 취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이곳에서의 생활을 정말 따분하고 괴로운 것으로 묘사했지만,빨간색의 이층 건물로 이루어진 세관은 그 덕분에 유명한 역사적 명소로서 보존되어 있었다.그는 이 세관의 창고에서 실제로 A자가 쓰인 옷을 발견하고 그의 대표작 "주홍글자"를 집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주홍글씨"라고 번역되어 소개된 고귀한 목사와 한 유뷰녀의 금지된 사랑에 초점이 맞춰진 에로틱한 영화와 원작 "주홍글자"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원작은 간통죄를 지은 헤스터가 공개수치를 당하기 위해 A자(Adultress,즉 간통의 첫글자 A)를 달고 단죄대에서 분노한 군중들과 대면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물론 그녀는 아이의 아버지를 밝히라는 군중들의 요구에 결코 부응하지 않지만,자신의 신조를 배반하고 금지된 사랑을 나눈 딤즈데일 목사는 죄의식과 위선의 고뇌 때문에 현저하게 몸이 쇠약해져간다.헤스터는 같이 도망가자고 제안하지만 목사는 단죄대 위에서 자기 죄를 고백하고 죽고 만다.원작에는 두 남녀주인공이 처음에 어떻게 끌리고 유혹하여 사랑을 나누게 되는지 그 과정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유혹과정이야 어찌되었든 이미 청교도 사회의 율법을 어긴 두 남녀의 심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호손협회의 주관하에 매년 7월4일이면 호손이 살아나와 세일럼 시내를 한바퀴 돈다. 당연히 실제 호손은 아니다. 하지만 이 시대에 그가 살아나와 다시 수많은 마녀들의 무덤을 본다면 그는 어떤 느낌을 가질 것인가? 생전에 그는 마녀들,다시 말해 설치고 다니는 여자들을 혐오했다. 그는 당대에 문단을 지배하고 있던 여성작가들을 "글나부랑이나 끄적이는 여자들"로 격하시켰고 그와 비교적 가까이 지냈다고 볼 수 있는 마가렛 풀러도 여자로서의 이미지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티시언이 그린 막달라 마리아를 "눈까풀 만큼이나 얄팍한 참회와 종교적 감정을 가장하고 있는 대단히 상스럽고 관능적인 여자"라고 평하는 데서도 아주 잘 드러난다.마찬가지로 "주홍글자"의 헤스터 역시 그가 혐오하는 아주 육욕적이고 관능적인 여자로서, 한 고귀한 남성의 영성을 파괴하는 악마,혹은 전시대의 마녀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그러므로 호손의 관심사는 아무래도 헤스터에게 보다는,뿌리깊은 청교도 사회에서 이브로 인해 타락의 길로 접어든 한 남성의 고뇌에 있다고 보야야 할 듯하다. 그는 천성적으로 내향적인 성격의 소유자이긴 했지만, 그의 삶은 정치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프랭클린 피어스(미국 14대 대통령)의 전기를 저술해준 대가로(이로 인해 호손은 휘그당의 반발을 사기도 한다) 영국 리버풀의 영사직을 맡기도 하였으며,상당수의 단편소설들을 보수적인 "민주평론"에 발표하는 등 그의 정치적 성향은 진보적 개혁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고,그의 주변에 팽배해 있었던 초월주의,유토피아적 사회주의, 불룩팜운동 등에는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문학만을 놓고 보자면, 호손은 신생 미국의 낙관주의 속에 담겨 있는 불합리성의 심연을 꿰뚫어 본 작가이자 로맨스이론을 정초함으로써 미국의 소설 양식을 명시적으로 확립시킴으로써 미국문학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다.
그런 까닭에 세일럼에는 세관건물을 비롯해서 소설의 배경이 된 "칠박공의 집",그리고 그의 생가까지 그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은 거의 모두 기념관으로 보존하고 있다.콩코드 역시 그가 머물렀던 올드맨스와 웨이사이드 두 곳 모두에 기념관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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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학생때 읽고 얼마전에 다시 읽었는데도 참 좋았어요. 명작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느끼는 감동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런 명작을 써야할텐데.ㅠ.ㅠ
저도 미국 가기 전에 다시 읽고 가야겠어요.^^
와 ~ 선생님 미국 여행이 기대됩니다.
버지니아 주에서 북쪽 끝 메인 주까지 가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