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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자녀 이상 출생률 높은 곳 어딜까
놀랍게도 행안부 지정 인구감소지역
서울은 당연히 꼴찌인데 그 이유는
아이들이 커가며 지역을 떠난다는 얘기
신동진 귀촌칼럼니스트
넘칠 리야 없지만 모자랄 것도 없는 순환의 삶
집 앞 큰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은행을 주워왔다. 과육을 으깨 가마솥에 넣고 끓였다. 내년에 쓸 천연살충제를 만들기 위해서다. 열매는 햇볕에 말렸다. 조만간 열릴 마을 플리마켓 때 구워서 팔 생각이다. 가마솥 연료로는 가을걷이를 한 후 남은 다양한 줄기대들, 가지치기한 나뭇가지들, 폐 팰릿 목재들을 사용했다. 친환경 사료를 먹인 우리 집 반려견이 싸놓은 대변도 연료로 사용했다. 타고 생긴 재는 밭에 뿌려진다. 역시 내년 농사를 위해 좋은 흙을 만들어 놓기 위해서다.
이렇게 순환이 된다. 돈 드는 것도 없고 그냥 자연스럽다. 순환 속에는 부족함과 과함이 없이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들로 풍요롭다. 나와 아내가 함께 가꾸는 무아(無我 moi)농장의 원칙은 순환이다. 퇴비장, 생태화장실, 빗물탱크, 태양광 발전, 토종씨앗 농사 등이 그런 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다.
순환이 막히면 곳곳에서 문제가 생긴다. 혈액의 순환이 안 되면 사람이 죽고, 사람의 순환이 안 되면 출생률이 떨어지고 지방이 소멸한다. 돈의 순환이 막히면 경제가 망가지고, 자원순환이 안되면 쓰레기가 넘쳐나고, 생태 순환이 붕괴하면 인류가 멸종한다. 곳곳에서 순환이 막혀 생기는 죽음의 쓰나미가 밀려오는 상황에서 흙 한 줌 뭉쳐놓는다고 뭐가 바뀌겠느냐는 생각도 들지만 세상에 여전히 우리 부부 같은 노력을 먼저 했던, 그리고 지금도 묵묵히 그런 삶을 살고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믿음이 있기에 그들과 무언의 텔레파시를 주고받으며 순환의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촌에서 태어나 서울로 끌려가는 아이들
최근 들어 인구위기, 인구절벽에 따른 폐해를 다루는 기사들을 자주 본다. 지역소멸을 넘어 국가소멸을 우려하는 목소리, 이미 인구절벽으로 인해 벌어지는 사회 각 분야의 비상적 상황에 대해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절박한 목소리도 자주 들린다. 그런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단한 문제점이 틀릴 경우 그 문제는 해결이 안 된다. 구토를 하는 환자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사가 문제점을 위궤양으로 진단한 처방과 식중독으로 진단한 처방이 같을 수가 없고 결과도 다르다. 그리고 같은 처방을 했어도 병을 치료할 의지가 있는 환자와 없는 환자의 결과 또한 같을 수가 없다. 내가 보기에는 병을 치료할 의지가 없는 환자에게 잘못된 처방을 하고 있는 상황이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최근 ‘메가시티 서울’ 논란이 그 사례다. 서울은 전국에서 합계출산율이 가장 낮은 도시다. 전국 합계출산율 평균 0.78에 서울은 0.59다. 전국 시·군·구 모(母)의 평균 출산연령 상위 10위가 모두 서울시의 구(區)다. 그 1위는 강남구로 평균 35세다. 가장 생활비가 비싼 곳에서 경제적으로 생활이 안정될 때까지 출산을 늦춘 결과일 것이다. 합계출산율 상위 10위 지역 중 강원도 인제군을 제외한 9곳은 놀랍게도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인구감소지역이다. 출생율이 높은 곳이 인구감소지역이라는 얘기는 그나마 없는 살림 속에서도 낳은 아이들이 그 지역을 빠져나간다는 얘기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지역재생잠재력지수’를 개발해 발표한 바 있다. 이 지수는 두 자녀 이상 출생률(둘째 이상 출생아/총 출생아 수) 대비 출산가능인구(15-49세 여성인구/총 여성인구)로 산출되는데, 지역의 전반적인 출산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줘서 지역에서 얼마나 인구를 증가시킬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개발된 지수다. 지수값이 1 이상이면 지역에서 인구가 재생산되고 있음을 의미하는데 전국 229개 시·군·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수값 2 이상인 19개 지역은 모두 군(郡)지역이었다. 이 지역들 또한 놀랍게도 행안부가 지정한 인구감소지역이다. 그렇다면 서울은? 역시 꼴찌다.
합계출산율도, 지역재생잠재력지수도 모두 농·산·어촌에서 도시보다 아이들이 더 태어나고 있고 서울은 두 지표에서 모두 꼴찌임을 보여준다. 문제는 촌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학령이 올라가면서 지역을 떠난다는 것이다. 최근 인구 이동 빅데이터를 활용해 분석한 <시사IN>보도에 따르면 지방에서 태어나 자란 청년들, 특히 20대 여성들은 인접 광역시를 거치지 않고 바로 서울로 전입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1903년 루트비히 리히터의 그림. 위키백과
‘메가시티 서울’은 <헨델과 그레텔> 마녀의 과자집
그렇게 전국의 사람 씨앗을 끌어모은 서울은 아이를 안 낳거나 늦게 낳게 해 대한민국의 출생률을 거세하는 도시다. 사람들은 서울특별시로 가고 있는데 서울특별시는 특별하게 아이를 낳지 못하게 만드는 불임의 도시다. 서울로 모인 청년들은 서울에서 가정을 꾸리지 못하고 인접 도시로 가서 아이를 낳는다. 서울과 합병 논란이 있는 김포시의 합계출산율은 0.93으로 전국 평균보다도 높고 전국적으로 봐도 높은 수준이다. 김포시를 포함해 서울과 경계를 접하고 있는 12개 시들의 합계출산율 평균은 0.83이다. 전국 평균보다는 높지만 이 또한 궤멸적인 수준의 합계출산률이다. 합계출산률 1위인 전남 영광군 1.8의 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이렇게 사람의 순환이 되지 않고 서울에서 그리고 인접도시에서 정체되고 있다. 순환이 막히니 당연히 지방은 소멸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시스템에 사람의 의지로 조금의 균열이라도 내보자고 공정귀촌을 얘기하지만 녹록지 않다.
문득 동화 <헨델과 그레텔> 속 과자집과 마녀가 떠오른다. 과자집으로 아이들을 유혹해 그 아이들을 잡아먹는 마녀. 서울특별시는 그런 과자집이다. 그런데 이 마녀가 지금의 과자집이 작아서 더 큰 과자집을 짓겠다고 하는 것이 ‘메가시티 서울’ 주장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마녀는 누구인가?
서두에 얘기한 나의 농사일이 순환에 기대지 않았다면 나는 은행열매를 사고, 연료를 사고, 농약과 비료를 사야 했다. 순환이 끊기는 곳에 시장의 상품이 들어선다. 내가 순환 농사를 짓지 않는 순간 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편입돼 돈이 필요한 농부가 돼버린다. 사실 내가 순환 농사를 짓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가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농자재를 사면서 농사를 지을 만큼 돈을 벌지도 못 하고, 농산물로 그 돈을 충당할 만큼 농사를 짓지도 않는다. 농경사회를 유지했던 생산과 소비의 순환을 끊고 그 자리에 필요한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자본주의의 태생적이고 숙명 같은 원리다. 이 원리는 동전의 앞뒷면 같은 인구위기와 지방소멸위기를 만들어 내는 원리이기도 하다. 사람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또 아이를 낳는 순환을 끊고, 도시와 촌 간 사람의 순환을 끊어 그 자리에 자본의 욕구를 채운다.
순환을 믿는 농·산·어촌 생명의 기운이 마녀와 싸우는 힘 아닐까?
‘심리연구소 함께’ 김태형 소장의 표현을 빌리면, 개인들이 홀로 생존 문제를 해결하도록 강제당하는 ‘고립적 생존 불안’ 상태의 개인을 지속적으로 생산해내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지금의 인구위기, 지방소멸위기의 근본원인이다. 과거 어린이를, 노예를, 식민을 저렴한 노동자로 만들었다가 언젠가부터 여성을, 촌민을 ‘고립적 생존 불안’ 상태로 만들어 왔다. 지방에서 도시로 청년들을 끌어모아 ‘고립적 생존 불안’ 상태의 노동자가 된 개인은 아이를 낳고 사는 미래를 꿈꾸지 못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출생의 순환을 단절시키는 것이다.
OECD 38개 회원국의 합계출산율 평균은 1.58이다. 현재의 인구를 그대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합계출산율이 최소 2.1명이어야 한다고 하니 자본주의세계 체제는 사람의 순환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제선진국들이 확인시켜주고 있다. 생각해보면 경제선진국 서유럽과 일본의 낮은 출생률을 의아하게 쳐다봤던 개발도상국 대한민국이 급속도로 선진국 반열에 오른 지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출생율 하락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한 것도 아니다.
다시 ‘마녀’는 누구인가 생각해본다. 순환을 끊는 자본주의가 마녀인가? 지금의 인류를 이토록 풍요롭게 만든 자본주의가 마녀라고? 그렇다면 그 자본주의는 누가 만들었나? 순환하지 않아도 무한생산, 무한소비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언젠가부터는 그렇게 무조건 믿고 싶은, 지금은 그냥 속수무책인 인류의 무지와 아집과 무기력이 마녀는 아닐까? 그 마녀가 키우는 과자집은 지구에서 인류를 멸종시키려 하고 있는데도 그 과자집을 더 키우려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 편에 서는 사람들, 나일 수도 있고 독자일 수도 있는 그 사람들 아닌가? 그렇다면 마녀는 누구인가? 마녀와 직면할 수 있는가? 혹시 마녀를 미녀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기서 또 한가지 궁금증이 든다. 살기 힘든 농·산·어촌에서 왜 애들을 더 낳을까? 그렇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자연이 주는 삶에 대한 긍정, 희망, 충만한 생명의 기운이 그렇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출처 : 과자로 만든 ‘불임의 집’ 서울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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