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 해안으로
기해년을 뒤로 하고 경자년 새해가 밝아왔다. 내가 사는 동네 해맞이 행사가 몇몇 곳에서 열린다. 간밤 자정 용지호수가 언덕 창원대종 종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종각 부근과 의창도서관 일대에서 새해를 맞는 행사였다. 반송공원과 태복산 정상에서는 새해 아침 해맞이 행사를 열었다. 지역 사회단체에서 떡국도 나누어 먹는다. 동읍 주남저수지 들머리서도 해맞이 행사를 했다.
날이 새지 않은 새벽에 도시락을 싸 길을 나섰다. 창원역에서 진해 용원으로 가는 첫차 757번을 타려고 창원실내수영장 앞으로 나갔다. 이른 시각이라 오르내리는 승객이 적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시청 로터리를 돌아가자 한 무리 청소년들이 우르르 타니 좌석이 없어 서서 가는 승객들도 있었다. 그들은 안민터널을 지나 내렸다. 속천항 진해루 앞 해맞이 행사 가는 듯했다.
진해구청에서 STX조선소 지날 때도 날이 밝아오지 않아 캄캄했다. 용원 종점에 닿아 신항만 경제자유구역청 앞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거기 이르니 날이 희뿌옇게 밝아왔다. 기장으로 가는 1011번 탔다. 을숙도대교를 지나니 다대포로 해가 솟아오르는 붉은 기운이 번졌다. 감천 송도에서 남향대교를 지나니 태종대 끄트머리서 붉은 해가 솟아올랐다. 버스 차창 밖으로 일출을 봤다.
영도에서 북향대교를 건너니 차창 밖은 태종대 앞으로 해가 몇 뼘 더 솟아올라 있었다. 오륙도 바다는 아직 붉은 기운이 서려 있었다. 광안리에서 광안대교를 지니나 해운대로 건너가니 두툼한 옷을 껴입은 해맞이 인파 수 천 수 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해돋이도 구경거리지만 인파가 한꺼번에 거리로 쏟아져 나옴도 볼만 했다. 해운대신도시를 지난 송정해수욕장에서 내렸다.
송정 찻길에서 해수욕장으로 나가니 이른 아침 백사장으로 몰려왔을 수많은 사람들이 돌아간 뒤였다. 죽도 곁 작은 어항엔 고깃배가 몇 척 묶여 있었다. 해안을 따라가니 공수마을이 나왔다. 마을 수호신당 고목이 앙상한 나뭇가지를 드러낸 포구였다. 해안가에서 낮은 산등선을 넘으니 해동용궁사였다. 일출을 보러온 외지인들이 절로 찾아와 진입로가 혼잡할 정도로 사람들로 붐볐다.
용궁사를 찾아감은 참배 목적이 아니라 수산과학관 곁으로 해안 산책로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쪽으로는 산책로가 없어 찻길로 나와 다시 해변으로 나가니 동암포구였다. 이제 수평선이 드러난 드넓은 바다가 펼쳐졌다. 전망 좋은 해변에 호텔이 리조트처럼 웅장하게 들어서 있었다. 해안을 따라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었다. 갯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소리를 들으면 도시락을 비웠다.
점심을 때우고 해변 따라 계속 걸으니 촛대처럼 뾰족한 바위봉우리에 용왕단이 있었다. 해광사에 딸린 기도처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해광사에서 기장 대변항으로 향해 계속 걸었다. 포구 바깥 다라가 놓인 죽도로 건너가 대변항을 바라봤다. 규모가 제법 큰 어항이었다. 바깥 바다는 미역 양식장으로 부표가 줄지어 떠 있었다. 죽도 해안에서 대변항으로 더 깊숙하게 들어갔다.
바다와 바로 접한 곳이 용암초등학교였다. ‘대변’이라는 지명이 껄끄럽다고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교명을 바꾸었다고 화제가 된 적 있었다. 나는 그 기사를 보고 한자를 모른 수치라 씁쓸했다. 광대무변을 줄이면 ‘대변(大邊)’이 아닌가.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자랄 소년들에게 적합한 교명인데 굳이 바꿀 필요가 있나 싶다. 대변 포구에는 가지미를 비롯해 여러 물고기를 널어 말렸다.
노점에서 생미역을 사 배낭에 담았다. 기장읍까지 걸어 재래시장을 구경하고 포항에서 경주를 거쳐 삼랑진을 돌아 순천으로 가는 열차를 탈 생각이었다. 그런데 같은 아파트단지 사는 초등 동기가 얼굴을 보자면서 전화가 왔다. 교통편을 바꾸어 시내버스로 해운대로 나가 시외버스를 타고 창원으로 복귀했다. 아파트와 가까운 상가에 들리니 친구는 퇴직선배와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20.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