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등 도시철도 승강장에 설치된 승객 안전장치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게 '스크린도어'일 겁니다. 승강장 위에 선로와 격리되는 고정벽과 가동문을 설치해서 차량의 출입문과 연동해 열리고 닫히도록 하는 시스템인데요.
흔히 영문 머리글자를 따서 'PSD(Platform Screen Door)'라고 줄여서 부릅니다. 전동차가 승강장에 완전히 정지하면 열차 문과 함께 열리기 때문에 추락 방지 등 승객 안전을 높여주고 전동차로 인한 소음과 먼지, 강풍을 줄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영국, 프랑스, 일본, 홍콩 등 여러 나라에서 지하철역에 도입하고 있는데요. 일부 기록에 따르면 1961년 소련(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파르크포베디역에 세계 최초의 스크린도어가 설치됐다고 합니다.
당시 스크린도어는 승강장과 열차 사이에 대리석 벽을 세운 뒤 출입문 부분에 철제 셔터를 달아서 양옆으로 움직이게 만든 방식이라고 하는데요. 현재 사용하는 자동 스크린도어와는 다르지만 열차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 승객을 안전하게 분리해 주는 기능은 분명했을 것 같습니다.
서울 시청역에 설치된 밀폐형 스크린도어.
국내에서는 2002년과 2003년 인천역·신길역 등에서 스크린도어가 시범 설치됐으며, 2004년 광주 지하철 1호선에 처음 정식으로 설치돼 운영됐습니다. 서울지하철엔 이듬해 10월 도입됐는데요. 몇 차례 안타까운 선로추락 사고가 있었던 뒤 전국 대부분 도시철도와 국철 구간에 확대 설치됐습니다.
스크린도어는 크게 ▶완전밀폐형 ▶반밀폐형 ▶난간형 등 3가지로 나뉩니다. 완전밀폐형은 주로 지하철역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바닥부터 천장까지 모두 막혀 있는 형태입니다.
반밀폐형은 지상 구간에 있는 역에 많이 설치하는 형태로 윗부분이 뚫려 있습니다. 난간부는 차량의 문 위치에 맞춰서 문을 설치한 것으로 반밀폐형보다 높이가 낮고, 지하와 지상의 역 양쪽에서 다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크린도어가 장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초기 설치비가 많이 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열차가 정확한 위치에 서지 않으면 작동이 어렵다는 게 단점인데요. 전동차가 멈춘 뒤 다시 “승하차 위치를 조정 중입니다”라는 안내 멘트와 함께 앞뒤로 조금 움직이는 상황이 종종 생기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또 현재 운영 중인 스크린도어는 일정 위치에 문을 두고 양옆으로 열리는 '좌우개폐식'이기 때문에 출입문 개수가 같은 전동차 또는 한 종류의 열차만 이용이 가능하다는 한계도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전동차와 일반열차 등이 뒤섞여 운행하는 역에서는 사용이 어려운 게 사실인데요. 이러한 '좌우개폐식'의 단점과 문제를 해결한 스크린도어가 있습니다.
바로 위아래로 열리는 '상하개폐식' 또는 '수직개폐식'으로 불리는 스크린도어(VPSD, Vertical PSD)인데요. 이 스크린도어는 기둥과 기둥 사이가 5~8m가량 되며 수직으로 열리고 닫히기 때문에 열차 정차 위치로 인해 작동이 어려운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출입문 위치나 개수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데요. 기둥과 기둥 사이에 출입문이 있다면 승객의 승하차가 모두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국내에는 별로 없지만, 유럽과 일본 등지에는 표준열차와 이층열차 등 다양한 종류의 열차가 섞여 다니고, 같은 승강장에서 승하차가 이뤄지는 역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 수직개폐식 스크린도어가 처음 설치된 곳이 프랑스 파리의 방브 말라코프역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깐 꾸이아스역 등 2곳인데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2년간 시범 및 상업운영을 했다고 합니다. 반응과 평가도 좋았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철거해서 해당 국가에서 보관 중입니다.
이 차세대 스크린도어를 처음 개발하고 만든 곳이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수직개폐식 스크린도어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교통연구원이 2013년부터 2016년까지 국가연구개발과제로 개발했습니다.
이후 2016년에 에스트래픽과 우리기술이 손잡은 컨소시엄이 해당 기술의 상용화 사업을 수주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이 시작됐는데요. 2026년까지 10년간 독점 사업권을 확보했다고 합니다. 에스트래픽이 마케팅과 사업관리를 담당하고 우리기술이 제조를 담당하는 구조입니다.
참고로 에스트래픽은 삼성SDS에서 분할해 2013년 설립한 회사로 하이패스 등 고속도로 요금징수시스템, 지능형교통체계(ITS), 철도 역무자동화시스템, 열차 제어시스템 개발과 설치를 전문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도로공사가 관리운영권을 따서 이목을 끌었던 방글라데시 파드마대교와 N8고속도로의 교통모니터센터와 요금징수시스템을 구축한 곳이 바로 에스트래픽입니다. 우리기술은 시스템사업, SOC 사업, 바이오사업, 해상풍력사업 등을 하는 중소기업입니다.
에스트래픽의 문찬종 대표는 “파리와 바르셀로나에서 수직개폐식 스크린도어를 운영한 결과 세계적인 안전 인증 최고등급인 SIL4를 획득했다”며 “이는 예상치 못한 사고가 1만년~십만년 사이에 1회 미만으로 일어나는 수준”이라고 소개합니다.
이 같은 평가와 결과 덕에 프랑스 철도를 주관하는 SNCF(프랑스 철도공사)와 수직개폐식 스크린도어를 확대 보급키로 협의가 거의 이뤄졌지만, 때마침 터진 코로나19로 인해 관련 예산 등이 모두 방역 부문으로 전환되면서 중단됐다고 하는데요.
에스트래픽 컨소시엄은 최근 다시 SNCF 등과 스크린도어 확대 보급을 위한 예산과 일정을 협의 중이라고 합니다. 또 대만과 태국 방콕, 그리고 리투아니아 등 발트해 지역에도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인데요. 국내에서도 여러 열차가 같은 플랫폼을 사용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이 스크린도어를 직접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