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의 날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마태 6,33
철장에 갇힌 새는 그곳에서 오래 살다가 보면 그곳에 익숙해지고,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도 다시와서 철장 안을 바라보고 철장 안의 모이를 먹고자 합니다. 어린 코끼리에게 목줄을 만들고 작은 기둥에다 묶어 놓으면 그대로 그곳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 어린 코끼리가 몇 톤이 되어도 그 작은 기둥에 줄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제아무리 큰 개라 하더라도 목줄을 잡으면 그 목줄에 머뭅니다.
자유를 잃은 새. 사실 새는 몇 천 키로를 날 수 있지만, 그 새 철장에 갇혀 있으면 그 좁은 공간을 오고 갈 수 밖에 없는 새가 됩니다.오랜 시간 그곳에 있으면 그곳에서 익숙해 져서 멀리 날지를 못합니다. 갇힘에 익숙해지면 그 자유를 사용할 줄 모릅니다. 새의 특별한 기능과 기술과 역량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자유를 잃은 이는 그 가두임과 붙잡힘에서 그의 은사와 능력과 기술이 묶여 버립니다. 자유를 잃을 때 하느님의 주신 재능과 기술과 능력. 곧 인간적 영적인 선물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자유. 그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고 보배롭습니까? 우리는 모두에게 자유를 전해야 합니다. 그 자유를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유를 주는 법에 따라서 판결을 받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심판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공동체에, 율법과 힘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 '자유'를 선포하였습니다. 더러운 영에 들려서 그것에 묶여서 골방 속에 있는 사람을 그 포승줄을 끊어버리고 그 골방에서 나와서 자유의 몸이 되게 하였습니다. 열병과 온갖 병에 걸려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이들에게서 그 열병의 세력과 온갖 질병의 눌림에서 아파하는 이들에게서, 그것으로 부터 해방시키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나병으로 고통받아 자신의 육체의 고통과 사회적인 고립과 억압에서 그들을 해방시켜 그들의 고향과 집, 율법 규정과 법의 억압을 풀어주셨습니다. 눈을 뜨게 하시며 그의 다시 보게 하면서, 과거의 아름다움의 모든 풍광을 되찾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자유를 선포하였습니다.
주님의 복음의 핵심. 그것은 '자유'입니다. 자유를 찾아 해방시키는 것. 그것이 주님의 복음의 은사입니다. 살다보면 가족에 의해서 부모와 형제에 의해서. 결혼 후에 배우자와 자녀들에 의해서, 사회 생활에서 만나는 적대적 상대에 의해서, 묶이고 눌리고 조여져 살아갑니다. 새장에 갇혀있는 새처럼 살아갑니다. 어떤 경우 새장에서 나와서 훨훨 날아 하늘 창공으로 날아오를 수 있는 데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이도 있습니다. 자유를 잃은 그 모습이 얼마나 가련합니까?
우리는 이 자유를 알고 자유를 전하고 자유를 선포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 복음의 진수입니다.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 그것은 사람에게 자유를 전해 주는 것입니다. 그 자유에서 움직이고 살아있고 더 앞으로 나가서 하느님께서 주신 은사와 자질과 능력과 그리고 선과 사랑을 실천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복음은 자유에서 그가 하느님께로 부터 받은 인간의 자존과 권리와 존엄을 알고 찾고 살아가도록 도와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은 그 일에서 시작되고 흘러갑니다. 그렇게 하여 모두가 살아나고 행복한 바다의 향연이 됩니다.
토요일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의 날입니다. 주님, 먼저 '자유'를 선포하는 자 되게 하소서. 자유의 일꾼, 제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그 자유가 하느님 나라와 의로움의 첫 덕목임을 알게 하소서. 그 자유에서 공동체의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