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위한 대탈출
(창 12:1-4, 행 7:2-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행 7:4)
우리는 흔히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그에게 하나님께서 친척이 사는 본토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명령하셨을 때, 이에 그가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을 확실히 믿음으로써 그 말에 즉각 순종하고 고향을 떠나 선민의 조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믿음의 조상이라는 말이 이러한 뜻만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 역시 아브라함과 동일한 믿음을 지녀야 한다는 뜻에서도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그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기 위해서는 본문에서 보여주듯 아브라함과 같이 이전에 거하던 곳에서 대탈출을 할 수 있는 과감하고 용기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갖기 위해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탈출해야 합니까?
1 육신의 정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위대한 점은 그가 "본토 친척 아비 집"(창 12:1)을 떠났다는 점에 있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에는 그에게 육신적으로 편안하고 보장된 삶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이미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었을 것이며,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떠나라는 명령 앞에서 과감히 그 모든 것들을 포기했습니다. 믿음의 길을 가기 위해 육신의 정욕들을 단호히 끊어버렸던 것입니다. 이미 획득한 여러 소유물에 대한 육신적 집착과 욕심도, 그리고 심지어는 혈육의 정까지도 믿음의 길을 가기 위해 떨쳐버릴 수 있는 단호한 신앙적 결단이 아브라함에게는 있었던 것입니다.
고로 아브라함의 이러한 믿음의 자세를 본받아야 하는 우리 또한, 육신의 정욕을 좇아가다가는 믿음의 길을 제대로 갈 수 없을 때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에서 벗어나야 할지를 분명히 깨닫고 실천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가기 위해 육신의 정욕을 떨쳐버릴 수 있는 자야말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바르고 확고한 자라 할 수 있습니다.
2. 불의한 환경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갈대아 우르는 고대 문명의 중심지로서 상업적으로 아주 번영한 도시였습니다. 아울러 우상 숭배가 성한 도시로서 아브라함 가문 역시 우상 숭배에 빠져있던 가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도시를 떠나라고 명하신지 아시겠습니까? 곧 우상 숭배, 요즈음으로 말하면 불의와 불신앙의 유해한 환경에서 벗어나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좋고 살기 좋으면 무엇합니까? 만일 그 환경이 음으로 양으로 우리를 불의와 불신앙으로 이끌거나 강요한다면 결국 그것은 우리에게 매우 유해한 환경입니다. 고로 그러한 유해하고 불의한 환경에서 단호히 벗어나야만이 바르고 확고한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불의한 환경이 아무리 화려하고 달콤하게 우리를 유혹한다 할지라도 그것의 패역함을 바로 알고 진정 아름다운 하늘 나라를 소망하는 자들은 그것에서 능히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히 11:25에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도 모든 불신앙적인 유해한 환경을 멀리하고 거기서 탈출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믿음의 길로 가는 첫걸음입니다.
시 84:10에서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했던 시편 기자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약 4:4말씀과 같이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임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3.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히 11:8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고 했습니다. 곧 아브라함은 갈 곳이 어디란 분명한 지시도 없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것입니다.
순전히 인간적인 눈으로만 본다면 이 얼마나 무모한 짓입니까? 갈 곳도 정해 놓지 않고 고향을 떠나오다니요? 하지만 이것이 진실로 무모한 짓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왜요? 그것은 가장 분명하고도 확실한 미래를 보장하시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른 순종의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떠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의로 주관 섭리하시고 끝내 복되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기에 그분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함이야말로 가장 안전하고 복된 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역시 신앙 생활을 해나가다 보면 이러한 처지에 놓이는 경우가 매우 종종 있습니다. 그러할 때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염려와 근심으로 시험에 빠져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지 않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두려워하거나 불안해 하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미래를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심을 믿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도 진정 믿음의 길을 가려면 불확실해 보이는 미래에 대한 모든 불안과 염려를 극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명하시는대로 믿음의 발걸음을 담대히 내디뎌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면 우리는 믿음의 후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닮아가야 합니다. 어떠한 믿음의 모습을 닮아야 합니까?
믿음을 위한 그의 대탈출을 닮아야 합니다. 믿음을 위해서라면 육신의 정욕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불신앙적인 온갖 유해한 세상 환경으로부터 탈출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데 따른 모든 불안으로부터 탈출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대탈출을 시도함으로써 믿음의 길을 가고 구원을 얻었듯이 우리도 이러한 대탈출을 시도해야만 온전히 믿음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보다 큰 믿음의 성장을 위한 대탈출에 성공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