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파나무는 결림이라고, 스물 몇 해 전 남해금산, 저 나무 아래서 쓴 적이 있네 그 결림 얼마나 향기로운지 온몸에 노란 악기 주렁주렁 매단 열매들, 가지 끝으로 번지던 슬픈 선율들
나무는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내 몸이 악기의 울림통으로 바뀌는 사이, 소리의 즙은 얼마나 고였을까 비파나무를 따라온 스물 몇 해 푸른 잎 다 낡아가는 동안 노래는 언제 다 마르나 비파나무와 나는 어떤 울림으로 이어지나, 내가 비파나무와 눈을 맞춘 그 순간, 내 몸에도 나이테처럼 결림이 새겨진 건 아닐까
-『내외일보/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2023.02.23. -
시인은 20년쯤 전 남해금산에 갔다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비파나무를 만난 후, 오래도록 그 나무를 가슴에 품었다고 합니다. 내부의 근육이 단단하게 뭉쳐 통증을 일으키는 것을 결린다고 표현합니다. 그는 중국 악기인 비파의 모양과 닮은 황금빛 열매를 보고 강렬한 “결림”을 느꼈고, 그 후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몸이 악기의 울림통”이 되어 “푸른 잎”이 다 낡아가도록 노래하고 또 노래했습니다. 마치 주렁주렁 황금빛 열매를 달고 있던 남해금산의 비파나무처럼 말입니다. 이 작품의 가장 빛나는 지점은 비파나무를 만났던 남해금산을 이성복 시인의 시집 『남해금산』으로 해석해도 멋지게 읽힌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