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이야기, 황혼이혼
노인기에 접어들면 찾아오는 불청객이 또 있다. ‘퇴직’이다. 퇴직은 후유증을 달고 오기 때문에 더더욱 반갑지 않는 손님이다. 직장을 그만 두고나서 정신적인 충격을 받는 것을 ‘퇴직 후유증’이라고 하였다. 퇴직 후유증을 심하게 겪는 사람도 있고, 가볍게 넘기는 사람도 있지만,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하였다. 심한 경우는 공황상태에 빠지기까지 한다. 사람 만나는 것조차 꺼리고, 집밖으로 나가려고도 하지 않는다. 집안에 박혀 사는 정도가 거의 자폐증에 가까울 정도라고 하였다.
퇴직 후유증은 남자들이 여자보다 더 심하게 겪는다.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가족과 정서적 유대가 약하기 때문에 일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마찬가지로 여자들도 ‘은퇴 증후군’에 시달린다고 한다. 은퇴 증후군이란 남편의 퇴직이 가까워 오면 아내가 느끼는 스트레스를 말한다.(1991년 일본 의사 노부오 쿠로카가 병명을 붙였다.) 심한 경우는 정신적으로 극도로 예민해져서 신경질적이 되고, 몸도 자주 아프다. 남편이 은퇴 후에 안방을 차지하고 이런 저런 잔소리에 시달리다 보면 여성들은 더욱 더 심해져서 우울증이나 두통을 호소하는 일이 흔하다. 일본의 조사에서 거의 60%가 앓는다고 하였다.
일본의 사례를 보면 2차 대전이 끝나고 베이비 붐 때 태어난 세대들이, 남편은 가족을 위하여 돈을 벌어야 했고, 아내는 남편과 가족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히 생각했다. 이렇게 살아온 세대들에서 후유증이 더 많이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통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 70대들인 노인세대들에게서 같은 사고방식을 흔히 볼 수 있다.
퇴직 증후군이나, 은퇴 증후군은 또 다른 후유증을 가지고 온다. ‘황혼 이혼’이다. 부부가 겪는 정신적인 어려움을 대화를 통하여 서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퇴직과 은퇴 증후군을 앓는 사실을) 서로 자신의 입장만을 강하게 주장하다보면 슬픈 이야기이지만 황혼 이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20여 년 전에 황혼이혼이 광풍처럼 몰아쳤고, 그 바람은 우리나라에 까지 덮쳐왔다.
우리나라에서도 황혼 이혼이 사회 문제화 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황혼 이혼의 가장 큰 이유로 퇴직 증후군과 은퇴 증후군을 꼽는다. 가족을 위해서, 특히 어린 자녀들 때문에 불만을 억눌러 왔던 여자들이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게 되면 이혼률이 갑자기 높아졌다. 따라서 ‘대입 이혼’이란 말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황혼 이혼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 분위기이다.
“그냥 살지, 다 늙어서 이혼은 무슨 이혼이냐.” 라는 시선이 일반적이다. 유교 문화가 뿌리 깊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한다. 그러나 서양 문화에 물든 젊은 세대의 생각은 다르다. 이런 이유로 세대간의 갈등으로까지 번진다.
남자가 왕으로 군림하는 가정에서 살아왔던 여자들이 텔레비전이나, 친구들과 대화에서 요즘은 세상이 변해서 여자들이 그렇게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노인들의 인식도 바뀌어 왔다. 자신의 진정한 삶과 행복을 찾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면 남아 있는 짧은 날들이 아까워진다.
2016년에 서울시가 발표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황혼이혼은 꾸준히 늘어나서 10년 전에 비해 2배가 되었다. 황혼 이혼의 원인은 부부 갈등이 단연 으뜸이다. 부부 갈등이 하루아침에 나타난 것이 아니고, 오래 기간 동안 이어지면서 불평과 불만이 쌓이고, 쌓여온 결과였다. 대부분의 황혼 이혼은 아내가 더 이상 가정생활을 견딜 수 없다면서 요구하였다. 전문가들은 남편의 가부장적 사고방식과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아야겠다는 의식의 변화가 부딪힌 결과라고 하였다.
그라나 노후 생활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행복하게 사는 길은 부부가 화합하여 서로 돕고 의지하여 사는 길이란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