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Demian』
노벨 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한 20세기 최고의 작가 헤르만 헤세의 작품.
정신분석학의 영향을 받아 자기탐구의 길을 개척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미안 Demian』(1919)은 신앙이 깊고 성결하며 예의바른 부모의 세계와 하녀 장인들의 입을 통해 듣는 부랑자 주정뱅이 강도 등 악의 세계가 자기의 내면에서 대립되고 있어 위태로운 방황을 계속하던 주인공 싱클레어가 데미안이라는 수수께끼의 소년에 의하여 자기 발견의 길로 인도되어 참된 자아를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진리는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일생에 꼭 한 번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했던 시도가 바로 이 작품으로서 불교적 가르침과 사상의 복음서라기보다는 헤세 자신의 세계관이 담겨 있다. 깨달음을 갈망하면서 가장 밑바닥의 자아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속세의 쾌락과 정신적 오만을 초극하고 완성자가 되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목차
1. 두 세계
2. 카인
3. 예수 옆에 매달린 도둑
4. 베아트리체
5.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6. 야곱의 싸움
7. 에바 부인
8. 종말의 시작
독후감
어릴 때 데미안을 들었을 때 다 읽지 못했던거 같다.
내용이 너무나 진지해서가 그 이유이고,주인공 싱클레어의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읽으면서내 생각들과 겹치니까 진도가 안나간 것도 그 이유일거다.
다시 데미안을 읽고 싶어진 건, 그 책에 대한 소개가 좋았기도 했지만 어른이라고 생각의 혼돈이나 삶의 방황이 없을 수가 있으랴...아직 그 끝나지않은, 끝이 없을 것 같은 삶의 혼돈 속에서 조금이나마 동질감을 느끼고자, 혼자가 아니라는 외로움을 덜고자 했기 때문이다.
< 인생에서 나에게 흥미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에 이르기 위하여 내가 내디뎠던 걸음들 뿐이다. 그 모든 아리따운 휴식의 지점들, 행복의 섬들과 낙원들의 마력을 나는 모르지는 않지만, 그 모든 것들을 나는 먼 곳의 광채 속에 싸인 채로 두고자 한다. 그 곳에 다시 한번 발 디딜 욕심을 내지 않는다.>
- 싱클레어는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고,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린 시절을 놓아버리려 한 시점에 시작된 생각이다.
아름다운, 행복했던 것과의 결별이 성장이란 것에 꼭 필요한 단계라면 작가 헤르만 헤세는 후 어른의 삶을 너무 어둡고 쓸쓸하고 외롭게만 보고 있다.
이 소설이 쓰여진 시점이 전쟁 중이라서 일까....하지만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여러가지가 어른이 된 지금 느껴진다. 쓸쓸하게도....
<어떤 짐승이나 사람이 자신의 모든 주의력과 모든 의지를 어떤 특정한 일로 향하게 하면,
그는 그것에 도달하기도 하지. 그게 전부야. 네가 알고 싶었던 일도 정확하게 그래. 어떤 사람을 충분히 자세히 바라봐. 그에 대해서 그 자신보다 네가 더 잘 알게돼>
-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독심술이라는 것에 대해 우회적으로 하는 설명이다.
어린 싱클레어는 형인 데미안의 이런 행동들을 독심술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붙인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보면, 스스로는 잘 모르고,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말 모르면서 타인에 대한 관찰, 판단을 더 많이 하고 산다. 아니 살아야 하나...
정말로 집중하면 상대를 그 자신보다 더 잘 알 수 있단 말이 왠지 삭막한 현실에 그 삭막함을 더 하는 말인것 같다. 어쩌면 어른이 되면 타인에게 보이는 나에 치중하여 자신을 포장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 아닐까. 나 역시 나에 대한 포장지가 더 중요해진 건 아닐까. 그래서 타인이 볼 때 날 더 잘 알아보게 만들고 있는건 아닌지...
<너에게 유쾌하지 않은 말을 하려는 건 아니었어. 아무려나 어떤 목적으로 네가 지금 네 잔을 마시고 있는지 그것은 우리 둘 다 알 수 없어. 하지만 너의 인생을 결정하는 , 네 안에 있는 것은 그걸 벌써 알고 있어. 이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들 자신보다 더 잘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 말이야.>
- 모르고 살고 있었다. 내 안에 부정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나보다 더 나를 잘 알고 있는 또 다른 나. 현명하고 똑똑한 내가 있다는 것을. 이성적인 또 다른 나를 뭐라고 부를까...
인격 ? 도덕 ? 양심 ? .......아니다. 그냥 나... 또 하나의 온전한 나...
<우리가 얼마나 창조자인지, 우리 영혼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세계의 끊임없는 창조에 관여하는지를. 우리들 안에서 그리고 자연 안에서 활동하는 것은 오히려 똑같은 불가분의 신성이다. 바깥 세계가 몰락한다 하여도 우리들 중 하나는, 그 세계를 다시 세울 능력이 있다.
산과 강, 나무와 잎, 뿌리와 꽃, 자연의 모든 영상이 우리들 마음속에 미리 만들어져 있어서 영혼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영혼의 본질은 영원이며, 그 본질을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본질은 대개 사랑하는 힘과 창조력으로 우리가 느낄 수 있도록 주어진다.>
- 그렇게 나는 다 느끼고 살아왔다. 다만 깨달음이 부족하여 늘 갈증에 허덕인다. 나의 창조적 능력... 있다.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 능력을 다시 세워야...한다.
<우리가 보는 사물들은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것과 똑같은 사물들이지. 우리가 우리들 마음속에 가지고 있지 않은 현실이란 없어.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토록 비현실적으로 사는 거지. 그들은 바깥에 있는 물상들만 현실로 생각해서 마음속에 있는 그들 자신의 세계가 전혀 발언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행복할 수는 있겠지. 그러나 한 번 다른 것을 알면, 그때부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겠다는 선택이란 없어져 버리지. 싱클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은 쉬워.
우리들의 길은 어렵고. 우리 함께 가보세>
- 나에게도 데미안 같은 존재가 있었을까... 같이 어려운 길을 선택하자는 그런 철학적이고 심오한 사람이...그랬다면 나의 오늘이 좀 덜 쓸쓸하고 외로웠을까...
결국 데미안을 읽으면서 나는 아직도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고,
내가 알고 있는데,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란 사실을...
매일 매일 나에게 선물을 하듯. 깨닫는 과정이 정말로 필요하다.
2008년 작성한 것을 보완 수정
※ 이 겨울이 지나기 전에 다시 읽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