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1. 18(토)양성성당 이그레고리오신부님
†찬미예수님
오늘 우리가 김장을 절이는 작업을 하고 성당교육관에 등 다는 작업을 했습니다.
들어오시면서 ‘아직도 정리가 안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과 말은 그렇게 하실 수 있지만~~
우리 교우분들 오시기 직전까지 일하시는 분들과 김장 담으러 오신 자매들하고 5시부터 여기 청소를 해서 지금 이만큼이라도 깨끗하게 된 겁니다.
교우분들, 오셔서 미사만 딱 보면 ‘뭐, 이따위야!’ 하실 수 있지만 실제로
겨우겨우 옷도 못 갈아입고 미사참례하는 것이 바로 요 상황입니다.
이곳이 교육관이고 이것이 무대장치입니다.
이렇게 매달려 있는 것이 무대등이고 24개 중에 12개는 이쪽으로 향하고~~
우리의 계획대로라면 12월 8일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마리아 대축일날 입당식을 할 겁니다.
12월 7일까지는 여기서 미사를 봉헌합니다.
지금 잠시 깨끗하지만 월요일부터 난장판이 됩니다.
그러면 화요일날 미사를 하기 위해서 다 청소를 해야 합니다.
미사 끝나고 나면 또 난장판~~일주일째 지금 난장판으로 만들었다가~~성당으로 만들었다가~~ 아주 반복되고 지칩니다.
이런 노고들이 다 쌓이게 되면 우리들이 그리고 그리던.....
성당에서 하느님께 정성껏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사는 것이 다 그렇듯이 모든 것이 한 번에 되는 것이 없습니다.
교우분들
우리가 말은 쉽지만 한 번에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뭔가 이룩하려면 서로 참고, 인내하고, 노력하고, 지켜봐 주고....
이런 과정을 다 겪어야만 완성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우분들이 <신부님, 제 신앙을 강하게 만들어 주십시오!>
누구나 다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렇지만 강하게 되기 위해서는 그전에 꼭 단련을 받아야 합니다.
어떤 단련을 받느냐?
유혹이라는 단련도 받아야 되고~~
내 자신의 나약함이라는 단련도 받아야 되고~~
하느님께 뭔가를 더 바치기 위한 시험무대도 거치고 나야 강해지지~~
그냥 가만히 있는 다고 절대 강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우분들께서도 믿음이라는 것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만큼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것을 명심해 두시기 바랍니다.
오늘 11월 18일은 우리나라에 있어서 아주 의미심장한 날입니다.
우리 한국의 최초의 세례자를 누구라고 말해요?
한국 최초로 서양신부님께 세례 받으신 분이 이승훈 베드로성현이십니다.
이승훈베드로 성현께서 세례를 받으시려고 서울에서 출발하신 날이 바로 11월 18일, 오늘입니다.
1783년 11월 18일 오늘, 세례를 받으시기 위해서 한양에서 출발하십니다.
천주교회를 처음 시작하셨던 광암 이벽이라는 분께서 이승훈베드로 성인께
“자네는 가서 북경에 가면 성당이라는 곳이 있으니 가서 꼭 세례라는 것을 받아 갖고 오게! 자네가 세례를 받겠다고 하면 그곳 신부님께서 자네를 아주 기쁘게 받아 주실 것이네~~ 아울러 우리나라에 없는 교리서, 기도서, 묵주.....이런 것들을 가지고 오게”
이렇게 이승훈베드로 성인께서 북경에 가셔서 세례를 받으시고 우리나라에 오셔서 신앙생활을 하십니다.
우리나라에서 신앙생활을 하셨던 분들은 스스로 신앙생활을 시작하셨던 분들입니다.
누가 믿으라고 전교하신 것이 아니에요.
우리 안성지역에도 마찬가지이지만....
천주교회라는 모임을 결성한 다음에 이승훈이라는 분을 중국에 보내서
“너, 세례 받고 와라!”
세례를 받아가지고 와서 다 같이 세례를 받고 신부님이 안 계신 가운데서 공소예절을 했던 것이 우리나라입니다.
이렇게 시작했던 우리나라이기 때문에 전 세계 어느 나라든지 한국사람이 있는 곳이면 한국인들이 신앙공동체를 이룹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필리핀 사람들도 있고, 미국사람들도 있고~~
외국사람들은 자기네 신앙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단 한 개도 없어요.
오히려 우리 수원교구에서..또는 서울교구에서..어느 교구에서...그 사람들을 위해서 미사를 해 주는 경우는 있어도 스스로 공동체를 해서 스스로 기도회를 하고 반기도를 하고, 신부님을 모시고 가고, 하는 것은 단 한군데도 없어요
그런데 거꾸로 우리나라 교우들은 외국에 나가면 먼저 천주교 신앙공동체를 형성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미국에 가든, 영국에 가든, 일본에 가든.....
먼저 천주교신앙공동체를 만들어요.
그렇게 신앙공동체를 만든 다음에 한국에다가 신부님을 보내달라고 파견을 요청합니다.
그러면 “아, 거기에 신부님 먹여 살릴 만큼 헌금이 나옵니까?”
먼저 물어봐요!
왜냐? 신부님 굶겨죽이면 안 되잖아요!
“거기 신부님 활동하실 만큼 여건이 됩니까?”
다 물어보고 나서 된다고 하면, 신부님을 마지못해 보내지요!
왜? 아직 우리나라도 모자라니까~~
그렇게 파견해 가신 신부님을 교우들은 금이여, 옥이야~~
모시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른 공동체를 또 만들어 갑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와 우리나라와의 공동체의 차이점은 우리나라 교우들은 어디를 가더라도 스스로 공동체를 만들어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이런 모습들은 처음 우리 천주교회를 시작해주셨던 광암 이벽 선조나 만천이승훈베드로 성인이나 그런 분들이 스스로 천주교회를 시작해 주셨던 그 모습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천주교신앙공동체가 안성에서는 평택에서 가장 먼저 시작합니다.
평택의 대추리라는 미군기지가 지금 들어오려고 하는 그 지역에 만천 이승훈베드로 성현께서 평택현감으로 내려오시면서 그 지역에 먼저 전교를 하기 시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신앙공동체가 평택대추리 공소입니다.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박해가 있었을 때 뿔뿔이 흩어집니다.
그때 김대건신부님을 묘소를 미산리 지역으로 이장해 오고 그 지역에서 신자들이 도망해 와서 신앙생활을 하시게 됩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시면서도 공소회장님들이 신자들을 불러 모아 밤이면 밤마다 기도하고, 아침에도 기도하고....
회장님들이 다니시면서 전교를 다 하십니다.
우리나라의 신앙공동체를 보면...이 양성지역도 마찬가지이지만
신부님들이 오셔서 전교한 것이 아니라 여기 우리 총회장님도 계시지만.... 그곳 삼암리지역은 총회장님의 할아버님, 아버님...이런 회장분들이 다 궂은 일 맡아 가면서 천주사학 죄인들이라는 집안의 갖은 괄시 다 받아 가면서 역병이 돌면 가서 장례 치러 주고, 기도해 주고...하면서 한 집, 두 집 천주교 신자가 되더니 지금은 삼암리 지역에서는 천주교신자가 뭘 하자고 하면 꼼짝없이 해야하는 상황으로 바뀌고~~
지금은 냉담자가 많아졌지만 지금 누워 앓고 계신 자매님께서 집집마다 방문하면서...구역구역마다 전하니까 그 곳도 신자가 많아지고~~
이 지역도 우리 총회장님이 다니시면서 우리 교우들이 많아지고~~
지금도 우리 성당을 이끌어 나가며 느끼는 것은 신부인 저도 있지만, 결국은 교우들끼리 기도하고, 회장님을 비롯한 교우들께서 스스로 각자 다독이는 모습을 보면 ...
이 모습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볼 수 없고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오늘 평신도 주일을 맞이해서 우리 교우분들께서 사제에게 기대면서 신앙생활을 하기보다는....
우리 창립선조들... 우리들의 신앙의 선조들께서 보여주신
내가 먼저 하느님을 찾으려고 하는 그 모습...그리고 내가 가지고 잇는 신앙이 열악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이 남들보다 미약하더라도 그 미약함을 하느님께 고백하면서
<하느님, 저 이렇게 나약합니다. 이런 저의 나약한 신앙을 강하게 해 주십시오!>
하면서 한 번 더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할 때 신부님, 전교자 없이 스스로 하느님을 섬기는 우리들도 위대한 신앙의 선조들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께서는 기도를 많이 아시던 분들이 아닙니다.
구교우들께서는 예전에 신부님 뵙기 얼마나 어려우셨어요
일 년에 두 번 보면 잘 보는 겁니다.
미사 두 번 참례하면 잘 하는 거예요.
우리 여기 공소에서 성당 된 지 얼마 안 되듯이 옛날 더 어려웠어요.
그때 신부님께 배우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우리 교우들의 신앙을 이어져 내려오게 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묵주기도가 우리 신앙을 지켜 주었던 겁니다.
아침저녁으로 바쳤던 이 묵주기도가 바로 우리 교우분들의 신앙을 지켜주고 박해시대 때면 신부님이 순교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묵주기도 바치던 그 열성으로~~
그 조과 만과 바치던 그 열성 때문에 순교를 할 수 도 있었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 선조들이 옛날에 바쳤던 기도소리를 생각하시고, 그 기도의 마음을 생각하시고
아무리 바쁘고 힘들더라도 우리 조상님께서는 다 힘드셨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왜? 우리는 모여서 기도할 수 있지만, 우리 조상님들은 이렇게 마음 놓고 모여서 기도할 수 없어요.
한 밤중에 산 속에 들어가 기도해야 하고, 심지어는 같은 부부사이라 할지라도 서로 신자라는 것을 감추고 지내야합니다.
내 남편이, 내 아내가 신자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으니까 서로 아내가 잠 들 때, 아내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기도했던 것이 우리 조상님들의 세대입니다.
이렇게 어렵게 신앙생활을 하셨던 우리 선조들이 순교하셨고, 신앙의 박해 속에서도 전교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아침저녁으로 바쳤던 그 묵주기도...어떻게 하면 희생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냈던 그 두 생활 가지의 모습이 우리 선조들을 성인들로 만들어 주고, 오늘날 우리 한국천주교회를 전 세계에서 가장 모범이 되는 모습으로 만들어 준 모습입니다.
우리 교우분들께서 우리 양성지역에서, 우리 안성지역에서 가장 훌륭한
모범이 되는 성인들이 되기 위해서 아침저녁으로 기도를 열심히 바쳐주시고, 또 한 가지는 일상생활 속에서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죽음과 같은 상황이 닥치더라도 용기를 잃지 마시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도와주시며 지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노력할 때 우리 후손들이 보고 위대한 우리들의 신앙의 선조라고 불릴 것이고 공경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늘에 계신 우리조상님들이 보시고서
‘아이고~~참으로 내 자랑스러운 자식이구나!’ 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 조상님들을 뵐 수 있는 면목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 주어지는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