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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메세지 ~ 중국 쓰촨성 대지진이 티벳 점령에 대한 업보인가요?
Was Chinese earthquake a karmic return from the occupation of Tibet?
채널러: 킴 마이클즈(Kim Michaels)
채널 시기: 2008년도
질문: 예수님, 미국 여배우 샤론 스톤이 칸 영화제에 참석한 자리에서 최근의 중국에서의 지진이 티벳인들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과오에 대한 업보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신지요? 또한, 왜 그녀의 논평이 아무 많은 많은 분노(역주: 중국인들)와 비웃음(역주: 서구인들)을 이끌어냈는지요?
역주) 쓰촨성 대지진 - 2008년 5월 12일 오후 2시 중국 쓰촨성[四川省]에서 리히터 규모 8.0의 대지진이 발생하였다. 진앙지가 청두 북서 90㎞ 원촨[汶川]이어서 원촨 대지진이라고도 한다. 사망자가 약 7만 명, 중상자가 37만 여 명, 실종이 약 1만 8천 명, 경제적 피해가 1,500억 위안에 달한다. 한국도 5월 17일 119구조대원 44명을 파견하여 구조활동을 지원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2008년 쓰촨성 대지진 [2008 四川省 大地震(사천성대지진)] (두산백과)
아울러 헐리우드 영화배우 샤론 스톤은 2008년 5월 프랑스 칸 영화제에 참석한 자리에서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쓰촨 대지진을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과오에 대한 ‘업보(karma)’라고 주장했었다
킴 마이클즈를 통한 상승 마스터 예수님으로부터의 답변:
총체적인 의식(collective consciousness)에서의 전환이 언제쯤이나 있을 셈이라면, 듣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큰 소리로 말하고, 현재의 멘탈 박스들을 초월해서 사람들이 생각하도록 충격을 주게 될 말들을 할 용기를 갖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내가 분명히 하면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주장들이 올바르거나 분별 있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 주장들이 얼마간의 궁극적인 의미에서는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점에서 볼 때 덜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목적이 사람들을 - 생각들을 완전히 닫아오지 않은 이들을 - 새로운 방식에서 어떤 주제에 대해서 흔들어 놓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달라이 라마와 티벳의 대의명분(cause)를 지원할 용기를 - 심지어는 그들의 경력들이나 수입에 많은 경우에 손해가 되어 왔던 그 지점까지 - 가져 왔던 샤론 스톤과 리처드 기어와 해리슨 포드와 같은 다른 유명한 배우들을 내가 반드시 칭찬해 주어야만 하겠습니다. 이 행성 상에서 말해야 될 무언가 중요한 것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미디어에서 듣게 되는 것이 많은 경우에 매우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는 반면에, 특정 스타들이 가장 피상적인 분명한 말들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널리 인용된다는 것이 하나의 슬픈 사실입니다. 따라서, 명사의 지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의명분을 위해서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있을 때, 그것은 매우 필요하고 칭찬할 만합니다.
최근의 지진이 진정으로 티벳인들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우에 대한 업보였는지에 대한 질문을 이제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우선, 샤론 스톤은 자연 재해가 진정으로 사람들의 행동의 결과일 수 있다는 그 생각 - 그녀가 서양에서 웃음거리가 쉽게 될 것으로 보이는 생각 -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그 까닭은 마더 마리가 설명하였듯이, 인류의 의식상태와 "자연" 재해들 간에는 연결고리가 있다는 그 현실에 인류가 깨어나는 것이 진정으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명백히, 한 예로서 미국에서의 허리케인 카트리나(Katrina, 역주) 2005년 9월 미국 남부지역을 강타한 최고 시속 280km의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 초대형 허리케인이다, 뉴올리언즈 도시가 물에 잠겼음)에서 보여진 것과 같이, 한 나라가 그 지도자들의 행동의 결과로서 자연 재해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진정으로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특별한 경우의 그 지진은 티벳에 대한 중국인들의 행동들의 업보였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이것은 샤론 스톤의 좋은 의도들에도 불구하고, 티벳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져 왔던 그녀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데 그녀가 약간 심하게 초점을 맞추게 되어 왔습니다.
현실은, 중국에서의 최근의 지진은 티벳 사람들에 대한 정부의 대우에 대한 업보가 아니라 또다른 그룹의 사람들에 대한 업보였습니다. 이것은 서구 사람들이 중국을 바라볼때 종종 간과되고 있는 그룹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독자들이 내가 말하고 있는 사람들을 식별하는데 어려움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오직 내 요지를 입증하는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최근의 지진이 그 나라 자체의 국민들에 대한 정부의 대우에 대한 업보였습니다!
확실히, 중국 정부는 티벳인들을 탄압하여 왔지만, 그 정부가 동일한 정도로 그 나라 국민들도 탄압해 오지 않았나요? (역주: 천안문 사태, 기독교, 파룬궁 탄압 등) 그리고 중국인들도 동등한 연민과 자유를 갖기위한 도움을 보장받으면 안되나요?
그런 까닭에, 중국 국민들이 그들 정부의 행동들의 결과로서 - 정부가 압제적일 때 - 고통받는 것은 부당한 지에 대한 이슈에 대해서 내가 논평하고 싶습니다. 현실은 모든 나라에서, 정부는 국민들의 의식에 대한 표현입니다. 따라서, 국민들이 복종적이고, 그들의 삶과 나라에 대해서 책임지길 원치 않는 의식적인 성향을 갖고 있지 않다면, 한 나라가 압제적인 정부를 갖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전체주의적인 나라에서 조차도 압제적인 통치자들과 복종적인 국민들 사이에 상호의존적인 관계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오로지 국민들의 임계질량 이상의 숫자가 이 압제적인 정부가 권력을 잡도록 초래했던 그 의식 위로 올라설 때에만 - 그리고 그들의 숙명에 대해서 책임을 지기로 결정할 때에만 - 정부의 형태에서의 결정적인 전환이 있게 될 것입니다 - 이라크에서 현재 입증되고 있듯이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샤론 스톤의 말이 중국에서 왜 매우 많은 분노를 일으켰고, 서양에서 매우 많은 웃음거리를 초래했는데에 대해서 논평을 하고자 합니다. 단순한 이유는 세계의 양쪽 진영들에서 한 사람의 행동들의 결과들을 피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에 따라서 - 또는 한 사람의 행동들이 즉시 보여질 수도 있는 것을 벗어난 아무런 결과들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에 따라서 - 실리주의적인 - 안티-영성적인 - 생각(materialistic phylosophy)과 함께 훈육되어 왔던 인구의 많은 퍼센트를 당신들이 갖고 있습니다.
결과들에 대한 이런 부인은 - 마이트레야가 그의 책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듯이 - 자유의지에 대한 궁극적인 왜곡입니다. 하나님은 지구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따라서 하나님의 율법들을 부인하는 것이 가능한 - 물질의 조밀성의 결과로서 - 한 행성이 되도록 허용해 왔습니다. 이것이 특정 그룹의 본류생명들(lifestreams)에게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도록 하는 - 그들이 결국 충분히 가질 것이고 따라서 현실로 되돌아 올 것이라는 희망에서 - 그들의 열망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허용되도록 합니다.
하지만 이들 사람들의 얼마간은 진정으로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따라서 그들이 생각하는 것을 갖는 것이 궁극적인 자유 - 즉 어떠한 결과들도 전혀 거두어 들이지 않은 채로 그들이 원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 -라고 스스로 확신해 왔습니다 - 그리고 지구 상의 모든 이들을 설득시키는데 힘들게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이트레야가 설명하듯이, 결과들이 없이는, 자유의지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선택들이 결과들을 만들지 않는다면, 당신은 실제로 어떠한 선택들도 해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실은, 인간의 행동들이 행성적인 몸체에 대한 결과들을 가질 수 있거나 행성이 실제로 자연 재해들을 통해서 인간들의 행동들에 대응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맹렬하게 부인하게 될 이 행성 상의 인구의 특정 부분을 당신들이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들의 상대적인,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에 대항해서, 큰 소리로 말하는 어떤 사람도 심하게 비웃게 될 것이고, 뿐만아니라 그들의 비웃음의 강도는 그들의 이기심에 직접적을 비례합니다. 그 까닭은, 사람들이 그들의 행동들이나 의식상태가 다른 생명의 부분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과들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데 거부하도록 초래하는 것은, 오직(ONLY) 이기심만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하나님의 몸체(Body of God)로부터 그들 자신들을 분리시키기를 원하도록 본류생명들을 초래하게 하는 것은, 오직 이기심입니다. 이기심을 극복하기 시작해 온 사람들은, 지구 상의 모든 사람들이 같은 더 큰 온전함(whole)의 일부라는 것을 보기 시작하고, 따라서 그들은 카인(Cain) 의식으로부터 올라서고, 당신이 진정으로 당신의 형제의 수호자라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따라서, "자유 티벳" 무브먼트를 갖는 것이 진정으로 타당하지만, 동등하게 "자유 중국" 무브먼트를 갖는 것도 동등하게 타당하고 중요합니다. 그 까닭은 당신이 중국 사람들을 압제-복종의 의식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티벳의 문제가 동시에 풀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런 점에서, 영성인들이 기존의 징벌의 시나리오를 벗어나서 카르마에 대한 그들의 개념을 높이는 것이 극도로 중요합니다. 당신이 풍선 속으로 공기를 계속 불어넣는다면, 그것이 결국 터지게 될 것이지만, 그 풍선의 터짐이 성난 하나님의 징벌인가요? 현실에서는, 인류는 끊임없이 저-진동수의 에너지를 행성적인 몸체의 에너지 장 속으로 퍼붓고 있고, 그리고 그 압력이 디크리들이나 마더 마리의 기원문들과 같은 영적인 발휘들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방출되지 않는다면, 그 압력이 격렬하게 방출되게 될 것이고, 그리고 사람들이 다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해를 입어 왔다는 그 사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쉽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여전히 징벌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순히 사람들의 행동들의 피할 수 없는 결과이고, 따라서 카르마는 항상 그리고 전적으로 하나의 교사(teacher)입니다. 카르마는 모든 행동들 - 심리적인 "행동들"을 포함해서 - 이 결과들을 갖는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하나의 시도입니다. 따라서, 카르마는 항상, 사람들이 결과들을 체험할 때, 그들이 깨어나게 될 것이고, 그들 자신들에 대해서 책임을 질 것이고, 그리고 변하기 위한 결정을 할 것이라는, 희망입니다.
물론, 많은 경우들에서 사람들이 카르마적인 결과를 만들도록 초래했던 바로 그 의식이 하나의 교훈으로써 되돌아옴을 보는 것으로부터 막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영적 교사들에게 그들의 귀를 닫아왔을 때, 카르마적인 되돌아옴들을 거두어 들이도록 허용하는 것 보다 그들을 가르칠 방법이 달리 없습니다 - 그 카르마가 그들이 "더 나은 길이 있을 수 있을까요? 제가 바뀔 필요가 있는 그 존재인가요? 제 눈 안의 들보가 무엇인가요?"라고 궁금하기 시작하도록 만들 때까지 오랫동안 다시 또 반복될 것입니다.
Copyright © 2008 by Kim Michaels
첫댓글 감사합니다
항상 감사드리고요^^
@세바뇨스 현실적인 어느나라나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순리입니다. 좋은 내용 감사드립니다.. ^^
@진성의빛 예...모든 사건 사고에는 사람들이 총체적으로 만들어놓은 부적격화된 에너지의 영적 독소로 인해서 우주 거울에 의해서 되돌아 오는 것이 우주의 법칙인 듯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