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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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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이야기 호흡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들
황벽 추천 0 조회 89 25.06.30 09:30 댓글 2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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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5.06.30 15:33

    첫댓글 지난날들 연습하던 코로 드나드는 들숨날숨을 보는 호흡법과는 사뭇 다르죠.
    지난 날의 호흡법에서는 아잔브람스님의 그 '아름다운 호흡'에도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 황벽님이 알려주시는 호흡에는 그쪽은 완전 배제하는 거죠.
    이 호흡법에서는 공기의 들어옴에 폐, 흉곽, 근육, 횡경막, 복부 등 신체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고 통제를 한다는 점이 기존의 아나빠나사띠와는 전혀 다른 호흡법인거죠?

    강설스님도 황벽님식 호흡방법과 일맥상통하는 방법으로의 호흡 방법을 말씀하시던데
    그 스님은 그런 호흡 가운데 화두를 보라는 주문까지 하시대요.
    사실 화두를 본다는 게 뭘 어떻게 하라는건지 모르니 ..혼자 이리저리 궁리해보긴 하지만요.

    근데 황벽님은 이 호흡법 들숨에서만 20~30초를 여유있게 바라보고 계신다하니 내공이 꽤 크신듯 합니다.

    이 호흡으로 어떤 유익함이 있으셨을까요?

  • 작성자 25.06.30 15:41

    아나빠나 사띠는 호흡에 관여하지 않거나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알고 이씀미다.

    소싯적엔 복식호흡 몰빵했는데요, 들숨ㅡ날숨 합쳐서 2분 30초 정도까지 해봐씀미다.

    유익함은 잘 모르게씀미다 ㅡ..ㅡ;;(죄송..)

  • 25.06.30 22:00

    2분 30초...
    호흡을 그렇게 느리게 함은 어떤 이유가 있을텐데요?

  • 작성자 25.07.01 03:07

    당시엔 호흡시간이 길수록 고수라고 했었어요
    고수가 되고 싶었다는..
    ㅡ..ㅡ;;

  • 25.07.01 14:21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이길 바란다.
    과학자,
    종교인,
    정치가,
    재상,
    단전호흡의 고수,
    이렇게 무엇인가이고
    싶어함 속에
    세상은 피어나고
    세상은 울부짖는다.

  • 25.07.01 14:23

    그 울부짖음 속에...
    자율신경 실조증.
    공황장애 등으로
    가뿐 숨을 헐떡인다.

    아..요긴 나의 자화상임다 ^^

  • 25.07.01 14:26

    건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횡경막호흡을 해야 하는데..
    횡경막호흡과 화두가 어울리는 조합인지 모르겠네요.

    강설스님은 그렇게 하라고 하지만
    화두를 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니 한발작도 나갈 수가 없어요.

  • 25.07.02 10:50

    스님들이 화두를 둔다고 함은, 통상 '마음을 둔다', '주의를 기울인다', '집중한다', '힘을 쓴다'등의 의미를 가집니다.

    디게 어려운 거 같지만, 별 거 아닙니다. 예를 들어보죠. 겁나게 달리면, 숨이 가쁘죠? 그런 경우, 우리는 들숨에 힘을 줍니다. 즉 마음을 둡니다.

    결국 겁나게 달려 숨이 가쁠 때 들숨에 치중하는 것처럼, 특정 현상에 마음을 두는 거... 이게 '화두를 둔다', '화두를 든다'고 표현됩니다. 통상적으로 그래요.

    ===

    누구나 고수를 꿈꿉니다. 청운의 꿈을 꾸지 않은 이가 어디 있으랴?

    누구나 스페셜인 줄 압니다. 처맞기 전에는...

    그런데 무자게 처맞아도, 깊은 곳에서는 자신은 스페셜입니다. 그 불굴의 의지, 그 힘으로 여기에 이 모습으로 있습니다.

    ===

    특정 작업에 더 효율적인 호흡방식이 있기는 합니다. 직업상 요구 같은 거... 그런데 통상적으로 일반인들은 그냥 숨을 쉬면 됩니다.

    호흡으로 뭔가를 한다는게 사실 넌센스입니다. 아주 평범한 거, 심호흡 좀 해주고... 별 다를 거는 없어요.

    '신비'라는 거는 벗겨보면, 아무 것도 없어요. 신비하고 특별한 그런게 있으면, 그게 세상을 지배하고 있겠지. 안그러겠어요?

  • 25.07.03 06:30

    화두를 둔다는게 무엇에서 특별한 진리를 찾겠다는게 아니라, 단지 하나의 대상에 집중 한다는거군요.
    신비한 무언가를 찾는게 아니라, 도리어 일상이 신비함임을 알게될 수도 있을거 같아요.

    ㅎㅎ 무쟈게 처맞아도 깊은 곳에서는 자신은 스페셜입니다.
    그 불굴의 의지 그 힘으로 여기에 이 모습으로 있습니다. ㅎㅎ
    최소한 깨닫겠다고 용맹정진 하시는 분들은 이 범주에 드실듯요 ㅎ
    황벽님 포함~~

  • 작성자 25.07.03 08:00

    나는 나다.
    그것이 나이니깐..(끄덕~)

  • 25.07.03 10:22

    학생시절, 다음 주제로 이야기 나눈 적이 있습니다.

    어차피 호흡할 때 공기는 폐까지 들어오는데, 왜 복식호흡등 이런 저런 호흡법이 있는가? 폐활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과학적이고 더 효율적 방법도 많지 않냐... 더구나 호흡이 멈춘다, 이런 개소리가 어딨냐... 등등등...

    그렇죠? 폐까지만 들어오고, 숨을 안쉬면 죽죠? 하하하

    학생시절 이야기가 된 바 있지만요. 보통 대부분의 호흡법에서는, 호흡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집중의) 보조수단입니다.

    보조수단의 의미를 하나로 요약해 퉁치자면, 심상... 심상을 크게 두가지 측면으로 세분화해서 좀 더 구체적 접근을 하자면, 아래 정도...
    ① 특정한 마음 자세의 형성...
    ② 특별한 준비물 없이 지 몸만 있으면 가능한... '집중의 보조수단(까시나)' 역할, 또는 '집중 예비 단계(쁘라나야마)'...

    생리적 변화를 일으키는 방법들도 있기는 합니다. 예로, 호흡이 부족한 상태나 호흡이 과잉된 상태를 만드는 거... 이거 어떤 의미에서 떡실신시키는 방법인데, 의식을 혼미하게 하는 거... 표면의식이 물러났을 때, 샤만의 대지로 들어가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는, 졸도 비스므리한 거는 도움이 된단 말이죠.

  • 25.07.03 11:05

    ===

    여하간 말을 하면, 아주 길어지는 주제라서... 어쨌든 우리는 각종 문화(적 관념)등, 수천년간 누적된... 그런 것들에 종속되어 있어서요. 속박되어 마음이 발생하기에, 이런 저런게 있어요... 그런데 뭐 별로 중요하지는 않고...

    '여기에 이 모습'으로 있게 하는 (연기의 이치가 맞다면 요구되는) 그 무언가... 그 무엇을 '불굴의 의지'라 이름한 건데... 말 그대로, (소위 일대사인연이 없으면) 불굴이기에... 용맹정진하는 사람만 그런게 아니라요. 모든 사람들, 모든 중생, 모든 있는 것이 그렇습니다.

    사이버상으로 눈꽃님도 오랜 세월 알고 지냈지만, 요동은 있을 수 밖에 없고 있지만, 언제나 눈꽃님입니다. 저도 그렇고, 모두 그래요.

    보통 호흡곤란은, 폐질환등으로 인한 폐기능 손상이나 심질환등 순환계 질환등의 육체적 문제가 뚜렷하게 있는게 아니라면, 심리적 요인에 의해 발생합니다. 당연하죠? 몸이 문제가 없다면, 마음이 문제인 거 아니야? 그렇지 않습니까?

    심리적 요인... 대표적으로 스트레스... 스트레스로 다 퉁칠 수 있죠? 원시시대에 머 좀 줏어먹을라고 동굴을 나서는데, 눈 앞에 떡 하니 호랭이가 있어. 숨을 쉴 수 있겠어요? 하핫

  • 25.07.03 11:03

    .
    스트레스 상황은, 한마디로, 호랑이를 마주친 상황입니다. 강약은 있어요. 저 멀리, 좀 멀리, 너무 가까이 있는 거... 그런 식으로 말입니다.

    스트레스를 대처할 때, 간단해요. 나의 호랑이가 뭐냐... 이거를 생각해야 합니다. 호랑이예요. 호랑이가 뭔지 생각해야 한다고...

    그 다음, 피할 수 있는 호랑이냐? 피하면 안되는 호랑이냐? 혹은 피할 수 없는 호랑이냐? 그런 생각을 해야 하구요.

    그런데요. 솔직히 현대 사회에서는, 호랑이처럼 실제적으로 위험한 거는 전쟁상황이 아니면 만나지 않잖아. 사실상 대부분 만만한 호랑이들... 쏘쏘한 호랑이들... 그렇지 않습니까?

    위험성 판단도 스트레스에서 중요한 척도거든요. 그렇죠? 이 놈은 얼마나 위험한 호랑이인가?

    문제를 파고들어가야 문제를 발견하고, 문제를 발견했기에 어떤 자세가 정립이 되요. 호랑이에 대한 자세... 그 자세가 문제 해결의 버팀목입니다.

    일반적으로요. 현재 자신의 모습, 일견 못마땅하든 말든, 그게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그 사랑이, 바로 불굴의 의지입니다. 평생을 간직하는...

    부처님께서...나는, 중생에게 자신의 자아보다 더 사랑스러운 것은 알지 못한다...

  • 작성자 25.07.03 21:20

    사회인으로서, 사회적 기준에서 제 와꾸나 성격, 직업이나 재산 등 전방위로 평균 이하에
    도판에 한 발 걸치고 있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입장에서, 밑천이나 잠재력(의도, 의지, 실행력 등) 역시 바닥을 깔아주는 수준인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생의 필수 스킬.. 봉팔이 먼산보기 풀가동하면서.. 양심고백합니다. "나는 내가 너무 사랑스럽다"

    불교 카페에서 할 얘긴 아닌데요..

    타인과 세상과 관계를 크게 해롭게 할 어떤 신구의 발현은 통제하는 것을 전제로..
    (약간의 충돌은...사회상규상 용인할만한 범주에서는 괜찮다고 봄)

    현재의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 더 나은 자신이 되려는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으로 향하는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현재의 자신-현재의 삶'을 깊숙히 받아들이는 모드로 존재해 보는 것도 임시방편으로 좋은 것 같슴미다.

    예전에는 앞 뒤 다 짜르고 이렇게 무책임하게 지르고 다녔는데요..
    현재의 자신과 현재의 삶이.. 종이 호랑이가 아닌.. 방귀 좀 뀔 것 같은 호랑이와 함께 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말이 개똥같은 소리일 것을 이제는 알아가지고.. 조심스럽기는 합니다.

  • 작성자 25.07.03 21:22

    아.. 암만 봐도 개털인데.. 이렇게 뻔뻔하게.. 뭔가 잘난 것처럼 사는 모습이 어찌보면 기이합니다..

    이거시 중생의 신비인가...

  • 25.07.04 06:38

    삶에서의 문제는
    서로 키재기, 비교하기로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이게 죽음의 문제 앞에서는 평등해진다는 건데요.

    문득 죽음이 목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의 엄습은 두려움이죠.
    살아서 서로 잘난체 백날 키재기 해봐야 죽음은 예외없이 닥친다는 사실..

    LUCA이전으로 돌아가니 뭐니 폼잡고 떠벌려보지만..
    중생에게 자기자신만큼 사랑스러운 것은 없다는 이 생의 본능보다 더 강렬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 25.07.04 09:55

    생의 욕구, 이게 진짜 강렬한 거긴 한데요.

    제가 적은 것은 그보다 근원적인 겁니다. 죽을 줄 알면서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 죽을 줄 알면서도 할까? 간단해요. 피해선 안되는 호랑이...

    생의 욕구란, 자아 동일성을 토대로 성립합니다.

    죽을 줄 알면 절대 안하는 사람? 그거는 그렇게 하는게 자아 동일성이라 그래요.

    죽을 줄 알면서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보다 더 근원적인 무엇이 있다는 합리적 추론을 이끌어냅니다.

    생의 욕구가 가장 근본적이라면, 그런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다양한 경험이 있고... 그래서 알게 되기도 하고, 그냥 모르고 살기도 하고... 개인적 편차는 있지만요.

    생의 욕구는 자아 동일성을 지탱하는 가장 주요한 토대 중 하나일 뿐입니다.

    살아 있어야, 보다 쉽게 지금의 자아 동일성을 유지할 거 아냐? 그렇죠?

    죽음의 회피나 생의 구걸이, 보다 근원적인 자아 동일성에 반하게 된다면, 중생은 기꺼이 죽음으로 들어갑니다.

    인간에게 자아는 사랑스럽다, 중생에게 자아는 사랑스럽다, 중생에게 이보다 더 사랑스러운 것을 알지 못한다.

  • 25.07.04 12:16

    붓다께서 말씀하신 '중생에게 자아는 사랑스럽다.중생에게 이보다 더 사랑스러운 것을 알지 못한다'는 언명의 깊이를 다시 살펴봐야겠군요.

    여태까지 그저 그 문장의 1차원적 평면으로 받아들였는데 그게 그뜻이 아닐 수 있겠군요.

    살아있음 보다 더 근원적인 무엇을 상정하고 바라볼 때의, 어떠한 동일성이란 관점에서 그 문장을 받아들이면
    또 다른 세계를 염원할 수도 있겠네요.

  • 25.07.04 12:38

    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위의 문장에서 man의 자리에 self가 들어가도 됩니다. 자아요.

  • 작성자 25.07.04 12:58

    천외천의 고수들이 멸진정에 들어가도
    다시 익숙한 이 곳(몸ㅡ마음ㅡ세계)으로 너무나 당연하게 돌아오는 것이 생각나네요.

  • 25.07.05 05:24

    어찌보면 루카 이전으로의 회귀염원이, 영원하고 싶은 자아에 대한 염원이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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