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보편성?을 확보하고자 하겠으나
결국은 개인의 경험과 조악한 지식에 의한 글임을 밝히면서 시작합니다.
글쓰는 편의상 단정적인 표현이 있더라도 양햐바랍니다.
(두서 없음 주의)
1. 호흡에 마음을 두는 순간부터 통제력이 행사된다.
몸이 자연스럽게 호흡하도록 두고, 그 작동에 관여하지 않고 알아차리는 것은
<호흡을 연습한다>는 취지와 맞지 않기에 미리 배제합니다.
어떤 호흡법을 연습하든 호흡에 마음을 두는 순간부터
그 전과정에 자신의 통제력 즉 조작이 가해짐을 이해하고
'저절로 혹은 자연스러움' 같은 개념을 내려놓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물론 '자연스럽다'는 인상을 갖는 조작은 가능합니다.)
2. 들숨에서 '공기가 들어옴'은 과보이며 '들숨에 관여하는 근육들의 통제'가 원인이다.
(썩 상태가 좋지 않은)원인을 그대로 둔 채
과보에만 초점을 맞추면 진척도 더디고 골로 가기 딱 좋습니다.
'둘숨'이라고 의도만 일으키면 '공기가 들어오는 과정'이 작동하므로,
(후려쳐서 표현했습니다. 겐세이 금지..)
그 이후에는 근육과 기관들의 작동에 초첨을 맞춰서 조율해야 됩니다.
3. 호흡의 두 가지 경로
전달이 잘 되려나 모르겠는데.. 의식?이 살짝 깊어지면?
의식의 감지 대상이 육체가 아닌 미세신으로 전환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선정같은 거 이전에 훨씬 거친 상태인데 아무튼 그렇슴미다.
(아잔브람 스님이 '아름다운 호흡'이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요)
아무튼 이 모드로 전환하는 것은 호흡 연습에 아무런 유익이 없으므로
배제하겠습니다. (육체적 기관을 사용한 호흡과 아무 관련이 없슴미다)
결국 육체를 감지대상으로 하는 호흡을 다뤄야 합니다.
4. 이 글에서는 들숨만 다룹니다.
날숨은 들숨에 관여한 긴장과 들숨의 조건을 해제하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특수한 목적의 호흡 기법이 아니라면요)
5. 들숨에 대한 여러 인상들
-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
- 공기를 폐로 들이마시는 것
- 폐를 공기로 채우는 것
- 호흡에 관여하는 근육을 적절히 통제함으로써,
폐로 공기가 유입되는데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여
폐를 공기로 채우는 것
뒤로 갈수록 권장되는 인상입니다.
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파악이 있어야, 그 이후 조율에 도움이 되죠. 당연한 얘깁니다.
번외) 호흡에 관여하는 근육을 적절히 통제함으로써, 단전에 기운을 채운다
-- 가장 비추입니다. <폐와 공기>가 다 빠져있습미다...
6. 숨은 어쨌든 들어온다.
목 아래의 몸 전체를 웅크리고 동결시켜도 코로 숨은 들어옵니다. (거부하지만 않으면요)
소위 의식이 갚어지는 중, 호흡에 관여하는 근육들이 거의 완전히 정지상태여도 미세한 숨은 들어옵니다.
정리하면 '공기를 들여마심'이란 프로세스는 기본탑재 자동 프로그램으로 간주해도 무방합니다.
이제 우리가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공기를 담아낼 폐, 그리고 관련된 조건들입니다.
폐와 제반 기관들이 허용하는 한계치에 다다르기 전까지
들숨은 계속 들어옵니다.
7. 폐가 확장되는데 장애가 되는 장기 및 근육 통제(=이완,가동성)의 중요성
단순하게 정리하면, 들숨의 적절한 통제란
공기가 폐로 편안하고 풍부하게 들어와서 가득 채우기에 우호적인 조건을 조성하는 겁니다.
구라 안 보태구요..
제가 평소에 10초 정도의 들숨이 한계라고 할 때
위의 두가지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한 뒤에는 20초, 30초까지 편안하게 들이쉴 수 있게 됩니다.
좌우와 바닥이 막힌 작은 상자(흉곽,횡경막,장기)에 풍선(폐)을 놓고 공기를 주입하면
상자 면적까지만 공기가 들어가는데
상자에서 빼낸 풍선에 공기를 주입하면, 풍선 본연의 용량까지 자연스럽게 채워지는 거와 같슴미다.
8. 폐를 둘러싼 흉곽에 대한 이해와 감각
흉곽이 상방과 좌우에서 폐를 감싸고 있어,
폐가 어느 정도 확장되면 흉곽에 가로막히게 됩니다.
(해부학적 지식이 전무해서 잘은 모르지만..
들숨의 시작부터 흉곽을 밀어내는 과정이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도 있슴미다)
두가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1. 들숨을 쉴 때
선제적으로 흉곽을 좌우로 느슨하게 하고(이건 그냥 암시 수준으로..)
흉곽을 위로 살~짝 들어 상방의 공간을 확보하기(물리적으로 가동)
팁) 흉곽과 함께 쇄골까지 살~짝 드는 느낌으로 수행하면
상방 공간 확보가 더 잘 되고 폐에 가해지는 압박이 더 느슨해지는 상태가 됩니다.
+) 흉곽이 좌우로 확장되는 방식 파악하고 관심을 두기
2. 사전 준비 과정으로
흉곽을 감싼 늑막근 스트레칭 및 지압 등을 통해 흉곽 가동성을 확보하기
- 가동성을 확보하는 목적
1) 폐가 팽창하면서 밀어내는 힘에 따라 흉곽이 밀려나도록 하기 위해서
2) 행자가 관련 근육을 통제하여 수월하게 흉곽을 확장시키기 위해서
* 프리다이빙 스트레칭 검색하셔서 자료 찾아보시면 도움이 됩니다.
- 폐활량을 최대한 확보한다는 목적하에 과학적으로 계발된 방법론.. 굿
대개 흉추(특히 목 아래부터 명치 부근까지)에 대해서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아서
특별히 어떤 작업을 하지 않았느다면, 매우 높은 확률로 흉추 가동성이 축소되어 있을 겁니다.
(해부학적인 이유는 모르지만..)경험적으로다가.. 흉추 가동성을 확보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9. 횡경막 아래에 위치한 장기(소장,십이장, 대장, 위 등)에 대한 이해와 감각 - 간은 느낌이 없어서 잘 모르겠슴미다.
횡경막이 수축하면서 아래로 내려가면서
횡경박 아래쪽의 장기들을 밀어냄에 따라
폐가 하방으로 확장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집니다.
해부학적으로 장기 자체가 협착되고 굳어지는지는 잘 모르겠구요..
장기가 위치한 지점의 대근육과 소근육의 긴장과 협착이 들숨의 큰 난관 중 하나입니다.
이 부분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요가의 '나울리'라는 테크닉 참고 바람)
정말 쉽지 않습니다. (저도 엄청 굳어 이씀미다..)
사족) 프리다이빙 선수들은 모두 요가의 나울리 달인급으로
복부 장기와 근육이 풀어져 있습미다.
10. 횡경막 자체에 대한 이해와 감각
횡격막만을 이완하는 것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검색해보니 관련 내용들은 있네요)
'쿠룬타'로 검색하시면 둥그스럼한 기구 위에 누워있는 자세가 나옵니다.
두툼한 폼롤러도 충분합니다.(어느 정도 연습이 되면 더 좋다고 봅니다)
처음에는 가슴 뒤쪽이 축이 되서 체중을 받쳐주도록 하고
숙달되면서 점점 내려와서 명치 뒤쪽에 받쳐줍니다. (횡경막 위치 부근)
척추기립근과 복부근육등 상반신 전체를 이완하면서
횡경막을 중심으로 위ㅡ아래가 분리?되는 감각을 느껴봅니다.
사람은 대부분의 시간을 약간 수그리고 살기 때문에 횡격막이 찌그러져 있고, 복부근육도 수축되어 있으며, 그 결과 내부 장기들도 안쪽으로 눌리고 동시에 하방으로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뒤로 젖히고 이완하는 이 연습을 통해 이 압박과 경화가 해소됩니다.
11. 척추를 곧게 세우고 가슴을 열어서 편다.
8. 9. 10.을 고려할 때, 이 자세가 최적화된 모델입니다.
연습되지 않은 경우, 상당히 불편할 수 있고, 복식호흡은
사실상 수행하기 힘들수도 있습니다.
이 자세에서도 흉식ㅡ복식 모두 편안한 호흡이 가능하도록 제반 조건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12. 요가의 완전호흡
폐 아래를 채우면서
횡경막을 아래로 밀어내어 복식호흡의 들숨 후
폐 가운데를 채우면서
흉곽을 확장하는 흉식호흡 들숨 후
쇠골을 들어 폐상단까지 채우는
테크닉입니다.
한번의 둘숨에 3종을 모두 수행하는 것은
초보자에게 독이 됩니다.(과부하 걸림)
흉식호흡ㅡ복식호흡 나눠서 연습하는 것이
좋습니다.
13. 복식호흡은 필수인가?
복식호흡 폐의 중단과 상단을 거의 활용하지 않기에
흉식호흡을 메인으로 두는 것이 좋다고 보지만,
흉식호흡 올ㅡ인 해서, 복식호흡의 장점을 묻어두기엔 아깝습니다. 사실 부드럽고 편안한 복식호흡의 전제조건인 부드러운 복부 만들기를 간과하는 게 아까운거죠.
20~30%정도의 지분으로 복식호흡의 토대 확보에 관심을 두는 것이 무난한 것 같습니다.
14. 지압, 마사지, 스트레칭 등 사전작업은 다소 강하게 해도 무방하지만, 호흡은 항상 기존의 질서? 한계를 조금씩 터치해서 건드리는 방식이 안전합니다.
오바하면, 상기증, 자율신경교란 등 부작용이 가능하다고 하며, 한번 망가지면 잡기 힘든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첫댓글 지난날들 연습하던 코로 드나드는 들숨날숨을 보는 호흡법과는 사뭇 다르죠.
지난 날의 호흡법에서는 아잔브람스님의 그 '아름다운 호흡'에도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 황벽님이 알려주시는 호흡에는 그쪽은 완전 배제하는 거죠.
이 호흡법에서는 공기의 들어옴에 폐, 흉곽, 근육, 횡경막, 복부 등 신체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고 통제를 한다는 점이 기존의 아나빠나사띠와는 전혀 다른 호흡법인거죠?
강설스님도 황벽님식 호흡방법과 일맥상통하는 방법으로의 호흡 방법을 말씀하시던데
그 스님은 그런 호흡 가운데 화두를 보라는 주문까지 하시대요.
사실 화두를 본다는 게 뭘 어떻게 하라는건지 모르니 ..혼자 이리저리 궁리해보긴 하지만요.
근데 황벽님은 이 호흡법 들숨에서만 20~30초를 여유있게 바라보고 계신다하니 내공이 꽤 크신듯 합니다.
이 호흡으로 어떤 유익함이 있으셨을까요?
아나빠나 사띠는 호흡에 관여하지 않거나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알고 이씀미다.
소싯적엔 복식호흡 몰빵했는데요, 들숨ㅡ날숨 합쳐서 2분 30초 정도까지 해봐씀미다.
유익함은 잘 모르게씀미다 ㅡ..ㅡ;;(죄송..)
2분 30초...
호흡을 그렇게 느리게 함은 어떤 이유가 있을텐데요?
당시엔 호흡시간이 길수록 고수라고 했었어요
고수가 되고 싶었다는..
ㅡ..ㅡ;;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이길 바란다.
과학자,
종교인,
정치가,
재상,
단전호흡의 고수,
이렇게 무엇인가이고
싶어함 속에
세상은 피어나고
세상은 울부짖는다.
그 울부짖음 속에...
자율신경 실조증.
공황장애 등으로
가뿐 숨을 헐떡인다.
아..요긴 나의 자화상임다 ^^
건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횡경막호흡을 해야 하는데..
횡경막호흡과 화두가 어울리는 조합인지 모르겠네요.
강설스님은 그렇게 하라고 하지만
화두를 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니 한발작도 나갈 수가 없어요.
스님들이 화두를 둔다고 함은, 통상 '마음을 둔다', '주의를 기울인다', '집중한다', '힘을 쓴다'등의 의미를 가집니다.
디게 어려운 거 같지만, 별 거 아닙니다. 예를 들어보죠. 겁나게 달리면, 숨이 가쁘죠? 그런 경우, 우리는 들숨에 힘을 줍니다. 즉 마음을 둡니다.
결국 겁나게 달려 숨이 가쁠 때 들숨에 치중하는 것처럼, 특정 현상에 마음을 두는 거... 이게 '화두를 둔다', '화두를 든다'고 표현됩니다. 통상적으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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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고수를 꿈꿉니다. 청운의 꿈을 꾸지 않은 이가 어디 있으랴?
누구나 스페셜인 줄 압니다. 처맞기 전에는...
그런데 무자게 처맞아도, 깊은 곳에서는 자신은 스페셜입니다. 그 불굴의 의지, 그 힘으로 여기에 이 모습으로 있습니다.
===
특정 작업에 더 효율적인 호흡방식이 있기는 합니다. 직업상 요구 같은 거... 그런데 통상적으로 일반인들은 그냥 숨을 쉬면 됩니다.
호흡으로 뭔가를 한다는게 사실 넌센스입니다. 아주 평범한 거, 심호흡 좀 해주고... 별 다를 거는 없어요.
'신비'라는 거는 벗겨보면, 아무 것도 없어요. 신비하고 특별한 그런게 있으면, 그게 세상을 지배하고 있겠지. 안그러겠어요?
화두를 둔다는게 무엇에서 특별한 진리를 찾겠다는게 아니라, 단지 하나의 대상에 집중 한다는거군요.
신비한 무언가를 찾는게 아니라, 도리어 일상이 신비함임을 알게될 수도 있을거 같아요.
ㅎㅎ 무쟈게 처맞아도 깊은 곳에서는 자신은 스페셜입니다.
그 불굴의 의지 그 힘으로 여기에 이 모습으로 있습니다. ㅎㅎ
최소한 깨닫겠다고 용맹정진 하시는 분들은 이 범주에 드실듯요 ㅎ
황벽님 포함~~
나는 나다.
그것이 나이니깐..(끄덕~)
학생시절, 다음 주제로 이야기 나눈 적이 있습니다.
어차피 호흡할 때 공기는 폐까지 들어오는데, 왜 복식호흡등 이런 저런 호흡법이 있는가? 폐활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과학적이고 더 효율적 방법도 많지 않냐... 더구나 호흡이 멈춘다, 이런 개소리가 어딨냐... 등등등...
그렇죠? 폐까지만 들어오고, 숨을 안쉬면 죽죠? 하하하
학생시절 이야기가 된 바 있지만요. 보통 대부분의 호흡법에서는, 호흡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집중의) 보조수단입니다.
보조수단의 의미를 하나로 요약해 퉁치자면, 심상... 심상을 크게 두가지 측면으로 세분화해서 좀 더 구체적 접근을 하자면, 아래 정도...
① 특정한 마음 자세의 형성...
② 특별한 준비물 없이 지 몸만 있으면 가능한... '집중의 보조수단(까시나)' 역할, 또는 '집중 예비 단계(쁘라나야마)'...
생리적 변화를 일으키는 방법들도 있기는 합니다. 예로, 호흡이 부족한 상태나 호흡이 과잉된 상태를 만드는 거... 이거 어떤 의미에서 떡실신시키는 방법인데, 의식을 혼미하게 하는 거... 표면의식이 물러났을 때, 샤만의 대지로 들어가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는, 졸도 비스므리한 거는 도움이 된단 말이죠.
===
여하간 말을 하면, 아주 길어지는 주제라서... 어쨌든 우리는 각종 문화(적 관념)등, 수천년간 누적된... 그런 것들에 종속되어 있어서요. 속박되어 마음이 발생하기에, 이런 저런게 있어요... 그런데 뭐 별로 중요하지는 않고...
'여기에 이 모습'으로 있게 하는 (연기의 이치가 맞다면 요구되는) 그 무언가... 그 무엇을 '불굴의 의지'라 이름한 건데... 말 그대로, (소위 일대사인연이 없으면) 불굴이기에... 용맹정진하는 사람만 그런게 아니라요. 모든 사람들, 모든 중생, 모든 있는 것이 그렇습니다.
사이버상으로 눈꽃님도 오랜 세월 알고 지냈지만, 요동은 있을 수 밖에 없고 있지만, 언제나 눈꽃님입니다. 저도 그렇고, 모두 그래요.
보통 호흡곤란은, 폐질환등으로 인한 폐기능 손상이나 심질환등 순환계 질환등의 육체적 문제가 뚜렷하게 있는게 아니라면, 심리적 요인에 의해 발생합니다. 당연하죠? 몸이 문제가 없다면, 마음이 문제인 거 아니야? 그렇지 않습니까?
심리적 요인... 대표적으로 스트레스... 스트레스로 다 퉁칠 수 있죠? 원시시대에 머 좀 줏어먹을라고 동굴을 나서는데, 눈 앞에 떡 하니 호랭이가 있어. 숨을 쉴 수 있겠어요? 하핫
.
스트레스 상황은, 한마디로, 호랑이를 마주친 상황입니다. 강약은 있어요. 저 멀리, 좀 멀리, 너무 가까이 있는 거... 그런 식으로 말입니다.
스트레스를 대처할 때, 간단해요. 나의 호랑이가 뭐냐... 이거를 생각해야 합니다. 호랑이예요. 호랑이가 뭔지 생각해야 한다고...
그 다음, 피할 수 있는 호랑이냐? 피하면 안되는 호랑이냐? 혹은 피할 수 없는 호랑이냐? 그런 생각을 해야 하구요.
그런데요. 솔직히 현대 사회에서는, 호랑이처럼 실제적으로 위험한 거는 전쟁상황이 아니면 만나지 않잖아. 사실상 대부분 만만한 호랑이들... 쏘쏘한 호랑이들... 그렇지 않습니까?
위험성 판단도 스트레스에서 중요한 척도거든요. 그렇죠? 이 놈은 얼마나 위험한 호랑이인가?
문제를 파고들어가야 문제를 발견하고, 문제를 발견했기에 어떤 자세가 정립이 되요. 호랑이에 대한 자세... 그 자세가 문제 해결의 버팀목입니다.
일반적으로요. 현재 자신의 모습, 일견 못마땅하든 말든, 그게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그 사랑이, 바로 불굴의 의지입니다. 평생을 간직하는...
부처님께서...나는, 중생에게 자신의 자아보다 더 사랑스러운 것은 알지 못한다...
사회인으로서, 사회적 기준에서 제 와꾸나 성격, 직업이나 재산 등 전방위로 평균 이하에
도판에 한 발 걸치고 있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입장에서, 밑천이나 잠재력(의도, 의지, 실행력 등) 역시 바닥을 깔아주는 수준인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생의 필수 스킬.. 봉팔이 먼산보기 풀가동하면서.. 양심고백합니다. "나는 내가 너무 사랑스럽다"
불교 카페에서 할 얘긴 아닌데요..
타인과 세상과 관계를 크게 해롭게 할 어떤 신구의 발현은 통제하는 것을 전제로..
(약간의 충돌은...사회상규상 용인할만한 범주에서는 괜찮다고 봄)
현재의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 더 나은 자신이 되려는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으로 향하는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현재의 자신-현재의 삶'을 깊숙히 받아들이는 모드로 존재해 보는 것도 임시방편으로 좋은 것 같슴미다.
예전에는 앞 뒤 다 짜르고 이렇게 무책임하게 지르고 다녔는데요..
현재의 자신과 현재의 삶이.. 종이 호랑이가 아닌.. 방귀 좀 뀔 것 같은 호랑이와 함께 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말이 개똥같은 소리일 것을 이제는 알아가지고.. 조심스럽기는 합니다.
아.. 암만 봐도 개털인데.. 이렇게 뻔뻔하게.. 뭔가 잘난 것처럼 사는 모습이 어찌보면 기이합니다..
이거시 중생의 신비인가...
삶에서의 문제는
서로 키재기, 비교하기로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이게 죽음의 문제 앞에서는 평등해진다는 건데요.
문득 죽음이 목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의 엄습은 두려움이죠.
살아서 서로 잘난체 백날 키재기 해봐야 죽음은 예외없이 닥친다는 사실..
LUCA이전으로 돌아가니 뭐니 폼잡고 떠벌려보지만..
중생에게 자기자신만큼 사랑스러운 것은 없다는 이 생의 본능보다 더 강렬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생의 욕구, 이게 진짜 강렬한 거긴 한데요.
제가 적은 것은 그보다 근원적인 겁니다. 죽을 줄 알면서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 죽을 줄 알면서도 할까? 간단해요. 피해선 안되는 호랑이...
생의 욕구란, 자아 동일성을 토대로 성립합니다.
죽을 줄 알면 절대 안하는 사람? 그거는 그렇게 하는게 자아 동일성이라 그래요.
죽을 줄 알면서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보다 더 근원적인 무엇이 있다는 합리적 추론을 이끌어냅니다.
생의 욕구가 가장 근본적이라면, 그런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다양한 경험이 있고... 그래서 알게 되기도 하고, 그냥 모르고 살기도 하고... 개인적 편차는 있지만요.
생의 욕구는 자아 동일성을 지탱하는 가장 주요한 토대 중 하나일 뿐입니다.
살아 있어야, 보다 쉽게 지금의 자아 동일성을 유지할 거 아냐? 그렇죠?
죽음의 회피나 생의 구걸이, 보다 근원적인 자아 동일성에 반하게 된다면, 중생은 기꺼이 죽음으로 들어갑니다.
인간에게 자아는 사랑스럽다, 중생에게 자아는 사랑스럽다, 중생에게 이보다 더 사랑스러운 것을 알지 못한다.
붓다께서 말씀하신 '중생에게 자아는 사랑스럽다.중생에게 이보다 더 사랑스러운 것을 알지 못한다'는 언명의 깊이를 다시 살펴봐야겠군요.
여태까지 그저 그 문장의 1차원적 평면으로 받아들였는데 그게 그뜻이 아닐 수 있겠군요.
살아있음 보다 더 근원적인 무엇을 상정하고 바라볼 때의, 어떠한 동일성이란 관점에서 그 문장을 받아들이면
또 다른 세계를 염원할 수도 있겠네요.
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위의 문장에서 man의 자리에 self가 들어가도 됩니다. 자아요.
천외천의 고수들이 멸진정에 들어가도
다시 익숙한 이 곳(몸ㅡ마음ㅡ세계)으로 너무나 당연하게 돌아오는 것이 생각나네요.
어찌보면 루카 이전으로의 회귀염원이, 영원하고 싶은 자아에 대한 염원이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