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미술 시간에 마분지에 창호지를 붙어 상자를 만드는 공작을 한 적이 있었다.원래 손끝이 무딘 나는 마분지에 창호지를 붙이느라 온 데가 풀 범벅을 하고 있는데,짝은 선생님이 다가오시자 갑자기 말끔하게 창호지가 붙은 마분지를 책상 밑에서 꺼내며 말했다. "선생님,저는 미리 집에서 다 해왔어요." 이로 인해 내가 선생님께 야잔을 맞거나 기억할 만한 사건이 벌어진 건 아니었지만,나는 아직도 그 때 짝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한다.그 '미리'라는 단어가 주는 평안함,당당함,우아함에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천성적으로 무슨 일이든 '미리' 하는 법이 없다 (태어날 때조차 예정일보다 보름쯤 늦게 나왔다고 한다).학교 다닐 때는 숙제는 으레 바로 전날 밤늦게 하는 것으로 알았고,무슨 시험이든 한번도 미리 준비하는 일 없이 순전히 벼락공부로 때웠다.요새도 수업 준비를 미리 해두는 일은 없고 기껏해야 바로 전날 하거나 아미면 당일 아침에 화장실에까지 책을 들고 들어간다.원고도 이제껏 한 번도 마감에 맞춰 끝내 본 적이 없으며,학교에서 성적 제출을 할 때도 학적과에서 몇 번 독축 전화를 받고 나서야 슬슬 합산을 시작한다.
이렇게 무슨 일이든 마지막 순간에 다급하게 하니 아슬아슬하게 마치고 나면 약간의 스릴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언제나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게 마련이다.그러니 내 삶은 '미리'라는 단어가 주는 안도감, 평온함과는 거리가 멀고 언제나 '하루만 더,아니 몇 시간만 더,아니 한 시간만 더......'라는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다고 때가 되면 언제든지 순발력을 발휘해서 눈 깜짝할 새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거나 '까짓,잘 못하면 어때' 하는 배짱이 있는 것도 아니다.실제로 하지는 않으면서도 내내 불편하고 놀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가까스로 시간에 맞춰 아슬아슬하게 일을 하고 나면 다음번엔 꼭 미리 해야지 다짐하지만 그게 생각처럼 안 된다.
나의 고질적 '미루기 신드롬'의 원인을 분석해 보면,우선 천성적으로 부지런하지 못하고,딴에는 마감일 전에 나름대로 시간을 더 갖고 좀 더 잘해 보려고 하다가 어느덧 다급한 상황이 닥치는 것이다.그런데 그보다 더 근분적인 문제를 따져 보면,그것은 무엇보다도 일종의 오기가 아닌가 싶다.시간이여,흘러가 봐라,어디 내가 꿈쩍하나 보라지,장영희도 오기가 있다 -- 참으로 우스꽝스럽고 어리석은 오기인 줄은 알지만,삶의 횡포에 주눅 들어 사느라 오기 부릴 데가 없으니 괜히 만만한 시간에게 오기 부리다 망하는 꼴이다.
지금 나는 아직 일자가 일주일도 더 남았는데 미리(!) 이 글을 쓰고 있다.학교에서 주는 안식년을 맞아 곧 미국으로 떠나기 때문에 미리 원고를 써놓고 가려는 것이다.그런데 내 생에 처음으로 마감일을 일주일이나 남기고 글을 쓰다 보니 마치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낯설고 어색한 느낌이다.이렇게 미리 쓰면 절대로 안 될 것 같은 위기감까지 든다.
그러니 '미리'라는 단어 자체가 나와 전혀 인연이 없는 셈이지만,얼마 전 나는 아무런 부지런함도,오기도,마감도 필요 없는 아주 특별한 '미리'를 보았다.캐서린 하이드라는 작가의 실화를 각색한 '미리 갚아요(Pay It Forward)'라는 제목의 미국 영화에서다.
캐서린 하이드가 몰고 가던 트럭에 갑자기 불이 붙자 어디선가 건장한 남자 두 명이 도와주기 위해 뛰어온다.하지만 당황한 하이드는 본능적으로 그들이 자신을 해치려는 줄 알고 오지 말라고 소리친다.하지만 두 남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불을 꺼주었고,그녀가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그들이 가버린 후였다.결국 그녀는 감사하다는 말조차 하지 못했고,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죄의식을 느낄 정도로 미안하기 이를 데 없었다.
생각 끝에 그녀는 이제부터 은혜를 '미리' 갚기로 했다.즉,이미 입은 친절에 대해 빚을 갚을 수 없다면,앞으로 살아가며 입을 은혜에 대한 감사와 보답을 미리 행하기로 한 것이다.그래서 그녀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작은 친절과 도움을 베풀기 시작하고,이를 내용으로 <<미리 갚아요>>라는 소설을 쓴다.
영화 속에서 이 소설을 읽은 한 소년은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오라는 학교 과제로 '미리 갚아요' 캠페인을 시작한다.즉 자신이 세 명의 다른 사람에게 앞으로 질 빚을 갚는 호의나 친절을 베풀고,그 세 사람이 각기 또 다른 세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다.그래서 한 사람이 세 사람이 되고,세 사람이 아홉 사람이 되고,아홉 사람이 스물일곱 명이 되고......그래서 누구든 '미리' 갚는 세상,남보다 '미리'친절하고 '미리' 도와주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꿈을 갖고 소년이 열심히 캠페인을 벌여 간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나는 이제 곧 새로운 세계로 가서 낯선 사람들 사이에게 적응하려고 노력하면서 아마 평상시보다 더 많이 남의 호의와 친절을 필요로 하고,더 많이 남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또 어쩌면 '미리' 갚기 시작한 한 소년의 호의가 퍼지고 퍼져 내게까지 올지도 모른다.이 글을 읽은 독자들이 '미리' 갚기 시작해서 한 사람이 세 사람,세 사람이 아홉 사람으로......자꾸자꾸 퍼져서 미국까지 올지도 모른다.그러면 그 친절과 사랑에 감명받아 나같이 '미리'와 인연 없는 사람도 '미리 갚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그물의 일원이 될 수 있을지도......
* 암투병을 하면서도 희망과 용기를 주는 글을 독자에게 전하던 장영희선생님은 2009년 5월 9일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첫댓글 아주 좋은 글입니다. 모든 것은 습관의 지배를 받습니다.
지각하는 사람은 늘 지각하고 일찍 오는 사람은 늘 일찍 옵니다.
이러한 관성의 법칙을 안다면 무슨 일이든지 미리 미리해서
평생은 물론 영생을 여유있게 살아가는 것이 좋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