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리 G모텔 309호>
벌써 몇 년 전이다. 친구들과 도봉산에 갔다가 오늘 길에
수유리시장에 들렀었다.
오래 전 단골로 다니던 순대국 집은 끝내 찾지 못했지만
- 찾았더라도 당시 50대였던 순대국집 수더분한 아줌마는 이미
고인이 되었을 테고, 복스럽게 생겼던 딸도 이제 할머니가 되었으리라 -
구수한 순대국 맛은 그대로였다.
나는 친구들을 일부러 먼저 보내고 소주에 취한 알딸딸한 기분으로
옛적 추억이 있던 곳을 더듬어보았다.
수유시장에서 나와 큰 길 사거리 지나 오른쪽으로 들어서니 놀랍게도
C다방이 옛 상호를 그대로 달고 아직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몇 집 건너 통닭집도 그대로 있고, C다방 옆 골목으로 들어서니
<G모텔>이 고향 친구처럼 늙수그레한 모습 그대로 꺼벙하게 서 있고.......
산뜻하게 단장된 C다방에 들러 창가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는데,
뭔가 통째로 잃어버린 듯 가슴 한쪽이 허전하고 슬픔 비슷한 감정이
울컥 솟구쳐 올라왔다.
가로수 은행잎이 이제 노릇노릇 물들어가는 초가을이었는데......
등허리는 왜 그리 시리던지.
뜨거운 커피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른 김이 안경알을 뿌옇게 흐려놓았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 안경을 닦으며 눈가의 물기를 얼른 훔쳤다.
-오빠, 어디야?
-통닭 주문해놓고 기다리는 동안 생맥주 한잔 하고 있어.
-알았어. 담배랑 술은 내가 샀어. 15분 후에 만나.
우리는 거사를 치르기 전에 먼저소주를 한잔씩 마시면서 통닭을 뜯었다.
퇴근하고 서둘러 나온 길이어서 배가 출출하고,
뱃심이 없어서는 ‘황홀한 거사’를 치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너무 배가 부르거나 알콜 섭취가 지나치면 거사를 망칠 수도 있어서
‘통닭 한 마리에 소주 두어 병’이 알맞춤했다.
2차는 방사를 만족하게 끝내고 모텔을 나와
근처 술집에서 맥주로 ‘뒷가심’을 했다.
그때 마셨던 오비 맥주 맛은 지금 나온 세계적인 어느 브랜드의 맥주보다
훨씬 더 시원하고 맛있었다.
나는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서너 병씩 해치웠는데,
방광이 엉덩이만큼이나 큰지, 미경이는 한 번도 가지 않고 꼼짝하지 않고 앉아
오징어나 닭다리를 띁으며 담배을 피웠다.
나는 아직 군바리정신이 남아 있는 스물아홉 살 노총각이었고
미경이는 나보다 다섯 살 아래여서 혈기왕성한 때였다.
우리는 내일 아침 회사에 출근해서는 전연 티나지 않는 얼굴로
같은 부서에서 열심히 일을 해야했다.
과장이 이상한 낌새라고 채는 날이면 그날로 해고였다.
‘사내연애’는 대머리에 배불뚝이 사장의 절대금기사항으로
충분한 해고사유가 되었다.
나는 뜨끈뜨끈한 통닭이 들어있는 종이봉투를 외투 깃으로 감싸들고
C다방 쪽을 지나 옆 골목으로 들어섰다.
어둑한 밤길에 하얀 눈발이 꽃잎처럼 흩날렸고,
인도는 빙판길이 되어 있었다.
미경이는 저만큼 맞은편에서 챙이 넓은 야구모자에 하얀 마스크로 얼굴을
거의 다 가리고, 눈만 겨우 내 놓고는
큰 가슴을 오리털점퍼 안에 우겨넣고 오리처럼 뒤뚱뛰뚱 걸어오고 있었다.
어느 순간 우리는 은밀한 시선을 교환하고
내가 먼저 재빨리 모텔 유리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유리문이 미처 닫히기 전 미경이 뒤따라 들어왔다.
우린 매번 그렇게 스릴이 넘치는 접선을 시도했다. 007 첩보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내가 들어서자 카운터 의자에 앉아 석유난로를 쬐고 있던 주인여자가
보름달처럼 둥실한 엉덩이를 들썩했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40대 초반이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는 정도로 날씬한 몸매였다.
뽕을 넣었는지 가슴이 빵빵하고 엉덩이도 팽팽하게 부풀어 있었다.
여자는 가슴에 뽕을 넣고, 남자는 가슴에 뻥을 넣고 다닌다던가.........
-온다고 전화는 벌씨 해놓고 와 이제 오노?
회사에서 퇴근하자마자 309호실 예약 전화를 했었다.
-눈길이라 버스가 달리지 못하고 미아리에서부터 엉금엉금 기어왔다니까.......
하도 추워서..........아랫도리가 땡땡 얼었어요!
내가 너스레를 떨며 손바닥을 펴, 아랫도리를 가리는 시늉을 하자
-하이고마, 절믄 것이 엄살은! 그래, 막대기는 안 부러졌나?
하면서 내 등짝을 손바닥으로 딱 소리 나게 때리고는
카운터 옆에 세워둔 비디오 꽂이에서 테이프 두 개를 꺼내주었다.
-새로 들어온 화끈한 기다. 흑백이 아이고 올 칼라데이! 양년들 나오는
긴데 쥑인다!....그카고.......니들 오늘은 쪼매 조용히 하그래이......
오늘 같이 눈 오는 날은 팽일이라도 방이 만땅인 거 알제?......
니들 소리가 여까지 다 들린다카이!
지난번처럼 또 침대 다리 부러뜨려놓지 말고.....
마티스의 푸른나부
첫댓글 통째로 튀긴 닭을
노란 종이봉투에 담아주던 시절~
저도 그 통닭 많이 먹었드랬습니다.
통닭 먹고 연애는 했나? ㅎㅎㅎ
거의 40여년전 풍경이 그려집니다.
재밌게 잘 읽었어요.
요즘 먹는 통닭은
그때 맛이 안 나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실감나네
감사합니다.
지나간 추억 경험담 인가요?
한구절만 담아 갑니다.
여자는 가슴에 뽕을 넣고 남자는 가슴에 뻥을 넣은다는 명언인 것 같아서~~~ ㅎ
지나간 추억 경험담......비스므리하게 맞고요,
뽕,,,,,,,한구절은
권지예 작가님 소설 문장을
표절(?)햇십니더......
42년간 못잡은 범인 이제야 잡았는 데 공소시효가지나 잡아넣지도 못하고......
60년대에는 이종사촌들이, 70년대에는 우리가족이(어머니와 동생은 88년까지)살았던 동네인데
삶방글에 나오니 옛날이 생각나네요.
동네시끄럽게 한죄 다용서해 줄테니
내연배 같기도 한데
시간날때 수유리에 와 술한잔 사슈.
침대소리에 옆방 민원땜시 쫒겨난적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