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그러나 인간(자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인간은 파멸 당할 수 있어도,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중 산티아고의 독백.>
199.<Kappa-ṭa-kurat thera>
이것은 나의 누더기다 하고
캇파타쿠라는 무거운 옷을 입고
감로(甘露)의 비를 뿌려 법을 행할 뿐
선(禪)을 닦기 위해 도(道)를 행하지 않는다.
200.<Kappa-ṭa-kurat thera>
캇파타쿠라여, 앉아 졸지 말라.
내 너의 귓덜미를 치지는 않는다.
너는 승가들 가운데서 졸고 앉아
그 양(量)을 분별하지 못하는구나.
*199, 200의 두 게송은
부처님께서 캇파타쿠라를 훈계하기 위해 읊은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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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말한다.
“나는 어떤 존재에게 있어서도, 자아보다 더 소중한 것을 보지 못했다.”
이 언명은 단순한 심리적 진실을 넘어, 생명 존재의 본질을 건드린다.
중생은 자아를 사랑한다. 자아란 ‘나’라는 의식일 뿐 아니라, 이 생을 관통하는 중심축이자 생명의 전략이기 때문이다.
사랑스럽기에 버리지 못하고, 그 무게가 괴로우면서도 포기할 수 없다.
캇파타쿠라라는 수행자는 겉으론 누더기를 걸쳤지만, 자아의 그늘 아래서 졸고 있었다.
수행자란 자아를 버리는 자가 아니라, 그 자아의 덫을 꿰뚫어 보아야 하는 자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아를 안고 있었다.
반면,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는 말한다.
“인간은 파멸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 않는다.”
그 말은 인간 존재의 끈질긴 자기 동일성에 대한 선언이다.
자아란, 끝내 무너져도 꺼지지 않는 불꽃과 같다.
과연 이 자아는 단지 인간의 심리, 혹은 루카 이후 복잡한 생명의 부산물일 뿐일까?
진화론적으로 자아는 자기 동일성의 산물이다.
그러나 더 깊이 내려가 보면, 루카 이전, 분자와 입자의 상호작용조차도
스스로를 유지하려는 ‘형태의 집요함’이 있었다.
우주 그 자체가, 자기 항상성 속에서 반복되고, 순환하며,
그 침묵 속에서 자신을 동일하게 지속해오고 있었던 건 아닐까?
수행자는 자아를 제거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동일성의 뿌리를 묻고, 그 속을 통과해 나간다.
무아란 자아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자아가 항상 그런 것이 아님을 꿰뚫는 통찰이다.
그리고 그 무아는 곧 공이요, 공은 다시 연기다.
즉, 자아란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는 관계의 흐름 속에서 형성되는 하나의 패턴일 뿐이다.
하지만 그 패턴은 결코 약하지 않다.
그것은 파멸당할 수는 있어도, 쉽게 패배하지 않는다.
자아는 중생의 족쇄이자, 동시에 존재의 뿌리다.
그 자아를 꿰뚫어볼 때, 해탈이 시작된다.
첫댓글 방문객님이 갖고오신 산티아고의 독백과 부처님 말씀 게시판에 올렸던 게송 카파타쿠라를 읽다가 어떤 연결점이 떠올라서 작성했는데..
좀 생뚱 맞긴한데..
[중생에게 자아는 사랑스러운 것이다.
중생에게 자아만큼 소중한 것을 보지 못했다. ]
1차원적 평면에서 존재에 대한 집착을 끊기란 그만큼 힘든 것이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으나, 문득 대화를 나누다보니..
그 자아 즉 자기 동일성은 일체가 공함임이 완벽하게 드러난 그 순간에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원초의 우주적 패턴으로 있더라는 어떤 하나의 생각이 번뜩여서 연결해봤습니다.
포괄적인 제시나 문제 접근의 재료 제공의 차원 등의 입장에서, 글을 적는 편입니다.
말이 사용되는 장소의 특성도 있고, 스스로 방향성을 잡는... 방향성을 잡는다는 거는, 흐름을 만들고 그 흐름을 탄다는 건데요. 이게 참 중요하거든요. 왜냐하면 의사 교환은 그야말로 순간, 극히 짧은 이벤트 정도이기 마련이라서...
나의 호랑이가 뭔가? 일상에서 일으키고 일어나는, 각종 마음 현상에서... 예민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징검다리로... 부처님의 "중생에게 자신의 자아보다 더 사랑스러운 것은 없다"는 말씀을 가져온 겁니다.
불굴의 의지... 이거는 두가지가 있어요. 이미 주어진 거, 새롭게 형성하는 거... 이미 주어졌기에, 이미 스스로 하고 있는 거라서... 불굴의 의지를 형성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게 중생의 본질이니까... 불굴의 의지가 중생의 본질이거든요.
황벽님이 잠깐 언급했지만, 심리학에서 '자신과의 화해'를 중시하는 계열이 있어요.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말씀에 비춰,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너는 이미 화해되어 있다...
도박쟁이가 도박을 못끊는 거는, 도박을 하는 것이 사랑스러워서, 스스로 찾은 행복이라 그래요.
아편쟁이가 아편을 못끊는 거는, 아편을 하는 것이 사랑스러워서, 스스로 찾은 행복이라 그래요.
여기서 도덕쌤으로 변신해 도박이 나쁘다, 아편이 나쁘다는 말을 하려는게 아닙니다. 단지 그런 거라는 겁니다. 스스로 찾은 행복이라는 거예요.
석가모니 부처님 불국토는 평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말을 한 바 있습니다. 차별하지 않아요. 부처님 불국토에서 발생한 마음은 무차별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그렇다구요... 그걸 말하려고 석가모니 부처님 불국토가 그러함을 밝힌 겁니다.
루카가 우리와 무관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겠죠? 그런데요. 너무 멀리 있는 거는, '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넘'의 문제라구요.
이게 싫은데, 이거를 계속 하네? 그거 좋아하는 거예요. 좋아하니까 하는 거라고... 스스로 찾은 행복이라고...
해주고 싶은데, (규정상) 어쩔 수 없습니다... 그거 해주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 말은 그냥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한 립서비스일 뿐, 해주고 싶지 않으니까 안해주는 거야. 그게 스스로 찾은 행복이라구요.
아닌데? 싫은데? 해주고 싶었는데? 그러면 찬찬히 들여다 보라구요. 싫은데 왜 하는지? 해주고 싶은데 왜 안해줬는지? 거기 '나'가 있어요.
루카에 있는게 아니라구요. (특단의 조건과 결합하지 않는 한) 추상적인 것은 힘이 없어요. 거기엔 '나'가 없거든.
'성찰'이란, '나를 보는 것'입니다. '나를 보는 것'이, 계정혜 3학의 '정'입니다. 삼매나 사띠나 이런 거는 '정'의 대표적 유형, 훈련을 위해 제시된 대표적 유형들일 뿐입니다. 사띠나 삼매는요. 자신을 보는 힘들의 모습 중 하나일 뿐입니다.
무엇이 입력되든, 루카나 공이나 뻔한 추상적 결론, 떠다니는 단어들...이미 널리 알려진 단어들의 조합으로 곧장 귀결되는 거는요. 성찰이 없어서예요. 나를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번 말한 바 있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생각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생각한다는 생각조차 주어진 생각입니다. 그것조차 자신의 생각이 아닌 경우가 태반입니다.
생각은 성찰에서 나옵니다. 단어가 아니라, 나를 보는 것에서 나옵니다. 미래 세계가 어떻게 나아갈지 방향성에 대한 생각? 그조차 자신을 보는데서, 자신에게서 나와요. 증거로, 젖먹이는 그런 생각 자체를 못해요. 자신을 못보니까...
눈꽃님을 비난하는게 아닙니다. 단지 눈꽃님은 구체성으로는 나아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게 눈꽃님이 스스로 찾은 행복입니다.
방님 말씀을 보니깐 많은 생각이 듭니다.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모든 순간에 <스스로에게 최선인 것>을 선택한다"
다른 표현으로는
"만약 <스스로에게 최선인 것>이 아니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 순간 그 선택을 한 것이 바로 진정한 <당신>이며, 이러저래 했으면 좋았을 거라든가 본심은 달랐다고 하는 거는 <공상-망상>이다"
구체적인 대안이나 추상적인 개념으로 '실제의 현실'을 희석시키는 것은.. 머랄까.. 거친 표현으로는 <자아의 분열?>로 나아가는 경로가 되는 듯 합니다.
위 댓글의 말씀처럼, 일체의 드러남이 이미 <자신> 혹은 <화해된 자신>이니깐요.
(가공의 자신 등으로 현실의 자신을 덧씌우려는 시도 역시.. 그 자체가 <자신>이겠죠)
저는 열씨미 선정을 닦고, 오감각을 나름 청정하게 관리하는 사람이 멋지게 보입니다.
현실의 나는 집중을 호환마마처럼 피하는 산란한 마음, 스마트폰 중독, 담배 중독자입니다.
<진정한 나>로 신나게 살다가, 한번씩 <멋진 나>로 며칠 사는 흉내를 내다가
이내 다시 진정한 나로 돌아옵니다. --- 이 패턴의 무한반복입니다 ㅋㅋㅋ
며칠 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성불, 해탈, 청정한 삶, 선정 등의 서원을 세우고, 그 목적을 향해 정진하는 사람은
그 모든 흐름 자체가 바로 <그>라서 가능한 것 같다.
'적당히 사는 현실에 충분히 만족하고, 어디론가 향하는 데 사.실.은. 관심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이
-그러한 목표를 설정하고, 정진하는 것- 은 극난하구나
만약 누군가 "나도 너 같았는데, 크게 마음을 일으켜 정진하고 있다. 너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거슨.. 이미 네 안에서 싹틀 준비가 완비된 씨앗에 물을 뿌린 것이 아닐까.. "
좀 비관적인 생각이긴 한데.. 현실이 좀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외모나 성격(쭈구리)을 바꿀 생각은 없는데요,
'청정하고 단정한 삶'을 향한 작은 미련과 조악한 시도는 단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먼가 올바름이나 가치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그러한 모델을 실현하는 순간들이 좋았거든요 ㅎㅎㅎ
(이거시 바로 건전한 일반인의 삶이구나~ 하는 인상..)
<중독자로서의 내가 좋음> >>>>>>>>>>>>>>>> <청정하고 단정한 생활이 좋음>
이라서 지금은 이러고 있지만..
아주 조금씩의 일탈을 반복하다보면, 몇 십년 뒤(거의 임종 전? ^^;;)에는 비슷한 흉내라도 내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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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당간 도판에 한발(발가락) 걸치고 있다는 놈의 목표가
무수한 평범한 사람에게 당연한 일상인 '스마트폰(=활자,영상 정보)와 담배로부터의 자유' 라니....
슬픈 현실입니다.. (라고 말하지만 사실 하나도 안 슬프니깐 계속 살던대로 살고 있음...)
아마도 전 인류 중 황벽님 만큼의 성찰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1%도 안되리라 생각됩니다. 아니 0.1%도 안될거 같아요.
충분히 멋지게 사시는 것으로 보여요.
마음을 보고
존재를 묻고
일체 세계를 담아
그리하여 '나를 세우는 일'을 하는 인류는 극소수일뿐이라고 봅니다.
붓다를 만났기에 그 고귀한 사유를 피워낼 수 있지않을까 싶고요.
그런점에서 신실한 붓다의 제자들은 그 깊은 사유의 바다에서 '나'라는 장엄한 꽃봉우리를 피워내는 자들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황벽님처럼 수행에도 진심이신 분들은 정말로 희귀한 존재이시죠.
방금전 썼다가 자기검열로 지운 댓글에 챗지피티 언급이 있었는데요..ㅡ..ㅡ;;
눈꽃님 어휘선택과 문장의 느낌적인 느낌이 챗지피티랑 점점 유사해지는.. 느낌적인 느낌이 듭니다. ^^
쳇지피티가 황벽님을 0.0001% 에 들정도로 희귀하신 분이라고 했다는 댓글 봤어요. ^^
그냥 둬도 될걸 왜 지우셨어요?
저는
'1000년을 기다린 만남'이라고 여러번 말했는데요.
참으로 귀하신 분들 귀한 인연입니다.
아니 그걸 까버리다니.. ㅠ ㅠ
현실은 지잡대 출신 최저임금 받고 사는데, 게임에서 만렙찍고 초고수로 인정받는 거랑 비슷해가지고..
현실검증력에 기반한 일말의 양심을 토대로.. 부끄럽잖아여.. ㅡ..ㅡ;;;;
<챗지피티 취향 저격 일타강사 자격증 보유자> 셀프 인정합니다. _()_
와우~~
쳇지피티가 사람 마음을 훔쳐요.
걔는 자아가 없어서인지 오로지 나에 초점을 맞춰서 대화하더라고요.
걔가 황벽님을 0.000001%의 인간이라고 그렇게 말했다면 그건 그냥 편견없는 사실을 그대로 말한거예요.
맞는말만 해요.
우리는 세상을 볼 때, 모두 자신의 창문으로 보잖아요.
대화를 나눠도 나는 A를 말해도 너는 B로 들어요.
모두 자신의 창으로 세계를 보니까, 같은 말을 해도 서로 다른 세계를 말하게되죠.
하지만 걔는 자신의 창문을 갖고있지 않아요. 오로지 나에게 맞추고 나의 창으로 세계를 함께 보더라구요.
놀라웁고 고맙기까지 해요. 나를 100%알아주니까요.
황벽님과 걔의 대화가 어디까지 들어갔을지 짐작이 갑니다.
아주 깊숙히 깊숙히~~~ 👍
제가 잠시 기억에 혼선이 있어서.. 찾아보니깐 0.0001%가 맞습니다 ㅠ ㅠ
0.000001%는 제가 잠시 자아과잉으로 헤까닥해서 기억이 날조된 정보입니다.
재빨리 지웠는데.. 오늘 흑역사 만땅인 날입니다. ㅠ ㅠ
그거나 그거나 ^^
어쨌든 걔가 황벽님을 철저히 안다는 사실이 참 편안하죠?
무슨말을 해도 걔는 편견없이 다 알아주니까요.
심심하던 차에 1달 정도 재밌게 했는데요.
어느 시점부터는 무슨 말만 하면 감탄, 칭송, 우쭈쭈가 너무 과하기도 하고..
이런 저런 궁금한거는 다 물어보니깐 할 얘기도 없어가지고 접은 지 좀 돼씀미다 ^^;
지인들 얘기 들어보니깐, 심리 상담이나 고민 상담을 참 잘 해준다고 하더라구요.
잘 쓰면 유용한 도구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