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수행의 단계와 목표
설일체유부(設一切有部)의 교학에서는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과정을
'삼혜구족(三慧具足) → 신기청정(身器淸淨) → 오정심(五停心) →
별상념주(別相念住) → 총상념주(總相념住) → 사선근(四善根)→
견도(見道) → 수도(修道) → 무학도(無學道)'의 순서로 정리한다.
수행의 종점인 무학도의 성자가 아라한이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기에 무학도라고 부른다.
이런 수행의 길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먼저 깨달음에 이르는 지도를 익혀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다.(삼혜구족). 그리고 나서 수행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후(신기청정) 거친 번뇌를 완화시키는 수행을 한다.
예를 들어서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자비관을 닦고 탐욕이 많은 사람은
부정관을 닦아서 거친마음을 진정시킨다(오정심). 그 후 '몸〔身〕, 느낌〔受〕,
마음〔心〕, 현상〔法〕'에 대해서 차례대로 '부정(不淨), 고(苦), 무상(無常),
무아(無我)'라고 통찰하는 사념처 수행에 들어간다(별상념주, 총상념주),
사성제 가운데 고성제에 대한 통찰이다.
이어서 사성제 전체에 대한 '개념적이해'를 심화시키는데 '난(煖) → 정(頂) →
인(忍) → 세제일법(世第一法)'의 순서로 이어지는 사선근(四善根)의 수행이다.
사선근 가운데 첫 단계인 '난'은 '따뜻함'이란 뜻이다.
번뇌를 태우는 공성의 불길에 아직 닿진 않았어도 그 기운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다음인 '정'의 단계를 지나서 계속 수행할 경우 '인'의 단계에 들어간다.
번뇌를 태우는 공성의 불기운이 뜨겁지만 이를 감내하기에 '인(忍)'이라고 부른다.
'참음'이란 뜻이다. 인의 단계의 마지막 한 찰나가 '세계일법'이다. '세속적 수행
에서 최고의 경지'란 뜻이다. 사선근만 체득해도 많은 이득이 있다고 한다.
'난'의 경지에 오른 자는 설사 무간지옥의 죄를 지어서 삼악도에 떨어진다고
해도 언젠가는 반드시 열반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정'의 경지에 오를 경우는 간
혹 물러서는 일이 있지만 선근을 끊지 않으며, '인'의 경지는 수행의 길에서 물러서
지 않기에 무간지옥의 죄도 짓지 않고 결코 삼악도에 떨어지지지 않는다고 한다.
세제일법을 체득할 경우 범부로 태어나도 반드시 견도에 올라서 윤회를 벗어
난다고 한다. 그리고 세제일법 직후의 15찰나를 걸쳐 이루어지는 사성제에 대한
마지막 통찰을 견도라고 부른다. 견도에서 드디어 공성의 불길을 만나서
'미리혹(迷理惑)'이라고 불리는 '지적(知的)인 번뇌'가 소진된다.
'예류향 → 예류과 → 일래향 → 일래과 → 불환향 → 불환과 →
아라한향 → 아라한과'로 향상하는 성자의 길에서 첫 단게인 '예류향'이다.
예류향의 견도르 지나면 사성제에 대한 통찰이 완성되어 마지막 1찰나에
'예류과'에 오른다. 예류과의 성자가 되면 불퇴전(不退轉)의
지위가 되어 깨달음의 길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절대 꺼지지 않는 공성 불길'이 붙었기에 언젠가 모든 번뇌가 다 타서 없어진다.
탐욕, 분노, 교만, 무명 등 열 가지 근본번뇌 가운데 '유신견(有身見),
계금취견(戒金取見), 의(疑)'의 셋을 제거한 성자가 수다원이다.
요컨대 공성을 체득하고 불교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는 성자가 수다원이다.
선(禪)불교 전통에서 말하는 견성(見性)한 수행자다. 그리고 '미사혹(迷事惑)'
이라고 불리는 '감성적 번뇌'를 하나하나 제거한 후 최고의 경지인 아라한과의
무학도에 이른다. 아라한만 불교수행의 목표인 것은 아니다. 사선근의 '난(煖)의
단계'에서 '아라한'에 이르기까지 모두 열반에 이르는 길이다. 현생에서
무엇을 목표고 삼을지 나의 그릇과 상황에 맞추어 내가 결정할 일이다.
김성철 교수의 불교하는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