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 바퀴
새해가 시작된 나흘째로 토요일이다. 세밑 방학에 들어 연일 산과 들을 누비다 숨고르기가 필요했다. 주말이나 방학이면 습관처럼 자연으로 나가는 학습벽은 어쩔 수 없어 아침 종이신문을 살핀 후 날이 밝아오길 기다렸다. 아직 밤이 긴 긴 겨울밤이라 날은 더디 샜다. 다섯 점에서 여섯 점을 지난 일곱 점에 이르렀을 때 산책 차림으로 현관을 나섰다. 아침 공기는 제법 쌀쌀했다.
아파트 뜰로 내려서 단지를 벗어나 찻길의 보도를 따라 걸어 남산교회 방면으로 향했다. 도심 거리에 우뚝한 메타스퀘어 가로수는 날이 밝아와 미끈한 자태를 드러냈다. 메타스퀘어 사계는 분명했다. 늦은 봄 연초록 잎은 눈이 부실 정도다. 여름은 청청한 잎이 하늘을 찌를 기상이었다. 서리가 내린 늦가을이면 갈색으로 물든 단풍이었다. 겨울엔 새털 같은 잎들이 시나브로 떨어졌다.
퇴촌삼거리에서 반송공원 북사면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한동안 근무지가 김해였기에 거기로 출퇴근하다 십 년 전 창원으로 복귀했다. 동료들이 선호하지 않은 봉림동 주택지 학교에 난 오 년을 근무했다. 그때 아침저녁 학교로 오가면서 걸었던 반송공원 북사면 산책로였다. 날이 덜 밝아온 산책로는 밤을 지킨 보안등이 켜진 채였다. 창원천 건너 창이대로는 차량이 간간이 다녔다.
반지동 대동아파트까지 가지 않고 반송공원 북향 산기슭으로 올랐다. 가랑잎이 쌓인 숲은 사람들이 많이 오르내려 길이 반질반질했다. 공원 북사면은 오래 전 심어둔 편백나무가 숲을 이루어 갔다. 내가 그간 자주 못 와 본 사이 행정당국에서 곳곳에 쉼터를 만들어 삼림욕장이 되어 있었다. 산언덕 편백나무 숲에는 사람들이 다닌 등산로 갈래가 실핏줄처럼 가닥 지어 뻗쳐 있었다.
산등선 주 등산로로 오르니 아침 산책을 나선 이들이 보였다. 용호동 주택지나 내가 사는 아파트와 이웃 아파트단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반송공원이다. 도심 가운데 숲을 이룬 공원이라 인체의 허파와 같은 기능을 했다. 단독주택과 아파트에 사는 여러 사람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쉼 없이 오르내린다. 그래선지 반송공원 숲속 산책로 보안등은 심야나 새벽에도 불을 켜져 있었다.
산등선을 따라 반송공원 정상에 올랐다. 내 먼저 이미 그곳에 닿아 몸을 푸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주로 나이 지긋한 중늙은이들이었다. 여성들도 올라왔으나 사내들이 자리를 선점해 있으니 그들은 곧장 발길을 돌려 내려갔다. 철봉에 매달려 근육을 단련하는 사내가 있고 훌라후프로 허리 운동을 하는 이도 있었다. 한 사내는 휴대폰 동영상 트롯 가요를 켜 놓고 몸을 흔들었다.
사림동 창원대학과 도청 일대를 굽어봤다. 나뭇가지 사이로 시내 높은 건물이 드러났다. 재건축된 고층아파트들로 도심 스카이라인이 많이 달라졌다. 럭키아파트 방향으로 내려갔다. 옹글어지고 비틀어진 소나무가 자라는 숲을 지나니 아파트 뒤 자투리공원이 나왔다. 창원 시내는 어디나 쌈지공원이 잘 꾸며져 있다. 내가 거길 가보지 않은 사이 조경이 잘 된 공원이 들어서 있었다.
야트막한 고개를 넘으니 내가 사는 동네 이웃 아파트단지가 왔다. 운동기구와 인조잔디를 깐 운동장은 이용객을 없어 텅 비었다. 주차장을 지나 반송중학교 뒤 차도를 따라 걸어 농협 마트 매장 근처로 갔다. 매주 토요일이면 농협 매장 바깥에선 알뜰시장이 열리는데 상인들이 푸성귀와 과일 박스를 내려 좌대에 진열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실어온 농부들의 땀이 서린 농산물이었다.
아파트상가 모롱이를 지나도록 보도나 차도는 한산했다. 평일이라면 출근시간대라 오가는 사람과 출근 차량이 꼬리를 물텐데 주말이라 그렇지 않았다. 내가 사는 동네에 흔한 메타스퀘어 가로수만이 썰렁한 거리를 우두커니 지키고 서 있었다. 늦가을 이후 갈색으로 물들었던 잎들은 거의 떨어지고 가지가 앙상하게 드러났다. 메타스퀘어에서 연두색 잎이 돋아날 날도 멀지 않으리라. 20.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