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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인생의 모든 이치는 이야기에 담겨 있다!”
독일의 그림형제 민담부터 우리의 고전 설화까지
어떤 고민에도 답을 주는 인류 문화의 보고
“어린아이들이나 읽는 거라고 생각했던 옛날이야기에 이렇게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줄 몰랐다”, “옛날이야기는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이 사라졌다”, “옛날이야기에 지금도 충분히 되새길 만한 가치가 내포돼 있다는 걸 알게 됐다”…….
2019년, JTBC 〈차이나는 클라스-질문 있습니다〉의 “옛날이야기의 힘-이야기를 이야기하다”가 방송되어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나라 최고의 구비설화 전문가이자 영화 〈신과 함께〉의 모티브를 제공한 건국대 신동흔 교수는 앞의 이야기들을 엮어 《옛이야기의 힘-대담하고 자유로운 스토리의 원형을 찾아서》로 펴냈는데, 2023년 새로운 분위기의 표지를 입은 개정판으로 돌아왔다. 이 책은 평생 민담, 신화, 전설 등 원형이 살아 있는 진짜 이야기를 찾아내고 풀어내온 저자가 방송에서 다 전하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를 꼼꼼하게 풀어낸, 이른바 ‘옛 이야기 풀 패키지’이다.
책은 〈신데렐라〉, 〈백성공주〉, 〈빨간 모자〉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그림형제 민담을 비롯해 〈콩쥐 팥쥐〉, 〈여우 누이〉, 〈선녀와 나무꾼〉같은 고전 설화까지 세계 각국에서 수백 년을 이어 전해지는 수십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 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의 ‘오리지널 버전’이 전하는 새로움은 책 읽는 재미를 배가시키고, 미처 몰랐던 뜻밖의 결말과 그에 대한 해석은 그동안 옛이야기에 가졌던 오해를 해소시키기에 충분하다. 특히 ‘유치한 공주 이야기’, ‘알고 보면 야한 이야기’로 치부되며 그 의미가 상당히 폄하되었던 작품들의 경우, 여성 캐릭터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지금도 충분히 새길 가치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자유로운 연상이 가능한 게 옛날이야기의 특징이에요. 설화의 화소와 스토리는 개방적 다의성을 지닙니다. 듣는 사람이 연상하고 느끼는 것이 곧 이야기의 의미가 되지요. 옛날이야기는 그렇게 현재적으로 살아서 움직입니다. (…)
오랜 세월에 걸쳐서 전해온 옛날이야기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철학이 응축돼 있지요. 이야기의 구비전승 과정에는 일종의 ‘자동 필터링’이 작용합니다. 평범하고 뻔한 것은 걸러지고 특별하고 의미 있는 것들만 살아남지요. 그런 과정을 통해 삶의 진실을 꿰뚫는 핵심 스토리로 남은 것이 옛날이야기입니다. _8~9p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면, 자기계발서를 아무리 읽어도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면, 장밋빛 미래 같은 건 이번 생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겨진다면 한번쯤 옛이야기로 시선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 동서고금을 아울러 수백 년의 시간을 살아남은 이야기라면 우리에게 주는 뭔가가 있을 것이다. 올 겨울, 그동안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인생의 이치를 옛이야기에서 발견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말이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테니.
🏫 저자 소개
신동흔
우리나라 최고의 구비설화 전문가이자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설화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구비문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지금은 한국문학치료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신화, 전설, 민담과 같은 구비문학을 만난 뒤 평생의 반려로 삼았으며, 원형이 살아 있는 진짜 이야기를 찾아내어 풀이하는 일을 인생의 소명으로 여기고 있다. 우리 옛이야기를 찾아내고 분석하며 새로 쓰는 일을 소명으로 삼아 다양한 기획과 집필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겨레 옛이야기’ 시리즈를 기획했으며, ‘신동흔과 함께 여는 구비문학 고전문학 세상(www.gubi.co.kr)’이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이야기와 문학적 삶』, 『삶을 일깨우는 옛이야기의 힘』, 『살아있는 한국 신화』, 『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우리 신화 상상 여행』, 『스토리텔링 원론』 등을 썼고 『세계 민담 전집 1: 한국 편』과 『국어시간에 설화 읽기』 등을 엮었다. 2004년에 초판을 낸 『살아있는 한국 신화』는 영화 [신과 함께]의 모티프를 제공한 바 있다.
2019년 1월 출연한 JTBC [차이나는 클라스-질문 있습니다]의 “옛날이야기의 힘-이야기를 이야기하다”에서 사람들이 그동안 오해하거나 간과했던 옛이야기들의 숨은 가치를 알려 큰 화제를 모았다. 방송에서 다 소개하지 못한 세계 각국의 빛나는 이야기들과, 그 안에 숨은 메시지를 널리 전하기 위해 『옛이야기의 힘』을 썼다.
📜 목차
프롤로그_ 알면 알수록 놀라운 옛이야기의 힘
Part 1 이야기와 인간 : 이야기를 알면 진리가 보인다
1장 옛이야기라는 거울이 비추는 내 안의 서사
거울 앞에 선 왕비와 이야기 앞에 선 우리_ 백설공주 | 내면 깊은 곳에서 삶을 결정하는 것들 | 빨간 모자가 알려주는 진정한 자존감_ 빨간 모자
2장 S-Ray로 찍어보는 마음의 병
어디까지가 자유이고 어디서부터 방종일까_ 트루데 부인, 청개구리 아들 | 서로의 입장을 바꿔본다는 것_ 청개구리 아내, 지붕 위로 올라간 젖소 | 자신도 모르게 괴물이 된 사람들_ 보물단지, 호랑이가 된 아내
3장 서사는 움직인다!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법
내 서사의 분기점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_ 여우 누이 | 머물고 싶을 때와 변화해야 할 때_ 열두 오빠 | 금수저와 흙수저가 서로 인연이 닿는다면_ 선녀와 나무꾼 외
Part 2 성장과 독립 :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할까
4장 진짜 어른이 되는 순간
나답게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_ 샘가의 거위지기 소녀, 내 복에 산다 | 옛이야기 속 남성들은 모두 용감하다?_ 오누이 | 야수의 진짜 콤플렉스는 외모가 아니었다_ 미녀와 야수, 노래하며 날아오르는 종달새
5장 가장 가깝고 가장 먼 사이
부모라는 감옥에서 벗어나는 법_ 옥녀봉 전설, 별별털복숭이 |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오늘은 바꿀 수 있다_ 성모 마리아의 아이 | 진심으로 조언해주는 한 사람의 힘_ 충성스런 요하네스
6장 홀로서기, 힘들어서 더 아름다운 여정
어떤 삶을 살든 잃어버리면 안 되는 것_ 수정 구슬 | 손이 잘린 소녀가 지금 한국에 정착한다면_ 손이 없는 소녀, 손 없는 각시 | 어떤 처지에도 길은 있다_ 고슴도치 한스, 청개구리
Part 3 호모 에로스 : 사랑하니까 인간이다
7장 사랑,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투쟁
후회 없이 사랑했던 라푼첼을 위하여_ 라푼첼 | 세상이 그대의 사랑을 속일지라도_ 요린데와 요링겔, 올 링크랑크 | 1퍼센트의 가능성이 99퍼센트가 될 때_ 왕이 된 새샙이, 업둥이 |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_ 재주 있는 처녀
8장 영원한 동반자는 과연 존재할까?
가시를 볼 것인가, 장미를 볼 것인가_ 장미 공주 | 우리가 미처 몰랐던 신데렐라의 참모습_ 재투성이 아셴푸텔 | 옛이야기 속 계모는 왜 주인공의 사랑을 방해할까?_ 콩쥐 팥쥐, 하얀 신부와 까만 신부
9장 세월이 검증하는 ‘밀당’의 모든 것
갑질의 왕자를 제어하는 단 한 사람의 힘_ 개구리 왕자 | 어떤 사랑은 혁명이 된다_ 불쌍한 방앗간 젊은이와 고양이 | 쉬운 이별의 시대, 때로는 인내하며 바꾸려는 노력을_ 지빠귀 부리 왕, 현명한 카테리나 | 행복한 사랑을 이어가기 위한 어렵고도 쉬운 답_ 현명한 아내 만카, 연못 속의 요정 닉세
Part 4 세상과의 대면 : 이야기로 투시하는 냉혹한 현실
10장 옛이야기가 보여주는 소름 돋는 일상 정치학
함정과 모함으로 가득한 세상을 산다는 것_ 수수께끼, 함께 살게 된 고양이와 쥐 | 진보와 보수는 어떻게 어울릴 수 있을까_ 두 나그네 | 이게 현실이고 이게 정치야_ 굴뚝새, 열두 띠 이야기
11장 옛이야기가 예언하는 충격적인 미래 사회학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_ 외눈박이 두눈박이 세눈박이, 군소 빅브라더라는 21세기의 독재_ 동물의 언어, 하얀 뱀 | 신세계가 되는 플랫폼, 지옥이 되는 플랫폼_ 마량의 신기한 붓, 신기한 해골, 호랑이 눈썹
12장 냉혹한 세상에도 나만의 길은 있다
그때도 지금도 도피는 방법이 아니다_ 헨젤과 그레텔 |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침착하고 차분하게_ 푸른 수염, 너덜네의 새 | 어떤 촛불은 세상을 바꾼다_ 늑대와 일곱 마리 새끼 염소, 코르베스 씨
Part 5 성공과 행복 : 인생의 진리는 멀리 있지 않다
13장 어떻게 세상의 주인이 될 것인가
용감하게 대면하라, 변하기 때문에 운명이다_ 굶어죽을 관상을 가진 아이 | 세상을 바꾸는 건 권력도 재산도 아닌 감성_ 영리한 재봉사 이야기, 나그네의 못죽, 1년 열두 달 | 영원한 갑도 을도 없는, 모두가 주인인 세상_괴물새 그라이프
14장 불행의 서사에서 배우는 성공의 절대 원칙
모든 실패자들의 한 가지 공통점_ 여우 잡은 작대기, 홀레 할머니 | 인생이 꼬이는 데는 하룻밤이면 충분하다_ 세 군의관, 톰 팃 톳 | 순수하지 않은 열정, 이성 없는 감정의 끝에는_ 두 형제 | 그 배는 얼마든지 가라앉지 않을 수 있었다_ 암탉의 죽음
15장 저마다 다르지만 모두에게 같은 성공의 서사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일군다는 것_ 부지런한 하녀, 실 잣는 세 여인, 세 형제 | 인생은 자고로 정공법으로 _생명의 물, 성황신이 된 물귀신 | 마지막에 성공하는 사람의 힘, 역행(力行) _물렛가락과 북과 바늘, 진흙 공양
16장 새 우주를 여는 우리 곁의 숨은 힘
밑바닥 인생들과의 동행이 선사하는 것_ 세 개의 깃털, 숲속의 신부 | 산속에 감춰진 보물 창고의 정체_ 지멜리 산, 은화가 된 별 | 자연이라는 공포? 아니, 성공의 나침반!_ 야만인 한스, 이상한 은행나무
에필로그 신비로운 세계 공통어로 펼쳐내는 삶의 신세계
주
📖 책 속으로
〈백설공주〉에서 역사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공주나 왕자보다도 왕비 때문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 대한 집요한 추적과 공격, 교활한 술수로 꾀한 역사 왜곡과 국정농단…….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나요? 촛불의 힘으로 쫓겨난 권력자가 지냈던 방의 사면에 커다란 거울이 가득 걸려 있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백설공주〉 속 거울의 메타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엇이 부족해서 그랬을까요. 왜그렇게 거울을 보면서 웃고 울다가 불에 달군 쇠 신발을 신게 된 것일까요. 〈백설공주〉에서는 왕비가 거울 앞에 섰지만, 우리에게는 백설공주 이야기가 하나의 거울입니다. 숨겨진 이면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마법의 거울이자, 늘 진실만을 말하기에 무서운 거울이지요. 그 거울 앞에 선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요? 우리의 내면은 왕비와 백설공주 중 누구와 더 가까울까요?
--- pp.28~29
많은 사람들이 콩쥐나 신데렐라를 운이 좋아서 인생 역전을 이룬 캐릭터로 여기는데, 완전한 오해입니다. 콩쥐나 신데렐라는 일하는 사람이었어요.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하면서 살았지요. 그 덕에 세상과 연결되고 좋은 인연도 만납니다. 이에 비하면 장화홍련 자매는 아주 다릅니다. 장화와 홍련은 집 안에 꽁꽁 들어박혀서 울기만 했지요. 외갓집에 가라는 아버지 말에 눈앞이 깜깜해질 정도로 대처능력이 부족합니다. 결국 울분과 증오심을 가슴 가득 쌓아두다 귀신이 돼버리지요. 콩쥐의 결말이 장화 홍련의 결말과 다른 것은 당연합니다.
--- p.32
여우로 변해서 짐승을 잡아먹고 부모 형제를 해친 딸은 불에 타 죽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사람들이 잘되었다며 박수를 쳤을 테니 최악의 죽음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렇게 된 책임의 상당 부분이 부모에게 있으니, 본인은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왜 이렇게 만든 거야! 진작 부모님이 나를 바로잡아주었다면…….” 이는 서사적 분기점을 타인의 몫으로 두는 관점입니다. 나름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지만, 저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남이 잘못했다고 해서 자기 잘못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요. 인간은 누구나 자기 삶의 주체로서 스스로 길을 찾아나서야 합니다. 막내딸은 필연적으로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에요. 갈림길에서 스스로 잘못된 선택을 한 탓이 큽니다. 그는 어려운 길 대신 늘 쉽고 편한 길을 택합니다. 부모의 힘을 빌리는 식이었지요. 그 결과 막내딸은 여우로 상징되는 ‘갑질의 제왕’이 된 것이었습니다. 이런 결과 정말로 엄중하지 않나요?
--- p.72
〈열두 오빠〉의 공주에게서 톨스토이의 명작〈부활〉의 주인공 네흘 류도프를 봅니다.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존재를 변화시킨 주인공이지요. 자기와의 하룻밤 불장난 때문에 밑바닥으로 전락한 카추샤를 되살리고자 네흘류도프가 감수한 긴 고행은 ‘7년간 말하지도 웃지도 않는 일’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시공간의 배경과 구체적인 사연은 다르지만 내면의 본질에서 둘은 완전히 통합니다.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서사의 원형성이지요.
--- p.81
야수에서 왕자로 돌아온 사람은 그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 사람으로서 제 구실을 했을까요? 이야기를 보면 다소 불안한 면이 있습니다. 계속 미녀에게 의지하는 것도 그렇고 옆에서 엄마가 거드는 것도 마음에 걸려요. ‘마마보이’가 떠오르게 하지요. 오랜 시간 야수로 살면서 겪은 고통과 좌절을 견뎌낸 힘으로 스스로를 오롯이 세우고 당당한 인간으로 살았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남자가 끝까지 왕자임을 밝히지 않고 참은 모습이나, 위험을 무릅쓰고 미녀를 집으로 보낸 일 등에서 긍정적인 가능성을 찾고 싶습니다.
--- p.120
싱싱한 상추에 대한 욕망이 라푼첼을 향한 욕망으로 전이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라푼첼이 새롭게 태어난 어린아이라는 사실은 상추와 라푼첼의 동질성을 확인시켜줍니다. 자신의 분신으로서의 아름다운 아기, 이것이 엄마와 마녀가 바라보는 라푼첼의 정체성이었지요. 문제는 라푼첼을 두고 엄마의 욕망과 마녀의 욕망이 맞서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야기는 이 싸움에서 마녀가 이겨서 라푼첼을 가지게 됐다고 말하는데, 마녀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 마녀는 엄마의 또 다른 모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잘 보면 이야기에서 마녀는 늘 엄마의 자리에 버티고 있어요. 라푼첼이 태어나는 순간 마녀의 딸이 됐다는 것은 그녀가 출산과 함께 ‘모성의 어두운 그림자’에 사로잡혔음을 의미합니다. 왜 어두운 모성이냐면 소유욕으로서의 모성이기 때문이지요. 상추에 대한 집착이 아이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면서 엄마는 딸에게 독점적 소유욕을 드러냅니다. 자신의 잃어버린 젊음을 자식을 통해 보상받는 식이지요. 어렵사리 얻은 자식에게 부모가 이런 집착을 보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 p.192
그림형제 민담에는 숲이 무척 많이 등장합니다. 숲에는 거인과 마녀와 난쟁이들이 살고 천사나 요정도 있지요. 그 숲은 대개 ‘세상’ 또는 ‘사회’를 상징합니다. 새로운 가능성이 있는 한편, 존재를 위협하는 갖가지 함정이 도사린 곳이지요. 함정은 사랑의 길 앞에도 어김없이 놓여 있습니다. 예쁘게 키워 나간 사랑도 거친 숲의 검증을 피할 수는 없지요. 세상의 함정과 파도를 헤쳐내야 사랑은 비로소 완성되는 법이니까요. 문제는 그 숲이 녹록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맑고 순수한 이들에게는 더 그렇지요. 이름만으로도 여려 보이는 요린데와 요링겔 커플은 숲에서 속절없이 길을 잃고 함정에 빠집니다. 이야기는 그곳이 ‘마녀의 숲’이었다고 하는데, 실은 그들에게 숲이 곧 마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감당하기엔 세상이 두렵고 위험한 곳이었다는 뜻이지요.
--- p.203
저주에 걸려 깊은 잠이 든 공주를 멋진 키스로 깨우는 일은 무척이나 낭만적이고 판타지적인 설정이지요. 수많은 남녀가 달콤한 꿈을 꾸게 만드는 모습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 단순한 몽상적인 욕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저절로 손쉽게 이뤄낼 수 있는 그 무엇도 아니지요. 깊은 자기확신에 바탕을 둔 진심의 포용이 키스의 원형적 의미입니다. 백마 탄 왕자가 된다는 것, 이거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에요. 공주이고 왕자라서 짜증 난다는 분들에겐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 누군가에게 공주나 왕자가 아닌 사람이 있냐고요. 모든 사람이 다 특별한 존재지요.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남의 얘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 p.234
🖋 출판사 서평
유치하다? 쓸모없다? 여성을 비하한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옛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것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 삼중당 문고가 나를 키웠다’, ‘어린 시절, 세계명작을 읽으며 수많은 상상을 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새엄마에게 구박을 받으면서도 착한 마음을 잃지 않는 예쁜 주인공이 멋진 왕자를 만나 마침내 사랑을 쟁취한다는 줄거리, 주인공을 못살게 굴던 부모가 벌을 받는 결말은 분명 어린 시절 한번쯤은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혹적인 설정이다. 처음 접하는 화려한 드레스와 액세서리들, 으리으리한 궁전과 이국적인 풍경, 근사한 말들이 끄는 마차라던가 세계 각국의 진미가 펼쳐진 식탁 같은 일러스트는 명작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키기에 더없이 좋은 요소이다.
그럼 세계문학전집을 읽고 자란 지금의 3040 부모들 중, 자녀에게 세계문학전집을 읽히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보고 듣고 즐길 거리가 워낙 많아져서이기도 하지만, 2000년대 초반에 돌풍을 일으켰던 키류 미사오의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도 한몫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그토록 재미있게 읽었던 이야기들이 알고 보니 19금 야설에 불과하며, 여성은 성 착취의 대상일 뿐이라는 키류 미사오식 해석 때문에 ‘내 아이에겐 절대 이런 이야기를 읽히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옛이야기의 힘》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동화나 옛날이야기는 어린애들이나 읽는 것이라는 인식, 이렇다 할 쓸모도 가치도 없다는 오해, 잘못된 성역할을 심어주어 21세기에는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소재라는 생각을 바로잡는 것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옛이야기를 널리 알리는 이유이다.
원전에 충실한 깊이 있는 해석으로,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세계
《옛이야기의 힘》은 ‘이야기와 인간’, ‘성장과 독립’, ‘호모 에로스’, ‘세상과의 대면’, ‘성공과 행복’ 등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 안의 서사, 마음의 병, 인생의 방향을 바꾸기,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 부모로부터의 온전한 독립, 사랑, 영원한 동반자, 일상에서의 정치, 불행 서사에게 배우는 성공의 원칙 등의 핵심 화두에 따라 열여섯 개 장으로 나뉘어 있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라푼첼, 잠자는 숲속의 공주 같은 익숙하고 친근한 이야기부터 푸른 수염, 괴물새 그라이프, 두 나그네처럼 어른이 되어 읽으면 더욱 현실적으로 와 닿는 이야기들, 실 잣는 세 여인, 부지런한 하녀, 고슴도치 한스, 외눈박이 두눈박이 세눈박이처럼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반전 인생을 흥미진진하게 담은 이야기들은 넷플릭스 드라마나 유튜브 채널들과는 또 다른 재미와 감동을 안겨준다.
옛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왕족이건 귀족이건 서민이건 동물이건, 신분과 상관없이 저마다의 이력과 사연을 가지고 있다. 세상의 편견에 맞서 싸우고, 타인을 질투해 함정을 만들고, 잔꾀를 써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기도 한다. 운명 앞에 좌절하다가도 다시 일어서고 삶과 죽음 앞에서, 사랑과 욕망 사이에서, 부모 혹은 자식으로서의 역할 앞에서 갈등을 겪기도 한다.
저자는 동화에서는 한두 줄로 요약돼 있거나 삭제되어 있는 결말 이후의 이야기들을, 그림형제 민담의 독일어 원전을 직접 우리말로 옮기며 소개한다. 2014년에는 그림형제가 활동했던 독일 카셀(Kassel)로 직접 가서 1년간 동화가도(Marchen Straße)를 찾아다니고 유럽의 여러 동화 마을을 방문해 자료를 모으기도 했다. 우리나라와 아시아의 여러 고전 설화의 경우, 2016년부터 이주민을 대상으로 대규모 구술조사 사업을 진행해 1,000편이 넘는 스토리 원전를 모으기도 했다. 이렇듯 철저한 연구와 조사를 통해 옛이야기를 재해석한 도서가 드물다는 점에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디즈니, 넷플릭스, 픽사, 드림웍스…
스토리 왕국들은 끊임없이 민담을 연구한다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글로벌 콘텐츠 기업들은 해마다 수십 편의 드라마와 영화를 선보인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트렌디하고 재미있는 시나리오가 넘쳐나는 이들 기업에서도 〈말레피센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신데렐라〉, 〈미녀와 야수〉, 〈알라딘〉, 〈뮬란〉, 〈라이온 킹〉까지, 옛이야기를 실사로 제작한 영화를 끊임없이 선보이고 있다. 이들은 수십, 수백 년 전의 이야기에서 어떤 점을 발견했기에 2023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러한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재가공하는 것일까?
바로 이야기를 사랑하고 이야기에서 교훈을 얻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을 캐릭터로 만들고, 세상 어딘가에서 벌어질 법한 일을 줄거리로 붙여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일을 수백 년간 지속해온 것은, 인간이 이야기를 통해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하고 관계를 맺는 동물이라는 증거이다. 세계 각국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그것들이 고대, 중세, 근대를 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이유는, 그 이야기들을 통해 인간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야기는 집단 기억의 결과물이고 그 안에는 한 시대의 사회적, 역사적 구조와 배경, 세계관과 가치관이 담겨 있다. 고전과 신화가 그렇듯,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옛이야기는 끊임없이 읽히고 재해석되어야 한다. 옛이야기를 제대로 다룬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깊이 있는 자료를 찾기 힘든 오늘날, 이 책은 이야기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귀한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개인적으로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는 꿈이 있습니다. 한국 인문학의 세계 진출이에요. 그 길이 옛날이야기에 있다는 것이 저의 믿음입니다. 원형 서사에 대한 보편적이고 심층적인 해석이 그러하고, 이야기를 매개로 한 자기발견과 치유 활동이 그러합니다.
이름조차 없는 ‘K-HUMANITAS(K-인문학)’가 힘을 내는 일에 이 책이 의미 있는 시발점이 되기를 꿈꿔봅니다. 허튼 꿈일지 모르지만 어느 날 문득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옛날이야기 속의 일들이 늘 그러한 것처럼요.
“그들은 그렇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_1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