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행 뒷담화(2/2)
대기줄은 ㄹ자모양으로 늘어섰는데 내앞으로 족히 2백명은 되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대폰을 꺼내 가장 빠른 비행기표를 찾으려고 노력중이다. 나 역시 아까 결제 실패한 티켓을 예약하려고 여러번 시도해 보았지만 먹통이다. 내일 티켓은 이미 매진이고 다음날 티켓이라도 찾아야한다. 한시간 정도를 기다리다 보니 여기서 무작정 줄서서 기다려 봤자 남은 표는 앞사람들이 다 차지하겠고, 굳이 줄서서 기다려도 뾰족한 해결방안이 생길 것 같지 않았다.
결항으로인한 티켓 반환을 해준다고 문자가 왔다. 그런데 모바일이나 온라인으로 환불하려니 취소수수료를 무려 1만4천원을 제하고 준다고 합니다. 항공사 직원에게 물어보니 안내데스크를 통하면 환불수수료가 없으니 줄을서서 환불하라고 한다. 뭔가 일처리가 엉망이다.
결항으로 인한 티켓 환불은 1달 이내에만 하면된다고 하는데, 이를 제대로 안내해 주지 않아서 사람들은 길고긴 대기줄에 뒤섞여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경우도 있고, 환불 대기줄과 티켓 변경 신청 대기줄을 혼동하는것 같다. 안내도 부족하고 급한 마음에 일단 줄서기 먼저 하는것 같다. 일단 티켓을 환불 받으면 항공사의 결항으로인한 변경안내를 받을 수 없을 수 없으므로 상황이 해결 될 때 까지 환불하지 않느것이 좋을것 같다.
눈이 많이 와서 활주로가 막혔으니 항공사 잘못도 아니고 자연재해이지 않은가? 출발 전 눈이 온다는 예보를 보긴 했지만 눈이 이렇게 많이/오래 올지는 몰랐다. 그냥 몇 년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한라산 정상 부근에만 쌓일것이라고 방심한 결과이다.
지인에게 예약에 필요한 항공사홈피/아이디/비번/생년월일/출발시간을 문자로 보냈다. 지금 출근해서 한참 바쁘게 일하고 있을텐데 미안하기도 하지만 티켓예약을 부탁했다. 몇분 후 지인에게 답장이 왔다 인증번호가 문자로 갔으니 알려 달라고. 문자로 인증번호를 지인에게 보냈다. 잠시후 또 결제 인증번호를 보냈다. 단 몇분 만에 일요일 아침 10시반 항공편을 예약했다. 참 고맙다. 더구나 자기돈으로 예약해 줬으니 집에가서 한턱 쏴야겠다.
이제 더 이상 줄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다. 공항은 난장판이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고 앉아있을 빈의자도 없다. 노인분들은 오래 서있기도 힘들텐데.......
큰 카트위에 트렁크, 귤상자 여러개, 선물 보따리들을 잔뜩 싣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저 많은 짐을 어떻게 끌고 다닐까?” 걱정이 된다. 공항에 내릴때는 렌트카 회사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 편하게 왔겠지만, 다음 비행기 탈 때 까지 저 많은 짐을 계속 끌고 다녀야할텐데 차를 타거나 숙소에 갈 때 큰 고생을 할 것 같다.
사람들로 넘쳐나는 공항을 떠나기로 했다. 이틀을 더 기다려야 하는데 어디로 갈것인가?
건물밖 흡연부스에 가보니 사람들 모두 한숨만 쉬고 전화기를 붙잡고 어딘가로 바쁘게 통화중이다.
결항이 되었으니 이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제주공항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을것이니 숙소 잡기도 만만지 않를 것 같다. 어제 묶었던 숙소로 되돌아 갈까? 야놀까, 고기어때 앱으로 찾아볼까? 찜질방으로 갈까? 공항근처 걸어갈 거리에 있는 모텔로 갈까????
잠시 생각 후 몇 년전 묶었던 숙소로 가기로 결정. 제주버스터미날 근처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인데 공항에서 시내버스로 한정거장 거리이고, 3층짜리 건물이라서 객실도 많고, 값도 싸다. 더구나 조식으로 샌드위치도 주는 곳이다.
공항 1층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제주버스터미널행 버스에 탔다. 버스에 타고 보니 대부분 나와 같은 상황의 여행자가 대부분이다. 활주로가 막혔으니 제주에 새로 도착하는 사람은 없겠고, 공항에 왔다가 허탕치고 떠나는 사람들 뿐이다. 버스에 올라보니 다들 분주히 통화중이다 비행기가 끊겨서 오도가도 못한다. 미안하지만 회사일 대신해달라고. 또 어떤 아저씨는 이 버스를 타고 제주항까지 가서 배를 타고 목포로 간다고 한다. 어떤 이는 김포공항 주차비가 하루 4만원인데 비행기값 보다 주차비가 더 많이 나올 것 같다고 한다. 저마다 복잡한 사연들이 많다.
버스터미널에 내려보니 인도와 차도 모두 빙판길이다. 행인들이 미끄러 지지않으려고 엉금엉금 걷고 있다. 스노우체인을 감은 차들도 간혹 보인다. 무려 6년 전에 갔던 숙소를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다. 버스터미널 바로옆에 개천이 있는데 그 다리의 이름이 “오라교”이다. 다리를 건너며 혼자 웃는다 “오라고?” “그래 왔어!”
골목을 돌아서니 예전 그 모습 그대로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무도 없다. 보통 체크인 시간이 오후 4~5시 이니 당연히 안내데스크에 근무자가 없다. 전화를 해서 스텝을 찾았다. “남자 1명 도미토리 체크인 하려고요” “아직 청소가 안되어있어 3시 이후에 입실가능합니다” 배낭도 내려 놓지 못하고 밖으로 나선다.
좀 이르지만 점심밥을 먹기로 했다. 예전에 못가봤던 골목 뒤편길로 걸어가 본다. 한적하다. 근처에 공설운동장이 있어서 운동선수들도 보인다. 식당들을 탐색해 본다. 해장국집, 백반집, 각재기집, 기사식당, 김밥집, 돈까스집, 칼국수집.... 기사식당을 선택. 들어서니 공기가 따뜻하다. 배낭도 내려놓고, 모자도 벗고, 답답한 목도리도 벗고 밥을 접시에 담아 먹었다. 빈속에 새벽부터 동동거리며 다녀서인지 밥을 많이 먹게된다. 바쁘게 갈곳도 없고 앞으로 이틀을 빈둥거려야한다.
첫댓글 실감나는 글 잘봤습니다 이렇게 낯선 도시에 떨어져서 오도가도 못하게 되고 일정조차 못잡는 상황 이런게 도시 생존상황이죠 ㅎ
작년인가는 제주에서 일주일간 공항이 마비되기도했었는데 이번엔 그나마 빨리 풀려서 다행입니다
그래도 전에 제주에 여행온 경험으로 근처 숙소 찾는데 별 어려움 없으셨겠네요 ㅎ
이거이거 영화 한편같은데요? 이러다 좀비 튀나오고, 비행기 추락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