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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손과 므라리 자손의 임무
민 4:21-33
21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2 게르손 자손도 그 조상의 가문과 종족에 따라 계수하되
23 삼십 세 이상으로 오십 세까지 회막에서 복무하고 봉사할 모든 자를 계수하라
24 게르손 종족의 할 일과 멜 것은 이러하니
25 곧 그들이 성막의 휘장들과 회막과 그 덮개와 그 위의 해달의 가죽 덮개와 회막 휘장 문을 메며
26 뜰의 휘장과 성막과 제단 사방에 있는 뜰의 휘장 문과 그 줄들과 그것에 사용하는 모든 기구를 메며 이 모든 것을 이렇게 맡아 처리할 것이라
27 게르손 자손은 그들의 모든 일 곧 멜 것과 처리할 것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명령대로 할 것이니 너희는 그들이 멜 짐을 그들에게 맡길 것이니라
28 게르손 자손의 종족들이 회막에서 할 일은 이러하며 그들의 직무는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이 감독할지니라
29 너는 므라리 자손도 그 조상의 가문과 종족에 따라 계수하되
30 삼십 세부터 오십 세까지 회막에서 복무하고 봉사할 모든 자를 계수하라
31 그들이 직무를 따라 회막에서 할 모든 일 곧 그 멜 것은 이러하니 곧 장막의 널판들과 그 띠들과 그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32 뜰 둘레의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그 말뚝들과 그 줄들과 그 모든 기구들과 그것에 쓰는 모든 것이라 너희는 그들이 맡아 멜 모든 기구의 품목을 지정하라
33 이는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의 수하에 있을 므라리 자손의 종족들이 그 모든 직무대로 회막에서 행할 일이니라
민 4:21-33 / [게르손 후손의 임무]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셨다. 22) `게르손의 후손들도 그 씨족과 집안별로 일일이 수를 세어라. 23) 만남의 장막에서 일할 수 있는 30세 이상부터 50세까지의 남자가 얼마나 있는지 그 수를 세어 보아라. 24) 게르손의 후손들이 해야 할 일과 어깨에 메고 갈 것은 이러하다. 25) 성막의 속덮개와 겉덮개, 그 위를 덮는 돌고래 가죽덮개, 성막 입구 휘장, 26) 성막과 제단사면을 치는 울의 휘장과 그 울을 치는 줄, 또 성막뜰 입구에 치는 휘장이다. 게르손의 후손들은 이것들을 운반해야 한다. 27) 게르손의 후손들은 이것들을 꾸리거나 풀어 놓거나 메고 다닐 때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지시하여 대로 따라야 한다. 그러니 너희는 게르손의 후손들에게 그들이 해야할 일을 일일이 알려 주어야 한다. 28) 이상이 게르손의 후손들이 성막에서 해야 할 일이다. 게르손의 후손들이 이러한 일을 하는데 에는 아론 제사장의 아들 이다말이 책임지고 감독해야 한다. 29) [므라리 후손의 임무] 너는 므라리의 후손들도 그 씨족과 집안별로 수를 세어라. 30) 만남의 장막에서 일할 수 있는 30세 이상부터 50세까지의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그 수를 세어 보아라. 31) 이들이 메고 다녀야 할 것은 성막을 치는 데 쓰는 휘장의 널빤지와 가로다지와 기둥과 기둥 밑받침과 32) 또 성막뜰 사면에 칠 울 휘장의 기둥과 기둥 밑받침과 말뚝과 이러한 것들을 세울 때 사용하는 줄과 그에 딸린 모든 부속품이다. 너희는 므라라의 후손들이 메고 다닐 품목을 일일이 알려 주어라. 33) 이상은 아론 제사장의 아들 이다말의 책임 아래 므라리의 후손들이 성막에서 맡아서 해야 할 일이다.'
고핫 자손에 이어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의 업무가 소개됩니다. 게르손 자손은 성막 본체의 앙장과 외부의 포장을 운반합니다. 므라리 자손은 성막 본체의 널판과 외부 포장의 말뚝을 운반합니다.
게르손 자손도 계수하되(21-23) 게르손은 레위의 장자이며(창 46:11), 립니와 시므이의 아비입니다(출 6:16-17).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고핫 자손을 계수했던 것처럼 게르손 자손 중 회막에서 봉사할 사람의 수를 세었습니다. 기준은 역시 30세 이상 50세 이하의 남자, 곧 자신과 자기 인생의 중심을 기꺼이 하나님께 내놓을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을 때에 받으실만한 분이십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을 존귀히 대하여 헌신하는 것은 그를 경외하는 사람의 당연한 믿음의 고백이 될 것입니다.
게르손 종족의 할 일과 멜 것은 이러하니(24-28) 게르손 자손은 아론과 엘리세바의 막내 아들(출 6:23; 대상 6:3; 24:1) 이다말의 지휘 아래 성막의 덮개와 휘장, 문장 등의 천막류를 관리하고 운반합니다. 고핫 자손이 어깨를 사용해 성물을 운반하는 것과는 달리 게르손 자손은 소 네 마리가 끄는 수레를 이용해 성물을 운반합니다(7:7-8). 하나님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짐 지우시는 분이 아닙니다. 사명을 주시면 할 수 있는 능력도 도움도 주시는 분이십니다(고전 10:13).
므라리 자손도 계수하되(29-30) 두 자손을 계수했던 것처럼 모세는 므라리 자손 중에서도 회막에서 봉사할 사람의 수를 셉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사용하여 므라리 자손 중 인생의 황금기에 전심전력으로 하나님께 헌신할 사람을 선별하십니다. 사명에 있어서도 자신만의 선한 일을 가지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하도록 지음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엡 2:10).
므라리 자손의 종족들이 회막에서 행할 일이니라(31-33) 게르손 자손이 성막의 겉모양을 이루는 장막과 휘장을 거둔 뒤, 므라리 자손은 성막의 나머지 골격에 해당하는 물품들인 기둥과 받침, 말뚝, 줄 등을 운반합니다. 므라리 자손이 운반하는 것은 가장 무거운 짐들로서 회막과 그 뜰의 단단한 구조물 전부입니다. 그래서 30-50세의 사람이 가장 많은 므라리 자손에게 이 짐들이 맡겨졌습니다. 므라리 자손은 소 여덟 마리가 끄는 수레를 이용해 성물을 운반합니다.
적용: 하나님은 당신에게 일을 맡기실 때 그 일을 감당할 힘도 주시는 분이심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의 결정과 명령에 대해 당신은 얼마나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는지요? 하나님은 각자의 임무를 정하시고 조화롭게 활용하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아름답게 수행하시는 분입니다. 당신에게 맡겨진 일을 확실하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잘 하고자 하는 준비된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귀하게 쓰임받기를 소망합니다.
< 설 교 >
봉 사
민 4:21-28 / 김수근 목사
세 살 먹은 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제가 배워야 한다는 것은 공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생활 속에서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통하여서든지 뭔가 느끼고 깨닫는 것이 있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묵상 모임에서 교만처럼 큰 죄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자기가 다 알고 있고 자기처럼 똑똑한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하는 그래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모습 나처럼 알고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러한 모습처럼 불쌍한 모습이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신앙에서도 포함됩니다.
신앙생활에서 문제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자기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도 또 교회 모든 것도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생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이면 다 이상하고 못된 것으로 취급하는 생각이 바로 교만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면 왜 배워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차이나기 때문에 날마다 우리는 하나님한테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하여서 우리의 삶에 나타난 모든 것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배우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 배우는 일 중에 하나가 바로 봉사입니다. 봉사라는 것에 대하여서 우리는 너무나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봉사라는 것으로 가지고 자기를 자랑하는 도구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것을 통하여서 자기가 위대한 신앙인인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의도를 가지고 하는 그런 식으로 변질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인지 모르지만 어떤 직분이 하나의 감투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 감투를 얻기 위하여서 봉사라는 점수를 따야 하는 그러한 식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것뿐입니까? 그렇게 하므로서 하나님으로 봉사 한 만큼의 어떤 혜택을 바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만큼 했습니다. 이만큼 수고하고 노력했으니까?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십시오라고 하는 보상심리가 깔려있는 봉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하므로서 뭔가 하나님 앞에서 당당해 진 것 같은 그러한 느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봉사가 부담이 되고 만 것입니다. 안 하려고 하니 사람들눈이 무섭고 하려고 하니 힘들고 시간도 안 나는 것 같고 이런 식으로 봉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봉사는 어떤 것인가를 본문을 통하여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레위 자손들이 장막봉사를 위하여 계수함을 입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게르손 자손은 성막, 장막, 덮개 문장, 휘장등 덮개 종류를 메고 운반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고핫자손은 증거궤, 상, 등대, 단들과 각종 기구등 성소내의 기구들을 전담해서 메고 운반해야 합니다. 므라리는 널판, 널판 띠, 기둥과 받침, 말뚝, 줄들을 메고 운반합니다. 이 일을 할 만한 사람을 30세부터 50세까지 계수하고 그 사람들로 하여금 봉사하도록 맡기고 있습니다. 이들의 직무는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맡은 일은 서로 다릅니다. 어떤 일은 중요한 일을 어떤 이는 덜 중요한 일을 맡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누가 높고 누구는 낮다는 식의 구분이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문제는 모두가 협력해서 하나님을 잘 섬겼느냐가 문제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직무는 신분이 아니며 또한 은사도 높고 낮은 것이 없음을 아셔야 합니다. 누구는 좋은 일 누구나 안 좋은 일을 맡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세상의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각자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또한 질서있게 하나님이 맡기신 것입니다.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교회가 그렇게 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직분이 어떤 신분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직분을 가지고 높고 낮음을 따지는 그러한 모습이 되고 만 것입니다. 서로 직분을 받으려고 야단이 난 것입니다. 사실상 어떤 은사를 주시고 일을 맡기신 것은 자기를 비우고 예수님 같이 낮아지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 봉사를 통하여서 주님을 배우도록 하기 위한 도구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봉사를 하게 하신 것은 단순히 일을 위하여서 그런 일드을 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봉사를 통하여서 배우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배울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이며 구원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산다는 것이 무엇이며 희생이 무엇이며 섬김이 무엇인가를 서로 봉사하면서 배워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봉사를 명하신 이유인 것입니다. 그래서 봉사는 어떤 면에서 싸움입니다. 어떤 싸움이냐 하면 세상이 전부가 아니며 하나님나라가 있다는 이 사실을 몸으로 체험하는 싸움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봉사를 하므로서 세상보다 하나님이 더 좋은 것라는 것을 발견하기 위한 투쟁인 것입니다. 즉 자기를 부인하여서 남을 섬기는 모습으로 되어져 가는 싸움인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데 저런 사람의 발을 씻어주어야 하나 내가 누군데 화장실 청소를 한다 말인가? 라는 그러한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배여 있는 사람이 그러한 봉사를 통하여서 자기를 배워 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서 봉사가 존재하는 것이며 하나님은 봉사를 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봉사가 필요합니다. 봉사는 단순히 내 이름을 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며 또한 어떤 직분을 받기 위한 절차가 아닙니다. 봉사는 주님의 모습을 담기 위한 것이며 또한 자기를 버리기 위한 훈련이며 또한 세상보다 하나님나라가 더 좋은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투쟁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봉사를 하셔야 합니다. 그 봉사를 통하여서 하나님은 우리가 배우시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봉사가 없으면 그만큼 배움이 없고 주님의 희생을 알지 못하며 십자가를 알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뭔가 주어지기 때문에 하는 봉사가 아니라 나를 버리기 위한 봉사, 나를 부인하기 이한 봉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직분은 폼이 아닙니다.
봉사에 입참하라
민 4:21-28 / 피영민 목사
서론
‘입참하라’는 단어는 오늘 읽은 본문에만 나옵니다. 입참하라는 것은 ‘들어와서 참여하라.’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6장 16절을 보게 되면 레위의 아들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레위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 연치대로 이러하니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요”
레위는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서 셋째 아들입니다. 그러나 레위는 열두 지파중의 하나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다시피 요셉의 두 아들이 열두지파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레위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특별한 지파로 간주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장자를 죽이는 재앙을 내리실 때 이스라엘 백성의 장자는 죽이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이지 아니한 장자 대신에 레위인을 취한 것입니다. 민수기 3장 12절을 보겠습니다.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첫 태에 처음 난 자를 대신케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하나님은 “레위인은 내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레위에게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제일 큰 은혜를 주신 아들은 고핫입니다. 그래서 고핫의 지파로부터 모세와 아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6장 20절을 보면 고핫의 아들이 아므람인데 이 아므람이 자기 아비의 누이, 다시 말하면 고모인데, 고모 요게벳을 취하여 아론과 모세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후에 아론과 모세는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게 되고 나머지 레위인들은 성막을 운반하는 짐꾼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레위지파를 하나님이 장자대신 취했다고 생각할 때에 이 레위지파는 오늘날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 12장 23절을 볼 때에 교회를 가리켜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라고 했습니다. “The general assembly and the church of the firstborn” 교회는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입니다. 레위인들은 장자되신 하나님이 취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레위인의 사역과 하나님의 교회의 사역에는 일관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레위의 세 아들 가운데서 특별히 고핫이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고핫 지파로부터 모세와 아론이 나오기도 했지만 고핫의 자손들은 특별히 운반할 때에도 중요한 성물을 운반을 했습니다. 법궤, 금촛대, 분향단, 금잔, 성소와 지성소에 있는 대단히 중요한 성물들을 운반하는 사명을 고핫 자손이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성물들은 고핫자손이 포장할 수도 없고 풀 수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아론의 아들들인 제사장들만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만이 지성물을 해달의 가죽과 여러 가지 보자기로 포장할 수 있었습니다. 고핫 자손들은 그것을 막대기로 꿰어서 어깨에 맨 다음에 운반을 했던 것입니다. 성막 가운데서 제일 중요한 성물과 지성물들은 고핫자손이 운반했는데 그들은 어깨를 사용해서 운반을 했습니다.
그런데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들은 가치는 좀 떨어지지만 무게가 더 많이 나가는, 예를 들면 장막의 말뚝, 휘장을 운반했습니다. 이들은 직접 포장도 할 수 있고 풀 수도 있었습니다. 이들이 운반하는 것들은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게르손 자손에게는 수레가 두 대 지급이 되었고, 므라리 자손에게는 수레가 4개가 지급이 되어서 도합 여섯 개의 수레를 가지고 장막의 물건들을 운반했습니다. 그러므로 레위의 세 아들들 고핫과 게르손과 므라리는 짐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설교자들 가운데 스펄전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설교를 준비할 때에는 대지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눕니다. 그리고 각각의 대지가 분명해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대지의 개념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을 스펄전 목사님은 어렸을 때 심부름을 다니면서 배웠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쌀하고 조하고 콩을 사와라” 해서 쌀가게에 가서 달라고 했더니 주인이 그것을 봉지 하나에 한꺼번에 넣어서 다 섞어서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잡곡밥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쌀 봉지 따로 콩 봉지 따로 조 봉지 따로 달라고 해서 샀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할 때에도 쌀 봉지, 콩 봉지, 조 봉지로 나누어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민수기 4장의 이야기는 결국은 레위의 자손들이 짐을 지는 짐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첫째로 짐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두 번째로는 짐꾼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그 짐꾼에게 짐을 맡기신 하나님의 명령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 성도들은 짐을 나누어져야 할 일꾼이다.
우리 성도들은 짐을 지는 짐꾼입니다. 우리가 짐꾼이라고 하면 업신여김을 받는 직업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공항에도 가면 짐 나르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성막에서 짐을 나르는 짐꾼들은 업신여길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들은 대단히 위대한 특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기쁨으로 행복함으로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할 사람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행진을 할 때에 짐이 없는 사람은 처음에는 기분이 좋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생에 아무런 질 짐이 없는 사람은 한동안은 행복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요사이에 유행하는 말이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입니다. 삼팔선은 서른여덟살이 되면 정년퇴임의 선을 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오정은 사십오세가 되면 정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오륙도는 오십육세까지 일하는 사람은 ‘도선생’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사십대에 벌써 백수가 되었다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짊어질 짐이 없는 인생은 행복한 것이 아니라 괴로운 것입니다. 휴가를 가보면 알지만 사람이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은 행복해도 보름만 넘어가면 쉬는 것도 괴로운 일입니다. 더구나 노는 것은 더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에 뭔가 질 짐이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첫째, 우리 성도들이 지는 짐은 다양합니다. 고핫 자손이 져야 될 짐이 다르고 게르손 자손이 질 짐이 다릅니다. 그리고 므라리 자손이 질 짐이 다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을 이동할 때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따라서 통일성 있게 이동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각각 지고 있는 짐들은 다 다른 짐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짐을 질 도구가 없어서 짐을 못 지겠습니다.” 라고 핑계 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고핫 자손은 어깨를 가지고 짐을 졌기 때문입니다. 어깨도 없는 사람 있으십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서 지고 있는 짐은 무엇입니까? 교회 일은 한 두 사람이 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6장 2절에 보면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나와 있습니다. 교회가 서로 짐을 지고 서로 사랑하려면 짐을 나누어 져야 됩니다. 여러분 갈라디아서 6장 5절에도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짐을 주실 때에 “하나
님, 나에게 왜 이런 짐을 주십니까? 나는 질 수 없습니다” 이런 말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입니까? 짐이 없는 것이 불행이기 때문입니다. 짐을 지는 것이 행복인 것입니다. 이제 해가 바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 가운데 지고 있는 짐을 바꿀 분도 계십니다. 또 지고 있는 짐을 벗을 분도 계십니다. 또 안 지던 짐을 새로 져야할 분도 계십니다. 그럴 때 여러분, “나는 못합니다.” 라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깨가 없으십니까? 왜 못 지십니까? “하나님이 시키시니 내가 순종하겠습니다” 하고 짐을 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타고 들어가신 것이 나귀 새끼입니다. 저는 성경에서 가장 신기한 스토리가 그것입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가져오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그 주인에게 뭐라고 말하고 나귀를 데리고 올까요?” 라고 묻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주가 쓰시겠다고 하라.” 이 한마디를 하셨습니다.
그 때에 그 나귀 주인은 아무것도 묻지 않습니다. “당신들의 주가 누구인데 나귀를 달라고 하시오? 이 나귀가 얼마인줄 아시오?” 이렇게 묻지 않았습니다. “주가 쓰시겠다고 하라.”는 한 마디에 나귀를 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귀를 타고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주인은 물론이고 나귀는 얼마나 영광이겠습니까? 그런 스토리가 마태복음 21장 3절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2006년에는 주님이 “내가 네 어깨를 좀 써야겠다.” 하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 여기 있으니 쓰십시오.”라고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네가 네 팔을 좀 써야 되겠다.”, “내가 네 다리 좀 써야 되겠다.” 할 때에 주님께 기꺼이 내어 드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우리는 주님을 위한 짐을 져야 합니다. 우리 인간이 지는 짐은 두 종류입니다.
첫째는 세상짐 죄짐이고, 둘째로는 주님이 주시는 짐입니다. 사람은 어차피 짐 없이 다닐 수는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짐을 지든지 주님이 주시는 짐을 지든지 둘 중 하나는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1장 28-30절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 세상 짐은 ‘weary and heavy burden’ 입니다. 피곤하고 무거운 짐입니다. 세상 짐도 피곤하고 무거운 짐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세상 짐을 내려놓고 내가 네게 주는 그 짐을 져라” 하십니다. 주님도 우리에게 짐을 주십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짐은 어려운 듯 하면서 쉽고 무거운 듯 하면서 가벼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세상 짐 지지 마시고 주님이 주시는 짐을 지고 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레위인들은 세상 짐과는 무관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뭐 다른 족속의 텐트를 움직입니까? 그들은 오로지 장막만 움직이는 짐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무슨 사업을 하든지, 무슨 직장생활을 하든지, 주의 사역을 하든지, 우리가 지고 있는 짐은 결국은 주님을 위한 짐입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주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할 것입니다. 위대한 칼빈은 우리 성도들의 직업을 ‘직업소명’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내가 먹고 살기 위해서 할 수 없이
한다” 이렇게 말하지 말고 “이것은 하나님이 내 어깨에 맡겨주신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직장일도 하시고, 가정일도 하시고, 교회일도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무슨 일을 해도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현세 축복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해도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먹어도 하나님, 마셔도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가치관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 참된 레위인이요 그 사람이 복된 사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도여러분, 주님을 위한 짐을 지십시오 세상 짐을 지고 가는 것은 무겁고 피곤한 것입니다. 주님이 지워 주시는 짐은 가볍고 쉬운 것입니다. 주님을 위한 짐을 지고 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우리의 짐은 하나님이 우리를 교육시키는 좋은 교육의 방편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고핫 자손 가운데 법궤를 지고 간다고 하면 그 사람은 법궤에 대하여 연구할 것입니다. ‘저 법궤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저 법궤는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저 법궤를 포장할 때는 어떻게 하고 운반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또 게르손 자손 가운데 앙장(커튼)을 운반하는 사람은 ‘이 커튼은 길이가 얼마고 색깔이 무엇이고, 무게는 얼마나 나가고, 이 커튼은 어디에 놓아서 운반해야 하는가?’ 에 대한 전문가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의 어깨에 무슨 짐을 지워주시든 간에 그것은 교육의 과정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사역의 짐을 지든 고난의 짐을 지든 오해의 짐을 지든 핍박의 짐을 지든 간에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짐을 통해서 우리 성도들을 교육하시는 교육의 방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어떤 짐을 지고 가든지 간에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가 지고 있는 이 짐을 통해서 나를 가르쳐 주옵소서 내가 이 짐을 통해서 영적인 성숙을 이루게 하여 주옵소서.”
2. 짐꾼은 하나님이 임명하셨다.
짐꾼들은 하나님이 임명하셨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짐꾼에 관해서도 우리는 세가지 진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관심은 낮은자에게 있었습니다. 높은 사도들이나 높은 제사장들이나 높고 귀중한 직분자들만 생각하시고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낮은 짐꾼들, 짐을 지고 운반하는 짐꾼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생각하시고, 그들에게 이런 저런 할일을 지시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높은 자들에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낮은 자들에게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 나라에 높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대제사장들도 있고 바리새인도 있고 서기관도 있었습니다. 열심당원도 있고 사두개인도 있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성전을 장악하고 있었고 바리새인들은 회당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정치도 장악하고 종교도 장악하고 있는 높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높은 사람들과 전혀 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일반 백성들, 평민들, 세리, 죄인, 어부, 할 수 없어서 자기 몸을 팔아먹고 사는 창녀들과 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심령은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자랑할 것도 없고 내어 놓을 것도 없었습니다. 심령이 가난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더 진실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더 사랑하시고 말씀하시기를 “하나님 나라에는 너희 높은 사람들보다 오히려 세리와 창기가 먼저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나는 약하고 무능하다고 좌절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약하고 무능하고 지친 사람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높고 강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약하다고 할 그 때에 함께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그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약할 그 때가 곧 강함이라’ 사람은 내가 강하다고 생각할 때에는 약한 존재입니다. 내가 강하다고 생각할 때부터 고꾸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는 약한 존재입니다. 무능한 존재입니다. 하나님 나는 피곤한 존재입니다. 나를 도와주십시오.” 라고 고백할 그 때에 전능한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낮고 진실한 사람들과 함께 하십니다. 마음이 자고한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겸손하고 낮은 사람,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낮은 자와 함께 계십니다. 낮은 짐꾼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제사장을 통해서 짐꾼을 임명하셨습니다. “게르손 자손은 그 모든 일 곧 멜 것과 처리할 것에 아론과 그 아들들의 명대로 할 것이니 너희는 그들의 멜 짐을 그들에게 맡길 것이니라”(27절) 하나님께서 제사장을 통해서 짐꾼을 임명하신다는 것이 바른 질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짐꾼들이 자기 마음대로 짐을 선택하고 마음대로 짐을 운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짐꾼에게는 제사장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만이 있을 뿐인 것입니다. 28절을 보겠습니다. “게르손 자손의 가족들이 회막에서 할 일이 이러하며 그들의 직무는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이 감독할찌니라.”
아론에게는 네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술이 취해서 다른 불로 분향을 하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셋째아들인 엘르아살과 넷째 아들인 이다말이 제사장의 계보를 잇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게르손 자손이 짐을 싸고 운반할 때에 그것을 감독하는 사람이 막내아들인 이다말입니다. 아론의 막내아들입니다. 나이 어린 이다말이 게르손 자손의 모든 것을 지휘 감독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게르손 자손이 이다말에게 “어린 네가 무엇이라고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 하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다말을 임명하시고, 이다말 제사장을 통해서 짐꾼들에게 사명을 각각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다말이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함부로 대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짐꾼들은 늘 순종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늘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짐꾼들에게는 일할 시간도 명백하게 명시가 되어 있습니다. “30세 이상으로 50세까지 회막봉사에 입참하여 일할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23절)고 했습니다. 레위인들도 정년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50이면 은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읽다보면 레위인들의 일할 수 있는 연령이 점점 젊어지기 시작합니다. 나중에는 20세에서 50세까지가 됩니다. 일꾼이 모자라면 시작연령이 낮춰지는 경향이 있지만 은퇴연령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레위인이라고 해서 “나는 평생 하겠다.”하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위인도 정한 시간 안에 봉사하고 은퇴하라고 했습니다.
3. 짐꾼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
세 번째 짐꾼을 향한 명령은 오늘 우리에게 그대로 주시는 명령인 줄로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짐꾼은 깨끗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취하여 정결케 하라 너는 이같이 하여 그들을 정결케 하되 곧 속죄의 물로 그들에게 뿌리고 그들로 그 전신을 삭도로 밀게 하고 그 의복을 빨게 하여 몸을 정결케 하고 또 그들로 수송아지 하나를 번제물로 기름섞은 고운 가루를 그 소제물로 취하게 하고 그 외에 너는 또 수송아지 하나를 속죄 제물로 취하고”(민 8:5-7) 레위인들이 짐을 지고 갈 때 제일 중요한 것은 깨끗한 것입니다. 깨끗하지 않으면 짐을 질 수 없는 것입니다. 몸도 속죄 제물로 깨끗이 씻고 옷도 빨고 그리고 몸에 터럭이 없도록 삭도로 미는 것입니다. 레위인들은 깨끗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하되 더러운 영을 가지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거짓의 영이나 탐심의 영이나 더러운 영을 가지고 일을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악령들은 성도들에게도 들락날락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의 일을 할 때에는 더러운 악령들을 다 토해내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해서 일을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는 짐을 지는 자는 경외심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짐을 지는 사람이 경박한 자세를 가지고 일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나답과 아비후도 술취해서 분향하다가 죽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지성물에 접근할 때에 그 생명을 보존하고 죽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너희는 이같이 하여 아론과 그 아들들이 들어가서 각 사람에게 그 할일과 그 멜 것을 지휘할찌니라 그들은 잠시라도 들어가서 성소를 보지 말 것은 죽을까 함이니라”(민 4:19-20)고 했습니다. 고핫 자손들이 지성물을 운반하는데 지성물에 호기심을 가지고 법궤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하고 열어보고, 아론의 지팡이를 휘둘러도 보기도 하면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이것이 모세가 받은 두 돌비인가?” 하고 만져보고 사진 찍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지성물을 경박하게 다루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경외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자세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무슨 사업을 하든지 “이것은 주님이 내게 주신 짐이다.” 하고 경건하고 성실하고 진실한 자세로 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건들거리면서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가정일도 성실해야 합니다. 교회일도 일단 맡으면 성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불성실한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되 경외심을 가지고 성실하고 진지한 자세로 짐을 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로 짐을 지는 사람은 전투정신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합니다. 주의 일은 전쟁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공사에 입참하라” “count serve”(와서 섬기라)고 되어 있지만 원래의 뜻은 ‘war the warfare’(전쟁에서 싸우라) 이런 뜻입니다. ‘봉사에 입참하라’는 것은 ‘전쟁에서 싸우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막을 운반하는 것도 영적인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서 무엇을 하든지 이것은 전쟁입니다.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쟁을 하려면 적을 바로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적은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사람들끼리 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우리의 적이 아닙니다. 사람은 우리와 인격도 다를 수 있습니다. 또 사람에게는 악령이 들락날락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진짜 적은 마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로 마귀를 상대로 싸워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악령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워도 물러나지 말아야 합니다. 전쟁에 나가는 사람이 전쟁이 어렵다고 후퇴하면 되겠습니까?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우리는 약하지만 어깨에 짐을 지고 음부의 권세를 향해 나갑니다. 그러면 음부의 문이 견딜 수없어 깨어진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절대로 우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마귀는 패배한 존재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기도로 나가서 싸우고 믿음으로 싸우고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로마서에서는 우리가 넉넉히 이기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싸우면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하고는 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마귀가 좋아하는 짓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한 봉사는 영적인 전쟁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전투정신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네 번째로는 즐겁게 일해야 합니다. 저는 강남중앙침례교회의 목사라는 짐이 작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 짐은 즐거운 짐입니다. 목사의 짐은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말씀을 연구하고 깨닫고 그것을 증거 하는데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큰 짐을 주셔도 그 짐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같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의 일을 할 때에 즐겁게 해야 합니다. 짐을 지고 갈 때에 인상 쓰고 싸우며 간다면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감당할 능력과 기쁨을 다 부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결론
어떤 폭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폭군이 일꾼에게 일년 동안 쇠사슬을 길게 만들라고 시켰습니다. 그래서 이 일꾼이 쇠사슬을 부지런히 만들었습니다. 고리를 만들어서 연결하고 또 연결해서 쇠사슬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폭군이 일년 뒤에 오더니 “쇠사슬이 짧다 일년을 더 만들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일년을 더 만들어서 더 길게 만들었습니다. 2년 뒤에 온 폭군은 그 쇠사슬을 받아들고서는 자기 신하에게 명령합니다. “이 쇠사슬로 만든 저놈을 묶어라 그리고 땅을 파서 그 사람을 집어넣어라.” 여러분 마귀는 그런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을 실컷 부려먹고 자기가 부려먹은 그 일로 그 사람을 묶어서 땅속에 파묻습니다. 그것이 마귀의 역사입니다. 평생 부려 먹고 쇠사슬로 묶어서 펄펄 끓는 지옥 불에 던져 버리는 것이 마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귀를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와는 통보도 하지 말고 단절해야 합니다. “마귀님 나 떠나겠습니다.” 하고 인사할 것 없습니다. 통보 없이 마귀와 단절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짐꾼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세상 짐을 지지 마시고 마귀 짐을 지지 마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짐을 지고 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짐은 가볍고 쉬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자기의 짐을 잘 진자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무엇을 맡든지
민 4:21-28 / 박조준 목사
오늘 읽은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의 지파 중에 게르손 가족의 할 일과 멜 것 그리고 처리할 것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게르손 가족은 레위지파 중의 한 가족입니다. 이들은 이스라 엘의 장자대신에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된 가족입니다. 아주 특수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도 록 선택되었습니다. 게르손 가족은 이스라엘 장자의 대표자와 대리자로서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 위해서 성별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레위지파가 장자로 여겨져 야 했습니다.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모든 사람에게 이 말을 적용했습니 다.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 라는 말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장자이십니다. 모든 성도들은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신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해야 한다 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레위지파가 그들의 성전을 봉사하는데 어떻게 헌신했는 가 하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성별하는 뜻의 물을 뿌렸습니다.그리고 그 들의 몸을 씻고 의복을 빨아야 했습니다. 너희가 깨끗하여지고 그 다음에 여호와의 기물을 메 라 고 한 대로입니다. 오늘 주님의 몸인 교회를 봉사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라고 생 각합니다.바울 사도는 우리를 하나님의 제사장 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를 믿고 거듭난 사람, 그 보배피로 씻겨진 사장이고 옛날의 레위족속과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게 된 사 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레위지파 사람들은 몸에서 털을 깍아 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헌 신할 때 우리의 외적인 생활의 변화된 모습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육에 속한 옛생활이 제거되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이렇게 옛것은 제거되고 새것이 나타납니다. 우리 에게 새로운 변화가 있어야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레위지파 사람들은 모두가 하 나님을 섬기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똑같은 일을 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획 일성의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는 계획과 뜻이 오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십니다.하나님은 모두 레위의 후손들에게 특수한 기물만 먹이 도록 하신 것이 아니고,특수한 휘장이나 성막에 속한 것만을 운반하도록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합당한 일을 분배시켜서 한 사람이 이 일을 하면, 다른 사람에게 저 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정상적인 몸에는 눈, 코, 입, 귀, 손, 발이 다 제자리에 있어야 합 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게르손 가족의 직무와 같이 합당한 일을 맡기셔서 일하게 하십니다. 성경에 저희가 메이며 맡아 처리할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은 각 사람의 재능에 맞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왕되신 주님의 제자로서 짐을 나르는 책임을 다 맡았습니다. 책임을 맡지 않은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반드시 교역자가 되고 장로 나 권사, 집사가 되고, 교회학교 교사나 성가대원이 되어야만 책임을 맡은 것은 아닙니다. 하 나님은 우리에게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 의 눈에 별로 띄지 아니하는 평범한 짐은 나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충성되게 봉사하는 사 람은 자기 하는 일에 대해 실망하거나 불만하지 아니했습니다. 이 일은 내가 해야만 하는 것 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성막은 광야에서 운반하게 될 때 모든 기물들과 기구들도 같이 운반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의 기물들을 자기 등으로 기꺼이 운반하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 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일을 영광으로 알고 행하였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지난 8월 한 달 동안 여러 가지 행사가 있었습니다. 교회학교 각 부서에서 하기 수련회를 가졌습니다. 교 사님들의 수고는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네 차례에 걸친 전체 산상기도회가 있었습니다. 감사한 것은 회가 거듭되면서 더 많은 분들이 참석하셔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집 회기간 동안에 각부를 맡아서 수고하신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그리고 한편에서는 전도 사 수련회, 목사 수련회, 국제목회 세미나가 있었는데 이 일을 위해서도 특별히 전도부 실행 위원 여러분이 전적으로 봉사하여 주셔서 외부에서 오신 교역자님들의 마음에 큰 감동을 주었 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댁에서는 그런 일을 하실 수도 없는 어른들인데 정문을 지키는 일을 비롯해서 뜰을 쓰는 일, 하루종일 앉아서 등록을 받는 일, 식권을 보급하는 일, 식사하는 일 등 교회가 아니면 상상도 못할 일을 하였습니다. 어느 누구 한 분 마지못해서 하신 분은 안 계십니다.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하셨습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하 나님의 일은 자진해서 감당할 때 복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교회에서 오셨던 교역자님들이 한 결같이 입을 모아 하시는 말씀이 영락 교회가 어떻게 부흥하는가 했더니, 부흥의 비결이 온 성도의 충성된 봉사에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고 하며 감탄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생동하 는 교회, 왕성하는 교회는 온 성도가 무슨 일을 맡든지, 맡은 그 자리에서 충성되게 봉사하는 데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많아야지 구경군만 많으면 말만 많습니다.우리 가운데는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일하면서 비난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로 인해 조금도 낙심 될 필요가 없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이런 일을 미리 생각하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하므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그렇습니다. 주를 위해 충성하게 봉사하면서 신실한 일군이 당하 는 어려움은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 라서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하기 때문에 복이 되는 것입니다.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는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서 삽니다. 예배당에 나와서 예배드릴 때 뿐만 아니라 아침부터 저녁에 이르 기까지 전 생활을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할 일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사 든지 팔든지, 주든지 받든지, 치료하든지 치료받든지, 교육하든지 교육받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우리 믿음의 식구들이 어디 가서 무엇을 하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 께 바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욱 풍성한 열매와 상급을 보장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자기의 생의 가장 귀한 열매를 바치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아주 귀한 대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좇는 사람의 마음은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의 길 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이 다 그러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 다. 그리고 하나님이 맡겨 주신 짐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짐을 잘 지고 나가면 많은 것을 배우 게 됩니다. 금촛대를 메고 가는 사람은 어느 누구보다도 금촛대에 대해서 더 많은 새로운 지 식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가 귀중한 것을 메고 갈 때 자기가 메고 가는 것이 금촛대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을 것입니다. 그 금촛대가 갖는 영적인 의미도 전달해 줄 것입니다.하나님 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도 그 일이 무엇이든지 간에 거기에는 모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 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누구의 어깨 위에나 짐을 지우게 하실 때에 거기에도 교육적인 의미 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슬픔과 고통을 당할 때 더 많은 것을 매우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 서 더 풍성한 수확을 얻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메고 가 시는 짐이 무엇이든지, 그짐을 지고 가시면서 많은 것을 배우는 기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 리고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음은 하나님께서 는 이 짐을 질 사람을 정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민수기 4장이 이 진리를 말씀하 고 있습니다. 다른 곳에 보면 게르손 가족과 고핫 가족과 므라리 가족에 대한 내용이 많이 기 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교회의 지도자들만 부르시고 택한 것이 아니라, 짐을 메는 사람들도 정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는 신분의 차별이 없습니다. 어떠한 직업에서 어떠한 직책을 가지고 있든지 거기에 상관하지 아니합니다. 부자든지 가난한 사람이든지 상관할 것 없습니다.아마 이 자리에는 수천억 원의 자본금을 가지고 사업을 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한 달에 교회에서 쌀 몇 말이라도 도와주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될 정도로 생활이 어려운분도 많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상관하지 아니합니다. 우리 교인 가운데는 현역 육군대장이 계 신가 하면 이등병도 있습니다. 지식이 있고 없는 것도 상관없습니다. 이 자리에는 대학 교수 님이 수백 명 계시는가 하면, 평생 국민학교에도 가보시지 못한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짐을 메고 나갈 일꾼을 찾으십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집의 기구를 메는 사람을 임명하십니다. 우리가 알맞는 처소에서 하나님이 맡겨 주신 일을 하 게 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우리에게 정해지신 것임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 종사하는 직업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되어진 것을 알 때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제 말을 해서 미안합니다마는 저는 하나님이 왜 이렇게 목사가 되게 했 는지 모르지만 제가 하는일을 통해서 얼마나 행복을 느끼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떠 한 직업에 종사하든지 간에 그 직업이 하나님이 정해 주신 것임을 믿는 사람은 그 직업에 대 해서 만족할 것입니다. 나는 내 직업을 만족하게 여깁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일을 하라 고 맡겨 주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때는 무거운 마음으로 교회 정문을 나서 집으 로 돌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께서 나를 충성되이 여겨 이 직분을 맡기셨다 는 사 실을 생각할 때 감격한 마음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 분이 하시는 일이 무엇이든지 불만스럽게 생각하지 마세요.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세요. 그 길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입니다.하나님은 짐을 멜 사람을 정했을 뿐 아니라, 각 사람 이 멜 짐까지 정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27절을 보세요. 게르손 자손은 그 모든 일 곧 멜 것과 처리할 것에 아론과 그 아들들의 명대로 할 것이니 너희는 그들의 멜 짐을 그들에게 맡길 것 이니라 고 했습니다. 짐을 메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 그 일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명령을 받은 대로 행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주님의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진리를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무슨 직분이든지 하 나님께서 맡기십니다. 자기가 맡겠다고 나서는 것은 진리에 어긋나는 일입니다.이거 참 부끄 러운 말씀입니다마는 우리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가 오는 9월 24일부터 부산 영락 교회에서 모이게 됩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다음의 부총회장이 누가 되느냐 하는 일 때문에 관심이 굉장하고 후보로 나선 사람이 맹렬한 운동까지 한다는 말이 들립니다. 매우 유감스럽고 부끄 러운 일입니다. 한 교단의 총회장은 그 교단의 상징적인 일물입니다.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 러므로 온 총회의 총대들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당신이 이 무거운 짐을 져 주세요 하고 투표하 여 당선이 되면 황송한 마음과 무거운 마음으로 이 직책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인들이 나서서 나를 뽑아 주십시오 하면서 심지어는 세상 방법대로 선거운동을 한다고 하니 이것은 교회의 타락입니다. 이런 교회가 세상에 무슨 영향을 줄 수 있습니까? 맛잃은 소금은 길가에 내버려 짓밟힐 것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는 안수집사 24분을 택하려고 합니 다. 이 선거가 세상 사람들에게도 본이 되는 신성한 행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 의 사람들을 통해서 택함을 받았을 때는 절대순종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를 택한 데는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대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라고 하는 자세가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또 산꼭대기로 나를 보내든지 바다 밑으로 나를 보내든지 내가 기꺼이 하겠습니다. 주님의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순종하겠습니다.
주여,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내가 내 갈 길을 찾고 그 길을 가려 하기 전에 나를 보내소서 라고 해야 합니다. 이것 보세요. 주님은 메는 사람을 정하고 멜 것도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봉사할 때를 정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30세 이상으로 50세까지 정하셨습니다. 짐을 메도록 우리를 정하신 하나님은 그것을 하기 시작할 때까지도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 실 때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악마가 우리를 유혹하지 못합니다.끝으로, 짐을 메는 사람은 그 직책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얼른 볼 때 게르손 가족은 성막의 기구들을 메 는 사람에 불과했지만, 이 직분은 하나님에 의해서 임직이 된 것이었습니다. 게르손 가족은 하나님에 의한 이러한 임직이 얼마나 엄숙한 것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회막 문장을 메거나, 뜰의 휘장이나, 성막이나, 단 사면에 있는 문장과 그 줄을 메거나 무엇을 맡았든지 자기가 행 하는 일을 신성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기에 짐을 메는 자들에게 주어진 첫 명령은 너희 가 정해야 할찌니 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이 귀한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서 자신을 씻었 고 그들의 옷을 빨아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더러워진 우리 손으로 하나님을 섬 길 수가 없습니다. 더러운 마음과 때묻은 손으로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길 수가 있습니 까? 우리의 입술이 죄악으로 더러워졌다면 어떻게 정결하신 하나님을 찬송할 수가 있겠습니 까? 이사야를 보세요. 그가 성소에 나아가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고 제일 먼저 회개한 것이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 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고 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스랍이 화자로 단에서 핀 숯불을 손 에 가지고 그의 입에 대서 정결케 하였습니다.그 다음에야 하나님의 소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먼저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하십시다. 더러워진 우리의 심령을 주님이 흘리신 보혈의 샘에서 씻으십니다. 예수님이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처럼 우리의 더럽혀 진 심령을 씻겨 주기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맡은 일을 소중히 여깁니다. 이것은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경건한 태도를 취해야 되고,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전념해 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맡은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소흘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군은 무엇을 맡았든지 항상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할뿐더러 하나 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교인들에게 편지할 때 삶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 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3:22-23)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무 엇을 맡았든지 그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소중히 여길뿐더러 신실하게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 나 많이, 얼마나 큰 것을 맡았느냐 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니라, 맡은 일이 무엇 이든지, 그 일의 크기가 얼마든지 얼마나 신실하게 일했느냐 하는 데 관심이 큰 것입니다. 주 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다 고 했습니다. 옳 은 말씀입니다. 맡은 일에 충성되이 봉사하십시다.그리고 무슨 일을 맡았든지 항상 명령에 순 종하려는 준비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성막은 언제나 옮길는지 누구도 모릅니다. 하 나님이 명령하시면 새벽이든, 낮이든, 저녁이든 언제든지 옮길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님이 부르실 때 우리에게 맡겨 진 짐을 메고 주님의 지시에 따라 운반해야 할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 님이 하시는 일에 왜요? 라는 말을 하지 맙시다. 우리 주님의 명령에 즉각 순종하는 자세를 가지십시다.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하실 때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왜요? 어 디로요? 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떠났더니 하나님이 저와 함께 하고, 맏음의 조상이 되 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뜻이 계셔서 우리를 무르시고, 택하시고, 각각 짐을 메워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맡겨 주신 이 짐 잘 메고, 무엇을 맡든지 소중히 여기 고,신실하게 봉사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칭찬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교회 봉사자의 4대 자세
민수기 4장 24-32절 / 이한규 목사
1. 효율적으로 봉사하라
본문 24절에 언급된 ‘멜 것’이란 표현을 보면 게르손 자손이 맡아 옮겨야 할 것들은 원래 어깨에 메고 옮겨야 했다. 그것들은 성막의 휘장들, 회막과 그 덮개, 해달의 가죽 덮개, 회막 휘장 문, 뜰의 휘장 등의 품목들이었다(25-26절). 그것들 중 어떤 품목은 사람 어깨로 지고 가기에는 너무 무겁고 불편하고 손상 위험성도 컸기에 효율성을 고려해 ‘멜 것’을 ‘옮길 것’의 뜻으로 사용해서 소가 끄는 수레로 옮기는 것이 허용되었다.
쉽게 말하면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이 맡은 품목들은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고 가야 할 성물보다는 덜 중요한 품목들이었기에 정성스럽게 어깨에 메어 옮기기보다 효율적으로 소가 끄는 수레로 맡은 성막 품목들을 옮기는 것이 허용되었다. 본질적인 문제와 관련된 일은 성경과 전통과 형식을 그대로 따라 하더라도 비본질적인 문제와 관련된 일은 효율적으로 본질적인 내용을 손상하지 않는 채 성경과 전통과 형식을 시대 흐름에 맞춰 해도 된다.
2. 자발적으로 봉사하라
본문 27절에서 “게르손 자손들이 멜 짐을 그들에게 맡길 것이니라.”라는 말씀은 일의 업무는 각각 비교적 세세하게 분담되었지만 강제적으로 하기보다는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는 암시가 담긴 명령이다. 남에게만 짐을 지우지 말고 나는 나의 짐을 자발적으로 지려고 하라. 건강한 공동체는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공동체다. 신실하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자발적이고 순수한 감동을 따라 움직이는 영혼이 많아질 때 교회도 건강해진다.
좋은 것의 수명도 자발성을 기초로 해야 오래 지속된다. 개혁도 자발성을 기초로 해야 복된 성과를 이룰 수 있다. 개혁이 강제성을 띠면 개혁을 빙자한 세력 불리기처럼 된다. 봉사도 자발적으로 해야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된다. 교회에 나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찾아 힘써 조용히 기쁘게 자발적으로 도우라. 억지로 계산적으로 도우면 시다가 되지만 기쁘게 자발적으로 도우면 천사가 된다. 시다 교인이 아닌 천사 교인이 되라.
3. 조직적으로 봉사하라
게르손 자손들의 직무는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이 감독했다(28절). 이다말은 성막을 건축할 때 건축 비용을 계산해서 성막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출 38:21). 게르손 자손의 일을 감독하는 데 게르손 자손이 아닌 고핫 자손인 아론의 아들 이다말을 세운 것은 그가 성막에 대해서도 잘 알고 아론의 아들로서 리더십 확보에도 용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조직적이고 효율적으로 잘 감당하도록 했다.
개인 영성을 중시하는 사람은 조직의 중요성을 간과한다. 그러나 개인의 영성보다 공동체의 영성이 더 중요하다. 한 사람의 영성과 영향력이 대단히 커도 그것들이 조직된 힘으로 분출되지 않으면 그 영성과 영향력의 수명은 짧다. 조직이 개인의 일방적인 희생을 담보로 하지 않고 바른 진리의 바탕 위에 세워지면 조직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개성을 중시하면서도 개인을 묶어 조직을 잘 만들 때 튼튼한 비전 건축이 이뤄진다.
4. 책임적으로 봉사하라
므라리 자손의 할 일과 멜 것은 장막의 널판들, 그 띠들, 그 기둥들, 그 받침들, 뜰 둘레의 기둥들, 그 받침들, 그 말뚝들, 그 줄들, 그 모든 기구들, 그리고 관련 품목들이었고 므라리 자손이 맡아 멜 모든 기구의 품목을 지정하라고 하셨다(31-32절). 품목을 지정하라는 말은 성막의 각 품목을 정확하게 세고 명칭을 붙여 빠짐없이 옮기게 하라는 뜻이다. 그것은 자기가 맡은 일을 경시하지 말고 세심하게 수행하라는 뜻이다.
므라리 자손들이 맡은 품목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할지라도 그들은 자기 직분에 충실해야 했다. 자기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라. 자발적으로 봉사한다고 해서 돈 받고 일하는 것보다 무책임하게 봉사하면 안 된다. 돈을 받고 일하는 것보다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것에서 더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에게 나타나야 할 핵심 덕목은 책임감이다. 구원을 공짜로 얻었다고 공짜의식에 사로잡힌 무책임한 존재가 되면 안 된다.
사명 수행에는 예외가 없다
민수기 4장 21-33절
레위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게르손, 고핫, 므라리가 그들의 이름입니다. 레위 지파는 게르손, 고핫, 므라리 이렇게 세 족속으로 나뉘어 집니다. 각각의 족속은 성막을 이동할 때마다 담당하는 임무가 있었습니다. 고핫 자손은 성소 안에서 사용하는 기구들을 운반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이 성막이 이동할 때 운반한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먼저 게르손 자손이 담당한 것들을 살펴 보겠습니다. 24-26절을 보시겠습니까?
“(민 4:24) 게르손 가족의 할 일과 멜 것은 이러하니 (민 4:25) 곧 그들은 성막의 앙장들과 회막과 그 덮개와 그 위의 해달의 가죽 덮개와 회막 문장을 메이며 (민 4:26) 뜰의 휘장과 및 성막과 단 사면에 있는 뜰의 문장과 그 줄들과 그것에 사용하는 모든 기구를 메이며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맡아 처리할 것이라” 요즘 시중에 나오는 텐트를 보면 천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강한 바람을 막기 위해서 천이 이중으로 있는 텐드도 있습니다. 성막은 총 4개의 덮개로 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천막들은 게르손 자손들이 담당해야 할 몫이었습니다.
자, 그 다음은 므라리 자손이 담당해야 할 것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31-32절 입니다. “(민 4:31) 그들이 직무를 따라 회막에서 할 모든 일 곧 그 멜 것이 이러하니 곧 장막의 널판들과 그 띠들과 그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민 4:32) 뜰 사면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그 말뚝들과 그 줄들과 그 모든 기구들과 무릇 그것에 쓰는 것이라 너희는 그들의 맡아 멜 모든 기구의 명목을 지정하라” 므라리 자손들은 성막의 몸체를 구성하고 있는 널판, 가로대, 기둥, 받침, 말뚝, 끈과 줄을 담당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레위 지파의 모든 자손들이 각각 주어진 역할을 통해 성막을 이동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사실 성막의 크기를 고려해보면 총 2만 명이 넘는 레위 지파의 숫자를 생각해보면 굳이 모든 사람이 다 나서서 성막을 이동시킬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든 레위 지파 족속들이 힘을 합쳐 성막을 옮기고 세울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나라를 세워 가는 일에 소외 되는 이가 없기를 바라십니다. 모든 사람이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교회는 목사, 장로, 권사, 안수집사 이렇게 중직자들만 일한다고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맡겨주신 달란트를 따라 서로를 섬겨갈 때 교회는 아름답게 세워지게 됩니다.
아무리 작은 새끼 발가락이라 할지라도 제 역할을 안 하면 생활에 불편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눈꺼풀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눈꺼풀이 없으면 일할 때 땀이나 먼지가 눈으로 들어가 더 이상 활동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 몸에는 없어도 되는 부분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역시 가장 연약해 보이는 지체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소중한 사람이고, 없어서는 안되는 지체 입니다. 하나님은 성막을 이동하는 일에 고핫 자손만 쓰신 것이 아니라, 게르손 자손 므라리 자손 모두를 부르셨습니다.
어느 성도님이 코너스톤 교회에 처음 와서 “목사님, 이 교회는 일꾼들이 많네요. 제가 굳이 없어도 될 것 같은데요?”라고 말씀하신다면 그것은 틀린 말입니다. 몸에 필요하지 않은 지체가 없듯이, 교회 안에서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누군가 비전을 보는 눈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의 역할을 있다면 누군가는 또 섬기는 손과 발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서로를 이어주는 관절의 역할을 해야 하고, 또 누군가는 찬양하는 입의 역할도 해야 합니다. 코너스톤 교회는 내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필요 없는 지체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받은 달란트가 다릅니다. 모든 사람이 음악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이 미술을 잘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마다 잘 하는 분야가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더욱 필요로 합니다. 제가 강대상에서 성경 말씀 전하는 일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예배 후 친교 시간 요리를 담당하라고 하면 요리에 ‘요’자도 모르는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 보고 교회 벽화 그리라고 하면 미술의 ‘미’자도 모르는 제가 무슨 그림을 그릴 수 있겠어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은사대로 사용받게 됩니다.
교회 안에는 각양각생의 직업과 분야에서 경험과 지혜를 쌓아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이는 장소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다양한 사람들의 섬김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기를 원하고 계세요. 만일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므라리 족속이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보며 “난 왜 말뚝이나 줄 같은 시시한 기구들 맡아야 해? 나도 고핫 자손처럼 지성물 운반하고 싶어. 나 이거 안 해.”하고 토라서면 어떻게 됩니까? 성막이 완성 될 수 없습니다. 므라리 족속이 볼 때 자기가 맡은 것이 다른 족속이 담당한 것에 비해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말뚝 없이 어떻게 성막이 세워지겠어요? 그들이 담당한 기둥 없이 어떻게 회막을 세우겠습니까?
지성물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막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중요합니다. 므라리 족속이 맡은 것도 무엇 하나 소홀히 여겨도 되는 것은 없습니다. 작은 것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일을 감사함으로 수행하면 그것이 교회를 세워갑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에서 바닥 청소를 해도 기쁜 마음으로 합니다. 쓰레기를 덤스터에 버리러 가도 자원하는 마음으로 합니다. 이런 분들의 섬김이 있기에 교회가 아름답게 세워져 갑니다. 인간이 볼 때는 작은 섬김 일 수 있으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작은 섬김은 없습니다. 내가 섬기는 것이 규모가 작아도 마음이 크면 그것은 큰 섬김이 됩니다.
사명 수행에 없어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일에는 귀하고 천한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섬길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