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남 적화전략은 어디까지 와있나?
북한의 대남 적화전략 3단계
제1단계는 한국을 무력으로 남침하기 위한 전쟁준비 단계다. 제2단계는 미국의 개입을 차단하는 단계다. 제3단계는 결정적 시기를 조성하는 단계다. 북한은 1단계와 2단계는 이미 완성단계에 와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고, 지금은 제3단계 결정적 시기에 총력을 기우리고 있다.
북한은 전쟁준비를 위하여 4대 군사노선을 강화하여 왔다. 전 국토의 요새화, 전 인민의 무장화, 군사장비의 현대화, 전군의 간부화 등이다. 모든 시설과 장비는 지하화 되어있고, 200만여 명이라는 예비군 세력이 양성돼 있고, 이들을 지휘할 군의 간부급도 다 훈련되어 있다.
미군의 개입을 차단시키기 위하여 미(美)제국주의 운운하면서 철수를 집요하게 주장하여 왔다. 심지어는 핵과 미사일 개발 등으로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능력을 강화시키고 있다. 전시작전 통제권의 한국군 이양과 한미연합사 해체 등은 미군의 개입을 차단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결정적 시기 조성을 위하여 3대 혁명역량 강화를 추구해 왔다. 즉 북한과 한국에서 그리고 재외교포에 대한 혁명역량을 꾸준히 강화하여 왔다. 한국내의 혁명역량이란 친북좌파세력의 반정부 활동 강화를 말한다. 이 과정도 지난 10여 년간의 좌파정부 하에서 성숙단계에 들어섰다고 북한 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최근의 북한 동향이 심상치 않다.
박세직 향군회장이 말하는 우리의 안보 5대축은 무너지고 있다. 국민의 안보의식은 약화되고 있고, 국가보안법은 있으나 마나하고, 국군의 사기는 떨어지고 있고, 주한미군은 감축되고 있고, 그리고 한미안보동맹 등이 날로 무력화 되고 있다. 우리의 안보 불감증은 도를 넘어 심각한 수준에 와있다.
북한은 최근에 전면 대결태세에 진입하였다고 공언하고 있다. 계속해서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하고 있고, 서해상에서의 군사도발을 포함하여 곧 전쟁이라도 일으킬 것같이 군사적 위협을 가하고 있다. 한국과는 일체의 대화나 협상 등 정치적 단절을 시도하고 있으며, 친북세력으로 하여금 반정부 전복활동을 강화하도록 사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좌파의 난동을 보고만 있다. 좌파 척결은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 6·25를 잊으면 6·25는 다시 온다. 결정적 시기를 차단시킬 수 있는 긴급법안들은 잠을 자고 있다. 한나라당의 무능인가? 무력화인가? 아니면 좌파와 한 통속이가?
결정적 시기는 2012년이다.
2012년까지는 이제 겨우 3년이 남았다. 전시작전 통제권이 이양되는 2012년 4월17일은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가? 2012년 초에는 국회의원 총선이 있고, 12월에는 대통령을 뽑는 대선도 있다. 그리고 미국의 대선도 있다. 이때는 사실상 정치의 공백기가 된다.
2012년은 김일성이 태어 난지 100년이 되는 해다. 그리고 김일성의 생일이 4월15일이니까, 4월17일은 아직도 김일성 생일 축제 기간이다. 이러한 틈을 이용하여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한번 쯤 생각해 봐야 한다. 북한은 무슨 기념일 같은 중대한 시기에 말썽을 일으켜 왔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에 미사일을 발사하였고, 미국의 현충일에 핵실험을 하였다.
더욱이 앞으로 3년이면 북한은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 미사일도 개발할 수 있게 될 것이고, 핵탄두의 소형화도 가능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군다나 한국에서의 반미감정을 감안할 때 미국이 과연 한국전에 개입할 것인가는 매우 심각하게 생각해야할 문제다. 북한은 미군의 개입이 없을 것이라고 오판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상태로 간다면 2012년에 다시 우리 대한민국이 좌파 수중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북한은 이러한 호기를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때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 소멸되는 운명의 날이 될지도 모른다.
북한의 대남적화 단계를 시기별로 구분해 보자
제1단계는 1945∼1961년까지 즉 8·15 광복 직후부터 자유당 정부가 붕괴되고 군사정부가 들어서는 1961년 초반까지다. 8·15 직후의 혼란기를 이용하여 북한은 남조선 노동당을 앞세워 좌파세력에 의한 제주도 폭동사건과 여수·순천 반란사건 등을 일으켰고, 그 후 국가전복 공비활동이 지리산과 오대산 일대에서 전개되었다. 그리고 급기야는 6·25라는 무력남침에 의한 공산화 시도를 하였다.
제2단계는 1962∼1992년까지 즉 3공으로부터 5공과 6공에 이르는 소위 말하는 군사정부 시절이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북한의 경제적 우위가 우리에게 역전되었다. 이때부터 북한은 다시 전쟁준비에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였고, 한국에 민중봉기 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전술을 강화하였다. 1968년 1월 청와대 기습사건과 같은 해 10월 삼척·울진 지역에 공비를 침투시켜 민간인을 무차별 사살함으로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북한은 이러한 일연의 침투공작이 실패하자 다시 위장평화 전술로 바꾸었다. 1971년의 남북적십자 회담과 1972년의 정치적 성격을 띤 7·4공동성명을 발표하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하여 고위급 총리회담과 국회의원 회담, 그리고 경제회담은 물론 군 장성회담까지 하게 되었으나, 그 모두가 다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급기야은 1992년 초에 남북기본합의서까지 체결하고, 한반도 비핵화 선언까지 하게 되었다.
제3단계는 1993∼2007년까지 문민정부와 국민정부 그리고 참여정부에 이르는 15년간의 좌파정부 기간이다. 김영삼 정부를 여기에 포함시킨 것은 그 때부터 우리 사회에 좌파침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한 때 김영삼 시대는 불그스레하였고, 김대중 시대는 벌겋게 되었고, 노무현 시대는 아주 빨갛게 되었다는 말이 돌기도 하였다.
북한은 1993년 3월에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고 본격적인 핵 개발을 선언하였다. 김대중의 햇볕정책과 미국 클린턴의 포용정책으로 2003년에 6자회담이 시작되었으나, 북한은 단 한 번도 합의사항을 이행한 적이 없다. 오히려 막무가내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함으로서 많은 지원을 받았고, 시간을 끌면서 핵개발을 착실하게 진행하여 왔다.
2000년 정상회담에서 김대중은 6·15 공동선언이라는 연방정부안을 수용하였고, 2007년 노무현은 10·4일 공동성명으로서 엄청난 지원 약속어음을 남발하였다. 즉 6·15 공동선언과 10·4 공동성명은 북한에 대한 항복문서였다. 2000년부터 북한에 대한 엄청난 ‘퍼주기’와 친북좌파세력의 ‘뿌리박기’가 본격화 되었다. 그리고 급기야는 전시작전통제권의 이양과 한미연합사의 해체 등을 내용으로 하는 ‘안보 무력화’ 또는 ‘안보 팔아먹기’까지 이루어졌다.
제4단계는 2008부터 이명박 정부와 미국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북한은 2006년 10월 9일에 제1차 핵실험을 하였고, 2009년 5월25일에 제2차 핵실험을 하였다. 1998년에 제1차 노동미사일을 발사하였고, 2009년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하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플루토늄 프로그램보다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개발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전례 없는 강공책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국제적으로 사실상의 핵보유국의 입장을 확인시키고, 한국과 미국에 대한 위협을 가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대남적화 전략의 마지막 단계에 와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대내적으로는 김정일의 건강악화와 후계자 승계와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건강 악화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업적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한편, 후계자인 아들에게 핵보유국이라는 강성대국을 넘겨주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북한은 핵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때문에 핵을 개발한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미국과 평화공존을 할 수만 있다면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미국이 강경한 적대정책을 포기한다는 것은 바로 한반도의 적화를 용인하는 것과 같다. 북한의 핵무기는 미군을 철수 시킬 수 있고, 한반도를 적화할 수 있는 수단인 것이다. 북한은 적화통일의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절대로 핵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에 있어서 핵은 하나의 생존수단이다. 아무리 많은 북한 주민이 굶어 죽는다 하더라고 핵개발은 절대 포기 하지 못한다. 특히 강공책을 강화하는 것은 더 이상 ‘벼랑 끝’ 전술이 안 통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공개적으로 그리고 실력으로 핵보유국가임을 입증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있다. 과연 이러한 새로운 전술이 어느 정도 통할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북한의 핵개발을 포기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계속 협상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적절한 대가를 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것은 일종의 망상이다. 국제적인 제재를 통하여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생각도 망상이다. 중국이 일본의 핵무장을 염려하여 북한으로 하여금 핵개발을 포기시킬 수 있다는 생각도 망상이다.
북한에서 전쟁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최근에는 김정일을 반대하는 세력도 전쟁을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만일 전쟁에서 이기면 좋고, 저도 좋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면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김정일에 대한 충성차원에서 전쟁을 하자는데 반대세력으로 몰아 처형당할 염려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정일은 이러한 분위기에 대하여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계속 발사해도 국제적인 반응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 강한 어떤 조치가 필요한데 새로운 카드는 별로 없다. 그렇다면 결국 전쟁을 도발하는 방법밖에는 없게 된다. 그렇다고 아무 소득도 없이 이대로 제풀에 주저앉을 수도 없는 입장이 됐다. 지금 김정일 정권은 종말을 향하여 질주하고 있고, 필요하다면 백령도를 점령하는 극한적인 도발행위를 강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태도는 불변할 것인가?
만약에 북한이 ICBM을 개발할 경우 미국의 태도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 미국이 돌변하여 한국을 포기하려고 할까? 아니면 군사적 보복조치를 감행하려고 할까? 미국이 더 이상 강공책을 쓰지 않을 경우 이것이 한국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닐까? 지금 우리 내부에는 반미주의자와 반정부 세력이 대정부 전복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이 이대로 간다면 좌경화될 가능성이 많은데, 구태여 한국을 지원할 필요를 느낄 수 있을까?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살길을 스스로가 찾아야 한다. 아무리 미국이 핵우산 보장을 문서화 한다 하더라도, 이를 지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는 북한의 핵 인질의 신세가 되어있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우리도 하루 속히 핵 주권을 찾아야 한다.
북한이 생각하는 적화단계는 최종 순간에 와있다. 이명박 정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안보가 무장해제 된 우리의 딱한 사정을 북한이 동정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착각은 자유다. 큰 코 다치기 전에 하루 속히 정신 차려야 한다. 북한의 전략을 분쇄하는 길은 오직 국내 좌파를 척결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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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600명의 자살 특공대가 있다.
[인터뷰] 전 인민군 특수부대 출신 귀순용사 이덕남씨
|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가 명령만 내리신다면 폭탄을 안고 적진에 투하하겠다는 맹세문을 매일같이 암송해온 12만 명의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은 유사시 남한과 미국 그리고 일본을 겨냥해 대대적인 테러를 감행할 것이다.”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는 최근 강연에서 “북한 최대의 전략무기는 핵무기가 아니라 특수부대”라며 “핵무기 제거보다는 김정일 제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전 비서는 특히 “북한은 이들을 남한에 태워보낼 프로펠러 비행기를 많이 갖고 있으며, 총참모부에는 남한의 어느 기관을 어느 부대가 점령할 지 명시돼있는 대형 지도도 걸려있다”고 증언했다. 그는 또 “이들 특수부대원들이 일거에 남한에 침투, 권총 한 자루만 들고 요소요소를 점령한 뒤 연방제를 선포할 것”이라며 “이것이 북한의 기본전략”이라고 말했다.
북한군 특수부대, ‘자폭정신’을 전쟁관념으로 무장
황 전 비서가 이처럼 북한군 특수부대의 실상을 자세히 언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가 해방이후 남한으로 망명한 북한 최고위급 인사라는 점 이외에 그를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보필해온 귀순용사 이덕남(42·전 인민군 상사)씨가 있기 때문이다.
인민군 4군단 직속 70정찰대대 작전조원 출신으로 지난 89년 9월 7일 해상 훈련 도중 고속간첩선을 타고 귀순한 이씨는 27일 서울 모처에서 가진 <프리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여러 복잡한 상황으로 인해 함구해왔단 북한군 특수부대의 실체에 대해 털어놨다.
이 씨는 먼저 북한군 특수부대의 훈련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북한군의 경우 정치사상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김 부자에 대한 충성심 고양과 함께 혁명역사 및 혁명전통 고양 등의 교육을 비롯, 총폭탄 정신·3대혁명 붉은기 쟁취와 같은 사상 교육을 통해 특수전 요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폭정신’을 전쟁관념으로 무장시킨다고 밝혔다.
이 씨는 특히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은 기본적으로 자동차는 물론 비행기, 탱크, 열차도 조종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는다”면서 “각종 운전기재에 대한 조종훈련은 북한군에서 취급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며, 미국·일본 지프·한국군 군용트럭·승용차·탱크·장갑차·각종 항공기·모든 함선 및 함정 등 동력으로 움직이는 모든 것이 포함된다”고 지적했다.
북한, 러시아 브로커 통해 ‘국군 군복’ 입수
이처럼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혹독한 훈련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군 특수부의 실상은 지난 96년 강릉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체포된 이광수씨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그가 밝힌 북한군 특수부대의 훈련실태는 개인의 경우 3~15명을 상대로 싸워 이길 수 있는 훈련을 하루 3시간 이상을 실시하며, 1일 30분 이상 단검 투척훈련, 25kg의 군장을 메고 하룻밤에 40km, 주야로 120km를 주파할 수 있는 강행군 등의 훈련을 받는다는 것.
이 씨는 또 북한의 평안북도 양덕군에는 청와대, 국방부 청사, 각 군 사령부와 똑같은 모양의 건물이 들어선 특수부대 종합훈련장(합법훈련소)이 존재하며, 이곳에서 북한군 특수부대 요원들은 수개월에 걸쳐 남한 내 주요 국가 시설물에 대한 파괴 훈련을 받는다고 말했다.
“양덕 훈련소 교관들은 대부분이 남한에서 북한으로 넘어간 국군 장교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꺼번에 1대 연대가 6개월간 훈련을 받는다. 모든 일과는 국군의 그것과 동일하다. 속옷의 경우도 BYC를 입는다. 내의부터 외의까지 모든 것이 국군 것과 동일하다.”
이 씨는 이어 북한 정권이 어떤 경로를 통해 국군의 군복 원단을 획득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과거 남한에 있는 고첩이 부산에 있는 러시아 상인으로 하여금 국군이 사용하는 원단을 러시아로 가져가게 만든 뒤 이를 다시 북한이 역수입했다”면서 “현재 북한은 국군이 사용하는 거의 대부분의 개인장구류를 자체생산 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사시 땅굴 이용해 5~6만 명의 '저격여단' 휴전선 돌파
그러면서 이 씨는 “국군 복장으로 위장한 북한군 특수부대 요원들은 유사시 육·해·공 삼면을 경유해 전투지역 후방을 침투 한미연합전력의 방어 작전을 교란하고 전술표적을 선별적으로 타격하는 임무를 수행한다”면서 이들의 주요 공격목표는 대개 교량이나 터널, 댐, (핵) 발전소 등 주요 산업시설의 점거 및 파괴라고 지적했다.
“통신·전기·가스시설을 포함해 군수공장·항만·공항 등이 유사시 특수부대의 1차 타격 목표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땅굴을 통해 남하 할 것이다. 땅굴을 이용하면 5~6만 명의 저격여단이 하루 만에 휴전선을 돌파해 남한에 입성할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서울에 대한 타격을 가하는데 3개 저격여단(1개 저격여단 인원은 3만 명)이 이 임무를 맡고 있다.”
현재 북한의 특수부대는 ▲총참모부 정찰국 ▲경보교도 지도국 소속 특수부대 ▲해군소속 해상저격여단 ▲지상군 사단소속 경보대·정찰대·민경대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이 씨가 속했던 정찰국의 경우 요인납치, 요인암살, 기밀문서 탈취, 고도의 전략적 모략공작, 핵심전략 시설물 폭파, 간첩임무, 핵심전략 시설 정찰 등을 수행하는 부대로 지난 96년 강릉 무장공비 사건으로 주목을 받았던 기관이다.
정찰국은 현재 5개 정찰대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24정찰대대는 평양에 주둔해 긴급사태 대비 및 외국사절에 대한 집체격술시범 등의 예비임무를 담당하고 있다. 69정찰대대는 해외침투 전담대대로서 특히 일본 오키나와에 빈번히 침투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함께 71,72, 73정찰대대의 경우 전방군단 예하 정찰대대와 훈련방식이 유사하고 공중강습훈련을 많이 하며 각 대대는 500~60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북한, 1980년 가장 많은 간첩·특수부대 요원 남파시켜
정찰대대는 전연(휴전선 근방 배치)군단에 4개가 더 배치되어 있다. 이들 대대의 핵심인 강습소 소속 제1~2작전조는 침투준비조를 의미하며, 평시에는 대남 침투 정찰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부대는 현재 강원도 평강군에 2개 대대, 개성과 황북 시천에 각각 1개 대대 위치하고 있으며 각 대대의 인원은 정찰국 직속 5개 대대와 동일하다.
이 씨는 이들 부대 가운데 특히 ‘69정찰대대’를 유사시 가장 위협적인 부대로 꼽았다. 그는 “600여명의 인원으로 구성된 '69정찰대대'는 전원이 영어와 일어에 능통한 장교로 구성된 ‘자살특공대’”라며 “이들은 유사시 (핵)배낭을 메고 미국의 괌(Guam)기지를 포함해 일본의 오키나와에 대한 ‘자살테러’를 가하는 훈련을 받아왔다”고 폭로했다.
한편, 80년 광주사태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가 투입됐는지의 여부에 대해 묻자 이 씨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만일 북한군 특수부대가 남파돼 광주에 투입됐다면 2군단 75정찰대 소속의 요원들이 갔을 것”이라며 “북한군 전투기록장을 보면 80년도에 가장 많은 48명의 ‘공화국 영웅’이 배출됐다. 이들은 모두 남파 후 임무를 완수하고 살아 돌아온 요원들이다. 실제로 내가 속했던 4군단 70정찰대대 작전집체조 1조가 같은 시기 남파됐다”고 밝혔다.
한 때 북한군 최정예 특수요원으로 ‘북한 인민군 특수부대원 평가훈련’에서 종합 2위를 차지하기도 했던 이덕남씨. 그는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의 대부분은 남한의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국제정세’에 대한 감각을 익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북한 정권이 이들에 대해 최고의 예우를 해주기 때문이라는 것.
“남한, 북한군 특수부대 막을 ‘정신적 준비’ 전혀 없어”
“신병훈련을 마치고 군인선서를 끝낸 요원들이 받는 월급은 일반 보병부대 고참(중·상사) 병사의 11배에 해당하며, 식량과 피복의 경우 2~3배의 차이가 난다. (90년 9월 기준) 이와 함께 복무기간 중 5년제 대학 졸업증이 주어지며, 99.9% 조선로동당에 입당한다. 이들에게는 제대와 함께 예비 군관(장교) 계급이 주어져 도·시·군당위원회의 행정 간부로 활동한다.”
이 씨는 인터뷰 말미에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이 북한을 위협적인 국가라고 생각지 않는 것이 큰 문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북한의 한반도 적화통일 전략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북한은 지금도 간첩을 남파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전쟁 초반 서울로 침투해 오는 북한군 특수부대를 막기 위해서는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 그러나 남한 사람들은 이들을 막을 정신적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미국의 전시증원 전력이 남한에 도착하기도 전에 한반도가 불바다가 될 수도 있다. 남한 정부는 햇볕정책을 포기하고 하루라도 빨리 북한을 국제사회로 편입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해야 한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기사출처: 프리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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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0년 발생한 ‘5.18 광주사태’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가 서해안을 통해 광주에 잠입, ‘내부교란작전’을 수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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