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항 금계마을에서
방학이면 교육대학 동기 여덟 명이 1박 2일로 모인다. 지난여름은 경주 지음산방에서 모였다. 우린 그때 겨울 모임을 창원 근교에서 갖기로 했다. 이후 한 동기는 아내가 와병 중이라 병간에 전념하고자 팔월 하순 교장 직을 내려놓고 명예 퇴직했다. 윤번제 총무를 이번까지 내가 맡고 이후 다음 순서로 넘기게 된다. 총무는 숙소를 정하고 식당을 주선하고 회무 살림을 보는 정도다.
총각부터니 오래도록 만나왔다. 자녀들이 다 컸고 일부는 결혼까지 했다. 이제 부부만 단출하게 만나는데 건강 걱정을 할 나이가 되었다. 올겨울 모이는 장소는 함안 여항산 아래 금계마을로 정했다. 봉성저수지 안쪽 행정 관서에서 펜션처럼 운영하는 숙소였다. 여항산 일대는 내가 일 년 여러 차례 누빈다. 봄날엔 산나물을 뜯어오고 여름과 가을엔 야생화 탐방을 다녀오는 곳이다.
점심나절 시내 초등 교장으로 재직하는 동기 내외와 함께 모임 장소로 향했다. 시내를 빠져나가 서마산에서 국도를 따라 마산대학 앞에서 신당고개를 넘어 함안 산인으로 갔다. 국도를 벗어나 시골길을 달려 숙소로 정한 여항산 문화센터인 금계마을에 닿았다. 거기는 여항면 주서리인데 조선 영조 때 선무량을 지낸 강유환이 쌍계천이 비단 같아 금계동(錦溪洞)이라 부른데 유래했다.
울산에서 세 가족, 함양과 통영에서 한 가족씩 오니 일곱 가족이 모였다. 대구 한 동기는 조금 늦을 거라 했다. 숙소로 정한 문화센터는 방바닥을 데워놓았고 깨끗하고 전망이 좋았다. 여장을 풀어 놓고 봉성저수지 둘레길 산책을 나섰다. 물이 맑은 호수 주변에 소나무 숲을 끼고 돌아 경관이 무척 좋았다. 별천에서 흘러온 일급수에다 미세먼지가 적은 산중이라 공기가 쾌적했다.
산책로가 잘 다듬어진 봉성저수 둘레길을 걷고 난 뒤 가야읍으로 나가 저녁을 들었다. 대구에서 뒤늦게 합류한 동기와 함께 오리불고기와 탕으로 차린 만찬이었다. 운전에 자유로운 친구들은 반주도 넉넉히 곁들였다. 식후 숙소로 복귀해 간단한 회무 보고에 이어 차기 모임 일자와 장소를 정했다. 이어 준비한 케이크로 지난여름 퇴직한 울산 한 동기의 퇴직을 축하 격려해주었다.
회장은 울산 동해안에서 겨울에 잡히는 미주구리로 회를 떠왔다. 물가자미라고도 불리는데 회를 썰어 냉동시켜 먹을 수 있는 활어였다. 미나리를 자르고 배를 썰어 초장으로 버무리니 훌륭한 회 무침이 되었다. 회원이 많고 식탁이 준비되지 않아 방바닥에 신문지를 펴고 빙글 둘러앉았다. 취향 따라 캔 맥주를 들기도 하고 맑은 술을 비우기도 했는데 예전보다 주량이 많이 줄었다.
여성들은 건너 방으로 가고 학교 관리와 건강에 대한 얘기들이 밤 이슥하도록 이어졌다. 연금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질 때 나는 먼저 잠에 들었다. 새벽녘 잠을 깨어 바깥 산책을 나서보려다 마음을 접었다, 거기 여항산 둘레길은 내가 손금 들여다보듯 훤하고 아침나절도 걷기 일정이 잡혀 있었다. 여장을 정리해 아침 식사 장소로 옮겨 동태탕으로 속을 풀고 함안박물관으로 이동했다.
박물관 관계자의 친절한 안내로 아라가야의 유적과 유물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 굽다리접시는 화염형 토기를 대표했다. 성산산성에선 죽간이 출토되고 고려시대 연꽃 씨앗이 발굴되어 그 씨앗을 싹을 틔워 홍련을 피워냈다. 문화해설사는 함안도 경주처럼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고 했다. 박물관 견학 후 말이산고분군으로 올라 아라가야 유적을 둘러봤다.
고분과 인접 동네에 한 회원의 생가가 있어 더 의미가 있는 발걸음이었다. 이어 남은 여정은 입곡군립공원 산책이 기다렸다. 봄과 가을엔 야생화 탐방이 좋고 가을엔 단풍이 아름다운 데다. 산책로에는 문해교육을 받은 지역 할머니들의 시화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산책을 끝내고 산인 들판을 지난 식당에서 정갈한 점심밥상을 받았다. 손을 잡고 오는 여름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20.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