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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 2: 9. 보아스의 지시 ( 하 ) - 2: 10. 어찌하여 내게 은헤를
3]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의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물을 얻기가 매우 어렵다. 그 지방에서는 우물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발전되었다. 따라서 들로 일을 하러 갈 때에는 성읍 우물에서 하루 종일 마실 물을 길어가야 했다.
그런데 들에 일을 하러 나가는 룻의 입장에서 볼 때 하루 종일 마실 물을 준비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소년들이 성읍까지 가서 애써 길어온 물을 마신다는 것은 이삭 줍는 자의 처지로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던 보아스는 룻에게 자기 소년들이 힘들게 길어 온 물을 마실 수 있는 특권을 주었다. 혹자는 소년들이 물을 길어왔던 우물을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쟁 중 마시기를 원했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삼하 23: 14-15)로 본다(A. C. Hervey, Dean Stanley)
(1) 목이 마르거든
뜨거운 태양 아래서 밭일을 하는 것은 고역 중의 하나다. 따라서 일꾼들은 타는 목을 축이기 위해 물을 예비한다. 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 요 4: 13-14 –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우리도 사마리아 여인처럼'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라고 간구하여야 한다.
* 사 55: 1 –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 마 5: 6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 계 22: 17 -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 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구원은 은혜로 주셨다. 그러므로 물로 나와야 한다. 값 주고 사서 먹어야 한다. 그리고 의에 주려야 배부름을 얻을 수 있다. 성령과 신부는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와 그 가운데 거하시는 성령을 가리킨다.
처음에 언급된 ‘오라’는 말은, 많은 주석가들이 이해하는 대로, 앞뒤의 문맥으로 볼 때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7, 12절)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에 대한 대답으로 이해된다.
즉 성령과 신부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에 화답한 것이다. 또한 주의 재림의 약속이나 그에 대한 화답의 말을 듣는 자들도 재림하실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오소서”라고 화답의 말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는 자들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와 그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이다. 이것이 구원이다. 요한복음 6: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초청 받은 자 -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 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① 성령과 신부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된 성도를 의미한다.
* 계 19: 7 -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성령과 신부'는 한 목소리로 초청을 하고 있다. 여기서 '성령'은 선지자들을 통해 계시의 말씀을 선포하시는 분이시며
* 계 19: 10 -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
'신부'는 어린양의 아내인 교회를 가리킨다. 성령은 교회에게 예수에 대해 증언할 수 있도록 영감을 허락하실 뿐만 아니라 설교나 전도의 과정 속에서 죄와 의, 그리고 심판에 대해 사람들의 양심에 직접적으로 역사하시며 증언하신다.
* 요 16: 8-11 –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그러기에 성령과 교회의 증거는 한 가지이며, 둘이 연합하여 오직 예수에 대해 세상에 선포하며 증거하게 된다. (Beasley-Murray). 성령과 교회가 연합하여 행하는 초청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때까지 지속된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요
* 요 14: 16-17 –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 요 16: 13 -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다른 보혜사(保惠師)이니
* 요 14: 26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 요 16: 8-11 –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신부가 가지고 있는 진리가 성령이다. 그러므로 성령과 신부는 하나요. 그들의 증거는 한 가지이며 그 내용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啓示)하여 주시는 것을 말한다.
② 오라. 하시는 도다.
은혜의 초청이다. 본문에서는 네 번의 초청이 나타난다.
이에 대해서 혹자는 앞의 두 가지 초청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뒤의 두 가지 초청은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에의 초청을 가리킨다고 주장하거나 혹은 본문의 초청 전체를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열망으로 해석한다. (Johnson, Mounce).
그러나 이 주장은 문맥상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본문에 나타난 네 번의 초청 중에서 뒤에 나타난 두 가지 초청에 비추어 전반부의 두 가지 초청을 해석하여 네 가지 초청 전체가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에로의 초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Ladd, Morris, Beasley-Murray).
여기서 본문에 나타난 세 번의 '오라'는 현재 시제로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더 이상 회개할 수 없을 때가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초청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속적인 초청의 말씀을 듣고 갈급하여 생명수를 마시기를 원하는 자들은 무료로 생명수를 공급받아 영생을 소유하게 된다.
* 계 21: 6 -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 계 22: 1 -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 사 55: 1 –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 요 4: 14 -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 요 7: 37-38 –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③ 성령과 신부가 오라 하신다. (계 22: 17)
ⓐ 성령으로 말하는 자가 돼라.
ⓑ 신부다운 행실을 가지는 자가 돼라.
ⓒ 귀가 있어 성령이 하신 말씀을 바로 듣는 자.
④ 초청받은 자
ⓐ 듣는 자:
ⓑ 목마른 자:
ⓒ 원하는 자:
⑤ 값없이 생명수를 받아라.
이상과 같은 자들이 값없이 생명수를 받게 된다.
* 계 22: 1-2 – 1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2) 그릇에 가서
물은 아무데나 있는 것이 아니다. 낮은 곳에 있다. 높은 곳은 하늘에서 내리는 물을 먹는다. 낮은 곳은 흘러 내려오는 물과 고인 물을 먹게 된다. 즉 혼합된 물이다. 이를 영적으로 표현하면 혼합주의요, 다원주의 사상이다.
그러나 바닷물은 마실 수 없다. 깊은 곳에 있는 물이 생수가 된다. 이를 길어다가 보관할 도구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 도구를 '그릇'이라고 한다. 사람이 그릇이요 성도와 가정과 교회가 그릇이다. 성경말씀이, 천국의 그릇이다.
* 롬 9: 24 -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 신 28: 5, 17 – 5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17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 렘 51: 34 –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나를 먹으며, 나를 멸하며, 나를 빈 그릇이 되게 하며, 큰 뱀같이 나를 삼키며 나의 좋은 음식으로 그 배를 채우고 나를 쫓아내었으니
* 호 8: 8 - 이스라엘은 이미 삼켜졌은즉 이제 여러 나라 가운데에 있는 것이 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 같도다.
* 행 9: 15 -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 마 13: 48 -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3) 소년들의 길어온 것을 마실지니라.
보아스의 일꾼들인 소년들이 길어온 물을 마시라고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룻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하여 자신이 공들이지 않은 물, 그릇에 담겨진 물을 마셔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구원을 은혜라고 말한다.
현대인들은 초대 교회처럼 사도들이나 성도들의 헌신과 순교에 의한 신앙의 전승을 받아 믿음의 생활을 지속한다. 그들이 길어와 보관한 것을 오늘날의 성도들이 마시고 있다.
소년들은 누구인가? 오늘날의 교회를 섬기는 주의 종들이다. 주의 종들이 길어온 물을 마시고 영혼의 갈증을 이겨내고 있다.
과학의 발달로 온갖 미스메디아를 통하여 생수와 같은 영의 말씀들을 섭취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많은 영혼들은 목말라하고 있다.
* 암 8: 11 -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룻 2: 10. 어찌하여 내게 은헤를 -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 룻이 땅에 엎드려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어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
룻은 땅에 엎드려 그에게 절하며 그의 호의에 대해 감사하였다.
그는 자신이 이방인임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겸손하고 예절이 있었다.
1]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전신을 땅에 엎드려 절하는 행동은 원래 하나님이나 혹은 왕 앞에서 취하던 자세였다.
* 수 7: 6 -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 삿 13: 20 -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 올라간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그것을 보고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
* 삼하 14: 4, 22 – 4 드고아 여인이 왕께 아뢸 때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르되, 왕이여 도우소서. 하니. 22 요압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왕을 위하여 복을 빌고, 요압이 이르되, 내 주 왕이여. 종의 구함을 왕이 허락하시니 종이 왕 앞에서 은혜 입은 줄을 오늘 아나이다. 하고
여기서 룻은 외모만을 보고 판단하지 않는 보아스의 사려 깊은 인격에 대해 심심한 존경의 뜻을 표함과 아울러 이방인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자각하여 깊은 겸손을 표했던 것이다.
룻은 보아스가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을 돌보아주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속을 깨닫게 되었다.
* 롬 3: 24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구속받은 성도들의 대표인 24장로들이 엎드려 경배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 계 4: 10 -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2]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어 늘
전통적으로 히브리인들은 이방인들을 천하게 여겼다. 이 같은 관습은 율법의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지시켰던 데서 연유되었다.
* 신 7: 1-4 –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3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4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그러나 본질적으로 율법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 간의 결혼을 금지시킨 것은 종족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함이 아니라, 종교적인 순수성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즉 이방인과의 결혼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기 때문에(왕상 11: 1-2) 금지된 것이다.
그런데 히브리인들은 이 정신을 오해하여 나중에는 자기 동족인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한 후 앗수르인과 혼혈되자 그들(사마리아 사람들)과도 상종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튼 여기서 룻도 아마 이러한 점을 의식하고서, 자신이 히브리인들이 천하게 여기는 이방 여인이라는 사실을 말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3]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
보아스의 보살핌을 룻은 헤아리기 어려웠다. 자기가 보아스의 관심을 살만한 조건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아스에 견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보아스의 충고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다.
* 엡 3: 14-21 –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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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자기를 아는 자는 남을 원망하지 않고 천명을 아는 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시들은 꽃은 또 피지만 한번 꺽인 꽃은 다시 피지 못합니다.
병 없는 것이 제일가는 이익이요 만족할 줄 아는 것이 제일 가는 부자입니다.
오늘도 몸도 마음도 따뜻한 기분 좋은날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