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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포호수 원문보기 글쓴이: 희망으로
<함께 걸은 천로역정 - 에스겔>
‘쿵!’
큰 바위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딱 그랬다. 태어나서 생을 마치는 날까지 열심히 하늘로 가고 있는 중에 길 한가운데를 막아버렸다. 청천벽력을 쏟아놓는 의사. 미운털이 박힌 사람에게만 오는 저주일까? 아니다. 그저 랜덤, 아무 이유가 없다. 세상의 지독한 불행들은 종종 그랬다.
“의사선생님, ...그러니까, 아내가 많이 심한 병이라는 거지요?”
“예! 솔직히 말씀드려서 여기서는 수술을 할 수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우리나라 최고의 큰 종합병원 다섯 곳이 아니면 해내기 힘들 겁니다.”
눈은 컴퓨터 화면이 보여주는 MRI 사진을 보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그저 하얗게 채워져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신경과 의사선생의 말이 아득히 먼 계곡 건너편 공중에서 둥둥 떠다녔다. 멀어졌다가 가까웠다 하면서.
“예... 알았습니다.”
“꼭 큰 종합병원으로 가셔야 합니다. 그것도 빨리요.”
목도 칸들이 나누어져 있고 그 칸마다 번호가 붙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의사선생의 설명에 따르면 아내 목의 3,4,5번 칸에 심한 고장이 나서 전기가 나가버린 방처럼 신경이 죽었단다. ‘척수종양으로 보임’ 이라는 소견서 내용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무릎이 꺾여 자꾸 앉고 싶어졌다. 곁에서 같이 따라와 준 아들놈이 아니었다면 체면이고 뭐고 다 치우고 그냥 바닥에라도 앉아 좀 쉬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려졌다.
‘왜 하필 우리 가정에 왜 이런 시련을 주는 걸까?, 내가 뭔 죄를 그리 지었다고?’
민망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런 비슷한 상황에서 주인공들이 그 말을 할 때 나는 픽 웃었다. 너무 상투적이고 저 말밖에 못하나 우습게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지경이 되니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외운 듯 그 말이 저절로 나오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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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일이 떠올랐다.
“저기요. 저 잠깐만 봐요.”
내 정신인지 남의 정신인지 모르게 하루치를 서둘러 일을 해치우고 아내의 입원실로 달려와서 땀에 절은 채로 서성이는 내게 하얀 까운을 입은 여자 의사가 말했다. 잠시도 참지 못하고 연신 토하는 아내에게 티슈 한 장을 넣은 종이컵을 건네주고 복도로 나갔다.
“무슨 일인데요?”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좀 말씀 드리기가... 이따가 신경과장님실로 좀 오세요. 보호자 1명을 더 동반해서 오셔야 합니다. 규칙이 그래요.”
그 말을 들으면서 내가 속으로 픽 웃었던가?
‘보호자를 위한 보호자? 뭐 그렇게까지... 되게 겁주네.’
“뭐래요?”
“응, 위에 염증이 좀 심하다네. 뭐 치료하고 그러면 된다니까...”
돌아온 병실에서 기다리던 아내에게 거짓말이 당연한 듯 나왔다. 미안했다. 진실을 말할 자신이 없었다.
방의 한구석에 켜진 TV 화면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뭐가 신나는지 깔깔 호호 그러고 있다. 세상은 동시상영 극장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쪽에서는 코미디영화가 나오고 다른 한쪽에서는 슬픈 멜로가 상영되는.
“당신도 속상하지?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미우실까? 하필 이 좋은 날에 병원에 있게 하다니.”
“내가 미안하지 뭐, 나 때문에...”
하필 이 날이 결혼20주년 기념일. 며칠 전만 해도 어떻게 아내를 기쁘게 해주고 무슨 선물을 살까? 고민을 했다. 그런데 응급실을 거쳐 입원 중이다. 참 별난 기념일이 되었다.
“처음 당신이 통증이 시작되어 괴롭던 날도 보물 같은 막내딸의 생일날 아침이었지? 참 해도 해도 너무하시지?”
“자꾸 그렇게 생각하면 더 속상해져. 그냥 힘든 날에 기운 내라고 좋은 날을 미리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해요!”
“당신은 참 이 지경에도 천사 같은 소리하고 있네. 밉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아내 말이 맞았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었다. 그 악몽이 덮치는 날마다 찬란한 기쁨의 기념일을 신이 미리 주었다고. 고마워하기로.
그런데... 그렇게 생각해야지 하는데도 불안이 만만히 물러나지 않는다. 사실 돌아보면 그랬다. 하늘로 걸어가는 인생은 늘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거나 동시에 존재했었다는. 한 번 내려가서 바닥에 쳐 박히면 다시 한 번은 올라가는 시소 같이.
“그때 기억나? 당신을 처음 만나기로 했다가 바람 맞은 4월1일, 만우절 날.”
“그럼, 기억하지. 내가 그걸 어떻게 잊겠어.”
“그날 내가 도망갔어야 했어. 그럼 우린 남남이 되었을 거고 지금 이 날은 없을지도 모르는데...”
“......”
참 치사하고 모진 말을 했다. 얼마나 내 마음이 쓰리고 고단하면 추억으로 남은 아름다운 기억마저 원망으로 말할까? 그러니 하늘나라로 길 걸어가는 중에 사랑하는 이를 만난 그 기쁜 날에 대한 회상조차 뒤틀려지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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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3,4,5번 위치가 워낙 척수신경이 다발로 지나는 세밀한 자리라 한 번에 수술이 불가능합니다. 잘못 건드리면 전신마비가 되기 때문에, 그래서 한쪽을 잘라 일부를 제거하고 아물면 또 옆으로 한 번 더, 아물면 다시 다른 쪽으로 한 번 더. 아마 그렇게 3-4번에 걸쳐서 해야 할 겁니다. 목 종양수술이라는 게 워낙 예민하고 위험해서...”
누가 녹음을 해서 머릿속에 강제로 집어넣은 걸까? 멍하니 앉아 있는 동안 의사선생이 한 말이 계속 자동으로 반복재생이 되고 있었다.
아내가 아프면서 엉망이 되어가는 지난 넉 달, 그럼에도 잘 버티는 것처럼 남에게 보여야 해서 더 외로웠던 걸까?
“제기랄, 좀 살만 하면 궂은 일이 닥치고...”
다시 병실을 나와서 바라보는 하늘은 더 이상 고운 하늘이 아니었다. 애쓰고 열심히 살아서 도착해야지 하던 천국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그곳으로 가는 길조차 보일 리 없다.
- ‘누군가 인생은 소풍놀이 하다가 하늘로 돌아가는 거라고 했다. 하지만 이건 소풍이 아니고 유배다. 괴롭고 울면서 떠다니는 방랑의 유배...’
화단에 앉아 탄식을 하는 사이 노을이 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사람이 앉은 자리에서 이렇게 오래 있을 수도 있구나.’ 놀랐다. 한기가 몰려오고 몸이 으스스해졌다. 배가 고픈 건지 추운 건지 조금 애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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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 병원 지하층이 장례식장 이었지? 거기 가야겠다. 어쩌면 한바탕 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누구신지... 물으면 뭐라고 하지? 에이, 여기가 아닌가? 그러지 뭐,’
지하로 계단을 내려가서 닫힌 철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썰렁하고 조용하다. 잔치 집만큼은 아니지만 상가 집도 좀 소란한 편인데도.
- ‘어? 왜 이렇게 조용하지? 사람이 안 죽는 날도 다 있나?’
3곳의 장례식장 방이 있는 지하층에 두 곳은 아예 비었고 한 곳에는 딱 한사람만 있었다. 영정사진은 세워져있는데 문상객도 가족도 안 보이고 남정네 한 사람만 앉아 있다.
“형씨, 이리 오세요. 커피라도 한 잔 하고 가시지요!”
멋쩍고 눈치 보여서 엉거주춤하는 나를 본 그 사내가 불렀다. 춥고 으스스하던 참에 고맙게도.
“조용하네요. 사람들이 없어서 그런지...”
“예,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올 사람도 없습니다.”
“그럼 염치불구하고...”
없는 것은 조문객만이 아니었다. 음식도 없었다. 흔한 소주나 안주 나부랭이도. 내놓아준다면 거절하지 않고 못 이기는 척 마시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커피만 한 잔을 내놓는다.
“어쩌다가?...”
“아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순식간에, 그야말로 이별의 시간도 가질 틈이 없이...”
“안되었네요. 많이 슬프시겠네요.”
“어찌 말로 다하겠습니까. 서로 소중하고 다정했던 사이였으니...”
- ‘아, 이 남자도 나처럼 아프겠구나.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으니.’
내 마음속에 동정이 생겼고 한 편이라는 동지감 같은 그런 느낌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걸 반갑다고 내색을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래도 형제나 친척도 안계신가요? 너무 조용해서....”
“그게 더 마음이 아픕니다. 왜 없겠어요. 하지만 아무도 오지 말라고 했지요.”
“예? 어째서 그런...”
그렇게 말을 하다가 입을 다물어버렸다. 나도 지난 몇 달을 여기저기 병원을 돌다가 형제나 친척에게 입을 다물었던 기억 때문에. 처음에는 쉬웠던 그 말이 계속 옮기는 병원마다 말하기가 그랬다. 마치 와달라는 말 같고 문병비 부담을 주는 것도 같아서.
“저도 공감이 가네요. 저도 아내가 많이 오래 아파서...”
“하늘이 원망스럽지요?”
“예, 원망스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저도 그랬으니 조금은 이해합니다.”
뭐 좋다. 나야 남의 마음 많이 울렸고 상처를 주었던 거 인정하니 벌 받을 수도 있다고 치고, 하지만 아내는 정말 착한 여자였다. 아이들 잘 키우느라 자기 호사는 멀리하고 새벽부터 종종거리며 가족들 위해 늘 빌면서 기도하는 여자. 그런데 왜 몹쓸 병을 주지? 그것도 사랑과 공평의 하나님이라는 분이? 그래서 원망이 생겼다.
“아니, 내가 미우면 차라리 나를 혼내지, 왜 나를 만나 고생만 지지리 하는 불쌍한 아내가 그 괴로움을 당해야 하냐고요. 애들은 또 고아처럼 팽개쳐 슬프게 만들고...”
“그러게요.”
“형씨도 하나님을 믿으세요?”
“그럼요. 그래서 비통하지만 견딜 수 있습니다.”
“에이, 그런 말 마슈! 저도 세상 어떤 성공의 길보다 신앙의 길이 가장 소중하다 결심하고 그렇게 살려고 지금까지 노력했지요. 그런데 지금 내 꼴이 이게 뭐냐구요.”
“화나실 만도 하겠네요. 사실 저도 떠나간 아내가 제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었지요. 서로 사랑만 하고 살기도 바빴고, 그런데 졸지에 데려가셨으니 아직도 문득 그리워서 울적해지기도 해요.”
같은 비참한 심정의 동지를 만난 듯 눌렸던 감정이 쏟아지고 있었다.
“더구나 날더러 어떻게 이 지경을 감당하라는지 모르겠어요. 수술을 몇 번이나 해야 한다는데 그 병원비랑 생활비는 어떻게 감당하지요? 도적질이라도 할까요? 아니면 강도질? 하나님은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요.”
“많이 걱정되겠네요. 그 비용이랑 간병에 아이들 살림까지 감당하려면...”
그의 추임새가 고마웠다. 한 번 풀리기 시작한 서러움은 꼭꼭 숨어 있던 불안과 서러움까지 토해내고 있었다.
“오늘 종일 감당하려고 해봐도 엄두가 나지 않아요. 될 데로 되라고 술이나 퍼마시고 죽고 싶은 충동도 생겨요. 뭔 희망으로 살겠어요?”
“그 심정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되지요.”
그리고 이어진 그의 말은 정말 뜻밖이었고 나를 놀라게 했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제가 아내가 급작스럽게 죽었다고 했잖아요. 정말 가슴 아프고 못 견디겠는데 더 힘든 게 뭔지 아세요?”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하나님이 제게 울지도 말라, 사람들을 오지도 못하게 해라 음식도 준비하지 마라. 고스란히 혼자 감당해라 이러시는 겁니다.”
“아니, 뭔 그런 고약한 심술쟁이 영감님이 다 있데요?”
“저도 형씨처럼 따졌지요. 내가 무슨 죄를 지었냐고, 착하기만 했던 아내는 또 무슨 죄를 지어서 그렇게 데려갔냐고요.”
“뭐래요? 왜 그런데요?”
“후....”
그 사내는 잠시 숨을 고르고 이별한 아내를 떠올리는 것 같이 영정 사진을 한 번 보았다.
“그래서, 안 울었지요. 속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고 땅은 꺼지는데도 소리 내어 울지 말라니, 그랬지요. 음식도 안 만들고 사람도 오지 못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이 묻더군요. 왜 그러냐고.”
“왜 안 묻겠어요. 나도 궁금한데.”
“하나님이 제게 그러셨어요. 사람들이 힘이 된다고 자랑하며 섬기던 성소를 점점 변질시킨다고, 그리고 다른 것들에 기대고 빌면서 이중플레이를 하는 것에 화가 나신거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하고 애지중지 하는 것들을 데려가겠다고, 그 때가 되면 나처럼 음식도 차려 먹지 말며, 가슴을 치면서 곡하지도 말라더군요. 그리고 자신들의 죄 때문에 망하는 줄 알고 서로 하소연이나 하라면서요. 제가 그 상징이니까 제가 당하는 대로 하라더군요. 나는 니들의 하나님이다. 그러시면서...”
“하기는 돌아보면 우리들이 좀 그러고 살지요? 걸핏하면 올바른 말을 하는 사람, 올바른 삶을 사는 사람에게 가시가 되고 찔레가 되고 전갈이 되면서.’
나도 그렇게 살았던 것 같아 찔렸다. 그도 동의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다시 이해할 수 없다며 따지는 투로 물었다..
“그래도 그렇지요. 그럼 그 사람들에게 직접 벌을 주면 되지 왜 당신에게 그런 무거운 본을 보이게 하지요?”
“자식이 부모더러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할 자격이 있나요 뭐? 제게는 아버지 같은 하나님이시니. 그리고 정신 나간 부모가 아니라면 자식에게 해로운 것을 시키겠어요? 이해를 못할 수는 있지만요.”
“그래서 아내 되는 분을 데려가신 건가요? 진짜로?”
“예. 그 말을 듣고 아침에 사람들에게 그렇게 전하고 돌아왔는데 그 저녁에...”
그는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슬픔을 참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듣고 바뀌던가요?”
“아뇨, 그랬더라면 아내를 데려가지 않으셨을 지도 모르지요. 사람들이 돌아서기가 쉽지 않지요. 결국 1차 경고가 내려왔지요. 먹을 빵과 마실 물을 바닥을 내버리셨지요. 사람들은 근근이 버텨야 했고요.”
- ‘아, 지독하다. 빵과 물을 끊어 버리다니..., 조금밖에 남지 않은 양식과 물을 저울에 달아서 쪼개어 먹으면서 버티고 살아야하는 삶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고 보니 내 지난날도 비슷했다. 앞으로는 더 영락없이 그러겠지만.’
“근데 사람들이 뭔 죄를 그렇게 지었다는 건지요? 살다보면 좀 빗나가기도 하고 말 잘 안 듣기도 하고 그러는 거지.”
“좀 심했지요. 한 번은 하나님이 나를 주의 성전 안뜰로 데리고 가셨는데, 사람이 스물다섯 명이나 있었지요. 근데... 그 사람들이 주의 성전을 등지고 얼굴을 동쪽으로 하고 서서, 동쪽 태양에게 절을 하고 있는 거예요. 아, 얼마나 민망하고 화끈거리는지...”
“좀 그렇기는 하네요. 그것도 성전 앞에서 등을 돌리고,”
“하나님이 제게 그러더군요. ‘네가 잘 보았느냐? 저들이 여기서 하고 있는, 저렇게 역겨운 일을 작은 일이라고 하겠느냐?’ 라고.”
“그렇지만 그건 그런 사람들이 당해야 할 죄가 아닌가요? 왜 안 그런 가족까지 같이 당해야 하냐고요.”
그러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송아지, 태양, 뭐 그런 우상숭배 같은 거도 안 했는데..., 그런데 왜 이 지경으로 몰아 가냐고.
“우상숭배가 꼭 그런 것만 말하는 건 아니거든요. 가령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목 빠지게 빌면서 매달려 사는 것도 우상숭배지요.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는 분노를 일으키는 우상들이란 말이지요.”
“아....”
속을 들켜버린 것 같아 얼굴이 화끈했다. 그리고 알 것도 같았다. 연애시절 아내와 말다툼을 한 적이 있었다. 고민거리가 있고 속상한데도 내게 의논해주지 않아서 내가 뭔가 싶었고, 화가 막 났다. 트집을 잡아 다투곤 했었다.
- ‘뭐지? 땅이 꺼지게 한 숨이나 쉬고 오늘 죽을까? 내일 죽을까? 옥상에서 뛰어 내릴까? 차에 뛰어들까? 그러고 있는 내게 하는 말 같으니...
“그리고 하나님이 이런 말도 하시더군요. ‘내가 그 땅에 전염병을 퍼뜨리고 내 분노를 그 땅에 쏟아 부어, 거기에서 사람과 짐승이 피투성이가 되어 사라진다고 하자. 비록 노아와 다니엘과 욥이 그 가운데 있을지라도,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건대, 그들도 아들이나 딸을 건지지 못할 것이다. 그들까지도 자신의 의로 말미암아 그들의 목숨만 겨우 건질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라고요.”
“그러면서 하나님이 제게 할 일을 주셨지요. 악인이든지 의인이든지 상관없이 그들이 빗나갈 때, 혹은 죄를 쌓아가고 있을 때 그들에게 하나님의 경고를 전하고 멈추고 돌아서게 하는 일이지요. 만약 전하지 않은 채 그들이 죄로 죽게 되면 전하지 않은 저도 죽임을 당한다고 하셨어요.”
그때 전화가 울렸다. 병실에서 아들이 보낸 문자다. 아내가 나를 찾는다면서.
“좀 가봐야겠네요. 아내가 또 통증으로 괴로워지나 봅니다. 남은 문제는 내게 달렸네요. 이 괴로움과 불안을 짊어지고 어디로 갈지, 깽판을 치고 죽든지 살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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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로 올라오는 내내 그의 말이 내 가슴속에 맴돈다.
- ‘사람들은 악인이거나 의인이거나 둘 중의 하나다. 경고를 받아 불신의 길을 멈추고 돌아서면 살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 그 사내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러 내게도 왔다. 그것으로 그의 할 일은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나의 몫이다.’
“왜? 무슨 일이야?”
“병원에서 해줄 게 없다고... 퇴원을 해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아니, 아파서 못 견딘다는 사람을, 치료할 여력이 안 된다고 나가라고? 참 별일이다. 하기는 계속 버틸 돈도 여력도 없지만.”
병실로 돌아와 눈앞에 아내를 보면서, 다시 구토와 불면의 신음을 들으면서 조금 생기던 기운이 달아났다. 내 앞에 펼쳐진 확실한 현실은 그랬다. 기쁨이나 소생보다는 짊어져야 할 병원비용과 돌봐야 할 아이들. 감당하고 걸어가야 할 내일은 그런 것이었다.
미래의 뿌리는 과거다. 오늘은 다시 미래의 과거가 된다. 오늘 나의 사랑은 미래의 행복이 될 것이고, 오늘 나의 절망은 미래의 황량함이 될 것이다. 오늘 내가 보내는 순간들이 미래의 조각이 되어 어떤 그림을 만들 것이다.
절망을 버티느라 애쓰는데 한 통의 문자가 왔다.
- ‘또 만날 수 있을지 몰라서 문자로 전합니다. 하나님이 제게 하신 아주 중요한 말이 남아서요. 어느 골짜기에 무덤이 있고 죽은 이들이 있었지요.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뼈가 말랐고, 우리의 희망도 사라졌으니, 우리는 망했다’ 하더군요.
그런데 하나님이 전하라더군요.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 백성아, 내가 너희의 무덤을 열고 그 무덤 속에서 너희를 이끌어 낼 거야. 그리고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서 너희가 살 수 있게 하고, 너희를 너희의 땅에 데려다가 놓겠으니,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나 주가 말하고 그대로 이룬 줄을 알 것이다.’ 라고요. 그러니 이제 꼼짝없이 죽었다 싶을 때도 이 말을 기억하시고 힘내서 잘 견디시기를 빕니다. 만나고 들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 에스겔 드림‘
아... 그가 에스겔이었다. 하나님이 고통 중에 경고와 희망을 주라고 파송했다던 선지자. 그가 하늘을 향해 걸어가는 내게로 다가와 잠시 동행을 했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자신이 없다. 과연 계속 하나님께 등 돌리지 않고 마주 바라보며 기도를 할 수 있을지. 어쩌면 험난한 산을 치우거나 넘어갈 힘을 줄 하나님께 달렸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천로역정은 계속 된다. 살아 있는 생명이라면 아무도 피하지 못하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