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 구석구석에는 원치 않은 객들이 조롱조롱 세를
들어 살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나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무단친입자들이며
세입자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도 이행하지 않는 몰염치한
자들이다..
나와 공생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내 의지를 거스르지 말것이라는 것 단 하나로..의외로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내 의지의 권위에 도전하고자 덤벼든다.. 또한 그들은 영악하게도 주위환경을..아주 적절하게 이용하곤 한다..
그들이 주로 이용하는 물리적인 환경은 술이다..
술은 옥수수 씨알만한 일상을 뻥하고 튀겨서 강냉이를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일상의 소소한 일도 술만 마셨다하면 거사가 되곤한다..
나의 무례한 이웃중 가장 영향력이 큰 자는 과대망상증이다..
그는 언제나 호시탐탐..내눈에 확대경을 씌우고자 한다..
오늘 낮에만 해도..지우개를 사려고 문방구에 갔을 때다..
조잡한 진열대에서 지우개를 찾고 있자니..전에 써본적이
있는 지움의 역할을 잘 감당해내는 잠자리가 그려진..지우개가 눈에 띈다..손을 가져가려던 찰나.. 그 옆에 써보나
마나 잘 지워지지도 않을 지우개가 강아지 그림의 포장지를
입고 놓여있다..문제는 그 그림이다..
눈이 때꾼한 그 강아지는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사세요..하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 본다..
입은 사주지 않으면 울음이라도 삼킬량인지 비죽이 내밀고.. 자세히 보니 커다란 귀에는 새끼도 품고있다..
과대망상증..그는 서두르지 않지만 머뭇거리지도 않는다..
절묘한 타이밍에 저 강아지 그림의 지우개를 사..라고 강요한다..
내 의지의 친구인 이성은 할말을 잊는다..그리고 나의 손은
주책없이 그 잘 지워지지 않는 지우개를 집어든다..
늘..이런식으로 나의 도움안되는 이웃은 내게 손해를 끼치려 든다..나쁜..
별일 없는 일상이 반복되다보니..별생각이 다 드는군요..
그런데..사실 저는 모르고 있습니다..
제 자신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또 집착하는지를..
늘 평안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