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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6일 오늘의 역사
2023년 튀르키예서 기상관측 사상 최대 규모 7.8 강진 발생 46000여명 사망
오전 4시17분 튀르키예 남부 도시 가지안테프에서 약 33㎞ 떨어진 내륙의 지하 17.9㎞에서 규모 7.8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후 오후 1시24분 튀르키예 카흐라만마라슈 북동쪽 59㎞ 지점에서 규모 7.5의 지진이 또 발생했다. 이외에 80차례 가까운 여진까지 이어졌다. 이 사고로 2월19일 현재 46000명이 넘게 숨지는 등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더구나 규모 7 이상의 여진도 이어지고 있다 부상자 수는 10만5천 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이재민은 2600만명이 발생했으며 264000채의 건물이 파괴 되었으며 피해액은 100조원을 넘었다. 2월18일에는 296시간 만의 기적으로 부부와 자녀1명 등 3명을 구출하기도 했다. 이번 지진은 말 그대로 ‘역대급’이다. 1939년 12월 27일 튀르키예 동북부에서 7.8 규모의 지진이 발생해 약 3만명이 사망했다. 이날까지 튀르키예가 공식 관측한 최대 규모의 지진이었다
2021년 한국 최초의 우주SF영화 ‘승리호’(감독 조성희) 개봉하자마자 넷플릭스 인기영화 세계 1위 오름
2020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7호 봉산탈춤 보유자 김기수 세상 떠남(85세)
2013년 3D 프린터 이용 세계최초 인간배아줄기세포 복사
2012년 왕리쥔 중국 충칭시 공안국장 여장하고 미국 영사관으로 도피
2011년 2011년 겨울 유니버시아드(터키 에르주룸) 폐막, 한국 금 7 은 3 동 5개 종합2위
2011년 제7회 아스타나-알마티 겨울 아시안게임 폐막, 한국 금 13 은 12 동 13개 종합3위
2011년 NASA, 태양 앞·뒷면 360도 촬영 성공
2006년 발사된 미 항공우주국(NASA)의 태양 관측 위성 ‘스테레오(STEREO) A’와 ‘스테레오 B’가 6일 처음으로 태양의 360도 모습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사진은 4일 전인 2일 두 위성이 찍은 태양의 앞·뒷면을 합성한 것으로, 가운데 검은 줄은 스테레오 A와 B가 아직 완전한 180도를 이루지 않은 상태여서 생긴 공백을 보여준다.
이 위성들은 발사된 후 지구로부터 각각 반대쪽으로 멀어져 갔으며, 6일 처음으로 태양을 중심으로 직선상에 놓이는 위치에 도달했다.
두 위성은 앞으로도 계속 진행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태양 반대쪽을 촬영할 예정이다
2011년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게리 무어 별세
'파리지엔 워커웨이즈(Parisienne Walkaways)' '스틸 갓 더 블루스(Still Got The Blues)' 같은 곡으로 국내에서도 인기 높았다. 그는 천안함 폭침사건이 일어난 뒤에 열린 작년 4월 첫 내한공연에서 '스틸 갓 더 블루스'를 연주하기 전 "천안함에서 희생된 한국의 젊은 장병들을 위한 곡"이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었다.
그는 또 1983년 발표한 음반 '빅팀스 오브 더 퓨처(Victims of The Future)'에서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된 KAL기 사건을 비판한 곡 '머더 인 더 스카이즈(Murder In The Skies)'를 발표하기도 했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무어는 8세 때 기타를 잡은 뒤 17세에 록밴드 '스키드 로(Skid Row)'의 멤버가 될 만큼 연주력이 뛰어났다. 1974년 록 밴드 '신 릿지(Thin Lizzy)'의 기타를 맡아 밴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는 밴드와 별개로 꾸준히 해온 솔로 앨범으로도 큰 명성을 얻었다.
기타를 배우던 시절 블루스 기타리스트 앨버트 킹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던 무어는 하드록부터 헤비메탈 속주(速奏)까지 다양한 음악을 해왔으나, 90년대 들어 블루스로 회귀해 최근까지 블루스 위주의 음반과 공연을 해왔다.
2010년 이영덕 전 국무총리 별세
이영덕(李榮德) 전 국무총리가 지병인 폐렴으로 2010년 2월 6일 8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평안남도 강서 출신인 이 전 총리는 서울대 교수와 한국교육개발원장 등을 지낸 교육학자이다. 김영삼 정부 초 정부공직자윤리위원장으로 공직에 들어와 1994년 제27대 총리에 임명됐다.
이 전 총리는 1946년 서울대 재학 중 좌·우익 학생 간에 벌어진 '국립서울대설립안(국대안)' 찬반 투쟁에서 정원식 전 총리와 함께 국대안에 찬성하는 우익대표로 활동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를 맡아 남북적십자회담에 참여했고 총리 취임 전에는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을 맡았다. 1985년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장으로 평양에 갔을 때 북측이 평양 모란봉경기장에서 학생들의 총검시범을 보여주자 중간에 자리를 뜬 일화도 있다.
이 전 총리는 2009년 11월 남덕우·강영훈·정원식 전 총리 등과 함께 정부 부처의 세종시 이전 반대 성명을 내기도 했다.
2010년 북한 무단입국한 인권운동가 로버트 박, 석방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북한 인권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2009년 12월 25일 입북(入北)했던 한국계 미국인 북한 인권운동가인 로버트 박(28·한국명 박동훈)씨가 억류 43일 만인 2010년 2월 6일(한국시각) 석방됐다.
박씨는 6일 오전 북한 고려항공편으로 베이징 서우두(首都) 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해 취재진에게 잠시 모습을 비친 뒤 공항을 빠져나갔으며 주중 미 대사관 직원들의 안내로 같은 날 밤 늦게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가족과 상봉했다.
박씨는 2009년 12월 25일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정치범 수용소 폐쇄와 종교의 자유를 호소하겠다며 중국에서 두만강을 건너 북한 함경북도 회령시로 들어가 북한 당국에 무단 입국혐의로 억류됐다.
이 과정에서 당초 자신의 주장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조선중앙통신은 2010년 2월 5일 “로버트 박을 억류하고 조사한 결과, 미국 공민은 조선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가지고 들어오게 됐다. 자기가 저지른 행위에 대해 인정하고 심심하게 뉘우친 점을 고려해 해당 기관에서 관대하게 용서하고 석방하기로 했다”고 보도하며 박씨가 자청한 기자회견 내용도 공개했는데, 박씨가 "(북이)인권을 보호해줬다", "(북에서)신앙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등의 말을 한 것으로 나와 있다.
2009년 3월 북·중 접경지역에서 취재 중 북한 경비병에 체포된 미국 커런트TV 소속 로라 링(Laura Ling)과 유나 리(Euna Lee) 두 여기자의 경우, 억류 140일 만에 클린턴(Clinton) 전 대통령이 평양에 들어가 데리고 나왔다.
2007년 열린우리당 의원 23명 집단 탈당
2007년 2월 6일 열린우리당 의원 23명이 집단 탈당을 결행하면서 원내 교섭단체를 만들겠다고 밝혀 국회에 ‘2여(與) 1야(野)’ 체제가 등장했다.
열린우리당의 김한길 전 원내대표와 강봉균 전 정책위의장 등 의원 23명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통합 신당을 만들기 위해 열린우리당을 떠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은 신당 창당 말고는 다른 뚜렷한 명분을 내놓지 못한 채 탈당선언문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책임 있게 국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말해, 정치권 안팎에서 ‘열린우리당 2중대’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날 탈당으로 열린우리당 의석수는 110석으로 줄어 원내(院內) 2당이 됐고, 한나라당(127석)이 1당이 됐다. 2004년 4월 17대 총선 이후 2년10개월 만에 ‘의회 권력’이 바뀐 것이다.
2003년 난치병 치료를 위해 체세포 복제 허용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
확정
2003년 2월 6일, 난치병 치료 목적의 체세포 복제를 허용한다고 명시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이 정부안으로 확정됐다. 이는 체세포 복제 허용을 요구해온 의ㆍ과학계의 의견을 일부 받아들인 것으로, 이로써 2년여간 끌어온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부간의 이견이 해소됐다.
새 법안이 과거 복지부 법안과 다른 점은 "난치병 치료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한 누구도 체세포 복제를 할 수 없다"는 문구를 넣었다는 것이다. 기존 법안은 "체세포 복제를 금지하며 다만 국가생명윤리자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허용할 경우 예외로 한다" 고 규정했었다. 이로 인해 의ㆍ과학계에서는 국가생명윤리자문위원회에 종교단체와 시민단체 대표들도 포함시키도록 되어 있어 이들에게 체세포 복제 허용 여부 판단을 맡긴다는 것은 아예 금지하는 것과 같다고 반발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진통 후 복지부와 과기부가 서로 호응하여 새로운 법안이 나오게 됐다.
2001년 중국 여객선, 사상 첫 대만 직항
1949년 중국 공산화 이후 처음으로 중국 관광객을 태운 여객선이 2001년 2월 6일 푸젠성 샤먼을 떠나 대만의 진먼섬에 도착했다. 이는 대만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소3통(小三通)` 정책에 중국이 호응할 용의가 있음을 나타내주는 것이었다.
여객선 `구랑위`를 타고 진먼섬에 도착한 중국 관광객은 모두 90여명이며, 그중 76명은 이 섬이 고향이지만 공산화 이후 고향 땅을 찾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대만 정부는 이해부터 진먼도와 마쭈도, 평후도 등과 중국 본토 간 선박 직항을 허용하는 소3통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전월 1월 2일 대만 여객선이 진먼도 및 마쭈도와 중국 본토간을 직접 운항했다
2001년 북한-캐나다 국교 수립
캐나다는 6일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고 발표했다. 존 맨리 캐나다 외무장관은 “외교관계를 수립함으로써 북한과의 공식 외교 통로를 확보하고 양국간 교류와 협력을 증진시킬 뿐 아니라 보다 깊은 상호 이해를 실현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캐나다는 앞서 지난해 7월 26일 태국 방콕에서 북한 백남순 외무상과 로이드 액스워디 전 외무장관과의 회담을 비롯해 같은해 9월 중국 베이징에서 가진 수교 회담에서 원칙적으로 수교에 합의했었다.
맨리 장관은 “외교관계 수립을 통해 북한과 좀더 가까워짐으로써 북한의 안보와 핵확산금지 및 인도적인 변화에 최대한 기여하게 될 것” 이라고 밝혔다.
그는 양국간의 관계는 상호 주권을 존중하고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캐나다가 이날 북한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함으로써 올해 북한과 수교하는 첫 번째 국가이자 북한의 139번째 수교국이 됐다.
2001년 이스라엘에서 총리 선거가 실시되어 아리엘 샤론이 당선.
2001년 2월 6일 실시된 이스라엘 총리 선거에서 강경파인 아리엘 샤론 리쿠르당 당수가 노동당의 에후드 바라크 총리에게 압승을 거두고 새 총리에 선출됐다.
1928년 텔아비브 근교 러시아 이민 농민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4살에 군에 입대해 1973년 소장으로 전역할 때까지 수많은 전투에 참가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정계진출 후에도 6개부처 장관을 거치는 관운을 자랑했고 1999년 베냐민 네타냐후가 총리선거에서 패배한 후 리쿠르당 당수가 됐다. 1977년에는 농무장관으로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위해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을 밀어내 `불도저`란 별명을 얻었고 1982년 국방장관 시절에는 레바논내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요원을 소탕하기 위한 침공을 명령, 수백명의 시민을 숨지게 해 강경파로서의 이미지를 굳혔다.
2000년 9월에는 동예루살렘내 알 아크샤 사원을 방문, 유혈사태를 촉발시켰다. 이번 총리 선거도 그 사건이 발단이 됐다. 이집트와의 시나이반도 반환협상을 주도하는 등 실용주의자로서의 면모도 보였으나 팔레스타인측에게는 `전쟁과 점령자의 화신`으로 불리는 기피인물이다.
1998년 워싱턴 공항, 로널드 레이건 공항으로 개명
1998년 2월 6일, 87번째 생일을 맞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에게 뜻깊은 선물이 전해졌다. 1941년 개항한 워싱턴 국제공항을 로널드 레이건 워싱턴 국제공항으로 개명한다는 법안이 공표된 것이다. 법안은 2월 4일 상원과 하원을 통과해 그날 밤 클린턴 대통령의 서명의 거쳐 확정됐다.
1980년에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로널드 레이건은 훤칠한 키와 시원스런 미소, 근육질 몸매를 갖춘 할리우드 배우 출신이었다. 강한 미국을 주창하던 반공주의자 레이건은 재임 8면 동안 냉전종식의 기틀을 마련하고 '레이거노믹스'라는 경제정책으로 미국 경제를 회생시켰다.
퇴임 후 사그라들던 레이건의 인기가 되살아난 것은 1994년 11월 5일 '사랑하는 국민들에게'라는 제목의 대국민 편지를 통해서였다.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고 밝힌 그의 편지로 미국인들은 충격에 빠졌고, 이후 로널드 레이건의 인기는 미 전역에 유행처럼 높아져갔다. 레이건 본인이 사후 25년이 지나야 기념물을 세울 수 있다는 법안에 서명하고(1986년), 기념물을 제작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항공모함을 비롯해 신시내티 고속도로, 캘리포니아주 법원 청사 등도 레이건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레이건은 이후 2004년 6월 5일에 93세로 사망했다
1996년 내무부, 모든 재난신고 `119`로 일원화
1996년 2월 6일부터 모든 재난사고 신고전화는 `119`만 돌리면 자동 연결되게 됐다. 내무부는 종전까지 가스 사고의 경우 `0019` 구급신고는 `129` 주민불편신고는 `120`으로 신고해야 하는 등 각종 재난에 따른 신고 전화번호가 저마다 달라 비상시 신속한 신고 접수 및 처리에 어려움이 많았던 점을 개선하기 위해 화재 및 구조-구급 신고, 가스 사고 등 각종 재난의 신고 접수를 다이얼 `119`로 일원화했다.
또, 내무부는 이와함께 휴대용 전화기를 통한 신고도 국번없이 `119`만 누르면 가장 가까운 소방관서에서 접수되게 했다. 휴대용 전화기를 통한 신고가 늘어날 것에 대비하여 휴대용 전화 신고 전용회선을 1백47회선에서 3백17회선으로 대폭 증설했다.
1996년 민자당, 신한국당으로 출범
그동안 `가칭 신한국당`으로만 불려왔던 신한국당이 1996년 2월 6일 당 총재인 김영삼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1차 전당대회에서 당헌개정을 통해 신한국당으로 공식 출범했다.
대회에서 당명 개명을 추인받고 `역사 바로세우기`와 `안정속의 개혁`을 당의 목적에 추가함으로써 민자당에서 신한국당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신한국당의 공식출범에는 구 민자당 당명에 함축돼 있던 3당 합당 구도를 청산하고 새로운 집권세력으로 출발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이날의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전당대회는 대의원과 참관인 등 1만2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2시간30분동안 진행됐으며 시종 박수와 환호로 일관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1994년 미국 팝 록 밴드 마룬 5 결성.
1983년 한국-쿠웨이트, 문화협정 체결
1981년 한국-루마니아, 문화협정 체결
1981년 미국, 소련이 킬러위성 우주발사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
1980년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실무대표 판문점에서 첫 대좌
1979년 파키스탄 최고재판소, 부토 전 수상의 사형판결 확정
1974년 그레나다, 영국으로부터 독립
중남미 카리브해상의 작은 섬 그레나다가 1974년 2월 6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1498년 콜럼버스가 처음 발견한 그레나다는 1655년 프랑스 식민지였다가 1783년 영국령으로 편입됐다. 1958년 서인도제도 연방에 가입하였으나 1962년 연방의 해체로 다시 영국령 윈드워드 제도에 편입됐다. 1967년 자치정부가 수립돼 마침내 이날 영국연방의 일원으로 독립하게 됐다.
독립헌법에는 영국 국왕이 임명하는 그레나다의 총독과 양원제 국회에 관한 조항이 마련됐다. 1983년 친소련파에 의한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으나 미국은 그레나다에 건설중인 비행장이 소련의 기지로 이용될 것을 우려해 카리브 해안 6개국과 연합하여 그레나다를 무력 침공, 정권을 무너뜨리고 신국민당의 블레이즈가 이끄는 친미 정권을 탄생시킨 후 1985년 철수했다.
1974년 74억원 부정융자한 박영복 등 구속
박영복이 74억원을 8개은행에서 부정대출 받은 것이 밝혀져 금융부정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대검특별수사부가 대구 교외에 있는 남의 땅을 서류 위조하여 담보로 제공, 중소기업은행에서 7억원을 부정대출 받은 혐의로 1974년 2월 6일에 서울 금록통상대표 박영복(39)과 김용환 상무(54)를 구속하면서 드러났다.
1주일 후 당시 중소기업은행장 정우창씨가 이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고 다시 4월 8일 박씨가 서울은행에서 외국은행신용장을 위조, 18억원을 부정대출 받은 혐의로 당시 서울은행 외국부차장 김정수씨 등 은행원3명이 구속되면서 표면화되었다.
1974년 4월 17일 은행감독원은 박영복이 총재출액이 74억원에 달한다고 발표했으며,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8명을 구속기소하고 1명을 지명수배, 기소된 8명은 1,2심에서 모두 유죄선고를 받았다.
1971년 한미, 주한미군감축과 한국군 현대화계획에 합의
1971년 아폴로 14호 승무원 달 표면에서 골프 스윙 연습
1967년 미군, 베트남전에서 대량의 고엽제 살포 개시
미국 공군기가 남북베트남 경계지점 비무장지대 삼림지역에 대량의 고엽제를 살포했다 ‘오렌지작전’ 또는 ‘고엽작전’이라 불리우는 이 작전은 비행기와 헬리콥터에서 대량의 화학약품을 투하해 남베트남 정글을 벌거숭이로 만들어 이들 삼림지대를 거점으로 하는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부대 발견을 쉽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원래, 고엽제란 농약의 용도상 분류에서 낙엽제(落葉劑)에 해당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날 사용된 고엽제는 2ㆍ4ㆍ5-T계 제초제였다. ‘고엽작전’은 이미 1962년부터 일부에서 행해졌지만 이것은 주로 해방전선의 식량공급을 차단하기 위해 논밭을 말라죽게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날처럼 대량의 고엽제가 살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후 1969년 동물실험결과 이 고엽제에서 발견된 초미량의 불순물인 디옥신이 기형과 암 발생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미국을 비난하는 세계의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미국은 같은 해 고엽제 사용을 중지했다. 그러나, 이미 이 ‘고엽작전’으로 베트남 산림의 20%가 파괴된 상태였고, 장애아 출산도 잇달았다. 또한 ‘고엽작전’에 참가했던 미군 병사들마저도 후유증으로 고생해야 했다.
1963년 갑제호 침몰사고
1963년 2월 6일 오전 8시에 인천을 출발한 갑제호는 인천 앞바다 모도 남방 500m 해상에서 두께 2m의 얼음에 뱃머리가 충돌하여 직경 40cm의 구멍이 뚫렸고, 침수되었다. 사고 당시 갑제호는 정원이 148명이었지만, 이를 훨씬 초과한 271명의 승객을 싣고 있었고, 무연탄, 비료, 잡화 등 무거운 짐들도 가득 싣고 있었다. 선장이 급히 모도로 배를 대고 갯벌에 올려 승객 6명이 숨졌지만 선원 7명과 판매원 1명을 포함한 나머지 244명은 무사히 구조될 수 있었다
1966년 진주 중앙시장에 큰불, 570점포 화실
1964년 키프로스의 그리스, 터키계 주민 충돌
1963년 동서독 올림픽 단일팀문제에 완전합의
1963년 최고의 정치정화법 해당자 268명 2차 해금
1957년 美 매사추세츠 공대 더들리 알렌 벅 교수, ‘cryotron’ 이란 초전도성 논리소자 개발을 발표 컴퓨터의 소형화에 기여
1952년 영국왕 조지6세 사망했다.
그는 조지5세의 차남으로 태어났지만 형 에드워드 8세가 심프슨 부인과의 극적인 사랑으로 제위를 포기함에 따라 1936년 즉위했다. 조지6세가 사망하자 딸인 엘리자베스2세가 여왕으로 즉위했다.
조지6세는 1895년 태어나 해군사관생도로서 제1차 세계대전 때 함대에 근무하였고, 전쟁후에는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수학했다. 그는 생전에 프랑스-캐나다-미국 등을 순방하여 국제 친선에 힘을 기울였고,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런던을 떠나지 않고 시민과 위험을 함께 하면서 때때로 군대-공장-공습피해지역 등을 시찰하여 사기 앙양에 힘썼다.
책임감이 강하고 중후하며, 왕실의 규범을 준수하여 국왕으로서의 중책을 훌륭히 수행하여 국민의 신뢰를 받았다.
1952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1952년 2월 6일 즉위했다.
1926년 윈저왕가 조지6세의 장녀로 런던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2세의 본명은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다.
1947년 에든버러공 필립과 결혼해 이듬해 큰아들 찰스를 낳았다.
부왕 조지6세가 급서한 이날 여왕은 부왕이 지병으로 취소한 호주와 뉴질랜드 등을 남편과 함께 방문중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는 첫 방문국인 케냐에서 아버지의 부음과 그 자신의 왕위계승 소식을 들어야했다.
대관식은 이듬해 6월 2일 웨스트민스트 사원에서 거행됐다. 이로써 엘리자베스 2세는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로 이뤄진 연합왕국(영국)과 여러 자치령들의 왕일 뿐만 아니라, 옛 대영제국에 속했던 독립국들의 결합체인 코먼웰스(영연방)의 수장으로 등극했다
1948년 서독, 미국, 영국 점령지구 통합헌장 조인
1946년 미소 공동위원회 설치
모스크바 삼상회의(미국, 소련, 영국)에서 한국의 임시정부 수립과 함께 미·영·중·소에 의해 최장 5년 간의 신탁통치를 실시할 수 있다고 결정하였다. 또한 임시정부 수립을 원조하고 남북 분단으로 인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미국과 소련이 공동위원회를 설치할 것도 결정하였다
그러나 1차회담(1946년 3월 20일) 서울에서 개최되었으나 소련은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의 협정을 지지하는 정당·사회 단체들만이 미소공동위원회와 임시 정부 수립 문제를 협의할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미국측은 신탁 통치 반대 세력들도 협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실패하였으며
2차회담(1947년 5월 21일) 역시 소련측이 신탁 통치 반대 투쟁 단체를 제외하자고 주장하자 회의는 결렬되었다.
1922년 교황 비오 11세, 259대 로마 교황 취임.
1922년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조인
1922년 조선교육령 개정 공포
1904년 일본, 러시아 국교단교
1886년 노비 폐지
1840년 영국이 뉴질랜드 마오리족과 와이탕이 조약 체결.
1840년 뉴질랜드, 영국의 식민지화
1819년 스탬퍼드 레이플과 조호르의 후세인 술탄 사이에 싱가포르에 무역 거점을 세
우는 내용의 협정을 체결함.
1788년 매사추세츠 주가 미국의 6번째 주가 되었다
1611년 중국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 출생
1019년 강감찬 장군의 귀주 대첩(大捷)
인헌공 강감찬 장군은 고려 시대의 대외 항쟁사에 있어 가장 혁혁한 훈공을 세워 국난의 위기에서 나라를 건졌다.
1019년 2월 소배압을 총지휘관으로 하여 10만의 거란군이 침입했을 때(3차 침입), 강감찬이 귀주에서 크게 무찌른 것을 말한다.
이 때 거란 10만 군사 중 수천 명만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거란 성종은 소배압에게, "네가 너무 적지에 깊이 들어가 이 지경이 되었다.
무슨 얼굴로 나를 만나려는가.
너의 낯가죽을 벗겨죽이고 싶다." 고 책망했다고 한다.
특히 귀주 대첩은 우리 역사상 가장 이름높은 승리의 하나이거니와 이로 말미암아 글안의 침략 야망을 영원히 꺾어 버리게 되었다.
싸움이 끝나고 개선할 때 현종이 친히 영파(迎波)역까지 마중나와 금화팔지(金花八枝)를 장군의 머리에 꽂아주고 금잔을 들어 전공을 치하했다고 한다.
강감찬은 키가 작은데다가 곰보여서 못생기기로 유명한 장군이었다고 한다.
원래는 아주 잘 생긴 얼굴이었는데 너무 잘 생기면 큰 일을 못한다고 하여 스스로 마마신을 불러 곰보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애국 선열 조상 건립 위원회에서는 1972.5.4 수원 팔달산 기슭에 장군의 동상을 건립했다.
885년 일본 제60대 천황 다이고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