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으로 자살한 여배우
글 / 박용석
인기상승 가도를 달리고 있는 미모의 젊은 여배우가
자살한 사건이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 여배우가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난 신자라서
기독교 장으로 장례까지 치루고 있는 광경이 언론에 상세하게
보도되고 있기에 우리 교계에도 적지 않는
충격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붉은 십자가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진 관이 운구되는
TV 뉴스의 사진들을 바라보고 참으로 민망하고 안타까웠습니다.
한 인간이 상처를 받고 신음하고 있을 때 그가 믿는 종교가
그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무기력하다면
그 종교는 그에게 아무런 존재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녀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는 이 지경이 되도록
왜 그 영혼을 그냥 방치만 하고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소속된 교회도 처해진 형편 때문에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우리 모든 교회가 이 사건을 계기로 자기 성찰의 기회로 삼아
홍수 때에 방주로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필자부터 목회자로서 교회 건물문제로
그동안 너무 동분서주하며 분주해진 마음을 목회 본연의 제 자리로
빨리 돌이켜야 하겠습니다.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 마음을 두라(잠 27: 23)”고 하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며 주님의 은총 앞에 겸손히 엎드려 봅니다.
신문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어느 중견 배우는 동료 배우들이
겪고 있는 남다른 고통을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배우의 반은 일종의 피해망상증 같은 정신병을 앓고 있다.
배우라면 나이에 상관없이 우울증과 고독감에 빠질 수 있다.
남의 인생을 대변하는 배우라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민감하고
일반 사람들보다 이런 상황에서 더 큰 상처를 입는다.”고
충격적인 고백을 하였습니다. 배우라는 직업의 화려하게만 보이는
그 이면에 이러한 아픔들이 숨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이 아픔들이 있었기에 연예인들이 음주나 마약의 유혹에 쉽게
빠져든 것 같습니다.
우울증은 비단 이 여배우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국민의 10대 질병중 하나가 되었다고
어느 통계자료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 우울증은 질병의 일종이기에 기도와 말씀으로
이 병을 극복하고 물리쳐 반드시 치료받아야 합니다.
최근 ‘우울증과 자살방지세미나’를 인도하기 위해
방한한 미국의 톰 에딩턴 박사는
“자기 존재의 가치를 확인하지 못하거나 삶의 목표를 상실했을 때
오는 우울증의 치유 방법은 오직 기도”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엔 급격한 사회 변동으로 성인아이’ ‘의지박약아’
‘생명경화증 환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외부의 충격이 거세다고 할지라도 믿음이 있는 사람은
미래 지향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우울증을 쉽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반지를 잃어버린 어떤 소녀가 귀가해서 엄마에게
“엄마! 큰일 났어. 반지를 잃어버렸어” 하며 낙심이 되어
슬픔에 빠져 있을 때 믿음을 가진 엄마가 이렇게 말하며 분위기를
반전시켰습니다.
“얘야, 그래도 나는 감사하다. 손가락은 그대로 있잖니?”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뀌면 절망적인 상황도 달라집니다.
신문에서 그 여배우의 장례기사를 읽어가다가 영정 사진과
유골단지 곁에 있는 사진 속의 글귀가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아이 곁에 엄마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값비싼 장난감이나 음식물이 아이에게 필요하지만
이것보다 정말 아이 곁에는 엄마가 꼭 필요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세상 그 어느 것보다도
하나님이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돈보다 명성이나 인기보다 사람에게는 조물주이신
하나님을 더 찾는 시간이 절실해야 합니다.
아브람은 가나안 전쟁 승리로 인하여 사로잡혀 갔던
조카 롯을 빼앗아 왔고 많은 재산을 노획하여 갑자기 거부가 되었지만
정작 대적들로 인하여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었습니다.
이 절박한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였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 15:1)”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 주시고 큰 상급이 되어 주셨기에
그에게서 절망이 떠나가고 우울증과 두려움도 사라졌습니다.
잠언 기자는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생각이 바뀌면 미래도 달라집니다.
“자살”이라는 말을 거꾸로 하면 “살자” 입니다. 정호승 시인의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는 시 한편이 마음에 부딪쳐 와서
여기에 몇 줄 소개해 봅니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너와 함께 걸었던 들길을 걸으면
들길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면
상처 많은 풀잎들이 손을 흔든다.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로마서 8: 6-7)
2005. 2. 27.
옥토동산에서 박용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