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3.1운동연구는 참 빈약하고 오류가 넘 많다.(아마추어리즘. 얄팍한 엉터리들이 넘 설치는 현실)
해서 장기간 종합 입체적이고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조사연구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1. <독립선언서>가 아닌 <선언서>로 취약(만주 <무오선언서>(1918.11 : 민족대표)는 강력한 무력 투쟁)
2. 한양 18개 고보생 4000여명(토요일 4교시 청소후 2시 탑골공원 만남 약속), 500여명 만 성인(두려움)
33인 중 29인은 태화관(3000평 연회장소 14개 건물 중 한 건물 식당 방)에서 식사 후 <선언서> 낭독 후
조선통복부 종로경찰서에 전화 걸어 체포해 가라함(일제 조선총독부는 이미 다 알고 심리전)
3. 태극기(표준 없고 수십개 난립) 몰수당해 아는 분이 극소수로 대부분 몰랐고 없었기에 손들어 대한 아닌
<조선독립만세>를.... 중국에서도 사용않는 태극(중국 주역) 사상은 반만년 한민족과 상관 무이나 굳혔음
4. 주도권 33인들(종교대표라 상징성 취약)이 반대했던 3.5학생만세운동(대학생 주도 남대문역 고보생
민간인 )이 거대함...
5. 식자층 위한 <선언서>(최남선) 읽을 줄 아는 백성은 9%(91% 문맹율), 전국 장날 조선독립만세운동
6. 정인보 작사 <3.1절 노래> - 정오 아닌 원래 2시인데(경성 18개 고보 토요일 4시간 수업 12시 45분 청소후
모임) 약속불이행으로 2시 30분 <선언서>낭독(정00아닌 경성의전 한위건, 45분경 종로거리로 나옴(정동,
남산 왜성대(옛 서울예술전문대 터, 임진왜란 때 한양 통치 왜성 건축)로 몰겨감)
7. 극비리 아닌 일제 조선통독부는 다양한 정보를 통해 3.1운동준비 알고 있었음(사전 탄압 아닌 사후 탄압)
8. 3.1운동 총 사망자는 박은식이 기술한 7500여명 아닌 1000여명(최근 한국 일본 역사학자들 자료 분석)
9. 3.1운동 피해(천도교 대탄압, 함경도 등 파출소 방화에 일경 살해자 등은 사형 무기형)
10. 3.1운동 중단요인(1차 세계대전으로 전염병(화학) 스페인 독감이 지구촌에 번져 사상자 발생, 가족이 사망
하거나 밤 등에서 쓰러저 가을 추수도 못함(당시 신문에 보도))
* 숭고한 3.1정신의 진실이기에 - 무식 컴플렉스 시비 음해 말것...
첫댓글 잘 읽고 사실을 알고 갑니다.
늦은 인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