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고 고운 손을 부 끄러워하자
지금은 우리가 지구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만족이라고 자부하지만,
19세기말 한반도를 방문했던 서구인들의 눈에 비친 조선인들의
단점 가운데 하나는 '게으르다;는 것이었다.
이는 꼭두새벽부터 육체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여자나 노비, 소작인과 같은
당시의 '아랫것'들을 보고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남자들, 그 중에서도
소위 '윗분'들이 '노동하지 않음'을 미덕으로 삼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지가 멀쩡하고 총명한 장정들이 과거시험의 '로또'에 당첨되기 위해
골방에 틀어박혀 사서삼경을 암기하였다. '입술노동'만으로도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윗분'이 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육체노동에 대한 경시'는 가난으로 귀결될 뿐이었다.
조선시대 말기에 '노동하지 않음'과 '노동함'은 위와 아래를 구분하는 징표였다.
'아랫것'들이 노동하지 않고 한가하게 지내는 것을 유교적 위계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생각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윗분들은 기기묘묘한 의례와 규칙을
고안하여 아랫것들의 손발이 한시도 쉴 수 없게 만들었다.
기본적인 의식주는 간단한 노동만으로도 마련할 수 있었을 텐데, 윗분들은
먹을거리와 입을 거리를 위해 투입되는 노동의 양을 끔찍할 정도로 늘어놓았다.
쉽게 더러워지는 무명옷을 상용한다. 풀을 먹인다. 다듬이질을 한다.
빨래를 위해 동정을 뜯었다가 다시 꿰맨다. 인두질과 다리미질······.
숨돌릴만하면 찾아오는 차례와 제사. 쉽게 녹스는 유기를 굳이 제기로 사용하여
그광택을 보고 '정성스러움'을 측정한다.눈에 보이지 않는 조상신께서 한목에 드실
요모조모의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서 '아랫것'들만의 어마어마한 노동이 투입되었다.
일제강점기에 피지배민족으로서 쓰라림을 겪고 해방을 맞아 근대적
법령체계가 정비됨으로써 신분의 차별이 없어진 이후,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위아래 할 것 없이 개미같이 일을 하여 먹고 살만하게 된 지금이지만
육체노동을 천시하던 잘못된 가치관의 망령이 아직도 우리사회를 떠돌고 있다.
건설현장에서는 구슬땀을 흘리는 '신세대'들은 찾아보기 힘들고 피땀 흘리는
'쉰 세대'들만 눈에 띈다. "내 자식에게만은 육체노동을 시키지 않겠다."는
'쉰 세대' 어버이들에 대한' 효심' 때문인지, 'Dirty, Difficult, Danger하다'는
3D 업종에서 우리 젊은이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몸놀림이 적고 그 속도가 느릴수록 윗분으오 대접받는 조선시대였지만,
불교집안에서는 노동을 소중하게 생각해왔다. 이름 없는 스님들의 노동을 통해
사찰 주변의 경작지가 게속 넓어졌다. 미투리나 종이와 같은 공산품 생산의 중심
지가 사찰이었다. 불교수행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복덕의 길과 지혜의 길이다.
지혜만 닦으면 아라한이 되고 복덕만 닦으면 전륜성왕이 되며, 복덕과 지혜를
모두 갖추어야 부처가 된다고 한다. 《대지도론》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성불을
위한 복덕의 자량을 쌓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육체노동이다.
육체노동을 통해 남에게 이로움을 줌으로써 내 마음 밭에 복덕이 쌓이게 되고
육체노동의 노고로 인해 과거나 전생의 업장이 씻어진다. 실명한 아나율 존자의
바느질을 도우시며 보시공덕의 중요성을 말씀하신 부처님의 가르침,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겠다."고 하시던 백정 선사의
가르침 모두 '육체노동의 공덕'에 대한 대승적 조망을 담고 있다.
육체노동의 보시행은 남에게도 기쁨을 주지만, 나에게도 이익을 주는 길이다.
놀고 있는 희고 고운 손을 부끄러운 손이다.
김성철 교수의 불교하는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