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 술뫼 둔치로
소한 절기 봄비 같은 겨울비가 내리기 시작해 이튿날까지 이어진다. 거제에 머물면서 자주 만나지 못한 친구와 간밤 새해 인사를 나누었다. 차수를 세 차례나 바꾸면서 메뚜기처럼 주점을 옮겨 다녔다. 내년 여름 정년을 앞둔 친구는 지역 국립대학 겸임교수를 맡아 정년 이후도 한동안 후학을 가르치게 된다. 젊은 날 교육운동으로 해직의 아픔을 겪으면서 이런저런 고비를 넘겨왔다.
일월 첫째 화요일 아침나절 겨울비는 여전히 내렸다. 글을 몇 줄 남기고 이른 점심을 먹고 산책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대개 배낭은 빈 채로라도 짊어진다만 비가 와 우산만 받쳐 썼다. 집 앞에서 105번을 타고 동정동으로 나갔다. 1번 마을버스로 대산 들녘을 지난 수산다리 근처 강둑을 걸으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유등 들판으로 가는 2번 마을버스가 먼저 와 타게 되었다.
소형 버스에 탄 승객을 나를 포함 셋이었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을 지나 용강고개를 넘으니 운무가 가득 끼어 있었다. 주남저수지를 지난 대산 들판까지는 1번 마을버스와 노선이 겹쳤다. 대산 들녘을 지나 면소재지를 가술을 거쳤다. 이후부터 대산 들녘은 비닐하우스가 끝없이 펼쳐진 들판이었다. 그곳은 벼를 거둔 뒷그루로 수박농사를 지었다. 벼농사보다 더 수익이 많을 듯했다.
밀양으로 건너는 수산다리 근처 모산과 북부동을 지나 유청마을에서 종점 유등에 닿았다. 유등은 진영에서 들판을 가로질러 온 샛강에 배수장이 있었다. 들판의 샛강이 김해시와 창원시 경계였다. 버스에서 내리니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렸다. 우산을 받쳐 들고 강둑으로 나가니 건너편 밀양 명례는 안개가 가려 있었다. 둑을 따라 넓게 펼쳐진 둔치에도 안개가 가려 시야가 흐렸다.
둔치로 내려 자전거 길을 따라 걸었다. 가을에 이삭이 나와 한때 은빛으로 일렁였던 물억새는 갈색으로 바래져 야위어 갔다. 갈대는 겨울을 나면서 줄기가 꺾여 지저분해지는데 물억새는 꼿꼿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비가 오니 자전거를 타고 나온 이가 아무도 없는 강변이었다. 호젓한 길을 혼자서 걷는 호사를 누렸다. 비수리 줄기에는 투명한 물방물이 방울방울 맺혀 있었다.
드넓은 둔치는 물억새가 군락을 이루었다. 나는 지나간 가을에 한림 강가로 나가 감국 꽃잎을 따 말려 놓았다. 다른 약재들과 같이 찻물을 달여 낼 때 그 감국 꽃잎도 같이 넣는다. 둔치의 자전거 길을 따라 가니 가동마을로 산언덕이 나왔다. 강변의 산언덕은 야트막했다. 가동에서 이어진 둔치는 술뫼 파크골프장이었다. 비가 오는 중 비옷을 입고 라운딩을 즐기는 골프광이 넷 있었다.
술뫼 파크골프장은 시산동산으로 이어졌다. 4대강 사업 때 강변의 낮은 언덕에 조경수를 심어 놓고 정자를 세워 놓았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이들이 잠시 쉬었다 가는 쉼터이기도 했다. 내가 한림 강둑으로 산책 나가면 으레 정자에 올라 도시락을 비우기도 했다. 이번엔 점심을 들고 길을 나서 정자에서 배낭을 벗어 도시락을 꺼낼 일 없었다. 그래도 정자에 올라 사위를 조망했다.
정자에 서니 술뫼마을 꼭뒤가 빤히 쳐다보였다. 정자에서 내려와 술뫼마을로 향했다. 시산(匙山)이 우리말로 술뫼다. 강변 야트막한 산이 숟가락을 엎어놓는 모습이다. 시산에서 강둑을 따라 계속 걸으면 화포천이 흘러온 샛강에 한림배수장이다. 낙동강 유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배수장으로 홍수 시 큰 도움을 주는 시설이다. 한림배수장으로 가지 않고 지름길로 한림정역으로 걸었다.
한림정역에 닿아 동대구에서 마산으로 가는 무궁화호를 탔다. 객차는 난방이 지나쳐 땀이 날 정도였다, 진영역을 지나 비음산터널을 빠져나가니 창원중앙역이었다. 역사를 빠져나가니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렸다. 창원대학 캠퍼스를 지나 창원 천변을 따라 걸었다. 퇴촌삼거이레서 반송공원 언덕을 따라 내가 사는 아파트까지 걸었다. 나목이 되어가는 메타스퀘어의 열병을 받았다. 20.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