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송년회 캔들 서베이 나레이션

[벽하]

지난 작은음악회 & 송년회에서

촛불켜고 나레이션했던

마인드서베이 원고를 올리라는 누군가의 요청으로......  

2006 송년회 캔들 서베이 나레이션

1960년,

아마 그 무렵 언저리에서

우리는 모두 이 지구별과 인연을 맺었을 게다.

그렇게 시작한 우리 인생 여행이

벌써 마흔 일곱 해 성상을 헤아리게 되었다.

1968년 무렵, 우리는 아마 학교엘 갔을 것이다.

똑같은 교과서에

명찰과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국민보건체조를 배우면서

이제 막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근대화의 여명,

어떤 친구들은 도시를 찾아

농촌에서 서울로 서울로 떠나기도 하였을 것이다.    

1975년,

경제건설과 새마을운동

하루가 다르게 빌딩이 들어서고,

올드팝송과 통기타 선율의 라디오를 들으며

흰 카라와 단발머리 여고생에게

러브레터를 보냈던 아련함이 있었다.

1981년 쯤인가,

우리는 아마 처음으로 투표를 했을 것이다.

주권을 행사한다는 것,

그리고 산업화를 이룬 이 땅에서

민주주의를 만든다는 것,

무엇이 가치일까 고민하면서

아마도 우리는 열심히 살은 대한민국의 역동적 세대였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서

결혼하고 아이들 낳고,

먹고 살기 위해 빠듯이 살면서

집 한 칸 장만하고 기뻤던 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

아이엠에프의 시련 속에

좌절한 날도 있었다.

그렇게 훌쩍,

2000년 새로운 밀레니엄의 세기는

우리를 마흔의 중년으로

책임과 무게를 지웠다.

그리고 2006년.

지난 한 해,

우리는 열심히 만나고, 어울렸다.

광양에서,

설악산에서,

부산에서, 대전에서,

스핀에서,

사당동에서,

인사동에서,

수많은 만남의 공간들과

또, 어느 비오는 날

경복고등학교 운동장 체육대회, 흙탕물에 뒹굴면서도

환한 미소와 여전한 격려는

아직 우리에게 젊음이 남아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낮은바다를 너무 일찍 떠나보내기도 하였다.

그 아림과 허탈감에

서로의 마음 사슬이 슬픔으로 무너져갈 때

다시 서로 마음 일으켜 세우며,

삶과 죽음의 그 언저리에 대한 달관도

깨달을 줄 알았다.

이제, 

47세의 허울을 벗으며,

우리는 내년에 다시 만날 것이다.

48세에도

또 우리는 누구를 떠나보낼지 모른다.

또 우리는 누구를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

또 우리는 누구를 미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새해는 올 해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약 2조억개의 별 가운데,

한 귀퉁이 은하계에서도 어줍잖은 변두리의 태양계,

그리고 그 속에서도 세 번째인 지구별,

작은 나라 한반도 반쪽 땅에서

우리는 살고 사랑했다.

언젠가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글쎄.... 백년 후 쯤이나, 아니

한 오백년쯤 흐른 뒤,

우리의 묘비명도 지워지고,

혹은 이름 석 자 기록도 없어지고,

곳간 카페도 아마 없어질지 모른다.

우리가 하늘의 별이 되어

오늘을 추억할 날이 있다면,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동양의 한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풍족하지는 못했지만,

한 해 함께 태어난 친구들과

만나서 한 시대를 같이 했음을

행복으로 알았노라고....

그들은,

계산 없이 순수했으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어울렸고,

어려운 일에 외면하지 않았으며,

작은 기쁨도 함께 나누었다고....

그래서 이 땅에 살다간 흔적이

그대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로

남아있다고.

그래, 우리는

가정에서 가장이기 전에

사회에서 직장인이기 전에

우리는 갑장들이다.

2007년에 

우리는 마흔 여덟 살이 아니다.

지구가 없어져도 남아있을

우리는 1960년 쥐띠들이다.

우리의 캔버스에 그려질

우리의 화폭에

새로 만나는 새 친구들과는 흥미진진한 새 그림을 그리자.

오랜 친구들과는 곰삭은 정겨움을 그리자.

영원히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겠지만,

그대와 나 우리가 함께 그린 캔버스에는

“사랑한다, 곳간이여”

이렇게 새겨지리라.

친구, 새해에 건강하게 다시 만나자.

아듀 2006, 웰컴 2007...

[eunina2]

감동~~~가슴에 와 닿는 글이네요...좋은 친구들과의 만남이 있어서 더욱더 뜻깊은 한해였던것 같아요~~

[사랑새]

이 글을 보니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일들이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가는데..... 살아 오면서 많은 것들을 지나처 버리고 또 잊어벼렸는데.... 지금에 와서야... 내가 무었을 하면서 살아 왔는지.... 앞으로 내가 얼마를 살아 갈지는 몰라도 곳간에 있는 모든 친구들과 오랜 우정을 가지면서 살아가고 싶은 마음뿐 이네요.... 친구들 모두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오래 오래 살아서 기억에 남을수 있는 날들이 되기를...... 친구들 모두 가정에 행복이 넘치기를......

[초심]

좋은 내용의 글 감사합니다...

[松花]

조용한 분위기에 촛불을 모아들고 괜찮은(?) 목소리의 나레이션 장면을 연상해봅니다. 아마 분위기 최고조였을듯.

[그나친]

촛불 분위기는 영 촌(?)스러워지만, 어둠속의 벽하의 목소리는 오르가즘을 느끼게 하더이다.

[수목화]

정말 좋은 목소리 였읍니다...

[그렌우스]

이 글을 읽으니 정말 깊은 인연이네요 많은 사이트중에 만추의곳간에서 만나는것이 항상 좋은느낌으로 행복했으면 합니다 좋은글 고맙워요

[서해안별빛]

모임에 참석은 못했지만 벽하님 글을 읽으니 숙연해집니다~지구별, 그것도 반쪽짜리 한반도에서 갑장으로 태어난 그대들의 사랑이여~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