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영화계에서 더이상 영웅(hero) 에 대해선
다들 쓸만큼 쓰고 그릴만큼 그리지 않았던가..
(이 역시 사랑이라는 주제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끝없는 단골주제가
될수 밖에 없지만..)
더군다나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볼때 액션(무협)의 고장 중국에서도
홍콩 반환전이나 뒤나 무협보단 가슴따듯한 드라마를 만들어왔던
장 이모우가 왜 하필 영웅이란 주제를 택햇는지 정말 알수 없는 일이다.
영화를 보기전 스틸컷에서부터 그 화려한 색채감에 반한점도 있었지만
왜 장 이모우가 진부한 영웅이란 제목을 택해야만 했는지에 대한 궁금함도
내가 극장까지 달려가 장장 3시간이 넘게 기다려 티켓을 끊은
이유가 되고도 남음이다.(사실 간김에 버틴거다.ㅡㅡ;)
분명 이 무협영화는 다른 무협영화와 다른점이 있다.
그것이 영화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는 아무런 의미가 없던지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며 분명 그것은 내게 강렬한 교훈의 이미지로 왔다.
나는 무협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 예외중 하나가
(동사서독)이었다. 물론 왕가위의 신드롬에 빠졌던 탓도 있지만
그만의 독특한 편집으로 이미지 만드는 능력과 함께
무협영화에서 느끼기 힘든 원초적인 인간의 고독과 고통 절망
(그가 초기부터 주욱 항상 말해왔던..)등을 세심하게 담아낸것이
나에겐 큰 매력으로 다가왔었다.
이제 또다른 무협영화가 나를 설레게 한다.
영화의 첫번째 코드는 역시 색채감.
검정,빨강,파랑,녹색,흰색.
각 색깔이 상징하는 고유한 의미에 주인공들 각각의 캐릭터가 오버랩되고 시작부터 끝까지 이야기는 진실을 향해 한꺼풀씩 벗겨져 간다.
중국대륙을 통일하려는 진나라 왕 "영정"은 오랜 전쟁으로 국내,또는
국외 여러 나라들의 고수들로부터 암살의 표적이다.
그중 가장 두렵고 강한 고수인 "파검"(양조위) "비설"(장만옥) "장천" 을
죽였다고 하여 그들 셋의 무기를 가지고 온 "무명"(이연걸)과 영정이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진중을 꿰뚫어 가는 정신적 대결구도가
큰 중심에 있다.
어찌하여 가난한 고아출신의 백부장 무명이 그처럼 강한 고수 셋을
죽일수 있었는지...
여기서 한가지 무명(이연걸)은 시종일관 진나라의 왕 영정과 함께
검은색으로 일관한다. 이것은 진나라의 위상과 함께 절대 권력, 즉
막강한 무공을 뜻하기도 하지만 영화 끝 진실이 밝혀지면 비로소
숨막히는 대결의 두 주인공이 왜 색에서 반전을 이루고 있지 않은지
암시해준다.
첫번째 색깔은 붉은색.장 이모우의 초기작 (붉은 수수밭)과 (홍등)에서
그 붉은색의 정체성을 충분히 다뤘던 감독인지라 이 부분은 쉽게 알수있엇다.
붉은 색은 시기와 질투의 색깔이다. 붉은 의상을 입은 비설(장만옥)과
여월(장쯔이) 의 그 요염한 아름다움이란 뭐라 말로 할수가 없을정도.
파검과 비설은 깊은 정을 품고 있는 사이지만 파검의 하녀로 자라
파검에 대한 깊은 충의와 사랑을 가진 여월역시 강한 캐릭터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관객에게 진실을 보게해주는 눈을 제공한다.
붉은색을 입고 깊은 정속에서도 질투하고 증오하여 파국으로 가는 이야기중
질투로 파검을 죽인 비설에게 복수하려는 여월, 이둘의 결투장면에서
노란 은행잎이 가득한 배경위에 두 여자의 붉은 의상은 색채감의 극치이다.
고통으로 가득차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여월과 대조적으로
그 고통의 깊이에 있어 여월보다 더 강한, 고통조차 초월한 날카로운
비수같은 슬픔을 가진 비설의 차갑디 차가운 표정.
이 표정과 여월이 쓰러지면서 은행잎이 붉게 물드는 두가지 코드는
고통스럽다 못해 비장하기까지 하다.
또한 영정의 추리에 의한 이야기 푸른색에선 검은색 의상의 무명과
푸른색 의상의 파검이 물위에서 날아다니며(무공으로 물위를 떠다니지만
아무리 무공이라고 집중하고 보려고해도 약간 웃음이 나는 부분이다)
싸우는 부분은 와호장룡의 베스트씬 대나무건너다니며 싸우기에 필적하는
섬세하고도 화려한 액션의 극을 보여준다.
여기서 한가지, 무협액션이란 정말 유치하다면 너무나 유치한 것일수있다.
하지만 그 역시 인간이 하는 액션.(건물폭파나 차부서지는것에비할바가 아니다)
영화 내내 분명 피아노줄타고 공중회전 하는 것임에 틀림없지만
대부분의 장면이 그것을 느끼기 힘들만큼 아주 느리면서도 자연스러운
동작을 만들어냈다. 영화의 첫부분 무명과 장천의 첫대결에서
감탄을 금할수가 없었다.
물론 와이어 액션이 중간중간 어설프고 티도 나지만
대부분이 강한 인상을 남길정도로 리얼했다.
대결함에 있어서 각각의 주인공들이 갖는 표정에도 캐릭터와 이야기의
흐름이 강하게 드러난다.
녹색에선 과거회상으로 영정을 노린 파검과 비월이 영정의 앞까지 침투하고
영정의 목에 상처까지 남긴 절대고수 파검은 암살에 실패한다.
마지막 흰색은 고결한 사랑과 희생의 의미.
이때쯤되면 이야기의 진행속에서 몇번씩 죽었던 사람도 있어서(특히 양조위)
왠만하면 죽어도 슬프지 않다..ㅡㅡ;;
결국 십보안에서는 그 누구도 피할수 없는 쾌검의 달인 무명이
영정의 십보앞까지 가게되고,무기도 없이 어떻게 자신을 죽일것인지
담담하게 묻는 영정에게 영정의 칼을 뺏어 죽이겠다는 무명.
또 그렇게 자신을 죽이겠다는 무명에게 자신의 칼을 뽑아 던져주는
영정...
과연 영웅은 누구일까?
진정한 군주는 백성이 만드는것.
그렇다면 진정한 영웅은 군주인가 백성인가.
감독이 말하려고 한건 절대권력의 옹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천하통일의 취지는 이상국 건설이지만 그 평화를 만들기 위해
치러야 하는 전쟁의 희생이 중요한건지, 대의를 위한 희생이 중요한건지
어떤것이 옳은지를 얘기하려는 것은 분명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천하통일을 꿈꾸는 왕의 개인적,또는 정치적 목적이 아닌
한명의 군주,한명의 진정한 리더를 만들어내는 또다른 영웅들의
고귀한 희생을 말하려고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와함께 진정한 영웅으로 향하는 리더가 가져야할 이상국에 대한
신념과 자신을 향한 굳은 신의를 보여준 한때 적이었던 자의
희생을 통한 충고를 받아들이는 리더의 자세.
한가지 이영화의 흠이라면 역시 액션영화에서의 남성우월.
와호장룡에서 자신의 뛰어난 무공에 집착하고 독보적이고 이기적인
장쯔이에 비해 이를 감싸안는 주윤발은 희생당하면서도 세상 이치를
초월한 달인이었다.
역시 영웅에서도 비설(장만옥)은 파검에 대한 깊은 사랑에도 불구하고
여자로서는 드물게 자신의 조국의 복수, 영정의 암살을 위해 사랑을
버리는 대의적이고도 자립적인 면모를 보이지만 이 역시 파검의 모든것을 초월한 평화정신에는 못미치는 편협한 모습으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그리고 끝까지 의심하여 파국을 맞이하는 어리석은 실수까지.
물론 침대에서밖에 진정한 매력을 보여주지않는 헐리웃 영화에 비하면
많이 업그레이드 된 모습이지만 아직도 멀지 않았나 싶다.
더군다나 영웅을 논하는 이야기인데도 말이다..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이상이 내가 본 영화 영웅에 관한 이야기다.
가급적 안본 사람을 위해 내용은 자제했지만
어디까지나 실제로 봐야만 알수 있는 이미지와 액션,음악이 압권이므로
꼭 추천하고픈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