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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중소기업중앙회 초청으로 제주에 가서 강연을 하고 저녁에는 두북으로 돌아와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김해공항에서 아침 7시 5분 비행기를 타야 해서 두북에서 5시에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함께 동행하기로 한 행자님이 시간을 착각하고 새벽 4시에 찾아왔습니다.
“스님, 제가 시간을 착각했어요. 기다리겠습니다.”
“이왕 준비했으니 지금 출발합시다.”
4시가 조금 넘어 출발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아직 불도 켜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스님은 의자에 앉아 원고 교정을 보며 비행기를 기다렸습니다.
롯데호텔에 도착해 10시 30분부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9.27(화)~30(금) 3박 4일간 롯데호텔 제주에서 전국 업종별·지역별 중소기업 대표 400여 명이 참가하는 「2022 중소기업 리더스포럼」을 개최했습니다. 중기중앙회 창립 60주년을 맞아 중소기업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100년을 설계해보자는 취지로 열린 행사입니다. 스님은 28일에 참석해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주제로 강연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 외에도 3박 4일간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정동 서울대학교 교수, 김수미 배우, 신달자 시인 등 다채로운 강연이 열렸습니다.
스님은 먼저 얼마 전 인도, 로힝야, 필리핀을 방문한 이야기를 나누며 환원하는 삶에 대해 강의한 후 현장에서 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한 분은 평생 일만 하며 살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혼란스럽다며 질문을 했습니다.
평생 일만 하다가 60대가 되었어요
“제가 하고 있는 일은 도금입니다. 지금은 표면처리라고도 하는데, 3D업종의 기본입니다. 30대에 이 일을 시작해서 6개월만 하려고 했는데, 업계의 혁신이나 변화를 이끌다 보니 지금 60대가 다 되어갑니다. (청중 웃음) 봄에 꽃이 피는 줄 모르고, 가을에 단풍 드는 줄 모르고, 겨울에 눈 오는 줄 모르고 일만 했어요.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기까지는 제가 제일 잘하는 것도 일이고 취미도 일일 정도로 살아온 덕분입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저더러 ‘본인의 인생은 어디 있냐’라고 합니다. 또 제가 잘 아는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당신은 지금 노화가 오고 있는데 왜 준비하지 않느냐? 왜 계속 브레이크가 없는 삶을 사느냐?’라고 해요. 저는 ‘나는 아직 진행형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남들에게 24시간이 저에게는 12시간처럼 짧게 느껴지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가끔 마음에서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언제쯤 내가 일을 놓을 수 있지?’ 이런 의문이 들어요. 그렇게 자문해 봐도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 있더라고요. 지금의 혼란스러운 제 삶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하루 8시간만 일하고 나머지는 휴식이 필요하다는 건 남의 일을 하는 사람이 하는 소리입니다. (청중 웃음)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은 몇 시간 일한다는 게 없어요.
예를 들어 볼게요. 우리가 여기서 전부 춤을 춘다고 합시다. 무대 아래에서 춤추는 사람들은 전부 돈을 3만 원씩 내고 들어와서 춤을 춰요. 그런데 무대 위에서 전문으로 춤을 추는 사람은 30만 원씩 받고 춤을 추는 거예요. 그런데 3만 원 내고 추는 사람을 보고는 ‘논다’고 하고, 30만 원 받고 춤을 추는 사람을 보고는 ‘일한다’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돈을 주고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 돈이 목표가 아니라 행위가 목표라는 뜻입니다. 춤을 추는 행위가 목적이지, 돈이 목적인 게 아니에요. 돈이 들더라도 나는 춤을 추겠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춤을 추는 주체가 자기예요. 그런데 돈을 받고 추는 사람은 돈 때문에 춤을 추는 거예요. 그러니 행위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돈입니다. 돈을 목적으로 해서 내가 이 행위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경우에는 돈이 주체이고 행위가 객체예요. 이게 바로 남의 일을 하는 거죠.
춤추는 시간을 한 시간으로 합의해 두었는데, 한 시간이 딱 끝나자마자 진행자가 ‘30분 연장!’이라고 소리쳤어요. 그러면 무대 아래에 있는 사람은 30분 더 늘어났다고 좋아합니다. 반면에 무대 위에 있는 사람은 일을 더 시킨다며 시위를 합니다. (청중 웃음)
그렇다면 춤추는 게 놀이일까요? 춤추는 게 노동일까요? 춤을 추는 건 똑같습니다. 여기서 내가 행위의 주체가 되면 놀이가 되고, 내가 행위의 객체가 되면 노동이 될 뿐이에요. 이 원리만 잘 알면 노동과 놀이를 일치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노동 따로 놀이 따로 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노동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그 스트레스 풀려면 놀아야 하는 식으로 노동과 놀이가 구분돼 있어요.
제가 볼 때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의사 같은 직업이에요. 항문외과 의사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남의 항문만 쳐다봐야 해요. (청중 웃음) 이비인후과 의사는 매일 남의 목구멍, 콧구멍, 귓구멍만 종일 쳐다봐야 해요. (청중 웃음) 정신과 의사는 매일 정신 나간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 게 일이에요. (청중 웃음) 이렇다 보니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겠죠. 그런데 왜 그 일을 할까요? 돈을 많이 벌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가 없습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에 좋은 자동차를 사거나 큰 집을 사거나 좋은 술을 마시는 거예요. 이래야 하루 종일 하는 이 힘든 일에 정당성이 주어지잖아요.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이 낭비가 심한 이유도 그래서예요. 안 그러면 자기 삶에 대한 정당성이 떨어지니까요.
그런데 여러분은 오너잖아요.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걸 가지고 시간을 얼마로 정해두고 한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24시간 하셔야 해요. (청중 웃음) 자면서도 하고, 밥 먹으면서도 하고, 똥 누면서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다 놀이가 돼야 해요. 일이 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따로 놀이가 필요 없어요. 남의 일을 하는 사람은 8시간 일하면 4시간은 스트레스를 푸는 놀이를 따로 해야 하지만, 여러분은 24시간 놀고 있잖아요. (청중 웃음)
사람들이 저더러 ‘스님은 출가해 가지고 왜 그렇게 잠도 안 자고 무리하게 과로하시느냐’라고 하지만, 저는 늘 놀아요. (청중 웃음) 만약에 제가 오늘 여러분께 강의료를 받고 강의를 한다면 이건 일이에요, 놀이예요?”
“일이요.” (청중 웃음)
“그런데 제가 강의료를 안 받는다고 하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해요. 저는 일하기 싫거든요. 놀고 싶죠. (청중 웃음) 여러분을 만났을 때 그냥 편안하게 대화하고 얘기 나누고 싶어요. 그러니 돈을 안 받으면 가고 안 가고를 내가 결정해요. 누가 부른다 해도 갈 건지 말 건지는 내가 결정하고, 또 거기 가서도 아무런 부담이 없어요. 강의를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고요.
그런데 만약에 강사료를 받는다면 사정이 달라지겠죠. 여기는 300만 원 준다 하고, 저기는 500만 원 준다 하고, 저기는 1천만 원 준다 하면 조금 고민이 생기겠죠. (청중 웃음) 두 강연 시간이 겹치면 ‘이거 취소하고 저걸 받아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어요? 그래서 제가 강의료를 일절 받지 않는 겁니다. 그것은 제가 자유롭고 가볍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예요.
저는 여러분에게 뭘 팔러 온 사람이 아니에요. 지금 어렵게 기업 하시는 분들의 모임이 있다고 해서 오프라인에서는 3년 만에 처음으로 강의를 하는 거예요. 그동안은 한 번도 안 했어요. (청중 박수)
요즘 중소기업들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특히 물류비용이 많이 올랐죠. 여기서 미국에 수출하려면 2개월 걸리던 게 지금은 8개월, 1년씩 걸려요. 노동자는 안 구해지고요. 그런 어려움을 제가 알고 있기 때문에 ‘아, 내가 가서 말로라도 힘을 좀 보태야 하겠다’ 이렇게 해서 같이 얘기를 나눠보려고 왔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일을 놀이 삼아하셔야 합니다. 제가 지금 놀이 삼아하잖아요. 이게 일과 놀이의 통일입니다. 여러분의 노동을 놀이화시켜야 합니다. 그걸 일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월급이 많네 적네, 시간이 기네 짧네’ 하는 것은 남의 일을 해주고 돈을 받는 사람들이 하는 생각입니다. 결국 기본적으로 남의 일을 할 때는 어떻게 하면 일을 적게 하고 수월하게 하면서 월급은 많이 받을까 궁리하게 돼요. 반면에 고용한 사람은 어떻게 하면 일은 많이 시키고 월급은 적게 줄까 궁리하죠? (청중 웃음) 그래서 양쪽의 이해가 충돌하는 거예요.
저는 어느 편도 아니기 때문에 이해관계의 충돌을 이해해요. 그런데 기업가의 입장에서 이 점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기업이 잘 되려면 노동 인력이 안정돼야 해요. 안정되는 방법은 간단해요. 직원들이 월급을 다른 데보다 좀 더 많이 받는데 일은 수월하다면 노동자가 이 기업에 오래 있겠죠. 반대로 노동자들에게는 제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당신의 생활이 안정되려면 기업가들의 요구를 만족시켜 줘야 합니다. 당신이 있는 것이 기업에 조금이라도 득이 돼야 할 거 아니에요? 손해가 되는데 왜 데리고 있겠어요?’
그러니 양쪽 모두 조금이라도 내가 기여한다는 태도를 갖는 게 중요해요. 100원을 벌면 50원만 가져가고 1000원을 벌면 500원만 가져가겠다고 할 때 노사의 조화가 이루어집니다. 서로 자기만 생각하면 갈등만 생기는 거예요.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어떻다고 제가 굳이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이게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지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고용한 사람에 대해서는 그런 관점을 갖고 고려해 주셔야 합니다. 그들의 요구를 ‘말도 안 된다’ 이렇게 내치지 말고 정당하게 받아들여야 해요. 그걸 받고 안 받고는 내 자유예요. ‘그 요구가 이해는 되지만 나는 그렇게는 할 수 없다’ 이럴 수는 있지만 ‘터무니없다!’ 이렇게 접근하면 갈등밖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는 일을 놀이 삼아해 보세요. 기업주가 노동자가 되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 늘 놀이 삼아, 시간 정하지 말고 해 보세요. 그런데 밥도 안 먹고 일하면 바보예요. 다 밥 먹으려고 하는 일인데요. 잠도 안 자고 일하면 그것도 바보예요. 몸에는 휴식이 필요합니다.
남들이 하는 일에 다 끼고 경쟁해서 이기려고 하지 마시고 ‘틈새’를 노려보세요. 이 세상에서 필요로 하지만 아무도 안 하는 일들도 많습니다. 아무도 안 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예요. 돈이 조금 덜 되기 때문이에요. (스님 웃음) 그런데 그런 일을 찾아서 잘하시면 나중에 다 이익이 됩니다. 너무 지금 당장 돈 되는 일, 주식 사고 아파트 사서 돈 버는 일은 누구나 다 하려고 해요. 그런 방법은 쉽다면 쉬우니까요. 그러니 여러분이 조금 재미 삼아하는 동시에 사회에 기여하려면 뭐 꼭 ‘큰돈을 벌어서 나중에 다 보시해야지’ 이럴 게 아니라 내가 하는 일 자체가 의미를 갖도록 해보세요. 이 세상에 필요한데 아무도 안 하려 드는 일이 있다면 그런 걸 개발해서 내는 것이 혁신이지, 꼭 첨단기술이 혁신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요?
저는 과학기술은 아니지만 제 삶 역시 첨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중 웃음) 오늘날의 부부 갈등이나 심리적인 불안은 하나님이나 부처님을 믿는다고 해서 해결이 잘 안 돼요. 정신질환을 겪는 젊은이들이 거의 20% 이상, 30%에 육박하고 있어요. 이런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몸의 건강을 위해서 각 지역에 보건소를 배치하고 학교마다 영양사를 배정하듯이, 정신적인 문제를 상담할 수 있는 상담사를 학교마다, 동마다 배정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애 낳아라!’ 이러지 말고, 아이를 낳으면 그 부담이 더 이상 부모에게만 지워지지 않도록 정책을 개선할 수도 있겠죠.
이처럼 세상에서 필요로 하지만 사람들이 관심 갖지 않는 부분에 우리가 계속 관심을 갖고 제안하고 만들어 나가는 거예요. 이런 투자는 10년, 20년, 30년을 내다보고 꾸준히 계속해야 빛을 볼 수 있어요. 그런 쪽에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또 전통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면 세상이 뭐라고 하든 그걸 한번 고수해보는 자세를 가져 보든지요. 너무 돈에만 매달리니까 인생이 불안해지는 거예요. 돈은 벌되 세상에 좀 유용한 일을 한다는 관점으로 살면 훨씬 스트레스를 덜 받고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청중 박수)
강연장 밖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와 박수소리에 강연을 하는 사이 청중이 점점 더 늘어났습니다. 두 명이 질문을 하자 정해진 시간이 끝났습니다. 하지만 청중들의 뜨거운 요청으로 한 분의 질문을 더 받고 총 세 명의 질문을 받은 후 강연을 마쳤습니다.
중소기업중앙회 회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오후 3시 비행기를 타고 5시가 넘어 두북에 돌아왔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접속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지난 3주 동안 영상으로 보셨듯이 여러분이 매월 내는 회비와 여러분이 매일 정진하고 보시한 돈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양식과 약이 되고, 아이들에게 배움의 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토회가 문경에 수련원과 연수원을 마련하고, 서울에 정토사회문화회관을 마련하는 데에 잘 쓰였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이어서 지난 주말에 구미 아도모례원에 열린 용성조사 오도일 기념행사 및 대구경북 지부 회원의 날 행사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나서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세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스님이 가난한 나라에 가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며 어떤 삶을 살면 좋을지 질문했습니다.
봉사하는 삶과 제 삶이 비교가 되어 불편해요
“얼마 전에 인도와 필리핀 다녀오신 영상을 너무 감동적으로 봤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 나도 저렇게 봉사하며 살아야겠다’ 하고 마음먹었지만, 막상 제 삶을 보니까 비싼 공연을 보고 오는 길에 ‘이 돈이면 축구공을 몇 개나 살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좀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이제 막 수행자의 삶을 살아보자는 마음을 내긴 했지만, 여행도 안 다니고 공연도 안 보고 보시와 봉사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요? 갈등이 생겨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초발심자가 여행도 안 다니고, 비싼 옷도 안 입고, 비싼 음식도 안 먹고, 그 돈을 다 보시하면 좋죠.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 소리예요. 물론 그렇게 하면 좋죠. (웃음)
그런데 그렇게 안 한다고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좋은 일이에요. 그러나 그렇게까지는 못 한다면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돼요. 교회에서는 ‘십일조’라고 해서 수입의 10분의 1을 헌금으로 내잖아요. 예를 들어 공연 관람료를 10만 원 냈다면, 그 공연을 포기하고 10만 원을 다 보시하지는 못하더라도 10만 원짜리 공연을 볼 때 ‘십일조’를 내는 거예요. 즉 1만 원은 보시하는 거죠. 3만 원짜리 음식을 먹을 때 3천 원은 보시하고요. 일상생활에서 일일이 그렇게 절약할 수는 없지만 ‘수행자로서 내가 좀 과한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 때는 그렇게 하면 좋아요. 물론 공연이나 여행을 안 가고 그 비용을 고스란히 보시하면 제일 좋겠죠. 그런데 질문자 수준에 그 정도는 어렵지 않겠어요?”
“네, 맞습니다.” (웃음)
“공연은 봐도 괜찮아요. 공연을 보되 그 비용 중 일부는 보시를 하고 보면 더 좋다는 겁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천일결사에 동참한 사람에게는 어려운 사람을 위해 하루에 1달러는 보시금을 내고 하루를 시작하라고 기준을 정한 거예요. 내가 검소하게 살면서 대부분을 보시한다면 가장 좋지만, 그렇게까지는 못 하더라도 그들의 하루 생존에 필요한 비용이 1달러니까 1달러는 내놓고 화장을 하든지 외출을 하든지 영화를 보든지 하자는 거죠.
그래서 지금 정토회 천일결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하루에 최소한 1달러씩 보시하기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요즘 환율로 1달러면 1400원은 내야 하고, 며칠 더 있으면 1500원은 내야 할 거예요. 30년 전에는 1달러 환율이 800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루 1000원씩 모으기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해 왔거든요. 요즘 생활수준이나 물가까지 계산해서 반영하면 최소한 매일 3000원을 내는 정도는 되었을 거예요. 달러로만 계산해도 지금 하루에 2000원씩 매일 낸다고 볼 수 있는데, 그때 벌써 지금의 3000원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을 매일 기꺼이 낸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의 생활수준이 더 높아졌으니까 돈을 더 내야 할 텐데, 그대로 유지하다 보니 30년 동안 내는 돈이 가치로 따지면 오히려 떨어진 셈이에요. 그래도 1만 일 동안은 1000원씩 내기로 했으니까 환율이나 물가가 뛰어도 변함없이 하루 1000원씩 보시를 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라도 내야 좀 양심의 가책을 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특히 본인이 좀 사치한다 싶거나 세상 사람들에게 조금 미안할 정도로 돈을 쓴다 싶을 때는 십일조 정도는 내라는 얘기예요. 이렇게 특별 보시를 하면 가장 좋지만, 그걸 안 해도 매일 천일결사 기도를 하면서 약속한 최소한의 보시금인 1000원씩은 보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대신 꼭 해야 하는 건 있어요. 이렇게 살면서 내 삶에 대해 불평하는 일은 적어도 하지 않아야 합니다. 부처님처럼 누더기 입고, 부처님처럼 걸식하고, 부처님처럼 나무 밑에서 사는 게 원래 수행자입니다. 그렇게까지는 못 살더라도, 지금 이렇게 밥 먹고 옷 입고 좋은 집에 자면서 불평을 한다면 수행자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좀 부끄럽지 않을까요?
더 아껴서 검소하게 살고 더 많이 보시하는 것은 권장할 일이긴 하지만, 그걸 안 한다고 나쁜 건 아니에요. 그러나 불평불만을 한다면 수행자의 자격이 없지 않을까요? 이렇게 관점을 가지고 생활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스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좀 가벼워졌고,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고 하다가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이 생각났습니다. (웃음) 제가 깜냥도 안 되면서 스님의 너무 훌륭한 모습을 보고 ‘저렇게 살아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살면 좋다니까요.” (웃음)
“네. 앞으로는 즐거움을 위해서 돈을 쓴 뒤에 죄책감을 갖는 악순환에 빠지지 않고, 놀았을 경우 조금이라도 보시하면서 좀 편안한 마음으로 수행을 해나가 보겠습니다. 그러면 조금씩 스님을 닮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보았습니다.”
“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대화를 다 나누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내일은 경전대학 생방송 수업 제4강이 있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