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ly Knowledge knows,
and only Knowledge can take you there.
앎, 오직 앎만이 있을 뿐이며,
앎만이 그대를 그곳으로 인도한다.
And the fewer distraction you have,
the more that you can feel the pull of Knowledge,
the deeper power and presence of Knowledge.
산만함이 적을수록,
그대는 더 많은 앎의 끌어당김,
앎의 부름, 앎의 심오한 힘과 현존을 느낄 수 있다.
The mind can only follow.
마음은 단지 따를 수만 있을 뿐이다.
不守自性隨緣成 불수자연수연성
It cannot define.
It cannot govern Knowledge.
정의 내릴 수 없고,
지식으로 통제할 수 없다.
It can only yield and become a responsible participant.
마음은 단지 양보하고 책임 있는 참여자가 될 수 있다.
For your mind is really a vehicle of communication in the world.
당신의 마음은 실제 세상에서 소통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That is what it really is.
이것이 바로 마음의 실체이다.
You think it who you are.
당신은 자신이 누구라 생각하는가.
You think you thoughts and your feelings your ideas represent and define who you are, but that is not who you are.
당신의 생각, 느낌, 아이디어가 당신의 실체를 대변하고
정의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당신의 실체가 아니다.
If that were who you are, you would truly be pathetic and very powerless in the world.
만약 그것들이 당신이라면,
세상에서 당신은 진실로 애처롭고 매우 무기력할 것이다.
Your body and your mind are vehicles of communication and expression in this world.
몸과 마음은 이 세상에서 의사소통과 표현의 도구이다.
They must follow what Spirit, or Knowledge within you, is determining.
몸과 마음은 영적인 것 또는 그대 내부의 앎이 결정하는 것을
따라야 한다.
Sprit will not follow them.
The be body serves the mind, the mind serves the Spirit, the Spirit serves God.
영은 몸과 마음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몸은 마음에 봉사하고 마음은 영에 봉사하고,
영은 신에게 봉사한다.
That is the true hierarchy of your Being.
That is the real meaning of power within your existence.
이것이 당신 존재의 진정한 위계질서이다.
이것이 당신 존재 안의 힘의 진정한 의미이다.
There is bargaining here.
이곳엔 타협이란 없다.
Knowledge lives within you.
앎은 그대 내면에 살고 있다.
You cannot change it.
앎을 바꿀 수는 없다.
You can determine whether it can arise within your mind.
마음 안에서 그대는 앎이 일어나게 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You can determine whether it will express itself in your life.
그대 삶에서 앎 스스로가 드러나게 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You have a real choice in this matter.
선택권은 바로 당신에게 있다.
You can decide whether you will experience it, whether you will follow it and whether you will carry out what it gives you to do.
앎을 경험할 것인지, 앎을 따르며 앎이 그대가 해야 할 것이라고 넘겨준 것을 수행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In this, you have a real choice in the matter, and a fundamental and consequential choice at that.
이제는, 그대는 이 문제의 진정한 선택,
근본적이고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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