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이윤학
오리가 쑤시고 다니는 호수를 보고 있었지.
오리는 뭉툭한 부리로 호수를 쑤시고 있었지.
호수의 몸속 건더기를 집어삼키고 있었지.
나는 당신 마음을 쑤시고 있었지.
나는 당신 마음 위에 떠 있었지.
꼬리를 흔들며 갈퀴손으로
당신 마음을 긁어내고 있었지.
당신 마음이 너무 깊고 넓게 퍼져
나는 가보지 않은 데 더 많고
내 눈은 어두워 보지 못했지.
나는 마음 밖으로 나와 볼일을 보고
꼬리를 흔들며 뒤뚱거리며
당신 마음 위에 뜨곤 했었지.
나는 당신 마음 위에서 자지 못하고
수많은 갈대 사이에 있었지.
갈대가 흔드는 칼을 보았지.
칼이 꺾이는 걸 보았지.
내 날개는
당신을 떠나는 데만 사용되었지.
-이윤학 시집『그림자를 마신다』(문학과지성사,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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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학의 다섯째 시집『그림자를 마신다』속의 시「오리」를 읽는다. 나는 이 시를 읽고 이윤학 시인의 별명 혹은 애칭이 ‘오리’가 아닐까 싶었다. 시의 화자(話者)는 오리다. 이 오리가 말을 건네는 상대는 그가 지난 날 한동안 머물고 살았던 호수다. 시의 전체 내용은 오리(나)가 호수에 머물며 사는 동안 호수(너)의 마음에 상처만 남기고, 또 나는 가보지 않은 데가 많아 눈도 어두워 상처만 남기고 그 호수를 떠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너’라는 처소에 머물다 떠나와 버린 ‘내’가 그 때 너와 나의 어긋난 관계에 대한 회억(回憶)이 시의 내용이다. 이 시에서도 이윤학 시인의 시적 특장인 진정성과 묘사의 시작 태도가 두드러진다. 그는 섣불리 독자에게 설득하려 하거나 무얼 전달하려고 안달하지 않는다. 그저 풍경을 그려내고만 있다. 그렇게 그려낸 풍경 위에 시인 자신의 솔직한 삶을 가만히 얹어놓고 있다. 이를테면 풍경의 내면화다. 그 풍경화가 독자에게 깊이 있게 스며드는 것은 쉽게 독자에게 교훈적 내용을 전달하려는 진술이 앞서지 않는 묘사의 힘과 자신의 지난 삶을 성찰하려는 내용의 진정성에 있다 하겠다. 시의 마지막 두 행의 “내 날개는/당신을 떠나는 데만 사용되었지.”라는 시적 화자의 저 회한(悔恨)의 목소리가 내 몸에 깊은 울림을 퍼 올린다. 시인이여! 상처가 없는 우리네 삶이 어디 있겠는가? 무슨 도리가 달리 있는가, 삶의 아픔과 상처를 안고 노래하며 한 세상 건너갈 수밖에.
-이종암(시인)
<경북매일신문> 9월 1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