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적인 꽃향기 속에서(418) – 고마리(2)
고마리
2023년 9월 21일(목), 세곡천
다른 꽃들도 그렇지만 고마리꽃도 서로 비슷해도 똑같은 꽃은 하나도 없다.
우리들의 얼굴 생김생김이 서로 다르듯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교한 유리세공품처럼 예쁘다.
함께 올린 글은 중국의 석학 임어당(林語堂, 1895~1976)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생활의 발견(원제 : The
Importance of Living)』(박병진 역, 육문사, 1993)에서 몇 구절 골랐다. ‘제5장 누가 인생을 가장 잘 즐기는가’에
서 ‘3. 냉소 ㆍ 어리석음 ㆍ 도회(韜晦)--노자(老子)’에서 골랐다.
지독하게 교활한 노자의 노회(老獪) 철학은 옛부터 중국인의 최고 이상인 평화 ㆍ 관용 ㆍ 소박 ㆍ 지족(知足) 정신
의 바탕이 돼 왔다. 이것은 얼핏 보기에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이다. 이 같은 가르침에는 어리석은 이의 예지 ㆍ
도회(韜晦)의 유익 ㆍ 약자의 힘, 또는 진실한 뜻에서의 회의로 일관하는 자의 소박함이 내포돼 있다. 나무꾼이나
어부의 자연생활에 대한 시적 환상과 찬미에 차 있는 중국 예술은 이 같은 철학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중국인의 평화주의의 밑바닥에는, 인생 다소의 손실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고, 행운이 돌아오는 걸 기다리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있는 것으로, 그것은 다음과 같은 신념에 기인한다. 즉 동(動)과 반동(反動)의 법칙에 의해 운행되고
있는 자연을 그 모태(母胎)로 하는 만물의 도식(圖式) 속에는 영구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자도 없거니와 평생
역경에 헤어나지 못하는 <큰 바보>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큰 지혜는 우둔함과 같고,
참된 웅변은 도리어 눌변(訥辯)과 같다.
자꾸 움직이면 추위를 이기고,
가만히 있으면 더위를 이긴다.
조용히 덕을 베풀면 천하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자연의 큰 도(道)에 있어서는 영원히 우위(優位)에 있는 자도 없거니와, 평생 역경에 헤어나지 못하는 큰 바보도 없
다는 것을 알게 된다. 노자는 「현인은 그 다투지 아니함으로 인하여 세상 또한 이와 다투는 일이 없다」고 했다. 그는
또 이렇게도 말하고 있다.
힘으로 밀고 나가는 자는 곱게 죽지 못한다.
나는 이 교훈을 가르침의 근본으로 삼으련다.
현대인이라면 여기에 덧붙여서 이렇게 쓸 것이다. 「비밀 경찰의 도움 없이 독재를 강행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데려
오라. 나는 그 부하가 돼 주마.」 그래서 노자는 말하는 것이다. 「천하에 도(道)가 서면, 군마(軍馬)는 물러나서 밭을
갈리라.」
훌륭한 장군은 남을 앞지르지 아니하고,
전쟁에 능한 사람은 격분하지 않는다.
적을 잘 이기는 자는 어울려 싸우지 아니하고,
사람을 잘 부리는 사람은 겸손하게 행동한다.
이를 일러 다투지 않는 덕이라 하고,
이것을 일러 사람을 부리는 힘이라 하며,
이를 일러 하늘의 도(道)와 짝한다 하거니와,
옛날 도(道)의 극치인 것이다.
동(動)과 반동(反動의 법칙은 힘에 대항하는 힘을 낳는다.
도(道)로써 임금을 돕는 사람은 병력으로 천하에 강함을 나타내지 않거니와,
그 일은 되돌아오기를 잘 하기 때문이다.
군대가 머물렀던 곳에는 가시나무가 생겨나고,
큰 전쟁 뒤에는 반드시 흉년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명장(名將)은 목적을 달성하는 데 그칠 뿐,
구태여 강함을 취하려 하지 않는다.
목적을 이루되 자랑하지 말고,
목적을 이루되 뽐내지 말고,
목적을 이루되 마지 못해서 해야 하고,
목적을 이루되 강하게 굴지 말아야 한다.
모든 사물은 강장(强壯)하게 되면 노쇠하는 법,
이를 일러 도(道)에 어긋난다 하거니와,
도에 어긋나면 일찍 망하게 된다.
약자의 힘 ㆍ 평화에의 승리 ㆍ 스스로 낮추는 것의 유익함을 노자보다 효과적으로 논한 사람은 지금까지 없다.
노자에게 있어서는 물은 영원히 약한 자의 힘의 상징이어야 한다. 조용히 한 방울씩 떨어져 바위에 구멍을 뚫는
저 물, 가장 낮은 데 처하려고 하는 위대한 노자와 같은 예지를 갖춘 저 물.
큰 강이나 바다가 온 골자기의 왕이 됨은,
그것이 낮게 처하여 겸허하기 때문이다.
나는 노장사상(老莊思想)의 학설을 요약하여 다음 한 구절로 만들었다
.
어리석은 자의 슬기,
침착함의 멋,
미련함의 묘리(妙理),
하찮은 이익.
기독교도에게는 정녕 산상의 설교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산상의 설교나 마찬가지로 아마 별다른 감명도 받지
않을 것이다. 그 설교의 복음에 대해 노자는 ‘어리석고 못난 이에게 축복이 있으라, 그가 지상의 가장 행복한 자이
니’하고 덧붙였는데, 꽤나 교활하다. 노자의 유명한 구절 ‘진짜 완전한 것은 어딘지 모자란 듯 보이고, 진짜 웅변은
눌변으로 보인다’에 따라서 장자는 ‘작은 지혜에서 떠나라’고 말했다.
8세기 사람, 유종원(柳宗元)은 근처의 산을 <우구(愚丘>라 부르고, 옆을 흐르는 내를 <愚溪>라 칭했다. 18세기 사
람 정판교(鄭板橋)에게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어리석음도 어렵고, 어짐도 어렵다. 그러나 어짐을 끝내고 어리석
음으로 돌아가는 길은 더더욱 어렵다.’ 중국문학에서 어리석음의 찬미가 그친 적이 없다. 이런 태도를 지니는 예지
는 원래 미국인도 다음과 같은 속담을 통해 이해된 일이 있다. ‘영리함도 정도껏’이라는 그러므로 으뜸가는 현인은
때로는 <몹시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중국인의 교양 속에는 기괴한 현상이 눈에 띄는 것으로서, 그것은 자기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높은
지성이며, 그리고 내가 아는 바로는, 유일한 무지(無知)의 복음과 옛사람의 도회설(韜晦說)을 발전시켜 처세의 가장
좋은 무기로 삼는 높은 지성이다.
장자의 이른바 ‘작은 지혜에서 떠나라’는 권고와 어리석고 못난 이의 예찬은 그 차이가 근소하다. 그것은 거지나
산림에 묻혀 사는 선인(仙人)이거나 괴짜 중이나, 혹은 도적수(屠赤水)의 『명료자(冥寥子)』에 나오는 색다른 은자
(隱者)들을 그린 중국의 회화나 문학적 스케치 속에 언제나 반영되어 있다. 누더기를 걸친 가엾은 반미치광이 중이
최고의 예지와 품성의 숭고함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고 보면, 이 같은 총명한 인생의 깨달음은 낭만적이며 종교적인
맛을 띠기에 이르고, 드디어 시적 환상의 세계로 드나드는 것이다.
중국의 역사에는 유명한 우인(愚人)이 많다. 모두가 정말 미쳐 있거나 또는 미친 체하거나 하는 사람들로서, 대단히
이름도 떨치고 사람들에게 사랑도 받고 있다.
이런 사람들 중에 이를테면 송나라 때의 저 유명한 화가 미불(米芾)이 있다. 미전(米顚, 반 미치광이)이라고도 하는
데, 자신이 의부(義父)라 부르는 기암(奇巖)의 일각을 예배하기 위해 예복을 입고 간 일이 있고부터 이 별명을 얻은
것이다. 이 미불과 원나라 때의 화가 예운림(倪雲林)은 약간 속세에 대한 공포증이 있었다. 즉 까다로운 결벽증이 있
었다. 또 유명한 괴짜 중으로는 시인인 한산(寒山)이 있다. 쑥대머리에 맨발로 나다니며, 이 절 저 절의 부엌에서
기묘한 삯일을 하고는, 먹다 남은 밥을 얻어 먹고 절이나 벽에 불후의 시를 남겼다.
(…)
이 밖에도 그만은 못하지만 16세기, 17세기의 위대한 낭만파의 천재들은 우리나 마찬가지로 버젓한 정상적인 사람
들이지만, 그 괴이하고 익살스러운 풍채나 언행을 통하여 일반에게 기인이나 광인의 인상을 주기 쉽다.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에 서문장(徐文長) ㆍ 이탁오(李卓吾) ㆍ 김성탄(金聖嘆)이 있다(이 마지막 사람은 문자 그대로
<성탄(聖嘆)>으로, 그가 태어날 때 마을 향교 속에서 이상한 탄성이 들렸다 하여 자기가 붙인 이름이다).
첫댓글 고마리꽃이 이렇게 예쁘네요^^ 구경 잘했습니다^^
꽃이 아주 작아 그냥 지나치기가 쉽습니다. ^^
흰색만 있는 고마리도 나름 이뻐네요.
고마리는 볼 때마다 유리세공품이 생각납니다.
작은 꽃들이 자세히 보면 더욱 에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