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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문화는 사회적 폐습이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일명 김영란법)이 마침내 '통과'되었다. 물론 국회를 통과한 것은 작년 3월이었다. 하지만 이 법에 관해 의문을 가진 일부 사람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이 오랜 계류 기간을 거쳐 바로 며칠 전(7.27) 합헌판정을 받은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워낙 앞길을 잘 막는 기관이다 보니, 헌재의 판단이 있고나서야 비로소 법이 모든 관문을 통과한 느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많이 양호한 편이다.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우리 헌재는 실적면에서 가장 우수하다. 사회권, 노동기본권, 공안사건에서 존경과 신뢰를 잃어서 그렇지 자유권 관련 사건에서는 매우 좋은 판례를 많이 남겼다고 본다. 이 시각에서 봐도 청탁금지법은 자유주의 차원의 사안이라서 헌재의 재판관들의 이해도를 높인 것 같다. 현재 제시된 김영란법은 난해한 것이 흠이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각양각색의 접대형태와 부당청탁의 예를 망라하다보니 정리하기가 힘들다. 다행히도 이 법은 정부입법안으로 발의된 것이고, 대통령이 국회의장에 처리를 부탁할 정도의 관심을 쏟은 것이니만큼 향후 시행령 제정과 집행단계에서 공공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훨씬 명확하고, 단순화시켜 시행에 나서리라고 본다. 현재 정부가 이것 하나만 확실하게 해도 엄청난 업적을 남기는 것이다. 이 법은 잘못된 문화를 법으로써 바로 잡고자 하는 것이다. 법을 통한 사회개혁, 즉 법의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적 기능에 해당한다. 본래 문화는 문화의 영역에 맡겨 서서히 변화되게 하는 것이 순리겠지만, 때로는 법을 수단으로 강제적인 사회규제도 필요하다. 과거 군사정권에서도 가정의례준칙으로 과도한 허례허식을 규제하는 일이 몇 번 있었던 것으로 안다. 자율에 맡겨서 되지 않는 경우에는 정부에 의한 행정지도 혹은 사회단체에 의한 계몽운동을 벌여야 한다. 그것도 안될 때에는 행정강제로 수술을 단행할 수밖에 없다. 헌법의 전문(前文)에서도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는 타파"한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접대문화는 사회적 폐습에 해당한다. 접대문화는 일정한 이해관계가 있거나 혹은 높낮이를 가진 사람들 간에서 주로는 낮은 위치의 사람이 높은 위치의 사람에게 과분한 선물이나 식사 혹은 편의제공을 하는 관행이다. 그런 점에서 접대문화는 평등관계보다는 불평등관계 특히 수직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과거에 국가 사이에 외관으로는 평등하지만 정기적인 조공을 바침으로써 우호관계를 유지할 수 있던 것과 비슷하다. 이렇게 보면 접대문화는 민주사회에 역행한다. 평등관계에서의 대화와 의사결정을 저해한다. 접대라는 매개고리로 대화는 지속되지만 거기에서 산출되는 의사결정은 왜곡과 불합리를 수반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은 제3의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접대문화와 왜곡된 의사결정구조가 전 사회에 만연해 있다고 하자. 아니 이것은 가정법이 아니라 현실태이다. 우리나라는 부정부패지수 40위권에 들어가 있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20위, 10위 이내로 진입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3위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부정부패 줄이는 것은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못할 이유가 없다. 이참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보자. 쓰레기분리수거, 버스정류장 줄서기 등도 몇 년 훈련하다보니 세계 최우수선상까지 왔는데 접대문화 못 고칠 이유가 없다. 이렇게 해서 청탁금지법이 어느 정도 정착되면, 또 다른 문제 즉 이해관계충돌의 문제라든가 지나친 집단회식문화 등으로 부정부패의 핵심고리를 풀면서 깨끗한 한국으로 바꿔야 한다. 이런 바탕이라면 이제 복지국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복지국가는 많은 사람들의 시민의식이 높아져야 가능하다. 지금은 가뭄에 콩 나듯이 청렴 강직한 사람들이 있지만, 청결한 선진사회가 되면 가뭄에 콩 나듯이 부정부패한 사람들을 찾게 된다는 점이 다르다. 지금은 소수만이 위인전에 편입되는 사회지만, 향후 사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인전에 포함시킬 수 있는 사회, 즉 위대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런 사회를 꿈꾸고 만들면 좋겠다. 글 | 강경선(방송통신대 헌법학 교수)
김영란법 시대의 네 가지 화법 "그는 서서히 젖어들었다." 지난주 금요일 구속 기소된 진경준 검사장에 대해 한 검찰 간부가 내린 평가다. 김정주 넥슨 창업주 등과의 거듭된 만남, 오가는 선물 속에 영혼이 마비돼 결국 "꼭 내 돈으로 사야 하냐"며 공짜 주식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그렇게 서서히 부패에 젖어든 것이 진경준만일까. 그는 극단적인 우화일 뿐이다. 지금까지 검찰이 기업 압수수색을 할 때마다 법인카드 사용 장부에서 숱한 공무원, 기자들 실명이 튀어나오곤 했다. 9월 28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시행 이후엔 수십 명, 수백 명씩 수사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밥자리의 헌법이 바뀌는 것이다. 말하는 습관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1. "식사요? 생각 좀 해 볼게요." 밥자리와 술자리, 골프 모임을 놓고 불편한 고민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 어제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즐겼던 일들이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밥값이 얼마인지 따져야 하고, 그 자리에 누가 나오는지 알아야 한다. 헌법재판소 관계자는 "어떤 행위가 '통상적인 업무범위'에 속하고, 속하지 않는지 활발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과정을 통해 정당한 공무의 범위, 취재 활동의 범위도 확인될 것이다. 김영란법은 공직자의 자유, 언론의 자유, 사학의 자유를 제한하자는 게 아니다. 헌재 결정문은 김영란법 시행으로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청탁을 근절하고"(10쪽), "언론은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권력을 견제할 수 있게"(21쪽) 되며, "정당하고 떳떳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24쪽)고 제시한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직업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 아닌가. 2. "오늘 밥값은 각자 냅시다." 오해하지 말자. 김영란법의 원칙은 "3만원 이하로 얻어먹으라"는 게 아니다. 더치페이를 하라는 거다. 2만9000원, 2만9900원짜리 음식 메뉴나 4만9000원짜리 선물 출시를 부각시키는 건 옳지 않다. 소비 위축론도 마찬가지다. 고급 한정식 집은 문 닫을지 모르지만 설렁탕 집, 김치찌개 집을 찾는 발길은 늘어날 것이다. 따지고 보면 밥값이나 선물 대금은 대개 개인 호주머니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동안 공직자와 기자들은 국민이 낸 세금, 주주·노동자에게 돌아갈 몫을 나눠 쓴 것 아닐까. 정책활동, 취재, 홍보란 명분으로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을까. 값비싼 식사와 선물이 무서운 또 하나의 이유는 자신도 모르게 돈 있고 힘 있는 세력의 이데올로기에 젖어든다는 데 있다. 3. "2차요? 그만 집에 가시죠." 김영란법은 완벽한 법이 아니다. 김영란법을 완성시킬 책임은 모두에게 있다. 국민권익위는 법원 판결에만 맡기지 말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공무원과 언론인, 사립학교 관계자들은 편법이나 꼼수로 법망을 피해 가려 하지 말고 생활방식을 바꿔야 한다. 2차 가지 말고, 집으로 흩어지자. 못 봤던 책도 읽고, 가족과 드라마도 보자. 최악은 '지키면 바보가 되는 법' '걸리면 재수 없는 법'이 되는 것이다. 과속하다 경찰에 걸리면 억울하지만 단속카메라에 찍히면 내 잘못으로 받아들이는 게 인간이다. 검찰과 경찰은 표적수사의 미련을 버리고, 초기에는 수사력을 집중해 기계적으로, 엄격하게 단속해야 한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더 공고해질 학연·지연·혈연을 무력화할 대책도 나와야 한다. 4. "의식을 지배하는 건 위장이다." 9월 28일 전날까지 골프장 예약이 꽉 차고, 미리 선물을 주고받고, 송년회를 앞당기는 건 웃픈(웃기고 슬픈) 풍경이다. "일은 일이고, 밥은 밥 아니냐"는 유혹이 계속될 앞날을 예고한다. '대(代)를 이어 부패하자'는 게 아니라면 이대로 계속 갈 수는 없다. 나도 관행이란 이름에 젖어 있었음을 고백한다. "적극적으로 요구하진 않았다"는 건 변명이 될 수 없다. 못 이기는 척 편승해 온 게 더 비겁하다. 마지막 화법은 스스로를 향한 참회요, 경고다.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뇌가 아니라 위장이다. 식탁에 누구와 앉아 있느냐가 나를 규정짓는다.
http://www.huffingtonpost.kr/sukchun-kwon/story_b_11310116.html?utm_hp_ref=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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