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의 날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마태 6,33
동물이 상처를 입거나 병에 걸리면 식음을 폐하고 자기 집이나 굴이나 나오지 않고 앓습니다. 가지가 부러지면 가지를 바로 묶어주어야 합니다. 부러진 나무는 예전 처럼 튼튼하지 못합니다. 부러진 부분이 다시 세워지고 나서, 다 치유가 된 다음에 건강함을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부러진 나무를 묶어주고 부러진 윗 부분을 잘라주면 싹이 금방 나오고 싹이 나와서 줄기가 됩니다. 나무도 절제할 때 건실하게 돕니다. 먹는데 에 탈이 나면, 무엇보다 먼저 굶는 것이 먼저입니다. 탈이 났는 데, 계속 음식을 먹을 수 없습니다. 회복이 될 때까지 단식하며 먹는 것을 줄여야 합니다. 그런 다음 치유가 될 수 있습니다.
종종 생활에서 탈이 날 때가 있습니다. 생각에서 마음에서, 정신과 몸에서 탈이 날 때 있습니다. 그 탈이 날 때 무엇인가? 어떻게 생활을 지속하지 않습니다. 쉼과 함께 그 탈을 치료합니다. 그 탈을 치료함이 중요합니다. 탈을 치료함에서 건강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탈을 치료함에서 첫째는, 방향 전환입니다. '탈'에서 벗어남 그것을 신앙의 언어로 '회개'라고 합니다. 회개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지난 날 시간 만남 그리고 사건을 생각하고 되돌아 봅니다. 그 되돌아 봄. 지난 시간을 회상하는 것. 그것으로 다시금 자신을 깊게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선업과 부끄러움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회상하는 것이 방향 전환의 시작이 됩니다.
둘째로 회개, 회상과 함께 지난 날의 만남, 관계, 사건 등을 진리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진리의 눈은 주님의 마음과 눈을 의미합니다. 그 진리의 눈은 나의 본 모습을 보는 것이며, 그 본 모습의 나를 수용하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수용과 바라봄에서 참됨과 선함은 찬양하고, 허물과 부끄러움과 의롭지 않음은 기도하며 봉헌합니다.
셋째, 방향 전환은 나의 회상을 통하여 본 나의 모습을 '봄'에 감사합니다. 나의 은사와 재능, 부끄러움과 허물을 보며 그것을 보고 알고 깨닫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은사과 능력을 주셨고, 죄와 허물과 부끄러움을 알게 해주신 하느님께, 그 은총에 감사를 드립니다.
넷째, 방향 전환은 바른 실천입니다. 회상과 성찰과 결심을 선과 참됨으로 실천합니다. 그렇게 해서 방향 전환의 쇄신을 봉헌합니다. 나도 너도 우리도 모두도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도록 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길은 방향 전화, 회개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지난 날의 나의 법, 규정, 논리, 취미, 생활, 건강 등 세상의 부요와 풍요를 본능의 추구에서 돌아섬이 필요합니다. 그 돌아섬이 잠시 멈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며, 그분을 향한 얼굴과 선함의 행위를 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서른 해 동안 나자렛에 머무시다가 공생활을 위해서 갈릴래아 카파르나움으로 가셨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위한 용기있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갈릴래아에 와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회개'를 외치셨습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 1,15
회개, 방향 전환. 오늘도 그 방향 전환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탈에서 벗어남 가장 빠른 방법은 그분의 얼굴을 보는 것. 주 예수님을 향하여 몸을 돌려 그분께 다가가는 일입니다. 그분을 찾는 것이 탈을 극복하는 힘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회개, 방향 전환으로 다가 오고 또 그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토요일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의 날. 하느님 나라의 날을 바라보며, '나의 탈'에서 나의 마음과 얼굴과 발걸음을 주님께로 돌립니다. 그분께 나아갑니다.
주님, 저의 '탈'을 보게 하소서. 그 탈에서 쉼을 갖게 하소서. 그 탈에서 당신 선업을 보게 하소서. 아픔과 고통이어도 그것을 참아내게 하소서. 하루빨리 치유되어서 당신을 더욱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살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