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있었던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축구시합인 ‘스즈키컵 대회’에서 우리나라 박항서 감독님이 있는 베트남 팀이 우승을 차지했죠.
저희 부부 역시 T.V.실황중계를 보면서 베트남 축구팀을 응원했습니다.
살다보니 다른 나라 경기에 열광할 때도 생기더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영진 코치가 저의 모교인 서울 경희고 출신 후배이기에
더 기쁩니다.
제가 알아보니 우리나라 대한민국과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Socialist Republic of Vietnam)은
공통점이 여럿이더라구요.
지형적으로는 육지 또는 대륙으로부터 돌출하여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땅을 소유한 <.반도국(半島國)>이고,
이런 지형적 위치로 인하여 역사적으로 잦은 외침을 당해왔으며,
우리나라에 조선시대에 이씨왕조가 있었듯이, 베트남에도 1009년에 성립된 리(李)왕조가
리꽁우언에 의해 만들어져 중국(송나라)의 침입을 물리치면서 200년간 왕조를 이어갔다거든요.
그런데, 베트남은 중국, 프랑스, 미국 등 여러나라와 전쟁을 겪으면서도 끝내는 침략세력을
물리치고 결국에는 패배시킨 자랑스런 역사를 가진 위대한 나라입니다.
제가 어릴 적이던 1964년~1972년 사이에 우리나라 군인 연인원 32만명이 베트남전에 파병되어 5,000여명의 전사자와 11,000여명의 전상자를 내며 당시 남베트남의 자유수호를 위해
애썼건만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에 의한 사이공 함락으로 공산세력주도 남북통일이 이뤄진 나라였죠.
저는 최근에 베트남 전쟁사를 살펴보며,
열대우림지역 정글을 누비면서 게릴라전을 주로 하는 ‘베트콩과 북베트남 정규군 (당시는 월맹군이라 했다죠.)으로부터 선량한 대다수 지역주민을 보호하며
전투를 치뤘던 우리나라 파병 군인들의 우국충정을 실감했습니다.
지금은 ‘보트피풀’로 불리며 망망대해 태평양 바다를 헤매던 베트남 난민을 아련한 추억 속에서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데,
다시는 그런 비극의 역사가 없어야겠지요.
그런데, 지금은 우리나라가 베트남의 최대투자 교역국이 되었다해요.
우리나라 총각과 결혼하는 베트남 신부들로 국제결혼 통계에서 최다수(最多數)를 차지하고 있구요.
아무튼, 반도 국가이면서 숱한 외침과 외세와의 전쟁을 겪어온 대한민국과 베트남인데
앞으로는 형제간처럼 각별한 관계가 계속 이어지길 바랍니다.
우리 같은 서민들은 정치적인 면은 모르겠고,
그저 남북관계도 좋아져서 전쟁 없이 평화통일을 이루길 소망해야겠죠.
지난 10월 27일,
객지에서 혼자 살면서 직장생활 하는 제 아들 요한이에게 생각지 못했던 일이 생겼었어요.
제 아들은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모교 캠퍼스 안에 있는 학내기업에 취직하여
자기 밥벌이를 하고 있지요.
학교와 부산시내 3곳에 영업점을 두고 있는데,
사무실 일을 챙기면서 수시로 자기 차로 영업점에 출장 다니며 관리상태를 점검하는 게 일이라해요.
상품 관리는 물론, 영업점 근무 직원들의 근무태도 까지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답니다.
사실, 사람 관리하는 게 물건 관리보다 힘든 게 사실일겁니다.
저도 경험해 봤기에 잘 아는 편이죠.
그날,
평소처럼 자기 차를 운전해 어느 영업점에 갔을 때,
근무 중인 어느 알바생이 애쓰는 모습을 보았데요.
의자를 놓고서 높이 올려져 있는 물건을 내리고 애쓰는데,
‘바둥바둥...’
아들이 보기에 의자가 부실하여 삐꺽거리고 당장에라도 넘어질 듯 위험해 보여,
제 아들이 “위험하니 그냥 내려오세요.” 말하며 제지 하였죠.
그러고는, “자기 나라에서 외국으로 유학와서 공부하기에도 힘들텐데, 학비에 보태겠다고 알바하다가 몸 다치면 물론 본인 스스로가 가장 어렵겠지만,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큰 불효가 된다.”며,
“앞으로는 이렇게 자기 몸에 부치는 힘든 일을 해야 할 때는 나에게 미리 연락을 달라“ 했다죠.
그리고는 거뜬히 선반 위에 올려있던 물건을 내려주었다는데,
이 알바생은 고마운 마음에 ‘울먹울먹’하더니 사무실 옆 화장실에 가서 잠깐 울고 나서 손과 얼굴을 닦고 왔다해요.
사실, 제 아들이 관리사원으로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 40명 남짓 알바생을 상대하는데,
학교가 외국어대학교다 보니 우리나라 학생은 물론이고 세계 여러나라에서 유학온 외국학생도 여럿이라죠.
그리고, 며칠 지나서, 11월 1일에 회사 직원들과 학교근처 식당에서 단체 회식이 있었는데,
제 아들과 집 방향이 같은 몇몇 학생이 같이 걸어가게 되었는데,
중간에 다른 학생들이 집 찾아가니까
막바지에는 아들과 며칠전 도움을 주었던 그 외국인 여학생이 둘이서만 걷게 되었다구요.
그런데, 그 여학생이 제 아들에게 하는 말이...
“○○오빠~! 한국남자들은 친절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는데, 특히 며칠 전에는 넘넘 감사했어요. 그래서 말씀드리는데, 저와 사귀어 보는 게 어때요?”
이 말을 들은, 제 아들은 요즘말로 그냥 ‘깜놀’ 했다죠.
40명이나 되는 알바 학생 중에는 우리나라 학생과 외국에서 유학 온 학생도 여럿인데,
사실 공적인 업무상로 힘들어하는 그녀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었지만,
특별히 별스런 감정은 전혀 없었다거든요.
그래도, 뭐라든 답은 해줘야겠다고 마음 들어서서,
“내가 생각을 더 해보고, 내일 중으로 답해 주겠다.”
하였구요.
자기 자취방인 원룸에 가서 고민한 끝에,
3년을 사귀었던 예전 여친과 헤어진 게 얼마 안 되었지만, 자기 나이도 있으니
여자들과 담 쌓을 것 없이 그냥 친구로서 사귀는 것은 괜찮겠다 결심하고
약속대로 다음날에 제 아들이 그녀와 사귀기로 했다죠.
2018년 11월 2일이 1일차 였으니, 지금 60일이 좀 넘었네요.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짐작하시겠지만,
제 아들 여친의 국적은 <베트남>입니다.
남부지방에 있는 “붕따우”가 여친의 고향이라죠.
지금 아들이 근무하는 학교에서 유학생으로 4학년 2학기를 보내고 있어
다음 달에 졸업하는 데, 산학협력단 소속 알바생으로 수고 하구요.
틈틈이 ‘한국과 베트남’ 인사들이 참석하는 행사에서 동시통역 알바도 한다니,
능력이 대단한가봐요.
2019년 1월 중순 (며칠 안남았죠.)에는 베트남 여친을 저희 집에 데려와 저희 부부에게 인사시키고,
곧이어 베트남으로 가서 여친 부모님과 친척분들께도 인사하고 오기로 했네요.
잘되면 금년 안에 결혼까지 하길 바란다죠.
이미 저희 부부가 스마트폰으로 보내온 사진으로 아들 여친의 모습을 보았고,
메일 교환은 물론 전화통화도 하였는데,
아무튼, 양가 부모의 허락을 받고 잘되었으면 하네요.
예전에 생각 않았던 외국인 며느리를 맞이하게 될는지?... (하하하)
물론, 최근에 모 대학교에서 있었던 베트남 유학생 잠적 소식과, ‘한-베 가정’에서의 불미스런 이야기가 있어 심려스러운 게 사실인데,
그래도 저희는 아들을 믿고 둘 사이가 잘 되었으면 합니다.
당연히 베트남에 계신 여친 부모님의 허락을 잘 받아야겠죠.
오늘은 1월 4일입니다.
저는 1월 1일 새벽에 ‘세종 호수공원’에서 해맞이 행사에 참여하면서 금년을 시작했네요.
새해의 첫 시작을 저희 집이 있는 세종시에서 주관하는 행사에서 자원봉사활동으로 하였으니
뜻이 있는 거겠죠?
우리 님들 모두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만사형통하는 2019년이 되세요~!’
(꾸벅~!)
첫댓글 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