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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첫 번째, 『레 미제라블』
지은이: 빅토르 위고
옮긴이: 이형석
펴낸 곳: 펭귄클래식 코리아
읽은 날: 2019년 1월 13일~ 2019년 2월 4일
어렸을 때 『장발장』을 읽었습니다. 아마 초등학교 5학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읽고 나서 너무 감동적이었는데, 중학교에 가서 보니 『레 미제라블』이 있었고, 그래서 다시 읽은 것 같기는 한데, 『장발장』 이상의 어떤 감동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후 나는 이 책을 읽은 것으로 여기며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아들이 고등학교 입학할 때 『레 미제라블』을 선물로 사 주었는데 읽지 않아서 속상했던 적도 있습니다. 세 아이들이 책을 전혀 안 읽는 건 아니지만, 내가 어렸을 때처럼 열심히 읽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읽게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냥 두기로 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렸을 때, 또는 젊었을 때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헤아리게 된 건 이제 제법 시간이 흐른 50대 초반의 일입니다. 그럴 만한 일이 있어 다시 읽게 된 두 책이 있는데, 하나는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이었고, 다른 하나는 슈바이처의 『나의 생애와 사상』이었습니다. 이후 뒤마의 『춘희』도 최근에 다시 읽었으며, 나관중의 『삼국지』도 지난 해에 읽었습니다.
지난 해 가을, 다시 손에 책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한 10여년 전에 책은 그만 읽겠다고 하면서 지니고 있던 책을 거의 다 버렸고, 대체의학과 도덕경 관련 책만 남겨 두었던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저런 책들을 전혀 안 읽은 것은 아니지만, 한창 책을 읽을 때처럼 읽는 것은 아니었고, 꼭 인연이 된 책들을 조금씩 읽는 정도였습니다.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짧은 기간이었지만 적지 않은 책을 읽었습니다. 소설도 있었고, 인문학 관련 서적도 있었으며, 민속학에 관한 것, 생명과학 관련 책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위고의 이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시작부터 사람을 뒤흔드는 마력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중학교 때 읽기에는 너무 크고 깊은 내용이었다는 것을 확인했고, 결론은 그 때 읽은 것은 읽은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18세기에서 19세기로 이어지는 프랑스 역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격동적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을 처음 알게 된 것이고, 이야기를 짜 나가는 작가의 역량의 넓이와 무게를 실감하면서 한 장 한 장을 읽는 동안 느끼는 감동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은 이들은 모두 이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고, 나보다 먼저 이것을 이해하면서 흡수하여 소화시킨 이들에 대한 존경심까지도 생기는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어제 책의 마지막을 읽고 나서 곁에 있던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사람을 둘로 나눈다면 나는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읽은 사람과 안 읽은 사람으로 나누겠다.”
이제 이 책에서 절창이라고 할 수 있는 구절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1. 종교지도자의 용기
그는 즐겨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용기병(龍騎兵) 연대장의 용맹함이 있듯이, 사제의 용맹함이 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덧붙이곤 하였다. “다만 우리들의 용맹함은 조용해야 한다.”(1권 47쪽)
“우리 모두, 도둑들이나 살인자들을 두려워하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합시다. 그것은 모두 외부의 위험, 즉 작은 위험들이오. 우리들 자신을 두려워하고 경계합시다. 각종 선입견들, 그것이 도둑들이오. 각종 못된 버릇, 그것이 살인자들이오. 큰 위험들은 우리들 내부에 있소. 우리의 목숨이나 돈주머니를 노리는 것들이 뭐 그리 대단한가! 우리의 영혼을 노리고 있는 것을 조심합시다.”(1권 51쪽)
2. 혁명의 의미
진보의 난폭성을 혁명이라고 합니다. 혁명이 끝났을 때 사람들은, 인류가 학대받았으나 계속 걸었음을 깨닫습니다.(1권 77쪽)
‘우아한’ 이름들을 평민에게 부여하고, 촌스러운 이름들을 귀족에게 부여하는 그 이동 현상은 곧 평등의 소용돌이일 뿐이다. 새로운 숨결의 항거할 수 없는 침입이, 다른 모든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분야에서도 발견된다. 그 가시적인 무질서 밑에 위대하고 심오한 것 하나가 있으니, 그것은 프랑스 대혁명이다.(1권 239~240쪽)
3. 종교적 가난
사치에 대한 증오는 현명한 증오가 아닐 듯하다. 그러한 증오가 예술에 대한 증오를 내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림이나 조각 등 표현물들과 의식들을 제외한 모든 사치가 죄이다. 사치는 별로 자비롭지 못한 습관을 드러내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부유하고 호사스러운 사제는 이치에 어긋난 그 무엇이다. 사제는 가난한 사람들의 곁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끊임없이, 그리고 밤이나 낮이나, 그 모든 절망과 그 모든 불운과 그 모든 궁핍과 접촉하면서, 일할 때 먼지 뒤집어쓰듯, 그 신성한 비참함을 조금이나마 자신의 몸으로 감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도가니 앞에서 지속적으로 일하면서, 머리카락 한 가닥 태우지 않고 손톱 하나 검게 변하지 않은, 그리고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얼굴에 재 한 알갱이 묻히지 않는 노동자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사제에게 있어서 자비의 첫째 증거는, 특히 주교의 경우, 그것은 가난이다.(1권 82쪽)
산책할 작은 정원과 바라보며 꿈꿀 광대함이면 족하였다. 그의 발치에는 가꾸고 거둘 것이 있었고, 그의 머리 위에는 응시하고 명상할 것이 있었으니, 땅 위에 핀 몇 송이 꽃들과 하늘에 있는 모든 별들이 그것들이었다.(1권 95쪽)
4. 가장 큰 행복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은 자기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1권 256쪽)
5. 저질 여론
타인의 행위들을 엿봄에 있어서는, 그 행위들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이들만 한 사람이 없다. - 그 남자분은 왜 항상 황혼 녘에만 나타나지? 아무개씨는 왜 목요일마다 집을 비우지? 그는 홰 항상 좁은 길로만 다니지? 그 부인은 왜 항상 댁에 들어가시기 전에 마차에서 내리지? 그녀는 작의 집에 ‘문방구점 못지않게’ 잔뜩 종이를 쌓아두고 왜 편지지를 한 묶음이나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지?- 자신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러한 수수께끼의 답을 얻기 위하여, 열 가지 선행을 하는 데 필요한 것보다도 더 많은 돈을 지출하고,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하며, 더 많은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ㄷ. 그리고 그 짓을, 무료로, 오직 즐거움만을 위하여, 그 호기심의 대가로 오직 호기심만을 받으며, 거침업이 저지른다. 그들이 이 남자 혹은 저 여자의 뒤를 꼬박 여러 날 동안 밟고, 어느 길모퉁이에서 혹은 어느 통로 출입문 밑에서, 밤에도, 날씨가 추워도, 비가 와도 망을 보고, 자비를 들여 심부름꾼들을 고용하고, 마부들이나 시종들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하고, 침실 하녀를 매수하고, 수위를 자기 수중에 넣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맹목적이다. 보고 알고 침입하고자 하는 순수한 집념일 뿐이다. 그저 수다를 떨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할 뿐이다. 그런데, 그 알려진 비밀들과 공표된 기밀들과 백일하에 밝혀진 수수께끼들이, 대재앙과 결투와 파산과 가정의 몰락과 삶의 파괴 등을 유발하는 경우가 잦은데, 그것은 오직 아무 이해관계 없이 순수 본능에 이끌려 ‘모든 것을 밝혀낸’ 이들의 커다란 즐거움을 위해서이다. 서글픈 일이다.
특정 부류의 사람들은 오직 말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몹쓸 사람들이 된다. 그들의 대화, 응접실에서의 환담, 대기실에서의 잡담은 마치 나무를 순식간에 소모하는 벽난로와 같다. 따라서 그러한 벽난로에게는 많은 연료가 필요한데, 그 연료가 바로 이웃이다.(1권 271~272쪽)
6. 거짓말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악의 변할 수 없는 본질이다. 거짓말을 조금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말은 몽땅 거짓이다. 거짓말을 하는 행위 그 자체가 악마의 얼굴이다. 사탄에게는 이름이 둘 있으니, 하나는 사탄이고 다른 하나는 거짓말이다.(1권 323쪽)
거짓말하는 침묵이 있소.(중략) 그러면 나의 아침 인사도 거짓말, 저녁 인사도 거짓말이 될 것이오. 나는 거짓말 위에서 잠들고, 그것을 빵가 함께 먹을 것이오.(5권, 328쪽)
7. 인간의 내면
오성의 눈이 인간의 내면에서보다 더 많은 눈부심과 암흑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오성의 눈이 응시할 수 있는 그 어느 것도, 인간의 내면보다 더 무시무시하고 복잡하고 신비하고 무한하지는 않다. 바다보다 더 거창한 광경을 펼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하늘이다. 하늘보다 더 거창한 광경을 펼치는 것도 있는 바, 그것은 인간의 내면이다.(1권 331~332쪽)
8. 전쟁의 얼굴
전쟁에는 끔찍한 아름다움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추호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또한 몇몇 추함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가장 놀라운 추함들 중 하나는, 승리 후에 전사자들의 소지품이 신속하게 털린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전투 다음 날의 새벽은 항상 벌거벗은 시신들 위로 밝아온다.
(중략)
낮 동안의 영웅들이 밤이면 흡혈귀로 바뀐다는 것이다. 여하튼,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좀 털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월계관을 얻고 동시에 죽은 이의 신발을 훔치는 것, 그 두 행위를 같은 손이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2권 82족)
9. 선악의 양면성
평온하고 평범한 상황에서는, 떼나르디에 역시 정직한 상인 혹은 모범적인 시민으로 보이는데 필요한(‘시민이기에 필요한’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특정 상황이 주어지면, 그리고 어떤 충격이 밑에 잠겨 있던 그의 또 다른 천성을 뒤흔들 경우, 그는 즉시 간악한 범지자로 돌변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2권, 182쪽)
10. 향수
유감스럽게도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게 된 이 책의 저자가, 빠리를 떠난 지 여러 해가 되었다. 그가 빠리를 떠난 이후, 도시는 변형을 겪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에게 낯선 새로운 도시 하나가 불쑥 솟아 나왔다. 그가 빠리를 사랑한다고 말할 필요조차 없다. 빠리는 그의 영혼이 태어난 곳이다. 파괴와 재건축이 거듭된지라, 그가 젊었던 시절의 ㅃ리, 그가 기억 속에 경건하게 간직하여 가지고 떠났던 빠리는, 이제 과거의 빠리일 뿐이다. 그 빠리가 아직도 존재하는 것처럼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허락해 주시기 바란다. 저자가 독자들 제위를 안내하며 ‘어떤 길에 어떤 건물이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건물과 길이 오늘날에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을 수 있다.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독자들께서는 일일이 확인해 보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새로운 빠리를 전혀 모르는지라, 자기에게 지극히 귀중한 환상 속에서 옛날의 빠리를 눈앞에 놓고 이 글을 쓴다. 그 빠리 뒤에, 그가 고국에 있을 때 일상 보던 것들 중 몇몇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으며, 모든 것들이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 몽상하는 것이, 그에게는 기쁜 위안이다. 누구든 고향에서 일상 오고 갈 때에는, 길들이 자기와는 무관하고, 눈에 보이는 창문들과 지붕들과 출입문들이 하찮고, 담장들이 남의 것들이고, 나무들도 그저 아무 데나 있는 평범한 나무들이고, 자기가 들어가지 않는 집들은 모두 무용지물이며, 밟고 지나가는 도로의 포석들도 그저 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훗날 더 이상 그 고향에 살지 않게 되면, 그 길들이 애틋하게 귀중해지고, 그 창문들과 지붕들과 출입문들이 몹시 그리워지고, 그 나무들이 모두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로 변하고, 들어가지 않던 집들 안으로 날마다 들어가며, 자기의 내장과 피와 심장을 도로의 포석 위에 놓아둔 채 떠나왔음을 깨닫게 된다. 더 이상 보지 못하는, 그리고 영영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를, 그러나 그 영상이 뇌리에 새겨진, 그 모든 장소들이 고통스러운 매력을 지닌 채 유령들의 우수를 띠고 끊임없이 눈앞에 어른거려, 결국 가시적인 성지로 변하며, 그것이 곧 프랑스의 모습이 된다. 그러면 그 장소들을 사랑하게 되고, 그것들을 옛 모습 그대로 뇌리에 떠올리며, 누구든 어머니의 얼굴에 애착하듯 조국의 모습에 애착하기 때문이다.(2권, 211~212쪽)
11. 술 취하는 단계
대혁명 이전 시절에는, 프랑스이 대원수라든지 왕족, 지체 높은 귀족 등이 부르고뉴나 샹빠뉴 지방의 어느 도시를 지나갈 경우, 도시의 대표들이 그들을 환영하며 서로 다른 네 가지 포도주가 담긴 은잔 넷을 올렸다고 한다. 첫 번째 잔에는 이러한 말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원숭이의 포도주’, 그리고 두 번째 잔에는 ‘사자의 포도주’, 세 번째 잔에는 ‘양의 포도주’, 네 번째 잔에는 ‘돼지의 포도주’, 그 네 명구(銘句)는 술꾼이 추락하는 네 단계를 나타내었다고 한다. 첫 단계의 취기는 흥겹게 해주고, 두 번째 단계의 취기는 역정 나게 하며, 세 번째 단계의 취기는 얼빠지게 해주고, 네 번째 단계의 취기는 바보가 되게 해준다는 뜻이었다고 한다.(2권, 293쪽)
12. 종교의 변질과 그 비판
인간을 위한 제도로서, 그리고 교육의 방법으로서, 수도원들이 10세기에는 매우 유용했으되, 15세기에는 비판의 여지를 드러냈으며, 19세기에는 가증스러워졌다.(2권, 300쪽)
하지만 몇몇 분야에서는, 그리고 몇몇 지역에서는, 철학과 진보에도 불구하고, 수도원적 사고방식이 19세기의 한가운데에 여전히 끈질기게 존속하고 있다. 그리하여 현재에도 다시 불붙고 있는 고행과 금욕이 문명화된 세계에 놀라움을 안겨 준다. 낡은 제도가 영원히 존속하려 안간힘을 쓰는 그 고집은, 여전히 사람들의 모발에 뿌려지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썩은 냄새를 풍기는 향수의 집요함이다. 자기를 먹어달라고 염치없이 나서는 상한 생선의 주장, 어른의 몸뚱이에 입혀 달라고 조르는 아이 옷의 생떼, 혹은 산 사람에게로 돌아와 그들을 포옹하겠다고 하는 시신들의 상냥함과 유사하다.
“배은망덕한 자들! 내가 날씨 험하던 시절에 그대들을 감싸 주었거늘, 어찌하여 이제 나를 못 본 체하는가?” 옷이 그렇게 말한다. “내가 난바다로부터 왔어.” 생선의 말이다. “나는 장미였어.” 향수의 말이다. “내가 그대들을 사랑했어.” 시신의 말이다. “내가 그대들을 교화하였어.” 수도원이 하는 말이다.
그 모든 말에 할 대답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옛날에 그랬지.”
죽은 것들을 영속시키고 시신들에 방부제를 발라 지배하려 꿈꾸는 것, 망가진 교조들을 복구하는 것, 유골함에 다시 금박을 입히는 것, 수도원들의 벽을 다시 단장하는 것, 유물 상자를 다시 찬양하는 것, 각종 미신에 다시 가구를 갖추어주는 것, 광신주의에 다시 활력을 부여하는 것, 성수 살포기와 군도(軍刀)에 다시 손잡이를 만들어주는 것, 수도원 제도와 군벌주의를 재건하는 것, 기생충들을 번식시켜 사회의 안녕을 도모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등, 그 모든 행위들이 기이할 뿐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옹호하는 이론가들이 있다. 그들은, 상당히 기지 있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소박한 방법을 사용하는 바, 과거에다가 사회질서, 신성한 권리, 윤리, 가족, 조상 섬기기, 유구한 권위, 신성한 전통, 합법성, 종교 등이라고 하는 도료를 입힌다. 그리고 외치며 쏘다닌다. “보시오! 이것을 보시오. 착한 이들이여!” 그러한 논리는 옛날 사람들이 잘 알고 있던 것이다. 그들은 어린 검은 색 암소의 몸에 백토를 바른 다음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이 암소가 희다.” 백토를 발라 하얗게 만든 소.
과거가 이제 그만 죽는 것에 동의한다면, 경우에 따라 과거의 일부를 존중할 수도 있고, 언제나 그것을 용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여전히 살아남기를 고집한다면, 그것을 공격할 것이며, 나아가 죽이려 노력할 것이다.(2권, 304~305쪽)
신전 내부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소위 ‘지극히 신성한’ 곳의 특색은 모호하다는 점이다. 모든 종교적 협잡의 소굴로 간주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이 ‘모호하지 않고 명료하다’는 말은, 일종의 가벼운 빈정거림이다.(4권, 518쪽)
더 이상의 허구도, 더 이상의 기생충들도 용납되지 않을 것입니다.(5권, 41쪽, 각주 432쪽 39)
13. 신(神)과 기도
우리 밖에 하나의 무한이 존재함과 동시에 혹시 우리의 안에도 무한 하나가 존재하지 않는가? 그 두 무한이(얼마나 두려운 복합인가!) 서로 포개어져 있지는 않은가? 두 번째 무한이, 그렇다면, 첫 번째 것의 밑에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첫 번째 무한의 겅루이고 메아리이며, 첫 번째 무한고 그 심연을 공유하고 있지는 않을까? 두 번째 무한 역시 지적인 존재일까? 그 무한도 사유하고 사랑하며 희원할까? 만약 그 두 무한이 지적인 존재라면, 그들 각자는 하나의 의지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러면 밑에 있는 무한 속에 자아 하나가 있듯이 위에 있는 무한 속에도 하나의 자아가 있을 것이다. 아래에 있는 자아, 그것이 영혼이고, 위에 있는 자아, 그것이 신이다.
아래에 있는 무한과 위에 있는 무한을 사념 속에서 접촉시키는 것, 그것을 일컬어 기도라고 한다.(2권, 309쪽)
14. 종교 정화
우리에게는 의무가 있다. 인간의 영혼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 기적에 대항하여 신비를 방어하는 것, 불가해한 것을 찬미하고 터무니없는 것들을 배척하는 것, 설명할 수 없는 것에서는 오직 필요한 것만을 받아들이는 것, 신앙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 종교에서 미신의 겉딱지를 떼어내는 것, 한마디로 신에 기생하는 구더기들을 제거하는 일이다.(2권, 310쪽)
15. 웃음의 힘
웃음은 인간의 얼굴에서 겨울을 몰아낸다.(2권, 383쪽)
16. 인간의 성숙
바퀴가 돌아가고 있으니, 우연으로 아이들을 창조하고 운명으로 어른들을 창조하는 그 수호정령...(3권, 16쪽)
17. 허영
전도자가 이르기를, 모든 것이 허영이라 하였느니라. 나 또한 존재한 적도 없을 법한 그 늙은이와 같은 생각이로다. 제로가 벌거벗고 다니기 싫어 허영을 걸치었도다. 오, 허영이여! 모든 것을 거창한 단어로 꾸미기여! 부엌이 실험실, 춤꾼이 교수, 곡예사가 체육 교사, 싸움꾼이 권투 선수, 약국쟁이가 화학자, 가발 장수가 예술가, 회반죽 이기는 일꾼이 건축가, 승마 클럽 회원이 체육인, 쥐며느리가 ㄴㄹ벌레를 자칭하도다. 허영에는 이면과 표면이 있나니, 표면은 멍청하여 유리 세공품 걸친 검둥이 꼴이며, 이면은 얼간이라 누더기 걸친 철학자 꼴이니라. 나는 그것들 중 하나를 위하여 눈물 흘리고, 다른 것을 보고 웃도다. 명예롭고 품위 있따는 것들도, 아니 명예와 품위 그 자체도, 실은 인조금(人造金)에 불과하도다.(3권, 137쪽)
18. 시련의 힘
놀랍고 무시무시한 시련인 바, 약한 이들은 그것을 통과하며 야비해지는 반면, 강한 이들은 숭고해진다. 그 시련은, 운명이 비열한 거지 녀석이나 신에 가까운 위인 하나가 필요할 때마다, 그를 주조하기 위하여 사랑 하나를 던져 넣는 도가니이다.
왜냐하면, 작은 투쟁들 속에서 많은 위대한 행위들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결핍과 치사함의 숙명적인 침범에 맞서, 어둠 속에서 필사적으로 자신을 방어하는, 끈덕지고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용맹들이 그 속에 있다. 어느 시선에도 보이지 않고, 어떤 명서옫 보상해 주지 않으며, 어떤 취주악도 환대하지 않는, 고결하고 신비한 승리들이다.
삶, 불행, 고립, 내버려짐, 가난 등은 각자의 영웅들을 가지고 있는 전쟁터이다. 그 영웅들이 어둠에 가려 있으되, 때로는 이름 떨치는 영웅들보다 더 위대하다.
견고하고 희귀한 천선들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가난이, 거의 항상 계모이되, 가끔은 생모이기도 하다. 결핍은 영혼과 지성의 힘을 잉태시킨다. 절망은 의연함의 유모이다. 고결한 이들에게는 불운이 좋은 젖이다.(3권, 157~158쪽)
19. 탐욕의 모습
그곳에서는 무사무욕이라는 것이 자취를 감춘다. 악마가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낸다. 각자가 오직 자신만을 생각한다. 눈 없는 자아가 아우성치고, 찾고, 더듬고, 갉아먹는다. 사회적 우골리노가 그 구덩이 속에 있다.
그 구덩이 속에서 배회하는, 거의 짐승 같고 유령 같은 그 사나운 그림자들은, 세상의 진보 따위에 아무 관심이 없고, 이념도 언어도 모르며, 오직 각자의 욕구 충족에만 골몰해 있다. 그것들은 거의 무의식적인 존재들이며, 그것들의 내면에는 일종의 무시무시한 공허가 있다. 그것들에게 어머니 둘이 있으니, 모두 계모인 바, 그 하나는 무지요, 다른 하나는 극빈이다. 그것들에게 안내자 하나가 있으니, 그것은 필요이다. 그리고 모든 종류의 충족을 위한 안내자로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난폭하게 게걸스럽다. 즉 사납다. 그러나 폭군의 사나움이 아니라 호랑이의 사나움이다. 그 유충들은 고통으로부터 범죄로 건너간다. 숙명적인 계보의 형성이고, 현기증 나는 잉태이며, 암흑의 논리이다.(3권, 217~218쪽)
20. 생명세계
태양으로부터 진딧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어우러진 그 무한한 전체 속에서는 서로를 멸시하지 않는다.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중략) 영(靈)으로부터 빚어진 기계이다. 거대한 톱니바퀴 장치이되, 동력을 제공하는 최초의 작은 바퀴는 각다귀이되, 마지막 큰 바퀴는 황도대(黃道帶)이다.(4권, 102~103쪽)
21. 어머니의 힘
한 소녀의 영혼을 양육함에 있어서는, 이 세상의 모든 수녀들이 다 모여도 엄마 하나만 못하다.(4권, 105쪽)
22. 사랑의 양면성
사랑에게는 절충성이라는 게 없어. 그것이 사람을 파멸시키거나 구원한ㄴ다. 인생의 행로 전체가 곧 그러한 양자택일의 과정이다. 파멸이냐 혹은 구원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처지를, 어떠한 숙명도 사랑만큼은 가혹하게 조성하지 않는다. 사랑은 그것이 죽음이 아닐 경우 삶이다. 그것은 요람일 수도 잇고, 관(棺)일 수도 있다. 인간의 가슴속에서는 같은 감정이 긍정도 하고 부정도 한다. 절대신이 만들어놓은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많은 빛을, 그리고 애석하게도 가장 짙은 어둠을 발산하는 것은 인간의 가슴이다.(4권, 273쪽)
23. 전쟁
전쟁이, 즉 서두르는 미래가 지체하는 과거에대항하여 펼치는 노력이라 규정할 수 있는, 그 최소한의 전쟁...(4권, 449쪽)
24. 사회문제
모두 구슬픈 투쟁들이다. 그러한 광증에도 항상 얼마만큼이나마 정당한 권리가 있고, 그러한 투쟁에는 자살행위가 곁들여 있기 때문이다. 또한 ‘거지’니 ‘개새끼 집단’이니 ‘폭민’이니 ‘하층민’이니 하는 욕설들이 확인해 주는 것은, 애석하게도, 고통받는 이들의 잘못보다는 군림하는 이들의 잘못이다. 다시 말해, 아무 것도 물려받지 못한 이들의 잘못보다는 특혜받은 이들의 잘못을 부각시켜 준다.(5권, 11쪽)
25. 이상향
“시민들이여, 여러분께서는 미래를 상상해 보셨습니까? 도시들마다 길에 빛이 가득할 것입니다. 모든 집들의 문간에 푸른 가지들이 무성할 것입니다. 모든 국가들이 자매들 같고, 사람들이 모두 의롭고, 노인들이 아이들에게 축복을 내리고, 과거가 현재를 사랑하고, 사상가들이 한껏 자유롭고, 신도들이 완벽하게 평등하고, 하늘을 믿고, 신이 곧 사제이고, 인간의 양심이 곧 제단이고, 더 이상 증오가 존재하지 않고, 공장과 학교가 깊은 우의로 맺어지고, 처벌과 포상이 명백하고, 모든 이들에게 일거리가 있고, 모든 이들이 누릴 권리를 누리고, 모든 이들 위에 평화가 임하고,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고, 전쟁도 없을 것이며, 어머니들은 행복할 것입니다!(5권, 40쪽)
26. 평등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각 사람이 스스로에게 허용하는 양보의 동일성을 가리켜 평등이라고 합니다.(중략) 왜냐하면, 자유가 사회의 정점인 반면 평등은 사회의 토대이기 때문입니다.(중략) 동등한 학교로부터 평등한 사회가 나옵니다.(5권, 42쪽)
27. 희망의 미래(19세기에 희망하는 20세기)
우리의 19세기는 위대하지만, 20세기는 행복할 것입니다. 그때에는 낡은 역사를 닮은 거이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정복, 침략, 찬탈,국가들 간의 무력 대결, 어느 왕의 혼인으로 인한 문명의 중당 사태, 세습적 폭정의 탄생, 국제적 협잡에 의한 민족들의 분열, 왕조의 붕괴에 뒤따르는 나라의 분할, 무한의 다리 위에서 마주친 어둠의 두 숫염소처럼 정면으로 부딪치는 두 종교의 싸움질 등, 오늘날 우리가 두려워하는 그따위 것들이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기아, 착취, 절망에서 비롯된 매춘, 실업으로 인한 극빈 상태, 처형대, 검, 전투, 사건들의 숲 hr에서 벌어지는 온갖 약탈 행위 등을 더 이상 근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거의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사건은 없을 거야.’ 모두들 행복해질 것입니다. 지구가 자기의 법칙을 따르듯, 인류 또한 자기들의 법을 충실히 이행할 것입니다. 영혼과 천체 사이의 조화가 다시 확립될 것입니다. 천체가 빛 주위를 선회하듯, 영혼은 진리의 인력에 이끌려 그 둘레를 선회할 것입니다.(5권, 43쪽)
28. 문명의 횃불 전달 순서
그렇기 때문에 유럽의 횃불을, 다시 말해 문명의 횃불을 처음 그리스가 치켜들었고, 그것을 다시 이딸리아로 넘겼으며, 이딸리아는 그것을 프랑스로 넘겼다. 길을 밝히는 신성한 민족들이다! 생명의 횃불을 넘기도다.(5권, 110쪽)
29. 수구(守舊)의 위험
교조 속에서 화석이 되었거나 이윤에 의해 무란해진 족속들은 문명을 이껄어 가는 데 적합지 않다. 우상이나 금화 앞에서 굽신거리다 보면, 걷는 데 필요한 근육과 전진하는 데 필요한 의지가 쇠약해진다.(5권, 111쪽)
30. 내가 본 이 책의 핵심 사상
지금 독자들 앞에 있는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전체나 부분 할 것 없이, 간헐적 중단이나 예외 혹은 약화되는 현상 등이 어떠하건, 악으로부터 선으로의, 불의로부터 정의로의, 거짓으로부터 진실로의, 밤으로부터 낮으로의, 욕망으로부터 양심으로의, 부패로부터 생명으로의 행군이다. 또한 이 책은, 수성(獸性)으로부터 의무로의, 지옥으로부터 천국으로의, 허무로부터 신에게로의 행군이기도 하다. 출발점은 질료로되, 도착 점은 영혼이다. 시작은 레르네 늪의괴 독사 휘드라이되, 그 끝은 천사이다.(5권, 113쪽)
31. 사랑의 모습.
이 부분은 따로 옮길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굳이 궁금하면 직접 책을 읽으시길 권합니다. 아주 따뜻하고 부드러운데, 내용은 조금 길어서 다 옮길 필요가 없고, 이 책을 읽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자신이 하고 있는 사랑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살피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5권, 250~255쪽 참조)
기억하고 싶은 명구(名句)
그녀는 살기 위해 일을 하였다. 그리고 역시 살기 위해, 가슴도 나름대로의 배고픔이 있는 바, 사랑을 하였다.(1권, 191쪽)
모든 엄마들의 팔은 자애로움으로 형성된지라, 아이들이 팔에 안겨 깊이 잠들 수 있는 것이다.(1권, 228쪽)
심보 사나운 사람들에게는 그들 고유의 시커먼 행복이 있다.(1권, 277쪽)
호기심이란 일종의 게걸스러운 식욕이다.(1권, 290쪽)
낙원으로 가는 길을 통하여 지옥으로 가는 방법을 찾았다.(3권, 49쪽)
짐승들 세계에서는 비둘기로 태어나서 올빼미로 변하는 경우가 결코 업다. 그러한 현상은 오직 인간들 속에서만 발견된다.(3권, 243쪽)
남자가 겪는 궁핍만을 본 이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한 것이다. 여인이 겪는 궁핍을 보아야 한다. 여인이 겪는 궁핍만을 본 이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한 것이다. 어린아이의 궁핍을 보아야 한다.(3권, 249쪽)
권리와 사실 간의 그러한 투쟁은 사회의 태동기부터 계속되어 왔따. 그러한 싸움을 종식시키고, 순수 이념과 인간적 현실을 혼용시키며, 권리가 사실 속으로 그리고 사실이 권리 속으로 평화스럽게 침윤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현인들의 일이다.(4권, 18쪽)
아이들이 자기의 칼을 가지고 놀듯이, 여인들은 자기들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장난을 한다. 그러다가 상처를 입는다.(4권, 118쪽)
침략군이 지리적 국경을 유린하듯, 폭정은 윤리적 경계선을 유린한다.(4권, 450쪽)
극심한 고통에는 명민함이 수반되는 법이다.(4권, 497쪽)
여름은 어떠한 경우에도 양위하는 법이 없다.(5권, 18쪽)
남자의 눈은 떠오르는 별 앞에서보다도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아가씨 앞에서 더 경건해야 한다.(5권, 60쪽)
사람들이 포석을 보면 즉시 곰을 뇌리에 떠올리고, 사회는 선의 앞에서 불안해 한다.(5권, 107쪽)
“내가 전에는 살기 위하여 빵을 훔쳤소. 그러나 오늘은, 살기 위하여, 이름 하나를 훔치고 싶지 않소.”(5권, 330쪽)
“나에게 필요한 사면은 오직 하나, 내 양심의 사면이오.”(5권, 332쪽)
퇴비가 봄을 도와 장미꽃을 만드는 것(5권, 347쪽)
자연은 생명체들을 오는 것들과 떠나는 것들로 양분한다. 떠나는 것들은 어둠을 향하고, 오는 것들은 광명을 향한다. 그러한 현상에서 하나의 간극이 비롯되는 바, 늙은 것들 측에서 보면 숙명적이고, 젊은 것들 측에서 보면 무의식적이다.(5권, 375쪽)
가난한 사람의 개는 부자를 보면 짖고, 부자의 개는 가난한 사람을 보면 짖습니다.(5권, 389쪽)
법치의 근간을 뒤흔들어 하나의 제국을 무너뜨리는 수단으로, 자비와 관용을 앞세운 위선과 선동만 한 것이 있으랴!(5권, 426쪽)
언제까지 책을 붙잡고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그리고 어설프게 알아서 재산이라고 하기에는 모자란 분야들에 대한 보충이 되었다고 스스로 생각될 때까지는 읽게 될 것 같습니다.
모처럼만에 제법 많은 분량의 타자를 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습니다.
날마다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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