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암각화란 무엇인가?
암각화란 한마디로 바위의 표면을 쪼아내거나 갈아 파거나 그어서 어떤 형상을 새겨 놓은 것을 말한다. 그러나 바위 표면에는 이처럼 형상을 새겨 놓은 것도 있지만 물감을 이용하여 그린것도 있다. 멀리는 유럽의 알타미라 동굴벽화나 라스코 동굴 벽화 같은 것을 예로 들수 있으며,가까이는 중국이나 시베리아 각지에 분포하는 암벽 위의 물감그림들을 들수 있다. 이처럼 물감을 이용하여 그림 그림을 암각화와 구분하여 암채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암각화와 암채화 두가지를 모두 아우르는 말로 바위 그림 또는 암화라는 말을 쓸수 있다. 따라서 암각화는 바위 그림보다 하위 개념이라 할수 있다. 우리가 암각화라는 한 가지 표혀능로 부르지만 새기는 방법에는 몇가지가 있다. 바위를 단단한 돌이나 다. 다른 도구를 이용하여 두드려 쪼아서 형상을 묘사하는 방법이 있고, 쪼아낸 뒤에 그 부분을 갈아서 더 깊고 매끈하게 만드는 법이 있다. 또 날카로운 금속 도구로 바위면을 그어서 가는 선으로 형상을 묘사하는 방법도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이런한 것을 각각 쪼아낸 암각화, 갈아낸 암각화, 그어낸 암각화 등 다른 명칭으로 구분하여 부르지만 우리는 암각화라는 한 갖 말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암각화에는 이처럼 여러가지 묘사법이 있다는 것을 알아 두어야 한다. 이러한 방법들에는 각각 그림을 새긴 사람들의 문화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그림의 형태로 구분하면 윤곽선이나 도형 내부를 여러 개의 선을 분할하여 묘사하는 방법과 윤곽선 내부를 쪼거나 갈아내어 실루엣 처럼 만드는 방법이 있다. 앞으 것을 선각, 뒤으 것을 면각이라 부른다. 중국이나 몽골 또는 시베리아 지역에서는 선각과 면각이 시대적으로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인 선후 관계가 비교적 분명하며 대체로 면각화가 서각화에 앞서는 것으로 나타난다.
(2) 암각화 유적은 어떤 곳에 있는가?
1) 강가, 바위, 절벽 : 대부분 동향.남향쪽으로 향해 있다. 대 부분 그곳에 있는 이유는 사람들의 종교적인 관점, 신, 종교 푸유에 대한 기원 등에 의해 아 무 곳에 그리지 않고 특정한곳에 암각화를 그렸다. 그리고 구태여 강가옆에 암각화를 그린 이 유는 물의 신성성, 생명의 원천 신과 관련 되었기 때문이다. ex) 반구대 - 북향, 우리나라 다른 암각화 보단 빠른편이다. 2) 편평한 바위 위 : 안동 수곡리 암각화 (하늘을 향해 있다는 것에 의미) 3)해가 잘 비치는 동향과 남향 바위 :90% 정도가 동쪽과 남쪽사이에 있음. 북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반구대. 서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포항 칠포대 이다.
(3) 무엇을 새겼는가? <반구대 암각화의 인물상>
1) 사람과 동물(구체적인 형상 = 물상암각화) - 동북아시아, 호주, 중국, 미국 등... 가장 많은 비 중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울산 반구대와 천정리 외에 거의 찾아 불수가 없다.
2) 기하학적 무늬 - 동심원, 불결무늬, 원, 삼각형, 마름모
3) 신상 - 어떤 사람들이 모시는 신을 그림 바위하나에 어떤 한 모양만 많이 나타남. 특정한 신성한 바위에다 암각화를 새김.
4) 마제 석검이나 석촉을 새김 - 고인돌에 새겨져 있다.
--> 책에 있는 것을 폰으로 찍어 이렇게 나옴.....
(4) 암각화의 기법
1)쪼아내기- 바위를 단단한 돌이나 다른 도구를 이용하여 두드려 쪼아서 형상을 묘사하였다.
(울주 반구대 암각화 쪼아 내기그 림)
2) 갈아내기 - 쪼아낸 뒤에 그 부분을 갈아서 더 깊고 매끈하게 만들었다.
3) 그어 새기기 -날카로운 금속 도구로 바위면을 그어서 가는 선으로 묘사였다.
(5) 암각화를 새기는 목적?
1) 왜 높은 절벽과 깊은 동굴속 까지 그림을 그렸는가?
물론 그것은 단순한 장식은 아니다. 깊은 동굴 벽에 그려진 그림은 특별한 종교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서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서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암각화 역시 신앙 행위와 관련이 있으면암각화가 있는 곳은 제사 의식을 치르는 장소이다.
우리나라 암각화가 있는 곳은모두 강가의 절벽이거나 발 강에 붙어 있지 않더라도 강과 인접 한곳이다. 또 그림이 새겨진 절벽 바로 밑에는 제사를 지내거나 어떤 의식을 거행할 수 있는 공간이 자연적으로 형서되어 있거나 아니면 인위적을 조성되어 있음을 볼수 있다. 이를 보아 종교 의식을 거행하기 위한 장소에 제사의 대상으로 암각화를 만들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안동의 수곡리 암각화는 강과 인접해 있는 남향한 산봉우리의 편평한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 참고 사항***********************
대원사, 글사진,임세권 한국의 암각화 19p~33p 글 참조 21p참조 함 수업시간 강의 노트 참조함. 대원사, 글사진.임세권 한국의 암각화 28p ,31p<그림> 임세권 교수님 홈페이지 다음. 오픈백과:우리미술-반구대 암각화 (중학교 2학년 미술교과서) http://kin.naver.com/open100/db_detail.php?d1id=11&dir_id=1116&eid=vrbp/d99/UZ9jKlZ5E+mMDGCE+isXUHB 다음 뉴스 - 반구대 암각화 보존대책 제자리 http://photo.media.daum.net/group1/general/200609/25/newsis/v14152807.html
이미 천전리 암각화에서 드러났다. 얕게 쪼아진 사슴 그림을 파고하면서 굵은 선각의 추상 도형들 을 새겼기 때문에 이 양자 사이의 선후 관계를 알수 있다. (천전리 암각화 사진)
(양전리 암각화의 동심언. 태양의 상징) (양전리 암각화 태양신) 이 밖에 고령 양전리를 비롯한 경북 전역에서 발견되는 태양신으로 보이는 그림들도 같은 기법 으로 새겨진 청동기시대의 것을 추정되면 안동에서 볼수 있는 여성 성기의 도형도 역시 청동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3) 한국 암각화의 원류
암각화는 전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암각화가 어느 한 곳에서 시작하여 여러 곳으로 전파 되었 다고 볼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암각화가 각각의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발생하였 다고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암각화가 이 땅에 어떻게 등장하였는가 또는 어디에서 들어왔는가, 저절로 생겨난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암각화가 만들어진 시기에 있던 문화가 이땅의 어디에서, 어떻게 들어 왔는가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시베리아 지역과 몽골, 중국 북부의 암각화들은 대체로 같은 경향을 봉하고 있다. 큰줄기를 보면 우선 시베리아 서쪽의 알타이 공화국과 몽골의 접경에서 시작하여 동남으로 길게 내려오는 알타이산맥을따라 분포하는 암각화의 줄긱 있고 알타이 산맥을 따라 분포하는 암각화의 줄기가 있고 알타이 공화국이나 우랄 산맥 동쪽 지방에서 바이칼 호수 지역을 거쳐 동으로 연해주에 이르는 긴 초원 지대에 분포하는 암각화들이 있다. 또 중국 신장성으 알타이 지역에서 비단길로 불리는 간쑤성을 통과하여 내이 멍꾸에 이르는 지역의 암각화들이 있다. 이 암각화들은 그림의 형식과 내용이 거의 비슷한데 이는 이 그림들이 같은 문화 소산물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나라의 암각화들을 시베리아나 몽골, 중국 북부의 암각화들과 비교할 때 물론 다른 점도 많지만 같은 점도 많다. 특히 시베리아에서 중국 북부에 이르는 지역에 광범이 하게 퍼져 있는 사람 얼굴을 묘사한 신상의 구성 요소들을 살펴보면 울의 고령 암각화와 매우 유사함을 알수 있다. 어느 한 그림이 다른 지역과 비슷하닥 해서 발 그 지역에서 온 것으로 단정 할 수는 없으나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거의 대부분의 그림들이 시베리아에서중국 북부에 이르는 지역에 광범이 하게 분포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또한 이 지역이 청동기 문화가 우리나라로 이동되어 온 경로의 하나임을 볼 때 이는 매우 중요하다고 할수가 있다.
(4). 한국 암각화의 유적지
1) 경북 영주지 가흥동 암각화 2)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수곡리 암각화) 3)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칠포리 4) 경북 포항시 북구 기계면 인비리 5) 경북 영천시 청통면 보성리 6) 경북 경주시 석장동 7) 경북 경주시 내남면 상신리 8)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울주 천전리 암각화) 9)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울주 반구대 암각화) 10) 경북 고령군 개지면 양전리 11) 경북 고령군 쌍림면 안화리 12) 경남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13) 경남 남해군 이동면 양아리 14) 전북 남우너시 대산면 대곡리 15) 전남 여수시 오림동
→ 이 많은 유적지 중에서 가장 유명한 울주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에 대해서 조사를 함.
(5) 울주 반구대 암각화
*위치 - 울산으로 흐르는 태화강 상류 반구대 일대의 인공호(人工湖) 서쪽 기슭에 북쪽으로 향한 암벽에 새겨졌다. 댐의 축조로 인해 평상시에는 수면 밑에 있다가 물이 마르면 그 모습을 보인다. 그 크기는 가로 약 8m, 세로 약 2m이고, 조각은 암벽 밑에까지 부분적으로 퍼지고 있어 밑에서 부터 암각화 상단선까지의 높이는 3.7m쯤 된다.
거북 .물고기 ·사람 등의형상과 고래잡이 모습, 배와 어부의 모습, 사냥이나 수렵 용구,그림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호 등도 섞여 있다.
* 새김법 - 면각과 선각이 두가지 기법을 모두 사용하고 있으며 겹쳐진 상탤 보아서 면각법으로 새겨진 것이 선각법의 것보다 앞서 있음을 알수 있다. → 면각화의 내용 : 하늘로 오르는 고래 떼,제사장 또는 샤면 ,속계와 영계를 넘나드는 동물들 풍요기원을 담아 하늘로 가는 배, 새끼 밴 육지 동물들과 성기를 내민 사람들 → 선각화의 내용 : 투시법의 전통가 흔적들, 힘차게 약동하는 동물들,생산의 풍요를 상징하는 새끼밴 동물들 , 제의와 가면
< 면각과 선각을 사용한 암각화 그림들 >
(고래 그림 - 위치와 크기, 형태에서 신격으로서의 신성성이 엿보인다. ) (선각 몸체에 면각 머리와 목을 가진 사슴 ) ( 새끼밴 고래 )
( 투시법으로 그린 멧돼지- 생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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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팔을 들어 올리고 다리를 굽혀 춥추는 듯한 인물상
중앙부 위쪽의 멧돼지는 몸체에 가로세로 연결된 선들이 목잡하게 새겨져 있다. 입에서 몸체 내부로 들어가는 선이 모사되어 있어 투시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힘차게 둥직이는 듯한 호랑이아 고래 그림 - 면각의 동물들이 대부분 정적인데 비해 선각으로 묘사한 동물들은 동감의 표현이 매우 뛰어 나다.) ( 사진 - 천전리 암각하 전경)
반구대 유적에서 상류로 계곡을 따라 1킬로미터쯤 올라가면 물길이 오른쪽으로 크게 돌아 꺽어진다. 거기서 다시 1킬로미터쯤 가면 오른쪽으로 급경사를 이룬 산봉우리가 있다. 왼쪽으로는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계곡으 양쪽으로 수직 암벽이 있는 곳이 나온다. 이 양쪽 암벽 사이를 급류가 휘돌아 반구대로 흘러드는데 완만한 능선이 끝나는 자리에 병풍처럼 생긴 암벽이 서 있고 그 바위면에 암각화가 있다 . 암벽은 물이 흐르는 곳보다 약간 높은 곳에 있으며 앞으로 기울어진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비교적 매끈한 벽면은 너비 9.5미터, 높이 2.7미터의 크기이다. 바위에 새겨진 그림들은 크게 네 종류로 나눌수가 있으면 이들은 서로 중복되어 새겨져 있다. 바위면을 상하로 나눌 때 윗부분에는 쪼아파기와 갈기 수법으로 표현된 사슴 등의 동물상과 인물상, 추사적 도형들이 있고 아라ㅐ 부분에는 가는 선각의 글씨들과 인물, 동물 또는 추상적 도형들이 쪼아파기와 긋기 수법으로 새겨져 있다. 글씨와 선각화가 잇는 부분은 바위면이 여러 군데 깨어져 없어졌다. → 바위에 새겨진 그림의 종류 * 면각으로 새긴 동물들과 사람들 - 동물상은 쪼아파기로 매우 얕게 새겨져 있다. * 태양과 여성을 상징하는 선각의 추상적 동형들 * 철기로 깍아 새긴 가는 선 그림들 * 태양신의 얼굴을 새긴 신상 암각화 (태양과 여성을 상징하는 추상 도형들 ) 대부분 마름모형을 세로로 열결시킨 형태이며 여성의 성기를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또 동심원과 나선형의 그림들은 일반적으로 태양을 상징한다.
(추상화된 인물상) 천전리 암각화에는 반구대의 가면과 비슷한 형태의 사람 얼굴과 거칠게 쪼아낸 미완성으 얼굴 그리고 얼굴을 크게 과장시킨 인물상등이 있다.
바지는 통이 넓으며 발목을 묶었고 신발의 앞코는 매우 뾰족하고 치켜 올라갔다. (파기로 새겨진 동물상들) 바위면 왼쪽 끝에는 쪼아파기로 매우 얕게 새겨진 동물상들이 약간 남아 있다. 이렇게 허리가 긴 동물들은 늑대 종류로 보인다.
( 큰 뿔을 가진 사슴 머리) 뿔이 아름답게 강조된 사슴의 머리가 비교적 뚜렷이 보여 몸체를 새기지 않았거나 아니면 아주 얕은 형식으로 쪼아냈을 가능성이 있다. 사슴의 큰 뿔이 숭배의 대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사진 촬영 - 직접 촬영 ) (1) 가흥동 암각화의 환경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 248호 소재지 : 경상북도 영주시 가흥동 264-2 ▶ 이 암각화는 내성천의 지류인 시천이 영주시 서편을 따라 남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서남쪽 으로 굽어 도는 지접에 위치하고 있다. 가흥리 마애삼존불상과 같은 암반이 남쪽 수직 석벽에 새겨 져 있으며 1989년에 발견 되었다. 그림이 새겨진 암벽은 거친 화강암질로 높이 4m, 폭이 5m 넘는 꽤 큰 규모이다. 암벽은 상하로 구분되는데. 이 암각화는 하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체 암각화가 차지 하는 규모는 높이 1.5m 길이 4.5m 정도 이다. 검파형 모양의 암각화가 점차 도식화 되어 가는 과정으로 가장 늦은 시기인 청동기 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암벽에 신앙의 대상 물을 새기고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던 제사의 장소로서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2) 암각화의 형태
( 영주 암각화 형태 - 책 한국의 암각화 120p 사진촬영)
고령 양전리 신상 암각화의 변이형을 이런 유형으로는 가장 단순하다. 형태는 세로로 긴 장방형 이고 네 윤곽선을 모두 안으로 흰 반원으로 처리하였다. 특히 좌우으 선이 많이 휘어 있어 중심부의 서로 이어진 부분은 그림가 그림 사이가 마치 원형을 연결 시킨 듯이 보인다. 윤곽선 외부에 머리카락의 묘사는 없으며 안으로 가로줄을 두셋그어 내부를 셋 또는 넷을 나누었다.
중심 바위면 왼쪽 상단에 있는 것은 내부에 칸마다 한 개씩의 원형홈을 새겼다. 또 중심 바위면의 한 가운데와 오른쪽 바위면 상부 중심에 있는 도형의 바로 위쪽 중심부에 작은 원형 홈이 새겨져 있어 전체적으로 마치 사람이 두팔과 다리를 활짝 벌리고 있는 듯하다. 이 작은 홈이 머리 그림과 연결되는 것인지는 학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원형 홈이 다른 대부분의 그림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어 사람의 머리를 표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 암각화의 문양 모습
( 암각화 문양의 한부분 - 직접 사진 촬영 ) 사람의 머리는 없고 팔과 다리를 벌릭 있는 모습
( 암각화 문양 한부분 - 직접 촬영 ) ( 암각화 문양 한 부분 - 직접 사진 촬영 ) ▶ 사진에 나온 문양들이 대부분 희미 하다. 그림이 보일듯 말듯 하다. 선명하게 보이면 참 좋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3) 사용한 기법
선을 쪼아서 표현한 선사시대의 선각화법을 썼으며 몇군데 에서는 쪼아낸 위에 다시 문질러서 각선의 윤곽을 뚜렷이 하는 기법을 쓰기도 하였다. 선사시대 암각화의 공통된 수법이다.
(4)문양의 의미
청동기시대의 석검손잡이나 방패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나 고령 양진동 울주 천전리, 영일 칠포리 암각화에서 나타내는 기하학적 무늬와 더불어 신앙의 대상으로서 신채나 부적의 의미를 지니는 가능성이 크다. 아직 정확한 의미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가흥동 암각화는 사람의 몸 전체를 상징화한 그림으로 보고자 한다. 이 그름을 사람 얼굴로 보면서 태양신으로 그 상징성을 풀이한다. 가로선 긋기에 따른 분할의 차이는 의식에 참여했던 참여자의 연령이나 제의 주관자에 따른 격이나 역할의 차이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의례절차에 따른 지침의 표현이고도 한다.
--> 책에 다른 암각화에 대한 설명이 나오나 영주 가흥동 암각화에 대해서는 조금만 내용이 적혀 있어서 내용을 많이 조사하지 못하였다. 더 많은 설명을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수 없어서 그래서 좀아쉽다.
(5) 영주 가흥리 암각화를 다녀와서 보고 느낀점**************************************
< 직접 보고 찍은 사진 -1 >
처음에 암각화를 보러 간다는 마음에 약간 떨리고 재미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교수님 수업을 너무 재미 있게 듣고 있던 터라 암각화에 대해 이론상으로만 배우는 것보다 실제로 보면 참 유익하겠구나라고 생각을 하였다. 안동 수곡리 암각화를 가려고 했는데 배를 타고 가야 하고 수곡리 암각화에 혼자 올라가기에는 위험하다고 하여 안동에서 가깝고 혼자 갈수 있는곳을 찾다가 영주 가흥동 암각화란 곳을 알게 되었고 그곳으로 가게 되었다. 혼자만 가지 않았더라면 울산 반구대에도 가고 싶었는데 많이 아쉬웠다. 우리 나라에서 처음 만들어진 울산 반구대에 다음에는 기회가 되면 한번 가고 싶다. 영주로 가기위해서 기차를타고 갔다. 기차를 타고 40분정도가 걸려 영주에 도착했는데 처음에 어떻게 가야하나 약간 막막하였다. 암각화까지 걸어 가도 된다고 하였는데 걸어서 가려구 하니 영주는 처음 가는 곳이라 어디로 가야할지를 몰라서 역앞에 있는 영주지도를 봤는데 그곳에는 가흥리 암각화는 안적 혀 있고 가흥동 마애삼존불상은 적혀 있길래 그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여 택시를 타고 "가흥동 암각화로 가주세요"라고 말하니 못알아 들었다. 그래서 "가흥동 마애삼존불상"이 있는 곳으로 가주라고 하였다. 애삼존불상이 있는 곳으로 갔다. 아파트 단지가 있는곳을 갔는데 택시에서 내려 쉽게 찾을수 있겠지 하고 계속 걸어서 아파트 단지 있는 곳으로 갔다. 무슨 표지판이라도 있겠지하고 계속 걸어서 갔는데 아무런 표지판이 보이지 않았다. 계속 뺑뺑돌았다. 아파트 단지를 ............ 막막하였다. 못 찾으면 어떻하나 생각을 하였는데 그냥 한 아주머니에게 물어 보았다. 마애삼존불상이 어디에 있냐 고 아주머니가 내가 처음 택시에서 내렸던 곳을 가리키며 저 작은산 밑에 있다고 하였다. 나는 이 때껏 헛 고생만 했었던 것이였다. 택시에서 바로 내려 옆으로 걸어가면 있는 것을.......ㅠㅠ 다시 처음 왔던 곳으로 내려가 암각화를 찾앗는데 영주 가흥리 암각화 표지판은 있었다.
그래서 내용이 뭐라고 적혀있나 계속 쳐다 보았는데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못알아 보았다. 표지판은 그냥 세워져 있을 뿐 정보를 얻고자 하는 이에게 정보도 제공 하지 않고 문화재 관리를 너무 허술하게 한듯 하다. 그래서 많이 아쉬웠다....
( 가흥동 암각화 표지만 그 내용이 잘 안 보임 - 직접 찍은 사진)
그곳에는 가흥동 마애여래좌상이 있었다. 암각화가 어디에 있나 계속 찾아 보았는데 큰 바위가 표지판 옆쪽으로 있긴하였는데 어디에 암각화가 있나 계속 쳐다 보았다. 처음에는 아무리 봐도 뭐가 뭔지 하나도 못알아 보았는데 계속 쳐다 보니깐 무슨 문양 같은 것이 그 바위속에 나타났다. 그래도 혹시 저게 아 니면 어쩌나?라고 생각을 하였다.
처음에 위에 있는 이 문양을 보고 꽃게 모양 같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꽃게를 그렸나? 라고 생각을 하였다. 생각했던것 보다 너무 그림 문양도 잘 안보이고 관리를 허술하게 한것 같았다. 영주 가흥리 암각화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면 아래 사진의 모습이다.
( 사진 촬영 - 직접 촬영)
( 사진 촬영 - 직접 촬영 <문양이 보임 >)
(전체적으로 암각화 유적지 모습 - 직접 촬영 )
( 사진 촬영 - 직접 촬영 )
다른 암각화 유적지 보다 규모가 많이 작은것 같다. 그림의 문양도 바위 전체면에 여기저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곳에 하단부에 있었다. 암각화락 하여 많은 문양이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 했는데 가흥리 암각화에 그려져 있는 그림은 아래 그림과 같다.
( 직접 촬영- 암각화 한부분의 모습 ) -- > 동그란 타원형에 양가로 가로 줄3~4개가 있다. 암각화 한 부분의 모습
( 암각화 한부분 - 직접 촬영 ) ( 암각화 한부분 - 직접 촬영 ) 문양들을 내부분 보면 태양을 숭배 이런것과 관련이 있지 않나 생각을 하였다. 이 암각화는 신 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그렸지 않나? 생각을 하였다.
--> 암각화의 주변모습은 놀랍게도 난 암각화가 당연히 산밑에 도시와는 약간 떨어진 외진 곳에 있지 않나 생각을 하였는데 바로 뒤에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그래서 좀 보기에 좋지 않다. 암각화 맛이 나지 않았다.
( 사진 촬영 - 직접 촬영 ) ( 사진 촬영 - 직접 촬영 ) --> 아파트 단지 밑에 가흥동 마애여래 좌상과 암각화가 있었다.
그리고 암각화 앞으로는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산아래 바위에 암각화가 새겨져 있고 물과 가까이에 있으므로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곳이였고 그런 의미로 암각화가 새겨진것 같다.
( 암각화 앞 강이 흐르고 있다 - 직접 사진 촬영 )
( 암각화 앞에서 암각화가 바라보고 있는곳 사진 촬영 한 모습 . - 직접 촬영 ) --> 남쪽을 향하고 있다. 해가 잘들어 오고 있고 강도 보인다. 대부분의 암각화 처럼 남쪽을 향함.
**** 기타 사진들 ******
지금 암각화 주변으로 공사 중이였다. 그래서 약간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암각화를 보았는 데 주변이 지져분해 보였다.
( 암각화 주변 공사중의 모습 - 집접 사진 촬영 ) ( 암각화 위의 모습 - 집접 사진 촬영 ) (가흥동 암각화 옆 마애여래좌상의 모습 - 직접 사진 촬영 )
( 전체적인 유적지의 모습 - 직접 사진 촬영)
**********************영주 암각화를 다녀 와서 느낀 점******************************
암각화란 것을 난생 처음 보았다. 주변에 그러한 것이 있는 줄도 몰랐다. 이번에 친구의 권유로 같이 이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참 잘 들었다고 생각을 하였다. 암각화란것이 그저 바위에 재미로 옛날 사람이 그림을 그렸겠거니 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그 속에는 많은 의미가 있고 옛 선사시대의 문화도 알수가 있으니 암각화란 참 중요한 것 이라고 생각을 한다. 바위에 사슴, 고래, 등.... 동물의 모습과 여러 신상의 모습, 태양을 숭배하는 그림등..... 암각화에 새긴 그림들은 생산과 종교적인 의식 등...에 의미가 많다고 하였는데 참 신기한것 같다. 옛날에도 신에게 무언가를 빈다는 것이.....영주 가흥리 암각화는 바위 규모가 상당히 컸다 그러나 관리를 너무 허술하게 하지 않았나 생각을 많이 가졌고 동물의 그림 등..을 보고 싶었지만 그러한것은 없었다. 그저 신상의 모습만 있었는데 그림이 많은 것도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군데에만 있었다. 그래서 다른 암각화 유적지도 찾아가 보아 직접 암각화에 새겨져 있는 여러가지 문양들을 보고 싶다. 암각화뒤로 아파트 단지가 있어서 보기가 안좋 았다. 그리고 바로 앞에는 도로가 있고 영주 사람들도 영주 가흥리 암각화가 무엇인지 몰라서 많이 아쉬웠다. 대부분 사람들이 암각화 자체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그러한것 같다. 암각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에게도 가르켜 주어야 할것 같다.암각화가 제대로 안보였고 암각화 보존을 위해서 아무런 장치도 해 놓지 않았다. 앞으로 시간이 더지 나고 하면 많은 손상과 보존이 힘들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이런 중요한 문화제가 더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보존해야 하지 않을 까 생각이 든다. 암각화를 직접 눈으로 보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참 유익한 시간이였던것 같다.
*** 과제를 하면서 느낀 점*****
암각화를 과제를 하기 위해서 보러 갔다오고 암각화에 대해서 책을 읽고 하니깐 암각화의 재미에 빠진 것 같다. 기하학적 무늬를 보니깐 참 재미있는 것 같다. 특이 하기도 하고 옛날에 어떻게 아주 높은 절벽위에 까지도 그림을 물감이나 크레파스 연필 이런것으로 그린것도 아니고 돌멩이, 등의 도구로 직접 하나 하나 새겼다니 놀랍기 그지 없다. 선사시대에 사다리 같은 것이 있었나??라고 생각 하였다.
우리 나라에 대표적인 암각화가 울주 반구대 암각화 인데 자료를 찾아 보니깐 해마다 이 암각화는 물에 잠긴다고 하였다. 그리고 지금 손상도 많이 되었다고 하였는데 이렇게 유명한 암각화를 제대 로 보존을 하지 않다니 많이 아쉬운 것 같다. 그리고 천전리 암각화의 경우는 탁본을 한다고 하여 바위에 많은 탁본의 흔적이 남아 보기가 흉직했는데 수업시간에 탁본을 하면 암각화 훼손이 많이 된다고 하였다. 탁본을 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암각화의 그림을 갖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수업시간에 배운 컴퓨터 그래릭을 이용하여 도면을 제작하면 많은 훼손을 막을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암각화 보러 간 곳도 너무나 보존을 안해 놓고 있는 것 같았는데 우리 나라 대부분의 암각화 또한 보존이 제대로 안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암각화에 대해서 단순한 돌멩이에 그림 그려 놓은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고 잘 알지 못하여 그런것 같은데 앞으로 암각화를 보존하고 훼손을 막는 방법에 대해서 많은 연구 등 이 필요 할 것 같다. 그리고 이 과제를 하기 위해서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려고 하였는데 암각화에 대한 책은 없었다. 있는 것도 몇 권 안되어 다른 사람이 다 빌려 간 상황이 였다. 과제를 열심히 하기 위해서 자료를 많이 찾아 보려고 했는데 "한국의 암각화" 란 책은 나에게 있어서 대부분 그 책으로 과제를 하였다. 다른 자료도 참고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여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인터넷의 내용을 많이 참고 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사진 등을 인터넷 자료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같을 것 같다. 도서관에 암각하에 대한 책이 좀 많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암각화를 사랑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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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선사시대 예술과 신앙 원문보기 글쓴이: 암각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