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군은 한반도 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간직한 지역이다.
1100년 전 궁예가 도읍을 정한 이래 강원도 북부의 상업, 교통 중심지로 기능했던 곳이지만,
민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은 철원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한반도 중앙이자 강원도 유일의 곡창 지대라는 특징 때문에,
남북이 가장 격렬하게 싸우면서 도시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군은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시간이 흐르고 민통선이 일부 해제되면서
구시가지에서 그나마 가까운 동송에도 시가지가 들어섰다.
1960년대 이후 동송에 사람이 들어오고, 마을이 들어서고,
이들을 실어 나르기 위한 버스터미널도 들어서게 되었다.
6.25 전란의 흔적은 7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면서 희미해져 갔다.
동송읍도 갈말을 제치고 철원에서 가장 북적이는 번화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당시의 아픈 기억은 여전히 잔상처럼 곳곳에 흩뿌려져 있다.
동송터미널은 전쟁 이후에 생긴 곳이니 물리적인 잔상을 찾기는 어렵지만,
상처를 생생히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마치 상자처럼 꾹꾹 담겨 있다.

차디찬 칼바람이 부는 어느 겨울날 동송을 찾았다.
개인적으로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 종종 방문을 했었던 곳인데,
우연의 일치인지 올 때마다 겨울이었던 것 같다.
터미널을 찍으러 온 지금도 하필이면 겨울이다.

동송은 철원군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거주하며, 가장 커다란 상권을 가진 곳이다.
군청이 있는 곳은 갈말읍으로 신철원이라 불리는 곳이지만,
구시가지와 가까운 동송이 규모는 더 크다.
어쩌면 6.25 전쟁 이전 철원에서의 삶을 그리워하던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고향과 가까운 곳으로 모여들어 지금의 읍내가 형성되었는 지도 모른다.

동송터미널은 동송 읍내 한복판에 떡하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가지 한복판에 버스터미널이 있다는 사실은,
시가지가 형성될 때부터 터미널이 운영되었음을 뜻한다.
지금의 동송이 만들어진 때가 1960~1970년대이니,
이 시기부터 약 반세기 동안 운영해온 현대 철원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이곳은 건물 뒤가 아닌 45도 방향에 주차장이 있고,
주차장 입구에는 커다란 간판을 끼운 지붕이 있다.
입구에 지붕이 있는 형태는 요새 찾아보기 어려운 구조이다.
이전의 전곡 편에서도 언급했지만, 최소 1970년대 이전 건물에서 확인할 수 있는 생김새이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아니라 영화 '친구' '말죽거리 잔혹사'를 찍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동송터미널은 반세기 전 구조물을 리모델링 없이 쭉 유지해오고 있다.
건물이 아닌 지붕 밑에 병렬형으로 놓인 승차장과,
인도와 차도의 구분 없이 어딜 걸어도 높낮이가 같은 길터는
오랫동안 변함없이 모습을 유지해왔음을 소리 없이 알려준다.

동송터미널뿐만 아니라 동송읍내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1980년대 자료집을 봐도 고층아파트 같은 몇몇 건물만 달라졌을 뿐이다.
동송이 전체적으로 오랫동안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한 이유는,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각종 개발 규제에 막혔던 탓일 테다.

동송은 와수리와 함께 전국에서 가장 휴전선과 가까운 터미널 중 하나다.
그래서 이곳에 들어오는 모든 노선은 동송을 종점으로 삼는다.
포천과 철원에 들어오는 시외버스는 경기고속 아니면 강원·진흥고속 둘 중 하나인데,
우연히도 수유리로 향하는 경기고속 차량과 터미널로 들어오는 강원고속 차량을 동시에 마주쳤다.

동송터미널 대합실도 오랫동안 같은 구조를 유지해왔으나,
의자 및 도색 등등 디자인이 바뀌어 분위기는 다소 달라졌다.
오랜 시간 이 자리에서 사람을 마주한 까닭에,
동송에 추억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모습이 익숙할 것이다.

최전방 지역 아니랄까봐 대합실 옆에는 각종 군용품을 파는 잡화점이 있고,
주 고객 또한 군인 아니면 노인이다.
명절 등 특수한 날에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급격히 증가하는데,
조금이라도 고향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노인분들이 종종 찾는다고들 한다.

서울-포천-철원을 잇는 시외버스의 종점이기 때문에,
동송 시간표도 포천 및 신철원 등과 비슷하게 경기고속 / 강원·진흥고속 시간표가 분리되어 있다.
경기고속 시간표를 먼저 살펴보면,
3001번 무정차(포천까지 완행) 12회, 3001번(완행) 12회, 3003번 14회, 고양-인천행 3회가 있다.
동서울행(총합 24회)은 10년 전과 같지만 고속도로 개통으로 절반이 직행으로 바뀌었으며,
수유리행은 32회에서 14회로 반타작 이상 감소했다.

강원·진흥고속 시간표는 행선지가 많은 대신 운행 횟수가 적은 특징이 있다.
강남 11회, 춘천 5회, 수원 5회, 청주-대전 2회가 운행되고 있다.
수원행과 대전행을 타면 장현리 및 일동을 경유하며,
10년 전에서 횟수가 유지되거나 소폭 증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원, 대전, 인천, 춘천 등으로 가는 소수의 고정 승객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동송터미널 이용객은 서울로 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리 군인 및 지역 주민이 애용한다고는 하나 수요에 한계가 있어서,
동서울 및 수유리 환승객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전국 대부분의 터미널이 수도권 의존도가 심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유독 포천과 철원에서 그러한 현상이 강한 이유는 분단이라는 현실적인 장벽 때문이다.
북쪽과 서쪽이 휴전선으로 가로막혔으니 통하는 지역이 없어서,
춘천 방면을 가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면 서울로 쏠릴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경원가도의 중간에 있는 도시로 강원도 북부의 거점지 역할을 하면서,
함경도 방면으로 나아가는 천안과 비슷한 역할이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 무색하다.
이전에 원산으로, 함흥으로, 청진으로 왕래했던 사람들의 생생한 기억이,
동송터미널 안에는 전래동화처럼 누군가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급격히 진전되어 경원선 복원 및 개방이 이슈화가 되고 있다.
결코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북한으로의 왕래가 이제는 시간 싸움이 되어가고 있다.
만약 실현이 된다면 경원선과 가장 가까운 동송터미널은 상당한 혜택을 받을 것이다.
기억의 상자를 다시 열어볼 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려본다.
첫댓글 마지막 문단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접경 지역은 남북관계에 특히 더 영향을 많이 받다보니 상당 기간을 냉전 상태로 보낸 세월만큼 정체 상태도 오래 되었으리라 여겨집니다. 남북 경협 등을 통해 이들 지역에도 많은 혜택이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장현행이라 나온 운행계통은 장현이 종점이 아니라 중간 경유지로 알고 있는데, 아래 나와있는 일동 경유 시간대와 같은 노선들이 운행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경기대원 쪽 노선안내판에 비해 강원.진흥 노선안내판은 조금 정돈이 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장현, 일동 모두 같은 노선이 운행하는 게 맞습니다. 수원 / 대전행이 중간 경유지로 들리는 것 같아요. 저는 경기대원 / 강원진흥 시간표를 아예 통합했으면 합니다. 진흥고속 인천행 폐지의 경우에도마치 인천행 전체가 폐지되는 걸로 잘못 인식될 여지가 크고, 실제로 시간표를 볼때도 너무 헷갈리더군요.
덕분에 동송터미널 참오랜만에 보는군요
2005~7년엔 동서울완행만있고 수유직통이있었는데 반대가되었군요^^ 요금도 수유행이 지금보다 조금비쌌던거같고 센트럴행 개통초기엔 시간안맞아서 수유직통이나 동서울완행 이용했던 기억나네요^^
그당시에만 해도 동서울행을 많이 애용하셨었군요 ^^ 2 지금은 동서울 위주로 채계가 잡혔는데 말입니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