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내 나이 오십하나이다. 친구들도 거의 다 57년 닭띠... 오십하나이리라.
군산여고 졸업기수도 51회이다.
우연의 일치인가...
51의 숫자가 다정스럽다.
잠 잘 때면 얼굴에 피부 고와지라고 바르는 것도 오일이니...
아... 미끄럽다. 반짝인다... 51이여...
그래서 오십하나의 나이는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반짝이는 나이이니 자부심 가져도 되지 않을까?
내가 김제 진봉초등학교, 5학년 때 큰 언니는 내 손을 이끌고 주산선생님을 찾았다.
우리 후순이 주산반에 넣어 주세요...
그날부터 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열심히 주산을 놓았다.
지금이야 컴퓨터 세상이기에 덧셈, 뺄샘, 곱셈, 나눗셈이 별거 아닌게 되었지만...
60년대 중반 당시에는 주산을 잘 놓는다는 것은 남이 가지지 못한 특기를 가진 학생일 수 있었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큰 언니는 농사 짓는 아버지 수입만으로는
줄줄이 이어지는 동생들의 진학이 걱정거리 중의 하나였고,
생각해 낸 꾀가 나를 주산선수를 만들어 특기생으로 만경여자중학교에 입학시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주산 4단 정도의 실력이 되었고,
백만단위 숫자도 암산만으로 더하고 빼고 하는데 그 계산속도는 당시로는 번개 같았다.
당연히 진봉초등학교를 대표하는 주산선수가 되어 서울 상공회의소에서 주최하는 전국 초등학교
주산경시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김제 진봉 촌놈, 아니 촌년인가...
이제 겨우 열세살 먹은 겁보 계집아이가 초행길로 그 복잡한 서울길 나들이를 나섰으니...
설레는 마음으로 가슴은 쿵쾅쿵쾅,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내 모든 의식은 팬티 속에 감추어둔 삼백원에
온통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다.
호주머니가 없었던 관계로 어머니가 어디서 구했는지 알 수 없지만 내게 삼백원을 꼬깃꼬깃
접어 건네 주시며, 서울 가면 맛 있는 거 사먹어이잉 하시며 주셨던 돈을 숨겨 놓을 곳이 없어
생각해낸것이 팬티 고무줄 속에 감추어 두는 것이었다.
어머니 말씀 그대로 표현하면, "후순아 만난 거 사머거이이잉..."이었다.
어머니만이 가지고 있는 억양, 정이란 온갖 정이 묻어나오는 어머니의 목소리 톤이었다.
당시 나에게는 거금이었던 삼백원...
서울 가서 무얼 사먹을까 머리 속으로 굴리고 굴리다가...
왕사탕도 사 먹고, 붕어빵도 사먹고, 호떡도 사먹고...
사 먹어야 할 군것질거리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허름한 여관방에서 단체로 잠을 잔 후 깨어나...
아침밥 먹기 전에 당연히 들려야 했던 화장실...
잠결에 내 의식은 여전히 몽롱함의 뒤끝이었고,
아, 이를 어쩌나, 삼백원 뭉치돈이 그만 화장실 깊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게 아닌가?
커다란 고목나무가 쓰러진들 그렇게 커다란 굉음으로 들렸을까?
꿈결에 몽롱했던 내 의식은 화다다닥 정신이 돌아왔으나 돈 떨어지는 광경에 다시 몽롱해졌고...
이 일을 어쪄... 이 일을 어쪄...
화장실 바닥을 동동거리는 내 두 발은 허공을 밟고 있었다.
나비처럼 사뿐이 화장실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내 돈 삼백원,
금쪽같은 내 새끼, 만난 거 사무거이잉...
아물가물 멀어지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화장실 통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옛날 재래식 화장실은 왜 그렇게도 깊은 것인지...
그 아까운 천금 같은 내 돈은...
오물통 속으로 깊이 깊이 가라앉고 있었고...
그 돈을 건져내기에 내 비위는 너무 약했고,
내 팔의 길이는 너무나 짧았다.
돈 삼백원 아까운 것보다... 내 귓가를 맴돌았던 어머니의 목소리...
만난 거 사무거이이잉... 이저묵지 않게 잘 보관혀이이이...
내 의식 깊숙이에서 어머니가 함께 발을 동동거리고 있었고, 나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화장실통에 돈 빠뜨린 게 부끄러워, 선생님께도 말 못 하고, 친구들에게도 말 못하고...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내 마음은 얼마나 안타깝고 절박했던지...
지금 같으면 화장실 똥을 다 퍼내고서라도 내 돈, 금쪽 같은 내 돈 삼백원을 건져냈을 것인데...
열 세 살의 시골 촌년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릴 뿐이었다.
어떻게 경시대회에 참석했는지 문제지 숫자는 보이지 않고 내 돈 300원만 머리 속에서 굴러다니고...
결국 등수에도 들지 못하고 떨어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주산특기생으로 만경여자중학교에 삼년 장학금을 받고 진학할 수 있었으니...
큰 언니의 원대한 계획은 결실을 맺은 것이다.
장학금 받은 죄로... 만경여자중학교에서도 열심히 주산을 놓아야 했고...
당연히 여상고로 가 은행원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나보다 일년 먼저 군산여고를 다녔던 작은 언니는 나를 극구 군산여고로 진학해야 한다고 우겼고,
작은 언니의 우김과 직장생활을 시작한 큰 언니의 지원으로 나도 군산여고에 진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 오십한살의 나는 오십일회 군산여고 졸업생이 되어 너희들과 한 울타리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인문계 여자고등학교에서 주판실력 덕에 나는 선생님들에게 참으로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다.
선생님은 매월 시험을 보고 나면 아이들 평균점수를 내느라 골머리를 앓았고...
성적표를 낼때쯤이면 머리 굴리느라 자갈 굴러가는 소리를 내고는 했었다.
그러다 나, 백만 단위 숫자도 암산으로 척척 해결하는 수퍼걸... 서후순이 입학했으니...
당연히 이 선생님 저 선생님... 아니 이 선생님, 김 선생님인가...
(하여튼 이 선생은 어느 쪽으로든 반드시 붙어 다녔다)
나를 불러 성적 낼 것을 특명했고, 반 아이들보다 가장 먼저 아이들의 성적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는 특권을 가졌으나 누구에게도 점수를 말해 줄 수가 없었다.
지금 같으면 학생이 성적표를 관리하게 되면...
그 바로 이 선생님하고 저 선생님은 사유서를 쓰고 시말서를 쓰고...
인터넷에 오르고... 할 사태이었지만... 당시에는 그게 당연한 것이었으니...
내 주산실력은 지금은 많이 녹슬었지만...
지금도 교수인 남편이 산출한 학생들 성적 관리에는 한 몫을 하고 있다.
지금이야 엑셀을 배워 그전부터 내 머리 굴리는 것보다 컴퓨터로 하는게 훨씬 더 정확하고
편리하고 신속해졌지만... 지금도 간혹... 나는 내 머리의 암산 실력이 녹슬지 않았는지...
종종 암산으로 성적을 산출해 보고는 한다.
내년에는 쉰둘... 52세가 된다.
내년은 52세 나이처럼 오이로 살 것인지... 당근으로 살 것인지 모르겠지만...
엑셀을 밟는 대신 내 머리가 녹슬지 않아 여전히 암산으로 숫자를 계산할 수 있기를 바란다.
크리스마스 이브...
아들 녀석은 제 방에서 공부하고 있고...
남편은 서재에서 논문 쓰느라 여념이 없다.
삼백예순다섯날 중... 삼백스무아흐레가 지났다...
모든 것이 숫자로 환치되는 세상에서...
이 집안 가득히 넘쳐나는 숫자는 제로이다.
너와 나의 경계가 무너지고...
우리가 되는 제로 뿐인 내 집...
이 조용한 침묵 사이로 하늘의 평강이... 예수의 희생과 헌신의 정신이 충만하기를 기도한다.
친구들아...
메리 크리스마스...
하늘천사.
첫댓글 와우~~~ 어데갔다가 왔노? 이런 글 잘쓰고 살림잘하고 감정이 철철 넘치는 후순이~~~ 앞으로 맛나고 신나는 글 많이 올려주렴.... 모처럼 들어왔는데 후순이의 글이 날 즐겁게 하네...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정말 늦게 바람타고 나타난 글쟁이가 있으니. 이젠 카페지기가 좀 편해 지겠다,,너무 너무 맛갈스런 곰삭은 젖갈같은 글솜씨로 우리 마음을 훈훈하게 해 주는 친구야,,오일이 이렇게도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구나,,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