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중국인과 유대인이 강한가? 그것은 그들에게는 민족의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중국인은 수 천개의 고사가 있다. 이 고사는 삶의 여러 상황에서 접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 보통사람들은 문제마다 심사숙고할 수 없다. 대개의 결정은 이런 뇌리 속에 남아있는 이야기를 통해서 결정을 내린다. 중국인은 이런 이야기를 통한 지혜로운 결정시스템을 소유하고 있다는 말이다.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에게는 구약성경과 탈무드를 통한 공유된 이야기가 있다. 이런 민족의 이야기가 그들을 위기 때마다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도록 이끌어 준다. 우리 민족은 공유된 이야기를 잃어 버렸다. 사실은 엄청난 유산의 많은 역사 이야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흥미위주의 분쟁사만 전수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역사 속의 교훈과 영광을 되살리는 것이 민족을 살리는 첩경이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은 철저하게 기록하던 민족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일성록과 같이 연대별로 꼼꼼하게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묘사한 기록들이 즐비하다. 또한 의궤와 같이 국가의 주요 의식을 그림으로 표시한 방대한 자료를 남긴 민족이기도 하다. 이런 기록을 중요시 하였기에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방대한 실록을 기록하였고, 태백산, 오대산, 정족산, 적상산 등의 4대 사고를 설치하고 유지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흐릿한 잉크가 명확한 기억보다 더 오래간다"라는 말이 있다. 민족의 이런 기록정신이 계승, 유지 된다면, 축적된 지혜로 말미암아 타 민족이 도저히 넘볼 수 없는 21세기의 혁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기록하는 자는 승리하고, 기록하지 않는 자는 낙오된다. 이 책은 의궤라는 형식으로 영조와 정순왕후의 결혼식을 그림으로 묘사한 반차도를 분석한 책이다. 반차도란 지금의 사진이나 비디오와 같이 당시의 결혼식 행사를 그림으로 묘사한 것이다. 수천 권의 책으로도 다 묘사할 수 없는 정확하고,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책이다. 이 책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보는 듯한 생생하고, 정확한 역사에 대한 해석을 보여준다.
주인공인 영조는 조선 역사상 가장 오래 살고, 가장 오래 재위했던 왕이다. 그는 무수리 출신의 천한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태생적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러나 영조에게는 이런 아픔들이 오히려 사명을 이루는데 힘이 되기도 하였다. 노론과 소론의 갈등 속에서 왕위에 올랐기에 당쟁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탕평책을 통해서 당색에 관계없이 고른 등용을 하였다. 또한 균역법의 실시로 백성들의 가장 큰 짐인 군역의 부담을 덜어 주었다. 이 모든 것이 그의 아픈 과거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정책이었다. 영조는 일찍이 도시계획에도 눈을 떠 청계천 준설 공사를 시행하였다. 최근 청계천 복개를 원상복구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청계천의 준설이 영조 때에 있었다는 점은 잊고 있는 듯하다. 이 공사는 당시에는 엄청난 규모의 공사였다. 1930년대의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을 연상케 하는 대규모 토목공사였다. 이 대규모 토목공사를 통해서 조선 후기 당시의 경제난과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귀중한 정책이기도 했다. 영조는 조선의 루즈벨트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인 혜안도 가지고 있는 왕이었다.
영조는 83세에 사망했는데, 조선 역대 왕의 평균 수명은 47.1세였다. 영조가 장수한 이유는 그의 서민적인 생활방식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그는 검소한 모습으로 친히 움직임이 있는 운동하는 왕이었다. 태조 이성계나 광해군과 같이 젊은 시절 전쟁터를 누볐던 왕이 비교적 장수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운동하면 살고, 운동 안하면 일찍 죽는다.
정성왕후가 죽자 영조는 66세의 나이에 새로 15세의 정순왕후를 맞는다. 이 정순왕후는 똑똑한 조선 여성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정조가 죽은 후 세도정치의 정점에 이 15세의 왕후로 즉위한 정순왕후가 등장한다. 이런 강하고 똑똑한 여성에 대한 더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왕비를 간택하면서 영조가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것이 무엇이냐?" 다른 후보들은 산이 깊다, 물이 깊다하였다. 그러나 정순왕후는 "인심이 가장 깊다"라고 말했다. 왜? 물건의 깊이는 측량할 수 있으나, 인심의 깊이는 잴 수 없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또 궁궐의 행랑의 수는 얼마나 되냐고 물었다. 후보들은 서로 손가락을 가리키며 세기에 바빴다. 정순왕후는 고개한번 돌리지 않고, 숫자를 말했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자, "처마 밑에 떨어지는 빗줄기를 보면 행랑의 수를 알 수 있다"고 대답했다. 조선의 왕비는 단순히 미모만 갖춘 자가 아니라 이런 엄청난 지혜를 가진 여성이 뽑혔다는 것을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화려하고, 깊이 있는 역사가 있다. 우리의 역사를 연구하고, 공유하는 것이 민족의 부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읋 잊지말고, 젊은이 일수록 역사서를 손에서 놓지 않기를 바란다.
전병욱 서평 23. 티없는 돌이냐 티있는 옥이냐
『상경 : 14억 중국인의 경영정신이 된 최고의 경전』 스유엔 (더난)
나는 비교적 세계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닐 기회가 많았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상권을 잡은 사람들을 보면, 모두 중국인이었다. 많은 부분에서 일본제품이 두각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 일본 제품을 파는 사람들은 중국인이다. 제조하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버는가, 아니면 파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버는가? 내가 보기에는 상인의 수입이 훨씬 많은 듯했다. 중국인이 장사에 강한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 북경에서 물건을 사러 전쟁하는 기분으로 상점으로 갔다. 물건 값을 깎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과의 진검승부에서 이겨보기 위한 시도였다. 단 몇분 흥정을 하다가 느낀 것은 그들은 프로이고, 나는 아마추어라는 것이다. 도저히 이길 수는 없고, 어떻게 하면 스코어 차이를 줄이는가에 골몰할 수 밖에 없었다. 몇 가지 배운 노하우는 이렇다. 흥정을 할 때는 오랜 시간을 투자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선 흥정을 하면서 앉는 것이 중요하다. 마냥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갖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그리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 물건에 대한 욕심이 있는 한 흥정에서 이길 수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저 물건이 필요 없어'라는 마인드 콘트롤을 해야 한다. 흥정을 마치고, 이 정도면 승리했다는 생각에 그냥 나오려고 했다. 그랬더니 그 자리에서 반값으로 줄어들었다. 이것이 중국의 상술이다.
중국의 상술이 강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거상과 잡상에 모두 강하다는 것이다. 우선 잡상을 보자. 잡상들은 단골을 속인다. 중국인과의 거래에서 단골이 되었다고 안심하면 큰일이다. 중국인은 단골을 속인다. 왜? 다시 올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한국인의 정서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사실이다. 반면에 거상은 다르다. 인격적이고, 관계를 중시하고, 미래를 내다본다. 중국이 강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잡상은 잡상으로서의 강한 노하우가 있고, 거상은 거상으로서의 노하우가 있다. 그러므로 중국인을 모두 같은 잣대로 재어서는 낭패를 보기 쉽상이다.
중국인들은 어려서부터 장사를 배운다. 대개의 가옥의 구조가 2층은 살림집, 아래층은 가게이다. 그러므로 어려서부터 흥정하는 것, 속이는 것 등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북경의 진주 상점에서 진주 목걸이를 샀다. 그때 파는 아가씨의 나이는 20세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50세와 같은 노련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중국의 도매상 앞에는 몇 사람이 항상 앉아 있다. 거지도 아니다. 누구인가? 장사를 배우기 위해서 앉아 있는 사람이다. 5년 정도 그렇게 앉아서 장사를 배운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자신의 사업을 시작한다. 장사는 장사하는 현장에서 배워야 한다. 종종 우리나라에서는 코미디 같은 일들을 보게 된다. 미래의 꿈이 사업이라고 한다. 그리고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장사를 대학에서 배우겠다는 시도이다. 어리석은 일이다.
상경은 이런 중국 상인의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진솔한 책이다. 특히 중국 거상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귀한 책이다. 돈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사람을 얻으라고 한다. 사람을 얻으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과 그 관계를 통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장사는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얻는 작업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2세상에는 완전한 인재란 없다. 그 사람의 장점을 보고 써야 한다. 마치 20세기 최대의 경영철학자라고 말하는 피터 드러커의 말을 듣는 듯하다. 비난을 많이 받는 사람일수록 주목하라고 한다. 왜? 숲 위로 우뚝 솟은 나무를 바람이 그냥 두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출중한 사람일수록 비난의 표적이 된다. 뒤락은 "기용한 사람에게 단점이 없다면 그 결과는 평범한 현상유지에 불과하다"라고 했다. '티없는 돌'을 추구하기 보다는 '티있는 옥'이 중요하다. 장점을 가지고 일하는 모습이 거상의 시각이다.
어렵게 일하는 사람과 쉽게 일하는 사람이 있다. 쉽게 일하는 사람은 '흐름'을 타는 사람이다. 세상 만사에 흐름이 있다. 그 흐름을 파도 타듯이 타면, 어렵지 않게 일을 감당할 수 있다. 쇠는 달구어졌을 때 쳐야 한다. 달구어 졌을 때는 몇번의 망치질로도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때를 놓치면, 몇십 배의 노력이 있어도 힘들어지고, 어떤 때는 불가능할 때도 있다. 타이밍과 흐름을 놓치지 않은 상인의 예지를 볼 수 있게 한다.
상인은 현실감각이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다. 현실감각을 가지고 세상을 평가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상경을 통해서 그 세계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전병욱 서평 22. 소유하지 말고 접속하라
『소유의 종말』(The Age of Access) by 제러미 리프킨 (민음사)
풍성한 혜안과 인사이트가 있는 책이다. 그 이유는 제러머 리프킨(Jeremy Rifkin)의 열성과 부지런함 때문이다. 나도 책을 쓰는 사람이지만, 리프킨만큼의 철저한 준비를 가지고 쓰지는 못한다. 이 한권의 책을 쓰기 위해서 350권의 책과 1천여권의 논문, 5만장의 색인 카드와 2천개의 주석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그 연구의 엑기스가 이 책에 배어있다. 미래 변화에 대한 영감을 얻고 싶은가? 무조건 이 책을 읽으라.
이 책의 원제목은 '접속의 시대'(The Age of Access)이다. 그런데 번역은 '소유의 종말'로 되었다. '번역은 반역'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소유의 종말이 오고, 접속의 시대가 된다는 의미로 보면 같은 말이겠다. 그러나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큰 차이가 있다. '소유의 종말'이라는 접근은 과거지향적이다. 우리 민족의 과거를 즐기는 모습이 배어있어서 별로 유쾌하지 않다. 반면에 '접속의 시대'는 미래지향적이다. 관심의 초점이 미래에 있다. 마케팅적인 입장에서는 독자의 구미에 맞아야겠지만, 제목에서부터 일종의 왜곡이 나타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다.
그러면 정의부터 살펴보자. 도대체 '접속'과 '소유'는 무슨 뜻인가? '접속'은 '일시적인 사용'을 의미하고, '소유'는 '영구적인 사용'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소유를 통해서 오랜 기간 물건을 사용하는 접근을 했다. 그러나 미래는 일시적인 사용에만 매달리게 된다. 왜?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변화의 양이 거의 무한대에 가깝기 때문이다. '무어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8개월마다 컴퓨터의 용량은 두배가 되고, 가격은 멈추거나 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1년만 지나면 컴퓨터는 구형이 되어버린다. 컴퓨터는 사용개념이지, 소유개념이 아니다. 이것을 좀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일상생활에서 가장 쉽게 접하는 것이 신문이다. 신문은 하루만 지나면 쓰레기이다. 신문을 소유하려는 사람이 있겠는가? 신문은 누구나 접속하려고 한다. 왜? 한 번 읽으면 더 이상의 가치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이 감에 따라 점점 '아웃 소싱'(out sourcing)이 많아질 것이다. 왜? 첫째, 기업이 사명에만 충실할 수 있고, 조직을 유지하는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해당 분야의 세계 최고 수준의 역량을 가진 사람을 저렴한 가격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설비비와 같은 고정비가 필요없다. 넷째, 변화에 대해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아웃 소싱은 접속의 시대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징후라고 할 수 있다.
미래의 시대는 '개념'을 파는 시대이다. 나이키는 공장시설도 판매망도 없다. 본사는 디자인과 개념만을 가지고, 공장에 생산을 의뢰하고, 매장에 판매를 의뢰하고, 광고회사에 광고를 의뢰한다. 몇 사람이 본사에 앉아서 개념만으로 수익을 창출한다. 미래는 개념이 곧 재산이다. 맥도널드는 프랜차이즈로 성장하고 있다. 햄버거를 파는 것보다 매장을 파는 것이 더 이익이 많이 남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맥도널드는 햄버거를 파는 회사가 아니다. 개념을 파는 회사이다. 미래는 아이디어, 개념, 문화가 곧 생산의 중추를 이루게 된다.
미래는 '얼마나 많은 사람과 접속할 수 있는가'가 그 사람의 능력을 표시하는 기준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관계'에 대한 중요성은 더욱 커지게 된다. 앙리 베르그송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의 음은 순간의 차원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하나의 음이 어엿한 음으로서 존립하기 위해서는 선행음과 후속음이 필요하다. 즉 모든 것은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는 말이다. 근대에는 개인의 능력으로 목적을 이루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접속의 시대에는 많은 사람과 접속하여 네트워크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미래의 교육은 달라져야 한다. 목적 지향적 인간이 아니라 접속이 용이하고, 접속이 강력한 관계 중심적인 인간으로서의 교육을 추구해야 한다.
이 책은 단 한 장도 영감의 파문을 일으키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영감의 보고이다. 미래를 무게를 갖고 준비하려고 하는가? 제러미 리프킨을 사라.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전병욱 서평 21. 온전한 명사는 형용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참된 예배를 회복하라"』(Real Worship) by 워런 위어스비(생명의 말씀사)
저자의 이름을 보고 책을 사는 경우가 있는데, 워런 위어스비의 책이 그렇다. 항상 좋다.위어스비는 깊은 호소력과 혜안이 있는 사람이다. 종종 저자의 이름을 보고 책을 선택했다가 배신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내 경험상 워런 위어스비에게서 이런 기억은 한 번도 없다.
최근 수년동안 예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예배에 관한 많은 책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이 『참된 예배를 회복하라"』(Real Worship) 만큼 균형잡힌 예배에 관한 접근을 보여주는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책은 예배에 관한 종합적인 조망이 가능하도록 독자를 이끌어간다.
"온전한 명사는 형용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유진 피터슨의 말이다. 최근 예배에 많은 형용사가 붙는다. 이 책 제목과 같이 "진정한"(real) 또는 "살아있는"(living) 같은 수식어가 붙는다. 원래 '예배'라는 단어는 건강하고 건전한 명사였다. 그런데 이 예배가 병들고, 능력을 잃어감에 따라서 여러 수식어가 붙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 것이다.
예배를 대신해 온 것들이 여럿 있다. 어떤 사람은 탁월한 주장을 한다. 논리에 빈틈이 없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 예배가 없다면, 그 주장은 헛소리에 불과하다. 역사를 보면, 예배없는 개혁의 주장이 성공한 예는 한번도 없다. 예배없는 매력적인 주장은 교만과 율법주의로 흐르게 만든다.
예배와 분리된 전도도 허망한 것이다. 최근 십여년 동안 많은 교회가 '총력전도주일'이라고 해서 엄청나게 전도했다. 그런데 전도한 사람을 교회에 잡아 둘 수 없었고, 변화시키는데 실패했다. 어떤 교회는 전도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회심시키는데, 어떤 교회는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인가? 그 답은 예배에 있다. 예배가 살아있는 교회는 전도한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러나 예배가 살아있지 않은 교회는 비록 전도는 해온다고 해도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는 실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와 예배는 분리될 수 없는 변화의 주요 요소인 것이다.
예배는 근본적으로 변화를 가져온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다. 예배는 본질과의 만남을 의미한다. 본질과 만나면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예배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근본적인 변화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배의 능력이 사라지니까, '변화'보다는 변화된 척하는 '변장'에 익숙해진다. 지금 많은 교회들은 변화의 능력을 체험하기보다는 변장하는 법을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 이런 외식과 지루함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의 회복에 있다. 성경에서 변화된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라. 아브라함, 야곱, 욥, 이사야의 특징은 모두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맛보고, 그 임재를 통하여 속에서부터의 혁명적인 변화를 체험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 경이로움이 있는 예배이다. 성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다. "논쟁할 사람들은 논쟁하라.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놀라워하리라"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놀라워하는 것이다. 경이로움의 회복이 예배이다. 세상이 달리 보이는 것이 예배이다. 예배는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주목하게 만든다. 주변의 고난, 어려움, 문제에 매몰되어 있던 사람들의 눈들을 사로잡아 하나님을 주목하게 만드는 것이 예배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을 증거한다. 그리고 그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즐거워한다.
예배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힘이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예배자는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모든 사건과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메마른 곳에 영적 풍요를 제공해 준다. 자연히 예배는 경이로움과 예술을 낳으며,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삶은 깊어지고 진지해진다. 이 시대의 난제들을 해결하는 출발점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살아있는 진정한 예배의 회복이다. 예배가 회복되면, 죽어있는 모든 것이 회복될 것이다. 예배를 설명할 때, 형용사가 필요없는 그런 시대를 소망한다. 이 책이 그런 시대를 좀 더 빨리 오게 만들 것 같다.
전병욱 서평 18. 반복되는 역사의 교훈
『제왕들의 책사 (고려편)』 by 신영란 (생각하는 백성)
역사는 반복된다. 역사에 나오는 멸망과 흥성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거의 일치된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지혜로운 민족은 후손에게 역사를 가르친다. 역사를 망각하는 민족은 불행의 역사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역사를 무시하는 민족은 그 역사의 융성기의 강점을 결코 다시 누리지 못할 것이다. 제왕들의 책사는 일종의 역사서이다. 역사 전체를 다루지 않고, 중요 인물 중심으로 다룬 특이성이 있다. 그래서 농축된 지혜를 얻기에 용이하다. 조선, 고려, 삼국시대의 3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별히 고려시대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궁예가 성공적으로 새로운 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궁예의 매력적인 구호 때문이다. "부패와 억압으로부터의 민중해방"을 추구하는 미륵정토 구호의 매력이다. 구호가 좋으면, 사람들을 흥분시키게 된다. 구호란 무엇인가?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붙이는 가장 짧은 요약된 메시지이다. 시대를 움직이는 사람은 대개 강력한 카피라이터일 경우가 많다. 카피의 생명은 '핵심 파악'과 '요약 능력'이다. 둘째, 궁예의 보편성 추구이다. 미륵정토를 통해 어느 누구나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접근을 했다. 어느 한 집단만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품는 보편성이 빠른 시간 내에 세력을 결집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셋째, 고구려 영토회복과 부패한 신라 타도라는 명분이다. 아무리 강력한 무력집단이라 하더라도 명분 없는 싸움은 지게 되어 있다. 궁예는 명분을 가지고 싸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고려의 기반을 닦았다는 4대 광종의 강점은 무엇인가? 우선, 후주 사람 쌍기를 등용한 것을 들 수 있다. 쌍기는 후주를 개혁한 경험이 있다. 탁월한 행정가였다. 광종은 쌍기의 제안으로 말미암아 호족들의 세력을 적절하게 견제하고 중앙집권화를 이룰 수 있었다. 노비안검법을 실시하여 호족의 경제적 기반을 제거했다. 또한 과거제를 통해서 권력의 원천인 관직을 혈통이 아닌 능력에 의해서 뽑도록 만들었다. 광종은 모방을 통해서 성공을 이끌었다. 모방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창의력이 없으면 모방이라도 제대로 하면 낙오는 되지 않는다. 독창적인 창의력이 없는가? 영감을 가지고 모방만 해보라. 결코 뒤지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6대 성종의 탁월함은 어디에 있는가? 보통 각 왕조마다 가장 혁혁한 기여를 하고 나라의 기틀을 잡은 왕에게 성종이라는 시호를 붙인다. 고려의 성종도 마찬가지로 국가의 위용과 체제를 정비한 왕이다. 언제나 구호는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나 구호만 가지고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구호에 깃든 정신을 기반으로 '제도화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민족은 감정에 불이 쉽게 붙는다. 이런 다이나믹은 우리 민족의 강점이다. 그러나 냉철하게 이성을 가지고 제도화하고, 매뉴얼화하는 데는 약하다. 그래서 장기전에서는 무력하다. 우리 민족에게는 성종 류의 이런 체계적인 제도화의 작업이 항상 절실하다. 성종은 선진제도를 도입하고, 법률체제를 정비한다. 그리고 군현제를 실시하여 국가 전체를 다 관할하는 제도를 만든다. 제도화, 매뉴얼화, 이것이 바로 성종의 탁월성의 뿌리이다.
성종은 무엇보다도 인재를 제대로 등용할 줄 알았다. 성종 대의 최승로가 바로 그 사람이다. 최승로는 조금 깊이 연구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광종 때의 쌍기 이후 고려는 지나치게 외국에 의존하는 정책을 펼쳤다. 항상 그렇듯이 토착적인 인재보다 더 나라의 상황을 이해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재원은 없다. 최승로는 당시에는 특이하게도 국내파 학자였다. 전혀 외국 유학경험이 없는 사람이었다. 최승로는 토착적 정서를 지닌 개혁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시무28조'를 올려 가장 국내에 맞는 효율적인 정책을 펼친다. 또한 최승로의 강점은 그의 긍정적인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최승로는 역대의 왕의 장점을 분석하고, 그 강점을 가지고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태조는 넓은 도량과 포용력, 혜종은 왕족간의 각별한 우애를 강조한 점, 정종은 사직을 수호하려는 강한 의지, 광종은 공평무사한 정책, 경종은 현명한 판단력의 사람이었다고 평가한다. 최승로는 강점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최승로는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비난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장점을 파악하고 그 장점을 본받으려는 긍정적인 태도의 사람이었다. 바로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이 이런 최승로와 같은 태도의 사람이다. 눈이 바뀌어야 한다. 눈이 바뀌면 세상이 바뀌게 되어 있다. 피터 드러커의 말이 기억난다. "강점을 기반으로 세우라"(Build on your strength)
성종 대에 또 하나 놓쳐서는 안될 인물이 서희라는 탁월한 외교관이다. 거란의 소손녕이 대군이 이끌고 와서 거의 저항없이 서경을 점령하고, 개경까지도 함락의 위기에 놓였다. 소손녕은 고려 조종에 항복을 권유하는 문서를 보낸다. 평상시에 큰소리치던 대신들도 이런 위기에 처하자 모두 고려의 땅을 내어주자는 '할지론'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논쟁만 일삼는 사람은 진짜 위기에 처했을 때,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귀중한 교훈이다. 이때 서희가 등장한다. 서희는 흥분하기 보다는 당시의 국제정세를 분석한다. 그리고 거란의 본심이 무엇인지를 탐지한다. 서희는 여러 분석을 통해 거란의 본심은 고려를 점령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원의 송나라를 제압하는데 있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는 소손녕을 만나 담판을 벌인다. 고려는 고구려의 후예이고, 거란과는 과거 발해를 통해 한 나라를 이루었던 혈족이라는 논지를 편다. 오히려 거란이 고려의 점령한 땅을 돌려주어서 형제의 우애를 유지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그런 작업을 통해서 동쪽 전선을 안정화시키고, 중원을 도모하는 것이 거란이 취해야 할 정책이라고 설득한다. 결국 이 설득이 통해서 영토를 빼앗기고 항복해야 할 처지에서, 서희의 세치 혀로 인해 강동 6주를 더 얻게 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소리 지르고 구호외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분석과 명확한 판단을 통해서 실리를 추구하는 이런 서희가 일어나야 한다. 지금 우리는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시대의 난제를 풀어가는 21세기의 서희를 고대한다.
전병욱 서평 17. 왕따는 글로벌 경쟁력이 있다!
『나는 한국의 아름다운 왕따이고 싶다』 by 김성주 (중앙M&B)
일전에 텔레비전에서 당찬 여성의 인터뷰를 들었다. 자신만만하게 앞에 놓인 한계를 뚫고 나가는 리더로서의 인상을 풍기는 사람. 그가 바로 김성주이다. 김성주는 대성그룹이라는 재벌그룹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그런 방패막에 연연하지 않고, 살찐 돼지로서의 삶보다는 고뇌하는 소크라테스, 도전하는 야생마가 되기를 원한 사람이다. 그의 시각은 지극히 미국 중심적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인정하는 사람의 시각이다. 그래서 '없는 자'의 반발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어떤 주장보다 현실적이다. 그의 주장에는 탁상공론이 없다. 현장에서 흘러나오는 진한 땀냄새가 있으며, 가진 자의 책임을 느끼는 부분에서는 강한 공감을 느끼게 한다. 그는 여성이다. 진정한 여성의 각성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자극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어떤 분야의 대가의 음성은 확실히 남는 것이 있다. 이 책은 실제적으로 한 분야에서 터부의 한계를 넘은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많은 인사이트를 준다.
김성주는 청교도적인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 Oblige: 가진 자의 책임)를 강조한다. 미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블루밍데일스의 총수인 마빈 트라우브 회장의 솔선수범하는 모습에서 강한 인상을 받는다. 그 회사에서 가장 편한 사람은 수위이고, 가장 힘든 사람은 회장이다. 이것이 그 회사를 강하게 만드는 힘이다. 반면에 우리 나라의 회장님은 경제 위기 속에서도 호텔 스위트룸이 아니면 묵지 않겠다는 객기를 부렸다는 점을 부각한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바탕이 허약할수록 화려한 치장을 한다. 내실을 강화하는 모습, 실제적인 실력을 기르는 일에 집중해야 함은 백번 타당한 일이다.
우리나라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문제 해결의 능력'으로 본 그녀의 의견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앰허스트 대학을 다닐 때, 그녀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 교수의 강의를 거의 그대로 외워서 썼다. 만족한 답안을 내고 A학점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B학점이었다. 교수에게 항의했더니 교수 왈, "그것은 내 생각이지, 자네 생각이 아니잖아!"였다고 한다. 답습이 아니라 독창적인 생각, 다른 사고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교과서는 원래 과거를 배우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미래의 새로운 도전을 감당하는 능력을 기를 뿐이다. 그런데 한국식 교육은 문제 해결 능력을 길러주지 못한다. 그런 점에 교육의 개혁은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문제를 푸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컴퓨터를 예로 들어보면, 문제를 중심으로 풀 때 빠른 시간 내에 성장하게 됨을 알 수 있다. 대개 100가지 정도의 문제를 해결하면 컴도사라는 말을 듣게 된다. 사실과 직면하고, 문제와 직면할 때, 성장이 있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이다. 진리는 책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장을 사랑하라. 진리의 보고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에게는 한국의 엘리트에 대한 불신도 깔려있다. 그 탁월한 엘리트가 중요 회의에서는 전혀 준비없이 참석한다고 한탄한다. 준비한 만큼 보이고 알고 있는 것만큼 얻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많은 엘리트들이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시를 패스한 인재들이 상관들의 가방이나 들고 있다는 것은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자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세워져야 한다. 얼마전 어떤 병원에서 집회를 가졌다. 자세히 보니, 의사들이 문서를 작성하고 있고, 간호사들이 컴퓨터를 입력하고 있었다. 이것은 인력낭비이다. 왜? 그들은 연구해야 하고, 환자를 만나야 한다. 그들의 전문성을 활용해야 한다. 그들 월급의 1/4이면 그들보다 더 탁월하게 일할 수 있는 사무능력을 갖춘 사람이 즐비하다. 그들에게 사무는 맡기면 된다. 각자의 강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시스템, 그것이 효율이다.
김성주는 매사에 남들과 같이 생각하지 않고, 왕따로서의 길을 걸었다. 왕따를 부정적인 의미에서만 볼 것은 없다. 한계상황에서의 리스트를 극복하는 '한계인'(Marginal Man)이라는 의미로 보면 왕따의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발전하지 못한다. 그런 사회에서는 오히려 왕따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는 선각자가 아닐까! 영어에 'The Last Straw'라는 표현이 있다. 당나귀는 힘이 세다. 그러나 등에 많은 무게를 얻으면, 언젠가는 넘어지게 되어 있다. 한계상황에서 마지막 얹는 지푸라기 하나 때문에 나귀의 무릎은 꺾인다. 일종의 임계질량을 의미한다. 한 사람의 변화가 큰 것같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나 지속적인 시도를 하다보면, 나 한사람의 변화가 전체를 굴복시키고, 변화시키는 마지막 지푸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회에 이런 아름다운 왕따가 필요하다. 능력과 거룩을 가지고 왕따가 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 사람들의 수가 늘어날 때, 사회는 잃었던 활력을 되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변화를 맛보게 될 것이다.
전병욱 서평 16. 목회자들의 목회자가 주는 영적 훈계
『 성공주의 목회신화를 포기하라』 (Under the unpredictable plant) by 유진 피터슨 (좋은 씨앗)
내가 처음으로 유진 피터슨을 안 것은 이동원 목사님을 통해서였다. 얼핏 지나가는 말로, "미국의 목회자 가운데 나와 가장 비슷한 사람이 유진 피터슨"이라고 했는데, 그때부터 유심히 유진 피터슨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접하며, 그때 이동원 목사님이 "유진 피터슨이 나와 비슷하다"고 하신 말씀은 "유진 피터슨과 비슷했으면 좋겠다"는 권면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유진 피터슨의 책은 나의 시각과 태도의 균형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유진 피터슨은 영성의 사람이요 목사들의 목사인 셈이다.
유진 피터슨은 미국에서는 매우 잘 알려진 사람인데, 한국에는 소개가 너무 늦은 것 같다. 은퇴한 이후에나 소개됐으니 말이다. 최근의 마르바 던과의 공저 『껍데기 목회자는 가라』(좋은 씨앗), 십대들의 영적 인도를 그린 『거북한 십대, 거룩한 십대』(홍성사), 『한 길 가는 순례자』(IVP) 정도가 유진 피터슨의 책으로 소개되었다. 번역은 안되었지만, 『묵상하는 목사』(contemplative pastor)같은 책은 목회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이 책은 내가 유진 피터슨 책 중에 제일 먼저 읽은 책이기도 하다.
유진 피터슨은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이지만, 매우 밝다. 나는 영적 건강을 '밝음' '기쁨'에 두곤 한다. 영성을 한다고 하면서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 영성이 도대체 어떤 영성인지 의심케 하는 영성도 있다. 그러나 유진 피터슨의 책은 항상 밝다. 유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깨우침을 주는 영적 충격이 있다.
『성공주의 목회신화를 포기하라』는 요나서를 통해서 올바른 소명의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크게 보면, '다시스의 환상'과 '니느웨의 현실'을 대비시킨다. 다시스는 성공과 호기심, 흥미를 자아내는 곳이다. 반면에 니느웨는 멸시와 거절감이 있는 자리이다. 많은 영적 지도자가 니느웨를 버리고, 다시스의 성공을 향해 매진한다는 것이다. 비단 목회자들 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되새겨 들어야 할 귀중한 외침이다. 우리의 소명이 변질되지는 않았는가? 사람은 언제든지 썩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항상 이런 외침 속에 자신들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회복이 가능하다.
교회는 비즈니스가 아니다. 교회의 사명은 영혼을 살리고, 예수의 이름을 선포하는 것에 달려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인가 세상의 마케팅 이론과 비즈니스 이론이 교회를 잠식하고 있다. 사람들이 십자가와 교회의 수치스러움을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교회가 진정으로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수치를 끌어안아야 한다. 교회는 십자가 부재, 고통에 대한 병적인 혐오감, 자기 중심주의로 인하여 '거대한 평범화'(trivialization)의 길을 걷고 있다. 교회는 결코 평범해 질 수 없다. 교회에는 고난과 부조리를 뚫고 나가는 영광이 있어야 한다. 온갖 외적 도전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대응하는 건강함이 있어야 한다.
대부분 교회 개혁을 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너무 부정적이다. 교회를 개혁하려는 것인지 파괴하려는 것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 유진 피터슨의 강점은 그 개혁의 출발을 자신의 혁신에서 찾는다는 데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 삶에 변화를 일으킨 사람이 누구인가? 그것은 변화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사람들이다." 즉 주변의 기도하지 않고, 영적으로 자고 있는 사람들이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더 각성해야 한다는 자극제로 다가왔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이 있다. 긍정적인 자극이든 부정적인 자극이든, 그것을 자신의 변화를 위한 원동력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자극들이 집중된 힘으로 자신을 통해서 표출된다. 유진 피터슨을 통해서 성공주의의 폐해와 재앙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를 든든히 세우기 위한 자신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런 두 가지 유익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 책만큼 신앙에 있어서 영적인 촉매가 되는 책도 없을 것이다.
『 갓 캐처스 』(God catchers) by 토미 테니(Tommy Tenny)
토미 테니를 처음 알게 된 것은 99년에 접한 『하나님을 좇는 사람』(God chasers)이라는 책을 통한 만남이었다. LA에서 아는 제자가 비행기에서 읽으라고 준 책이 바로 그 책이었다. 이 책에서 받은 인상은 모태신앙의 가정에서 자란 청년이, 기존의 굳어진 교회체제에 답답함을 느끼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열정에 발버둥치는 모습이었다. 나도 모태신앙의 가정에서 자라서 그 심정이 무엇인지를 조금 알고 있었고, 그래서 비슷한 감흥이 전달되어 왔다.
토미 테니는 누구인가? 그는 1956년생이다. 매우 어린 16세부터 설교를 시작했고, 주로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전도(mobile ministry)에 강한 사람이다. 즉 순회 전도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보면, 그의 메시지가 왜 강력한 지를 알게 된다. 그는 부흥사다. 불꺼진 심령에 불을 붙이는 부흥사이다. 그러면 그가 강조하는 불붙이는 하나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맛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는 그의 두 책, 『하나님을 좇아가는 사람』(God chasers)나 『하나님을 붙잡은 사람』(God catchers)의 동일한 주제이다.
'첫 번째 책만한 둘째 책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토미 테니에게도 해당되는 말인 것 같다. 『갓 캐처스』의 중요한 내용은『갓 체이서』에 다 나온다.
그는 시63:8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난 체험을 말한다.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시 63:8). 그리고 일반 교회에서 느끼지 못하는 하나님의 임재의 감격을 한탄한다. "떡집에 떡이 없다!(No bread in the house of bread)."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서 인간이 얼마나 영광스러울 수 있는지를 강조한다. 토미 테니는 이런 점에서 '현존의 신학'(theology of presence)을 추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살아 있는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를 통해서 얼마나 사람들이 변화될 수 있는지를 말해 준다.
『갓 캐처스』는『갓 체이서』의 후편인 격이다. 이제는 '기대만 하지 말고, 누리자'라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사실 앞의 책을 읽지 않았다면, 왜 이런 주장을 강하게 하는지를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갓 캐처스』는 앞의 책의 감동과 강조점을 느낄 수 없는 약점이 있다. 그러나 번역은 둘째 책만 되었으니, 이 책으로 만족하는 수 밖에!
하나님은 숨으시는 하나님으로 종종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게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전략이다. 딸과의 숨바꼭질을 통해서 하나님의 만남을 유추한다. 조금은 억지스러운 면도 있으나, 애교스런 접근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갓 체이서에는 없으나 '갓 캐처스'만이 갖는 독특한 점은 '하나님을 향한 타는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시 107:9)
이 책의 가치는 예배에 대한 강조이다. 이제까지 예배의 부흥을 말하는 사람들은 많았으나, 예배의 본질이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것을 말하는 사람은 적었다. 진정한 부흥이란 방법론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의 전제 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철저한 병자로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그래서 테니는 회개를 강조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는 것을 강조한다.
'갓 캐처스'를 읽은 사람은 누구나 뭔가 부족함을 느낄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서는지에 대한 호소가 약하다. 조금은 구호에 머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부흥이나 하나님의 임재는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를 드려보면 그 말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답답함을 느낄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더 좋은 책을 쓰든지, 아니면 더 좋은 예배를 실제로 경험하면, 이 책은 좋은 예배에 관한 전채요리(appetizer)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 예배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은 사람은 한번쯤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토미 테니의 저서 중에 국내에 소개된 책은 『하나님의 드림팀』이다.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아주 단순하게 설명한다. 하나님의 드림팀을 만드는 비결은 '연합'에 있다. 예수님의 기도 중에 응답되지 않은 것은 "저들로 하나가 되게 하소서"라는 기도라고 한다. 이 이루어지지 않은 예수님의 기도를 이루는 연합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드림팀'이다.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기 위해 선발하신 천하무적 팀이다. '연합이 부흥의 필수 조건'이라는 교회 성장에 대한 색다른 조망을 갖게 만드는 재미있는 책이다. 매우 싼 책이다. 싼 책 좋아하는 사람은 찾아서 읽어 보라. 그러나 책은 책값으로 골라서는 안되고, 내용으로 골라야 한다.
전병욱 서평 13. 지적 저수지를 만나는 기쁨
『프로페셔널의 조건』 by 피터 드러커 (Peter Druker)
대가를 만나면 변화가 일어난다. 그런데 평생을 통해서 대가가 아닌 소인배 주변에만 몰려 다니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소인배가 되는 것이다. 대가와의 만남은 축복이다. 80년대 초반 대학을 다닐 때, 하버드대와 서강대가 합작으로 한글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를 발간했다. 창간호부터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안에 많은 글들이 있었지만, 항상 내 주목을 끌었던 것은 피터 드러커의 글이었다. 드러커의 글은 생각하게 만들다. 그리고 무릎을 치게 만든다. 그리고 나같이 실용적인 사람은 이것을 어떻게 현실에 적용할 수 있을까를 놓고 고심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피터 드러커는 경영에 있어서 지적 자극의 저수지이다. 80년에 나를 사로잡았던 피터 드러커가 이제는 90세가 넘은 노인의 모습으로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책들을 발간했다. 그것이 『프로페셔널의 조건』『변화 리더의 조건』『이노베이터의 조건』등의 일련의 종합서들이다. 이 책들은 새로운 내용을 담았다기 보다는 피터 드러커의 모든 저작의 총집합이라고 볼 수 있다.
80년대에는 앨빈 토플러라는 환상 때문에 피터 드러커가 그렇게 대중 속으로 파고 들지 못했던 것 같다. 앨빈 토플러의 책은 약간의 추상성이 있다고 한다면, 피터 드러커는 훨씬 현실적이다. 그래서 드러커의 글을 읽으면, 실제적인 인간이 된다. 그는 현실을 무시하거나 초월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이다. 이런 시각을 드러커를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이다.
미래는 지식사회가 된다. 과거에는 지식과 현실이 유리되어 있었다. 이 점에서는 동서양이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프레드릭 테일러같은 사람은 최초로 지식을 산업에 적용시켰다. 그 유명한 '작업 연구'(work study)가 그것이다. 테일러의 지식을 산업에 연결시키는 일련의 작업으로 인해서 '생산성 혁명'이 일어났다. 실제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를 깬 것은 바로 테일러의 생산성 혁명이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테일러는 파이를 '어떻게 나누느냐의 문제'에서 '파이의 크기를 크게 만드는' 대안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드러커의 글에는 항상 대안적인 접근이 있다. 이것이 드러커의 강점이다. 그는 예언자임과 동시에 구도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드러커의 글에는 왜 풍성함과 깊이가 있는가? 그는 끊임없이 학습하는 사람이다. 드러커는 3년 주기로 새로운 분야에 대한 학습을 한다고 한다. 한 분야의 학문을 한다는 것은 그 학문의 방법론을 배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한 접근이 가능한 것은 다양한 방법론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원래 탁월한 인사이트는 그 내부에서는 모르는 것이다. 오히려 다른 분야를 연구하다보면, 본래의 자기 분야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철도는 자체의 갱신의 능력으로 개선된 것이 아니다. 비행기, 선박과 같은 타 분야의 압박이 철도의 발전을 가져온 것이다. 사회의 변화가 사고에도 영향을 주고, 산업에도 영향을 준다. 이런 상관관계를 이해하는 시각을 드러커는 지적한다.
피터 드러커는 경영철학을 가진 일종의 철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태도와 정신에 대한 강조를 언제나 빼놓지 않는다. 이런 예를 든다. 미국 정부산하 연구소에 나이 많은 출판국장이 있었다. 그는 과학자도 훈련받은 작가도 아니었다. 그래서 주변에서 전문가적 세련미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별로 주목받지 못하다가 퇴직을 했다. 그의 퇴직 이후 일류 과학 전문 기자가 출판국장으로 채용되었다. 물론 전문가다운 냄새가 물씬 풍겨 나는 잡지로 변신되었다. 그런데 그 간행물의 주요 독자층인 과학자들이 구독을 중단하겠다는 연락들을 하는 것이다. 왜? 어떤 독자가 이런 말을 했다. "지난 번 출판국장은 '우리들을 위해'(for us)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국장은 '우리에게'(to us) 글을 쓰는 것 같습니다." 바로 이 차이이다. 애정과 헌신이 무엇인지를 알겠는가? "우리를 위해 ---을 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이것은 설교에서도 적용된다. 왜 별 내용 없는 것 같은 설교가 성도들을 변화시키는가? '성도들을 위해서' 하는 설교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내용은 좋은데 왜 감동이 없는가? 말은 옳은데, 그냥 '우리에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결국 변화의 원동력은 자세와 태도에 달려 있는 것이다.
드러커의 또 다른 책들도 동일한 영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 나온 책 중에 『21세기 리더의 선택』이라는 책을 한 번 읽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전병욱 서평 12. 복음주의 거장과의 만남
『십자가로 돌아가라』(The Enigma of the Cross) by 앨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E. McGrath)
21세기 생존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면, 앨리스터 맥그라스를 만나라고 소개하고 싶다. 맥그라스는 제임스 패커, 존 스토트의 뒤를 잇는 복음주의의 거장이다. 오히려 호소력이나 설득력은 앞의 두 사람을 뛰어넘는다.
성경의 권위와 기독교의 신앙 전통을 위협하는 많은 시도들이 있어왔다. 비평주의, 후기 자유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종교 다원주의 등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성경을 무너뜨리고, 신앙의 파괴를 자행하는 일들이 벌어져 왔다. 복음주의자들은 모두 잠들은 것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품을 정도의 상황들이 지속되었다. 그런데 맥그라스는 그 모든 영적 골리앗의 도전을 소년 다윗같은 한 명의 필설로 다 무너뜨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영성과 지성의 균형을 추구하는가? 그렇다면 세 사람을 배우면 된다. C.S. 루이스, A.W. 토저, 그리고 앨리스터 맥그라스가 그 사람이다. 특히 맥그라스는 기독교의 오랜 진리를 현대적인 의미로 재해석하고 강화시키는 탁월함을 지니고 있다. 현대의 설교자들이 오랜 기독교의 진리를 현대의 언어로 설교해야 할 필요성이 있듯이, 맥그라스는 신학자의 입장에서 신학의 현대화 작업을 하는 귀중한 인물이다.
맥그라스는 그 이력이 특이하다. 그는 신학 이전에 분자생물학을 공부한 자연과학도이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분자생물학 박사학위를 얻었고, 그 이후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 차례로 신학을 공부했다.
맥그라스의 책은 저자의 이름만 보고 모두 다 사서 읽어도 후회되지 않을 것이다. 가장 권하고 싶은 책은 『Christian Theology』(신학 개론)이다. 이 책은 그가 지금 옥스퍼드에서 신학과 역사를 강의하고 있는 것과 같이 교회사의 개관과 조직신학의 핵심 사항을 선명하게 설명한 귀중한 책이다. 내 자신의 신학적인 체계는 이 책을 통해서 재점검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600페이지가 넘고, 가격이 40달러를 넘으며, 국내에는 번역이 되지 않았다는 약점이 있다. 그러나 구하는 자에게는 누리는 영광이 있으리라!
최근의 여러 자유주의 신학의 도전에 관한 명확한 반격의 논리를 갖추고자 하는 사람은 『복음주의와 기독교적 지성』(A Passion for Truth)을 권한다. 이런 좋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다. 좀더 세련된 디자인과 표지, 마케팅이 있었다면, 이 책은 이 시대의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것이다. 이 책 입소문 좀 내라. 이 책을 읽고서 후회한다면, 그는 기독 지성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자유주의자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책이다.
많이 들었으나, 쉽게 이해하지 못할 많은 개념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이신칭의의 교리'(Justification by Faith)이다. 이 이신칭의의 교리에 대해서 현대적으로 풀이한 책이 『이신칭의의 현대적 의미』(생명의 말씀사)이다. 이 교리를 설교하려는 설교자는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이다.
맥그라스의 많은 책이 있지만, 모두 지성의 자극에 있어서는 탁월했다. 그러나 그의 책 가운데 유독 『십자가로 돌아가라』는 가슴에 불을 지르는 책이다. 십자가의 선명한 의미가 다가오고, 루터의 십자가 신학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깨닫게 하는 책이다. 기독교는 십자가를 도외시하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십자가가 중심적인 메시지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의 자연과학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계몽주의자들의 유치한 접근에 대한 통쾌한 반격을 가하고 있다. 십자가는 고통회피의 신학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의 신학임을 제시한다. 죽음까지도 정복하고, 현세의 한계를 뛰어넘는 십자가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맥그라스의 책은 삶의 현장에서 분주하게 뛰어 다니고, 선교의 현장에서 자칫 체험만을 강조하고, 의미를 놓치기 쉬운 목회자들에게 중심을 잡아주게 하는 귀중한 축복이다.
전병욱 서평 11. 안식의 진정한 의미는?
『안식』(Keeping the sabbath wholly) by 마르바 던 (I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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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바 던을 최초로 접했던 것은 친구 김병국 교수가 번역한 『나는 언제까지나 외롭습니까?』(I'm Lonely, Lord - How long?)였다. 시편의 말씀을 깊이 있게 묵상하며 해석한 책이다. 나도 얼마 전에 시편에 대한 책을 냈기 때문에 큰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느낀 점은 깊은 고독을 경험한 사람의 글이라는 것이었다. 조금 나쁘게 이야기하면, 노처녀 히스테리쯤으로 보이는 염세성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알 수 없는 깊은 감동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마르바 던의 첫인상이었다.
그 이후 이동원 목사님의 표현에 의하면 '나와 가장 유사한 설교가'라는, 유진 피터슨의 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읽다가 보면, 유진 피터슨의 글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글이 나오곤 했다. 어찌된 일인가 보니까, 유진 피터슨과 마르바 던이 한 장씩 교호적으로 쓴 책이었다. 그 책이 바로 『껍데기 목회자는 가라』(The unnecessary Pastor)이다. 이 책은 마치 플라시도 도밍고와 존 덴버의 이중창을 듣는 듯하다. 유진 피터슨의 예리하고 세련한 진단과 마르바 던의 우직하지만 선이 굵은 묵상의 고백을 접하게 된다. 하나님은 참 다양한 사람을 만드시고, 그 다양한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이런 예비적 만남 이후에 『안식』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제는 구면인 친한 친구를 만나는 듯한 정감이 있었다. 그리고 이전의 책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논리와 정돈된 연구결과를 볼 수 있어서 또 다시 놀라게 되었다. 안식의 의미에 대해서 혼돈이 있는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참고서는 없을 듯하다.
마르바 던은 안식의 의미를 크게 4가지로 구분한다. 그침, 쉼, 받아들임, 향연이 그것이다. 아마도 안식에 관해서 이보다 더 명료한 구분과 분석이 있을까 생각될 정도로 깊이 있는 분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첫째, 안식은 '그침'이다. 단순하게 일을 그치는 것 뿐만 아니라 생산과 성취를 그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을 성취의 척도로 평가하는 것을 그치는 것은 인간에 대한 귀중한 가치를 재발견하는 길이 되곤 한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에게는 근심과 걱정이 그치지 않는다. 바로 안식은 이런 욕심의 그침, 근심의 그침을 의미한다. 인간은 하나님이 아니다. 그러나 삶의 상황 속에서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시도를 그치지 않는다. 안식은 바로 인간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둘째, 안식은 '쉼'이다. 우선 말씀으로 인한 영적인 쉼이 안식이다. 또한 육체적으로 지치고 상한 몸의 회복이 중요하다. 현대는 많은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정서적인 상처들이 많다. 안식은 이런 정서적인 상처들을 치유하는 시간이다. 21세기를 지적 사회라고 말한다.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 안식은 이런 지식을 추구하는 강박으로부터의 쉼을 의미한다. 다시금 자연의 상태 그대로 어린이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쉼의 모습이다.
셋째, 안식은 '받아들임'이다. 공동체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안식이다. 자기의 뜻과 자기의 야망으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요구와 뜻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안식이다. 그래서 기도는 말하기보다는 듣는 것이 우선이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다. 하나님이 주신 소명과 뜻을 받아들이는 자만이 진정한 안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안식은 '향연'이다. 안식은 즐거움이다. 안식은 축제이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도록 지음받았다. 초대교회는 음식을 중심으로 모이는 축제하는 교회였다. 이것이 진정한 안식의 모습이다. 우리의 모임도 바로 이런 축제가 있는 안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이제까지 받은 축복을 얼마나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점을 자각하게 된다. 진정한 능력은 안식에서부터 나온다. 안식을 잘하는 사람이 능력있게 일하는 사람이다.
마르바 던의 『나는 언제까지나 외롭습니까?』(I'm Lonely, Lord - How long?)와 『껍데기 목회자는 가라』(The unnecessary Pastor)도 읽어보면 큰 유익이 될 것이다. 특히 『껍데기 목회자는 가라』는 390페이지나 되는 긴 책이면서 5,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을 붙여서 파는 출판사의 "미끼 상품"이다. 기꺼이 미끼가 되어주어라. 고통보다 즐거움에 사로잡히는 느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No.9 전병욱 서평 9. 문화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작성일: 2002/07/03 [PM 03:39]
전병욱 서평 9. 문화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문화가 중요하다(Culture matters)』 by 새뮤얼 헌팅턴 (김영사)
한마디로 좋은 책이다.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자세를 갖게 만드는 밝은 책이다. 22인의 석학이 쓴 글을 편집한 책이지만, 각각의 글이 모두 한 권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20대 이전의 나이에 이 책을 소화하고 넘어간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60년대 초 가나와 한국은 경제 상황이 비슷했다. 그런데 90년대의 모습을 보면, 15배의 소득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낳는가? 그것은 문화라는 것이다. 한국인은 검약, 투자, 근면, 교육, 기강, 극기정신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한다. 반면에 가나는 그런 가치를 갖지 못했다. 문화의 차이가 결과의 차이를 낳는다.
일이 잘못될 때, 두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와 "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이다. 앞의 질문은 개선과 발전을 가져오지만, 후자는 음모론과 편집증을 가져온다. 사회 일부에서는 자신의 낙후를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타인에게서 찾는 이상한 풍조가 있다. 그래서 자기 반성으로 나가지 않고, 타인에 대한 공격으로 표출되곤 한다. 건강치 않은 모습이다. 이런 태도도 일종의 문화이다. 비판적인 문화는 낙후되게 되고, 자기 반성적인 문화는 개선과 성장을 가져온다. 남미는 자신의 낙후를 타인의 착취에서 찾는 종속이론에 매달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외부의 투자없이는 오히려 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최근에는 적극적으로 투자를 유치하는 쪽으로 변화되고 있다. 남미는 오랜 기간 종속이론의 볼모가 되어서 더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런 태도가 바로 문화이다. 문화는 태도를 낳고, 태도는 성패를 가르게 되는 것이다.
문화적 요소 중에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의 뿌리가 프로테스탄티즘에 있다고 갈파했다. 베버는 부자보다 빈자를 중시하는 카톨릭의 흐름과 부유하고 성공한 자를 중시하는 프로테스탄트의 흐름을 대비한다. 이런 태도를 갖는 문화가 경제의 전진과 후퇴를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카톨릭에서는 가난한 자가 자신의 가난을 정당하다고 여긴다. 반면에 부자는 자기 자신을 죄인으로 여겨서 마음이 불편하다. 대조적으로 프로테스탄트는 자신의 성공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긴다. 반면에 가난한 자는 가난을 하나님의 저주로 생각했다. 이것이 저축과 투자를 통한 자신의 처지의 개선을 추구하는 강한 동기가 된 것이다.
개발지향 사회에서는 부와 품질을 성취하기 위해서 경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발전저항적인 사회에서는 경쟁을 죄악시 한다. 경쟁을 공격적 심성의 한 형태로 매도한다. 경쟁 대신 유대, 충성, 협동이 강조된다. 경쟁을 부정적으로 보기에 질투와 유토피아적 평등을 합법화한다. 결과적으로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흘러서 전체 경제를 몰락케 한다.
지금의 미국 주도의 신경제체제를 논리적으로 적극 옹호하는 이런 류의 주장은 현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판단에는 균형이 중요하다. 그러나 건설적인 모습으로 나가려면, 이런 개발지향적인 사상이 주류를 이루고, 비판적인 사상은 견제를 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생산적이고, 건강한 모습의 발전 논리로서는 좋은 기준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탁상공론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을 이끌려고 하는 리더는 사역의 바이블같이 여겨도 좋을 책이다.
이 책의 여러 주장의 뿌리가 되는 책이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다. 20세기 초반에 쓰여진 책이다. 이 책은 문화가 경제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는 고전적인 책으로 반드시 읽고 넘어가야 할 원리 중의 원리의 책이다.
전병욱 서평 7. copy는 힘이 없다. original이 되라!
『나는 오랑캐가 그립다』 by 김경일 (바다출판사)
강점을 가지고 살라
약점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 있고, 또 강점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 있다. 승리하는 인생의 비결은 자신의 강점을 가
지고 사는 것이다. 강점을 가지고 살기 위해서는 "결코 남이 되려고 해서는 안되고, 자신이 되려고 해야 한다."
copy는 힘이 없다. original이 되어야 한다.
나라와 민족마다 나름대로의 강점이 있다. 미국은 '개척의 힘'이 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곳,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도전의식이 강하다. 다른 나라가 이런 힘을 따라한다는 것은 벅찬 일이다. 유럽은 '합리주의의 힘'이 있다. 매사를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철학적인 접근을 하려고 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식의 사고가 유럽을 지배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쉽게 넘어서기 힘든 그들만의 강점이다. 중국은 거대한 시간의 힘을 안다. 이것을 '문화의 힘'이라고 한다. 복숭아 씨 하나를 놓고, 4대에 걸쳐서 조각하는 것이 중국의 힘이다. 이런 끈기를 다른 민족이 뛰어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본은 '정성의 힘'이 있다. 철저하고, 성의를 다하는 그들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한번 일본에서 일식 상을 받아보라. 차마 먹지 못할 예술이다. 이런 지극 정성을 쉽게 따라할 민족은 많지 않다.
만약에 우리가 이런 다른 나라의 강한 모습들을 따라한다면, 결코 그들을 추월할 수 없다. 왜? 원조가 아니라 아류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만의 독특성, 다른 민족이 흉내낼 수 없는 강점이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저돌성이다. 생명력있고, 창조적이며, 활력있는 모습이다. 이것을 저자는 "오랑캐 정신"이라고 부른다. 다른 민족들이 머뭇거릴 때, 우리는 벌써 중간쯤 가있다. 남들이 10년 걸려 만드는 다리를 우리는 2년이면 만든다. 종종 무너져서 문제이지만, 그런 저돌성을 누가 흉내내겠는가?
2002년 월드컵의 캐치 프레이즈가 "dynamic Korea"라고 들었다. "역동적인 한국!" 이것이 바로 오랭캐 정신이다. 우리의 강점을 가지고 일할 때, 가장 강할 수 있다. 저자는 한국인의 강점을 명확하게 찾아낸 것 같다. 우리가 스스로 자조하던 약점이 사실은 강점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중요하다.
영어의 문제
저자의 지난 책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를 보면, 그는 분명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난 2년여 동안 피나는 노력으로 상당한 영어공부를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어공부에 대한 간증식의 글들이 나와 있다. 영어의 초보들에게는 상당히 도움이 되겠으나, 사실 영어 공부 학습서로는 부족함이 있는 듯하다. 이 부분은 그냥 한 사람의 처절한 영어 공부 도전기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영어는 외국어이고, 한자를 사용하는 지금의 말은 순수 한국어인 줄 아는 것은 착각이라는 지적은 매우 중요하다. 언어는 도구이다. 사상과 내용을 전하는 도구일 뿐이다. 많은 도구를 준비하는 것은 세계와 함께 문화를 나누는데 필수적이다. 지금부터 어학에 투자하라. 이것은 21세기의 생존의 철학이다.
발상의 전환
저자는 한국사를 한반도로 한정짓는 것에 항의한다. 한국의 역사는 여진, 거란, 동이족을 다 품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역사의 흐릿한 인연을 근거로 티벳을 영토로 편입해 버렸다. 이런 강압적인 것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사를 크게 품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다양성을 품는 문화가 최종적인 승자가 된다. 우물 안 개구리 의식은 항상 벗어나야 한다.
일본에 의해서 한반도는 반도국가이기 때문에 여러 강대국의 침략을 받는 위치라고 들어왔다. 이 말은 틀린 말이다. 조금만 발상의 전환을 하면, 한반도는 모든 나라와 연결을 할 수 있는 기가 막힌 위치인 것이다. 저자는 한반도의 터가 시장터라고 역설한다. 미래는 경제의 시대가 될 터인데, 한반도만큼 좋은 위치를 점한 나라도 없다는 것이다. 생각이 미래를 바꾼다. 우리의 선입견으로 인해서 죽은 기회가 얼마나 많은가? 긍정적인 발상의 전환은 항상 기적을 낳는다. 싱싱한 도전의식을 갖추어야 할 젊은이라면 이 책이 가슴에 불을 지를 것이다. 그리고 그 불길을 가지고 좀더 세심하게 미래를 치밀하게 준비한다면, 이 책만큼 도움을 받는 책도 많지 않을 것이다.
저자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책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도 아직 읽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읽어볼 가치가 있다. 그리고 중국과 대만 선교를 자주 가는 필자가 중국 문화를 알기 위해서 읽었던 『중국인은 화가 날수록 웃는다』도 솔솔한 재미가 있다.
전병욱 서평 6. 지루한 설교를 듣고 은혜받는 법
『설교는 이렇게 들어야 합니다』 by 제이 아담스
요즘 설교에 관한 비판이 많다. '지루해서 못 듣겠다, 설교자의 자질이 문제다, 꼭 설교만이 하나님의 방법이냐, 다른 길을 찾아보자' 등 많은 말들이 오고 간다. 이런 말들은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왜? 하나님은 지금도 설교를 통해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설교의 영광이 사라지면, 교회의 영광도 사라진다. 설교의 능력이 무시되면, 하나님의 교회도 무시되곤 했기 때문이다. 설교의 영광을 도외시하고, 설교 이외의 것에 매달리는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진정한 부흥은 항상 설교자의 부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여전히 설교라는 방법을 통해서 성도들에게 말씀을 주신다.
그런데 이 설교에 많은 문제가 생겼다.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약화되고 있다. 설교자들이 더 많이 변화되고, 위로부터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한가지 질문을 해야만 한다. "그러면 설교자의 문제에만 온통 집중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혹시 듣는 자의 책임은 없는가?"를 물어야 한다.
제이 아담스는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 것은 씨의 문제가 아니라 밭의 문제라고 역설한다. 풍성한 열매는 씨의 문제, 뿌리는 자의 문제가 아니라 씨가 떨어진 밭의 문제라는 것이다. 좋은 밭이 되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밭이 될 것에 대한 각성이 더 시급한 일이라고 말한다. 에덴동산에서의 범죄를 보자.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들음의 태만이 문제였다. 잘못 들은 것이 문제였다. 듣는 것의 개선이 시급하다. 아이언 사이드는 이런 재미있는 말을 했다. "나는 설교의 은사는 받았는데, 청중은 듣는 은사를 못받았다."
설교에서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설교자뿐 아니라 듣는 사람도 준비가 필요하다. 제이 아담스는 『설교는 이렇게 들어야 합니다』에서 설교를 듣기 위해 먼저 준비해야 할 것과 취해야 할 태도, 설교 경청을 방해하는 것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은 설교 듣는 법에 관한 최초의 책일 것이다.
최근에 일반서적에서는 학습법에 관한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교회 내에서도 듣는 법에 대한 훈련과 공부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이런 자극을 주는 귀중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잘 듣고 싶은가? 듣는 것을 통해서 생명을 느끼고 싶은가? 옥토와 같은 자세로 듣고 싶은가? 『설교는 이렇게 들어야 한다』를 읽으라.
그럼 설교를 잘 듣는 길은 무엇인가?
첫째,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잘 듣기 위해서 영적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어떤 남자 분이 억지로 교회에 끌려 나왔다. 아내 기사 노릇하다가 이제는 뒷자리에 앉게 되었다. 한 2달 가까이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는 목사님이 잘 못알아 듣는 설교를 했는데, 요즘에는 목사님이 잘 알아듣는 설교를 하십니다. 설교가 많이 변했어요." 그때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 설교가 변한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마음이 변화된 것입니다." 성령이 아니면 말씀은 이해되지 않는다.
둘째, 간절한 기대감이다. 태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성경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행17:11)라고 말한다. 기대감이 있어야 잘 들리게 된다. 교회에서 설교를 들을 때는 한가지에만 신경을 쓰라.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말씀은 무엇인가?" 어린아이다움이 있어야 한다. 순수한 마음, 열린 마음이 있어야 들리게 된다.
성경을 살필 때에도 진리를 발견하려는 간절함 때문에 성경을 살펴야 한다. 편견 가지고 가면 아무 것도 못 얻는다. 흠이 있나 없나 하는 꼬투리 잡는 듣기는 병든 귀이다. 히 5:11을 보면,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고 말씀한다. 듣는 것이 둔한 귀가 있다는 말이다. 설교듣기는 "트집 잡기"가 아니라 "진리 찾기"이다.
제이 아담스는 형편없는 설교에서 은혜받기라는 장난기 섞인 제안을 한다.
1. 메시지의 주요 핵심을 찾으라.혹은 이렇다 할 요점이 없으면 그 읽은 성경본문이 시사하는 핵심이 무엇인지 찾으라.
2. 나라면 그 본문을 어떻게 요리할까를 자문하라.
3. 사실 너무 기록을 많이 하다가 은혜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지루한 설교는 더 많이 기록하라.
4. 설교가 도무지 들어 줄 수 없는 날에는 아예 설교를 잊어버리고, 찬송, 성경봉독, 기도 가운데서 일말의 깨우침을 줄 수 있는 것을 붙들라.(비참하다)
5. 이단같은 소리나 전혀 엉뚱한 말씀을 전하면, 그 설교를 반대로 듣고 배우라. 스펄전의 회심 이야기를 기억하라. 스펄전이 어떤 교회에 갔다. 그날은 우연히 목사 대신 다른 사람이 설교했다. 설교하는 사람이 너무 설교를 못했다. 내가 하면 잘하겠다고 하면서 목사로 헌신 했다고 한다. 나도 졸리는 설교 많이 들었다. 나는 저렇게 하면 안되지 하는 반면교사로 삼으면 된다.
6. 30년 동안 회당에 앉아 말도 안되는 설교를 들으신 예수님을 기억하라.
스펄전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세계 여러나라의 형편없는 설교를 들었다. 유익을 얻으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 한 유익되지 않은 설교는 없었다."
제이 아담스와 거의 같은 취지로 나온 신간이 있다. 톰과 조아니 슐츠의 『먼저 밭을 일구라』는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이 책의 자매서로 가르치는 기술을 말하는 톰과 조아니 슐츠의 『지루함을 깨뜨리는 가르침의 기술』도 읽어 두면 인생에 도움이 될 책이다.
No.1 전병욱 서평 1. 지적 고전을 만나는 기쁨
작성일: 2002/07/03 [PM 03:35]
전병욱 서평 1. 지적 고전을 만나는 기쁨
『고통의 문제』 (The problem of Pain) by C.S.Lewis
고전의 가치는 시대가 변하여도 흔들리지 않는다. 고전은 거대한 물줄기의 지류가 아닌 원류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C.S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는 분명 고전이고 원류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고통은 풀리지 않는 난제이다. 세상의 많은 철학과 종교가 이 고통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발버둥쳐 왔다. 대개 인간의 이성에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한 것이 "응보의 논리"이다. 그러나 실제 삶에 있어서의 고통의 문제는 "응보의 논리"로서는 풀리지 않는 더 많은 부분들이 남아있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괴로워한다. 이 풀리지 않는 고통의 문제는 평범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철학자들에게도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였다. 그래서 고통에 관한 수없이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 것이다.
나는 고통에 관한 책을 200여권 이상 읽었다. 목사요 설교가로서 이 고통의 문제만큼 자주 다루어야 할 또 다른 주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기독교인이든 기독교인이 아니든 간에 고통을 다룬 거의 모든 저작에서 C.S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라는 책은 한 번 이상씩은 언급하고 간다는 점이었다. 이 말은 영미계통의 저자들에게 미치는 C.S 루이스의 영향력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고, 또 이 책 <고통의 문제>를 넘어가지 않으면 고통의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없을 정도로 이 책이 탁월한 내용이라는 의미가 된다. 나는 이 두 가지의 의미가 다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C.S 루이스는 고통의 문제를 대략 이렇게 풀어나간다.
첫째, 고통이라는 형식으로 다가오는 축복이 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같이 축복은 축복이라는 포장지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때때로 내게 배달된 고통이라는 소포가 있다. 누구나 뜯어 보기를 주저한다. 그런데 그 고통이라는 포장지를 뜯어보면, 그 안에는 엄청난 축복의 내용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고통은 삶을 풍성하게 하고, 하나님을 알게 하고, 연약함을 강하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통은 축복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고통은 변장된 축복이다."
둘째, 고통을 통해서 사랑받을 자로서의 자격을 얻는다는 것이다. 신데렐라가 왕자의 신부가 되는 것은 축복이다. 왕자는 신데렐라를 신부로 선택하고 난 후, 누더기 차림의 신데렐라로 만족할 수 없다. 목욕을 시키고, 깨끗한 옷을 입히고, 품위 있는 매너를 가르친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은 축복임과 동시에 고통이다. 편하지 않은 새로운 경험이다. 그러나 신나는 경험이다. 황홀한 경험이다. 의미있는 경험이다. 이 고통은 변화를 위한 고통이요 성숙을 위한 고통이다. 사랑에는 고통이 따른다. 고통은 타락을 치료한다.
C.S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는 특별히 지성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내가 만난 대학교수 가운데 그들의 삶의 변화에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가장 많이 C.S 루이스를 들곤 한다. 그의 글에는 지성이 있다. 설득력이 있다. 공감을 자아낸다. 그래서 지성인들에게 강력하다. 그리고 그의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고백이 있다. 그래서 시 C.S 루이스에게 매료된다. C.S 루이스는 "차가운 이성과 따뜻한 가슴"을 지닌 행동가이다. "생각의 게으름은 가장 큰 범죄이다." 시 에스 루이스는 우리에게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고통의 문제>는 생각을 자극하는 정신적 촉매이다. 청년에게 있어서 20대에 가장 큰 지적 유산을 물려받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C.S 루이스를 만나라고 권하고 싶다. 루이스를 소화하는 것은 20세기 지성을 소화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고통의 문제>는 1940년에 쓰여진 글이다. 그러나 내용의 적실성은 21세기인 지금도 강한 호소력이 있는 강력함이다. 루이스는 1920대 이후 소천하게 되는 1963년(필자가 태어난 해)까지 엄청난 분량의 저작을 남겼다. 특히 놓치지 않고 권하고 싶은 책은 일차적으로 이 책 <고통의 문제>이고, 그 다음에는 지적 사고의 결산이라고 할 만한 책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1942)이고, 또 마귀의 세계를 재미있게 묘사하고, 마귀의 영적인 유혹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는지를 우화의 형태로 묘사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The Scretape Letters,1942)를 강하게 추천하고 싶다.
전병욱 서평 2. 강한 자를 피하고 약한 자를 공격하라
『히틀러는 왜 세계 정복에 실패했는가』 (How Hitler could have won world war) by Bevin Alexander
인간은 진정으로 복잡한 존재이다. 선한 측면이 있는 것같이 보이나, 사악함이 드러나고, 천인공노할 죄인인 줄 알았다가도 그 속에서 어린아이같은 순수함이 드러나 주변을 깜짝 놀라게도 한다. 모순같이 보이는 세상사,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을 명확히 알기 위한 명확한 렌즈는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전쟁이라고 확신한다. 전쟁은 인간의 문제를 가장 확실하게 드러낸다. 전쟁은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시금석이다.
21세기는 리더십의 중요성이 무엇보다도 강조되는 시대이다. 그러나 리더십에 관한 책들 중에 현실성이 없는 책상에서 나온 책들이 많다. 그러면 가장 현실적이고, 사실에 입각한 리더십 책은 무엇일까? 그것은 전쟁사에 관한 책이다. 병법서이다. 그 안에는 이론과 도덕이 아닌 현실과 실전에서 이기는 실제적인 도구들이 나와 있다. 지도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적어도 1년에 1-2권 정도의 병법서나 전쟁사에 관한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 작은 세계가 들어 있다. 그 안에 수많은 인사이트의 광맥이 숨겨져 있다.
군사 전략가요 저술가이기도 한 베빈 알렉산더는 히틀러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한다. 히틀러는 역사상 가장 사악한 지도자였지만 동시에 가장 능수능란한 전략가요 지도자였다. 초창기의 히틀러의 전략과 리더십은 타의추종을 불허할 혁신적인 것이다. 히틀러의 군대는 막강한 화력, 패배를 모르는 군사, 거침없는 깃발이 상징하는 강력함 그 자체였다. 베빈은 히틀러의 강점에 대해서 이렇게 요약한다.
첫째, 손자 병법을 읽었는지는 모르지만, "강한 자는 피하고, 약한 자는 먼저 공격하라"는 병법의 기본에 철저했다는 것이다. 유럽의 제국 가운데 먼저 약한 나라들을 하나씩 점령해 나갔고, 나중에 가장 강한 프랑스와 영국과 대치하는 빈틈없는 전략을 펼쳤다.
둘째, 에리히 만슈타인, 하인즈 구데리안,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을 가진 롬멜 등 탁월한 장군들이 보좌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강대함은 결코 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히틀러는 탁월한 장군들을 거느리는 행운 중의 행운을 누리고 있었다. 만약 히틀러가 이런 탁월한 장군들의 보좌를 끝까지 신뢰하고 따르기만 했더라도 연합군은 쉽게 나찌를 무너뜨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셋째, 병력을 집중시키는 새로운 전략이다. 당시의 영국과 프랑스는 전선이 20킬로라고 하면, 20킬로 전체에 걸쳐서 병력을 균등하게 배치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전차군을 비롯한 기동력있는 부대를 전위로 해서 병력을 한 곳에 집중시켰다. 그리고 집중된 군사력과 기동력을 이용하여 적의 진영 깊숙이 까지 진격하여 적진을 양분시켰다. 그로 말미암아 적이 당황할 때, 양쪽을 괴멸시키는 전략을 사용했다. 히틀러는 집중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의 2/3는 어떻게 히틀러가 강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상당한 영감을 주는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그런데 나머지 1/3은 히틀러가 무력하게 무너지는 장면들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앞부분에서는 쉽게 납득이 되던 부분들이 이 후반부에 와서는 의아함만을 자아내게 만든다. 왜? 히틀러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악수를 두어서 스스로의 무덤을 파기도 하고, 이것이 미치광이가 아닐까 하는 정도의 이상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몇가지 예증을 든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독일 기갑사단은 프랑스의 덩케르크라는 해안에 영국군 338,000명과 프랑스 군 120,000명을 완전 포위했다. 공격하기만 하면 완전히 궤멸시킬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히틀러는 이상한 명령을 내린다. 3일동안 어떤 공격도 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 사이에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요트와 나룻배를 이용해서 완전히 영국으로 도망치게 되었다. 영국 쪽에서는 이것을 "덩케르크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의회와 교회가 반기를 내리고, 이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했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 무사히 생환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독일 쪽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둘째, 영국과 미국의 배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것이 독일의 U- 보트라는 잠수함이다. 이 잠수함은 4,000척 이상의 배들을 대서양에서 수장시켰고, 미국과 영국의 교류를 차단하는 무서운 무기였다. 그런데 히틀러는 이유도 없는 이 U 보트의 생산을 중단시키고, 쓸데없는 전차의 생산라인으로 변경시킨 것이다. 그 이후 해상제해권을 놓치고,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저자는 히틀러의 일련의 결정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무너지게 하려고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밖에는 해석할 길이 없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의 책사 가운데 아히도벨이라는 탁월한 사람이 있었다. 아히도벨은 다윗을 완전히 궤멸시킬 책략을 제시한다. 그런데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기막힌 전략을 저버리고, 사실상의 다윗의 숨은 부하였던 후새의 의견을 따르다가 망한다. 성경은 이것을 이렇게 묘사한다.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모략은 아히도벨의 모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파하기로 작정하셨음이더라" (사무엘하 17:14)
겉으로 드러나는 결정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 기독교인이라면, 겉으로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행간에 숨겨진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한 감격과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병법서의 기본은 손무의 『손자병법』이다. 인용도 많이하고, 인구에 회자되기도 하지만, 실제로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 사람은 많지 않다. 고전은 시대를 뛰어넘는 호소력이 있다. 한해가 가기 전에 손자병법으로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듯하다.
짧막한 에피소드 식의 인사이트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에릭 두르슈미트 저)가 좋을 듯하다. 워털루 전투, 탕가 전투 등 유명한 전투를 통해서 승리의 결정적 요소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승리를 낳는 지도력의 비밀이 무엇인지를 재미있게 분석했다. 지도력의 묘미를 만끽하려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전병욱 서평 3. "2등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마케팅 불변의 법칙(22 immutable laws of Marketing)』 by Al Ries and Jack Trout
경영학자나 장사꾼의 글을 읽을 때 얻는 유익이 있다. 그것은 "사실과 직면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실상 상인만큼 현실적인 존재는 없다. 그들은 명분에 의해서 움직이지 않는다. 당위에 의해서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철저하게 사실과 이익이 있는 곳을 향하여 움직인다. 그래서 철학과 관념으로 포장된 가식의 세계에 살다가 상인의 글을 읽으면 냉혹한 현실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아마도 『마케팅 불변의 법칙』만큼 마케팅의 문외한들이 많이 읽은 마케팅에 관한 책도 없을 것이다. 이미 여러 광고들을 통해서 이 책의 개념과 내용을 접했을 것이다.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한 사람은?" "찰스 린드버거" 그러면 "두번째로 대서양을 횡단한 사람은?" "모른다." 두 번째의 주인공은 버트 힝클리이다. 그는 찰스보다 더 빨리 비행했고, 연료도 더 적게 들었다. 그러나 버트 힝클리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왜? 2등이기 때문이다. "2등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 책은 마케팅의 중요한 개념을 22가지의 법칙으로 제시한다. 우선 개념이 명확하고, 각 장마다 풍성한 예화가 들어 있어서 읽기에 편하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이 속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많은 인사이트가 있다. 간단하게 몇가지 법칙을 살펴보자.
첫째, '선도자의 법칙'이다. '더 좋은 것보다는 맨 처음이 낫다.' 많은 사람은 '좋은 제품'이 마케팅의 최대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케팅의 싸움은 '인식의 싸움'이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보다는 더 빠른 제품이 낫다. 사람들은 첫 번째 제품만을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최초의 상품은 제품명이 되곤 한다. 복사기를 제일 먼저 만든 것이 제록스이다. 그런데 이 제록스는 회사명이 아니라 아예 복사한다는 동사가 되어 버렸다. '크리넥스' '코크' '스카치 테이프' 등은 분명 한 제품의 이름인데, 전체의 제품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왜? 최초의 상품이기 때문이다.
둘째, '영역의 법칙'이다. 어느 영역에 최초로 들어갈 수 없다면, 최초로 뛰어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라. 두 번째 대서양을 횡단한 사람은 잘 모른다. 그런데 세 번째 대서양을 횡단한 사람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그는 '아멜리아 이어하트'이다. 왜? 세 번째이기 때문에 아는 것이 아니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이기 때문에 기억하는 것이다. 맨 처음으로 들어가지 못했다고 희망을 버리지 말라. 당신이 맨 처음 들어갈 수 있는 영역을 찾으면 된다.
셋째, '기억의 법칙'이다. 시장에 먼저 들어가는 것보다 기억 속에 먼저 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최초의 PC는 MITS 앨테어 8800 이다. 그런데 이것은 기억되지 않았다. 왜?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초창기의 컴퓨터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코모도어 팻, IMSAI 8080, Radio Shack TRS-80, Apple 이다. 이 중에 어느 것이 기억나는가? 단연 애플이다. 왜? 쉽기 때문이다.
오랜 전의 일이다. 한국에 온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호텔 중에 기억나는 호텔을 적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조선 호텔과 같이 대형호텔이 몇 개 기록되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그리 크지 않은 호텔인데, 서린 호텔이 그 명단에 올라간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서린 호텔의 영자 표기 때문이었다. 서린을 Seoulin 으로 표기한 것이다. 즉 'Seoul'과 'in'을 결합하여 '서울 안에 있는 호텔'이라고 기억하게 된 것이다. 사람의 인식에 들어갈 만큼 쉽고, 강한 이름도 중요한 것이다.
22가지의 마케팅 불변의 법칙을 한가지씩 음미해 본다면, 한 해가 가기 전에 자신의 약점과 강점을 분석하게 되고, 미래를 합리적으로 개척하고 준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리스 부부의 『브랜딩 불법의 법칙 22』도 브랜드의 중요성이 점점 강조되는 현대에 적합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또 많이 알려진 알 리스와 잭 트라우트의 『마케팅은 전쟁이다(Marketing Warfare)』(절판)도 추천할 만하다. 카알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기본으로 하여 마케팅을 분석한 수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병욱 서평 4. "세상을 뒤집어 엎는 교회"
『부흥하는 교회의 전도파워』(The Upside-Down Church) by Greg Laurie
미국 이민교회의 목사님들 가운데 영향력 있게 사역하는 많은 분들이 있다. 그런데 그 분들의 설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인용하는 빈도도 많은 한 명의 저자를 들라고 하면 나는 그렉 로리를 들고 싶다. 그만큼 그렉 로리는 탁월한 사역자들에게 많은 인사이트를 제공한 명쾌한 설교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그렉 로리가 한국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마도 앞선 선각자들이 자기들만 숨어서 읽는 대표적인 저서를 들라고 하면, 바로 그렉 로리의 저서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랜만에 그렉 로리의 저서가 한국에 소개되었다. 그런데 원제가 『The Upside-Down Church』인데, 『부흥하는 교회의 전도파워』라고 번역해 놨다. 아마도 이 책이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이유가 이런 촌스런 제목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예 원제목과 같이 『세상을 뒤집어 엎는 교회』가 더 강력하지 않을까!
그렉 로리는 척 스미스의 직계 제자이다. 철저하게 말씀 중심적이고, 전도에 파워풀한 갈보리 채플의 아들이다. 그러나 그렉 로리는 척 스미스를 뛰어넘는 현대성과 젊은이에 대한 강한 도전이 있다. 그렉 로리는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의 하비스트 크리스천 펠로우쉽의 담임목사로 해마다 전국적인 복음 전도 집회인 'Harvest Crusades'(추수 전도)를 개최한다. 이제까지 200만명의 사람들이 그를 통해서 복음을 들었다고 한다. 아마도 현재 미국에서 젊은이들에게 가장 강력하게 영향력을 미치는 젊은 목사가 그렉 로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렉 로리의 책은 많이 번역되어 소개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이 책을 통해서 그렉 로리의 강한 인사이트를 공유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교회가 바른 교회가 되기만 하면 세상을 뒤집어 엎을 수 있다. 컴퓨터 화면에 예쁜 아이콘이 뜬다. 그 아이콘을 클릭하기만 하면 프로그램이 작동한다. 그러나 그 예쁜 아이콘 내면에는 강력한 하부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겉으로 보이지 않는 강한 하부구조로서의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강력하게 구동할 수 있는 것이다. 워런 위어스비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만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교회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파워가 있는 교회라는 말이다.
이런 강력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수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소수의 능력의 그리스도인이 있으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런 강력한 그리스도인들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세워지는 일꾼이 아니라 다만 소비자적인 입장에서 누리기만 하는 나약한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는 원래의 교회 성장 법칙을 네가지로 들고 있다.
첫째, 예배하는 교회가 되어라. 그러면 소비자를 만족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교회가 될 것이다.
둘째,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어라. 그러면 건강한 새신자들을 재생산하는 교회가 될 것이다.
셋째, 배우는 교회가 되어라. 그러면 깊이 있는 성도들을 양산하게 될 것이다.
넷째, 사랑하는 교회가 되어라. 그러면 세상이 감명하는 강력한 교회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실제로 강력하게 전도하는 법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과 성경적인 배경을 제시하고 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뒤집기 계획이 전도에 있다. 그러므로 현장으로 나가서 전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능력이 임재하는 교회이다. 그리고 이 책은 전도의 실제 원칙들과 불신자의 질문에 대한 친절한 답변, 세상을 뒤집어 엎는 사랑의 강력함 등을 제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함의 원천인 기도에 대해서 매우 실제적으로 모델을 제시한다.
사실 추수 전도는 책 한권만으로는 완전한 이해가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척 스미스의 갈보리 채플이 왜 강력할 수 있는지를 그렉 로리의 사역과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렉 로리라는 이름만 있어도 모든 책을 사라.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나라에 번역된 책은 이 1권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영서로는 『On Fire』(주문 불가), 『A Passion for God : The Practical Power of the Holy Spirit in Your Life』등을 추천한다.
전병욱 서평 5. "바쁜 사람에게 일 하나 더 시키라"
『CEO의 다이어리엔 뭔가 비밀이 있다』 by 니시무라 아키라 | 디자인하우스
이번 주에는 조금 가벼운 실용서를 다루려고 한다. 몇주 전에 LA에 집회를 가면서, 인천 공항 서점에서 우연히 접한 책이다. 일단 비행기에서 읽을 책이기에 너무 무겁지 않은 책이 좋을 듯하여 가벼운 책 위주로 몇 권을 샀다. 그 중 가장 큰 도움을 받은 책이 바로 『CEO의 다이어리엔 뭔가 비밀이 있다』라는 책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느리게 사는 길" "느림의 미학" 등을 외친다. 이것도 상당히 의미가 있는 외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와 같이 매일 매일 콘베이어벨트에서 일들이 쏟아지듯이 끊임없이 일을 해야 할 사람에게는 현실적이지 못하다. 오히려 니시무라 아키라의 제언과 같이 일정시간에 많은 일을 효과적으로 하는 길을 찾는 것이 자기 외에는 일을 감당할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는 더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보면서 놀란 것은 저자와 내가 거의 비슷한 바쁜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니시무라는 한해에 300회 이상 강연을 하고, 10개 이상의 잡지에 글을 연재하며, 매년 10권 정도의 단행본을 펴내는 사람이다. 어떻게 이 많은 일을 혼자서 할 수 있을까, 하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나도 거의 비슷한 인생을 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니시무라를 보면서, 마침 나의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 또 내가 강조하는 가치와 상당히 유사한 주장을 한다고 느끼게 되었다.
예를 들면, 새벽 3시에 깨는 일이라든지, 전자 수첩이나 PDA를 사용하지 않고 종이수첩을 사용하는 점,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 바쁜 사람에게 일 하나를 더 시키라는 철학 등이 너무 유사했다. 아마도 한정된 시간 안에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거의 같은 패턴의 인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할 수 없이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해야 할 사람들에게 유용한 책이다. 그 지혜를 나누면, 훨씬 인생을 수월하고 효과적으로 살게 될 것이다.
이 책의 강조점을 한 두가지 살펴보자.
1. 새벽에 일찍 일어나라.
저자는 새벽 3시에 기상한다. 왜? 하루가 24시간이라고 하지만, 24시간 전부가 같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분명 새벽의 시간과 밤의 시간은 가치가 다르다. 새벽은 대개 분 단위의 의식을 가지고 시간을 접한다. 출근시간이 1분 남았다. 5분 내로 팩스를 보내야 한다는 식의 접근을 한다. 반면에 밤시간은 시간단위로 지나간다. 아무 생각없이 텔레비전 앞에서 2시간을 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므로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밤 시간을 줄이고, 새벽 시간은 늘리는 길 밖에 없다. 무조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그러면 지금보다 몇 배는 효과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도 새벽 3시에 기상한다. 그래서 기도와 독서로 낮 12시까지를 보낸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한다. 항상 운동하고, 항상 강의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설교는 언제 준비하느냐고 묻는다. 그때마다 나는 씩 웃으면서, "그대들이 잠자고 있을 때!" 라고 독백한다. 새벽을 깨우면, 인생을 깨울 수 있다.
2. 스테이션 브레이크(station break)
이 말은 방송용어이다. 대개의 프로그램은 1시간 짜리가 아니다. 방송국마다 1시간을 55분 프로그램과 5분 프로그램으로 조합을 해서 편성한다. 한국에도 57분 교통 정보 등이 이런 예이다. 왜 그런가? 1시간을 한 덩어리로 다루는 것보다 55분과 5분으로 나누는 것이 스폰서 유치에도 유리하고, 사람들의 인지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도 통상 일을 할 때, 이렇게 큰 덩치의 일과 작은 단위의 일을 조합해서 하면 지루함 없이 많이 일할 수 있다. 나의 예를 든다면, 설교 준비하는데 50분을 투자하고, 10분은 엽서를 쓰거나, 이메일 체크를 하거나 전화를 건다. 또 50분 일을 하고, 결재해야 할 것들을 결재한다. 이런 식으로 일을 하면, 지루함도 없고, 자투리 시간에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대개 지금같은 서평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쓰곤 한다. 15분이면 대개 한가지의 일을 한다. 자투리 일의 목록을 10여개씩 가지고 다니면서, 틈틈히 처리할 수 있다.
이 책은 책상에서 쓰여진 글이 아니다. 실제로 몸으로 뛰면서 체득한 지혜의 산물이다. 모든 내용이 따라야 할 절대절명의 진리는 아니라 할지라도 낭비하지 않는 인생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한 번 읽게 되면 결코 후회하지는 않을 책이다. 또한 읽을 때, 웃음을 짓게 만드는 솔솔한 재미도 가미된 책이다. 한 해를 정리하면서 자투리 시간에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읽을 정도의 가치는 충분히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