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詩<3>
먼 後日
김소월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19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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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는 그 사람이여!/ 사랑하는 그 사람이여!' <초혼>
소월(본명 김정식:1902~1934)의 시에서 사랑의 상실은 이처럼 가차없이 절절하다. 그의 사랑에 대한 갈구는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여...' 이후 이별과 그리움이라고 하는 정한(情恨)의 정서를 우리 말의 가장 아름다운 분화구로 터트렸다고 할 만하다. 그래서 그의 시는 시대를 막론하여 읽는 사람을 그 뜨겁고 눈물겨운, 그리고도 리드미컬한 호수 속으로 빠뜨린다. 흥겨운 듯 눈물겨우니 이를 어쩌누! -中略-
<먼 後日>은 소월의 생전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의 맨 앞을 장식하는 것으로 보아 소월 자신도 대표작으로 생각한 듯하다. '못 잊겠지만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라며 떠나간 임'<못잊어>. '심중에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임', 그래서 '산산이 부서진, 허공중에 흩어진 이름', 현재(오늘)도 과거(어제)도 아닌 먼 미래(후일)에도 잊을 수 없다고, 잊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그 '임'이다. 과연 우리는 그러한 임을 가질 수 있을까? 그것은 단순한 세속적 사랑의 대상을 이미 '저만치'<산유화> 초월한 자리의 임인 것을!
소월은 서른 셋이라는 황금의 나이에 생아편을 먹고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 자결은,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날 있으리다.<못잊어>라거나,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가는 길>이라고 한 그의 '임'을 생각해보면 차라리 '순교'가 아니었을까 싶다. -下略- 장석남 시인